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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빈 “누군가 나를 마중 나오면 좋겠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저자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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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속한 코호트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소설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2024.04.16)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서윤빈이 첫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을 선보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온은 100년 이상의 삶을 살아왔으나, 임플란트 장기 덕분에 신체적 노화를 거의 겪지 않은 트랜스휴먼이다. 1997년생, 현재 한국 문단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 중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하는 소설가 서윤빈은 100여 년의 기억을 가진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시공간을 향해 과감한 발걸음을 뗀다.



2022년에 데뷔하신 뒤 벌써 두 편의 소설집과 한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하셨어요. 거의 쉴 틈 없이 달려오신 것 같은데요, 작가로 지내온 소회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허버트 퀘인이라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작가라고 합니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하는데요. 저는 데뷔하기 전에도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북토크나 촬영, 강연 같은 건 즐거운 특별 이벤트이지 일상은 아니니까요. 결국 생활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셈이죠. 하지만 마음이 많이 다릅니다. 이젠 내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걸, 내가 쓴 글이 언젠가 반드시 읽힌다는 걸 압니다. 데뷔하기 전에는 누구나 ‘내 글이 읽힐 수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어쩔 수 없이 느끼잖아요. 데뷔를 하고 책도 몇 권 나온 지금은 더 책임감을 느끼기는 해도 글을 쓰는 일이 불안하거나 막연하지 않습니다. 데뷔가 문학적 성취의 조건은 아닐지라도 꾸준히 쓰기 위해서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확실히 데뷔하고 나서 저는 훨씬 더 많이, 열심히 쓰고 있어요.

제가 너무 소위 갓생을 사니까 요새는 주변에서 힘들지 않냐고, 소재가 고갈되지 않냐고 많이 걱정해주세요. 다행히 저는 사람 자체가 좀 딴지쟁이라서 글을 읽거나 길을 걷다가도 ‘이걸 왜 이렇게 하지?’ ‘어 저거 좀 이상한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보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아직 제 안에는 이야기가 많은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 )

이번 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을 짧게 소개해주신다면요?

소설은 미래의 어느 시점, 사람들이 늙어가는 장기를 하나하나 임플란트로 교체할 수 있게 된 한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영생을 누릴 수도 있지만, 장기 임플란트 구독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충분히 부유하지 못한 대다수 노인들은 여전히 죽음을 맞이하죠. 주인공 ‘유온’은 장기 구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을 유혹해 그들의 돈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소설은 그런 유온이 ‘성아’라는 인물과 필요 이상으로, 혹은 진심으로 가까워지는 바람에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말해도 여기저기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소개될 것 같기는 합니다만(그리고 그러는 편이 좋다고도 생각합니다만), 저는 사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와 상관없는 로맨스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소설 속 세계가 정말로 가능한 미래 중 한 가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디스토피아 소설과 달리 ‘(선하든 악하든) 누군가의 의지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도달하게 된 세계가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접질린 디스토피아의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어쩌면 조금 뜬금없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지금 20대의 젊은 나이인데, 8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온, 죽음을 마주한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무섭지 않나요. 나도 언젠가 늙을 텐데 사실 20대들이 많이 가는 곳들에선 노인분들이 많이 안 보이잖아요. 젊은이에서 노인이 되는 과정이 점진적 변화인지 삶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한 번에 점프하게 되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언제나 늙음을 의식하고 사람들이 좋게 나이들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속한 코호트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소설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인데, 이 소설의 세계를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장기 임플란트 1세대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임플란트가 당연시되는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이 너무 달라져버려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의 내면을 잘 풀어낼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억지로 그렇게 쓰려고 하면 너무 설명적이거나 어색한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느낌이 들었지요. 소설을 다 쓰고 보니 좋은 선택을 했다 싶어요.

작품 속에는 인류가 거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다만 인간의 노동력이 대부분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 인간이 몰두할 직업이나 과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인데요. 그래서인지 작중인물들의 긴 삶이 어쩌면 다소 무료하고 괴롭게도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들이, 특히 화자인 유온이 삶을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죽음이 스위치 끄듯 찾아온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사람이 많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 죽는 것보단 죽을 만큼 아픈 게 무섭거든요. 유온은 그렇게 죽어간 부모를 본 사람이고, 죽음에 대한 그의 공포는 심리적이라기보다는 거의 육체적이에요. 뜨거운 데 닿으면 손가락을 황급히 거두어들이는 것처럼요. 그는 늘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관해 잘 모릅니다. 언어는 자신을 돌아보기에 그리 적절한 도구가 아니거든요. 유온이 유독 아이로니컬하게 보이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싶네요.

데뷔하실 당시 한국에서밖에 나올 수 없는 SF(김보영 소설가)라는 심사평을 받으셨는데요.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도 작품의 배경이 무척 한국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한국’ 문학을 한다는 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의 이런저런 모습들, 특히 지금 이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충실히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보기에) 요즘 한국 작품 중에서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대부분은 그냥 배경처럼 뒤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충분히 거리두기가 된 상태로 나오죠. 『한국이 싫어서』『일의 기쁨과 슬픔』 같은 책이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마치 에세이나 대중 교양 서적처럼 ‘지금 여기 한국’을 다룬다는 점이 그 작품들에 특별한 위치를 부여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SF 소설을 쓰는 건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SF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 중 하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현재를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미래나 과거,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다루죠.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지금 여기 한국’에 관해 쓰기 어려울 거라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더 유리한 지점도 있습니다. 모든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이니까요. 지금 여기의 어떤 문제들은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고, 더 심각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야말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죠.

제 작품이 유독 한국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유온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과 짧은 연애를 한 뒤, 유산을 받아내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다만 그럼에도 상대에게 애정을 구걸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관계를 아주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요. 저는 이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아비정전〉의 바람둥이 아비(장국영 분)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유온이란 캐릭터를 만들며 고민하신 점이 있다면 듣고 싶어요.

전통적인 카사노바 캐릭터나, 요즘 소위 ‘알파 메일’이라고 불리는 인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인물상의 공통점은 자기가 가진 매력으로 상대방을 끌어당긴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얼굴과 성격이 재미있는 거죠. 그런데 알다시피 아무리 재미있는 것도 자기 문제가 심각할 때는 눈에 안 들어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사랑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 ‘마중 나가는 걸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유온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채널예스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도 궁금합니다. 

앞으로는 소설만이 아니라 시나 희곡, 아동문학같은 다른 분야의 글도 써볼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작가가 자기 장르에 갇히는 느낌이 강한데 저는 꼭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로만, 평론으로만, 동화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제 안에는 그런 이야기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 서윤빈에서 종합 예술가 서윤빈으로 점차 진화할 테니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잊지 마세요!

아참, 그리고 구매와 추천은 제 퇴사에 큰 도움이 됩니다. 베스트셀러는 알아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분과 제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봐 독자! 너 내 동료가 되어라!



*서윤빈

고려대학교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전깃줄이 하늘을 일곱 조각으로 잘라놓은 걸 보다가 문득 소설을 쓰게 되었다. 완전 힙합 같은 글을 쓰고자 하며, 유머를 잃지 않기 위해 늘 수련하고 있다. 2022년 「루나」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날개 절제술』이 있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저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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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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