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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오랫동안 참아온 것을 터뜨릴 줄 아는 사람들이 일기를 쓴다 (G. 서윤후 시인)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85회) 『쓰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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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일기를 자주 쓰는데 세상에 공개돼서는 안 될 내용들이거든요. 그런데도 누군가 본다는 생각은, 항상 생각이 아니라 일종의 태도에 항상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등 뒤에서 보고 있는 눈, 그걸 의식하는 태도가 늘 있죠. (황정은) (2024.03.21)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보고 듣고 만나며 느낀 것들을 땔감으로 쓴다. 나의 땔감은 자주 젖어 있어서, 그것들을 말리는 시간만 한 계절이 필요하다. 그토록 어렵게 불을 질러놓고, 멀리서는 따뜻해 보이지만 가까이선 기침에 중독되어 들썩이는 나는 이 풍경 속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있을까?


서윤후 작가의 『쓰기 일기』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서윤후 시인 편>

오늘은 새로운 에세이 『쓰기 일기』로 돌아온 서윤후 시인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어서 오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윤후: 저는 시 쓰고 있는 서윤후라고 합니다.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편집자 일도 하고 있고, 시와 선문을 쓰고 있고, 세 살 고양이도 돌보고 있는 집사입니다. 반갑습니다.

황정은: 작가님의 이번 책 『쓰기 일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책이 오늘 나왔습니다. 저희는 미리 파일로 받아서 읽어봤는데. 어떤 마음으로 책을 기다리셨는지, 책을 받아보고 어떠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서윤후: 지금이 책을 내고 첫 일정이라서 사실 무언가를 실감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요. 이 책이 실물로 나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어요. 책 물성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안 하는 편인데 일단 편집자 선생님이 많은 신경을 써주셔서, 이 일기가 조금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안전히 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셨기 때문에 책을 실제로 받았을 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고요. 어제 인쇄소 직원분께서 책을 두고 가셨어요. 두고 가시면서 문자를 남겨주셨는데 카카오톡 메시지 이름이 제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누군가와 이름이 같아가지고 처음에 인쇄소 직원분인 줄 모르고 너무 떨리는 마음으로 그 메시지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집에 왔는데 직원분이시더라고요.

황정은: 그건 뭔가 시적인 상황인 것 같기도 한데요?

서윤후: 저한테 그런 일이 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리워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할 때의 당혹스러움 그리고 머뭇거림 이런 것들이 이 일기에 담겨 있어서 정말 이 책이 나왔구나 하는 실감을 좀 다른 면에서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작가님의 이전 산문집이죠.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제가 이번에 방송을 준비하면서 읽기 시작했어요. 읽어보니까 되게 여러 가지 감상이 드는데, 대단히 조용하고 조근조근한 좋은 집 같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이 책이 작가님에겐 어떤 책이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서윤후: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 한 권이 되리라는 걸 염두에 두고 쓴 책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가 선물해준 노트를 채우면서 시작한 이야기들인데 무언가를 계속하려고 했던, 그러니까 저를 소진하고 싶어 했던 지난 20대를 반추하면서 ‘그러면 이제 무언가를 안 해도 좋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좀 엉뚱하게 가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씩 쓸 때마다 이상하게 무언가 안 한 이야기를 쓰는데 계속 무언가를 해낸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 양면적인 마음을 그 책을 통해서 배웠던 것 같아요. 내가 무언가를 그만둔다는 건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목록을 계속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런데 그 책을 예상보다 많은 독자분들이 읽어주셨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황정은: 네, 증쇄를 여러 번 했어요.

서윤후: 동네 서점이나 작은 서점에서 우연히 들춰보다가 사게 되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걸 보고 그만둔다는 이 감각을 작은 책 한 권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공감을 해 주시는 분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역으로 감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황정은: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이 얼추 3년 전에 나온 산문집이잖아요. 이번에 일기를 묶으면서는 그때와 마음이 좀 달랐습니까? 어떠셨어요?

서윤후: 사실 『쓰기 일기』는 책을 염두에 둔 원고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황정은: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면 (책에 실린 글들을) 정말 일기에서 뽑으신 거군요.

서윤후: 네. 제가 사실 일기를 대여섯 종류를 쓰고 있거든요. 일기가 매일 쓰는 거라는 뜻이 있지만 매일 쓰지 않고 그때그때 카테고리별로 일기를 쓰는 편인데 그중에서 제가 혼자 읽고 싶지 않은, 그래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그런 일기들을 모았던 것 같아요. 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마음으로 쓴다는 것도 참 이상하긴 한데, 누군가가 본다는 그 미묘한 긴장감 같은 게 저를 더 솔직하게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걸 기대어서 썼던 일기들을 모아서 출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황정은: 저도 일기를 자주 쓰는데 세상에 공개돼서는 안 될 내용들이거든요. 그런데도 누군가 본다는 생각은, 항상 생각이 아니라 일종의 태도에 항상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등 뒤에서 보고 있는 눈, 그걸 의식하는 태도가 늘 있죠.


황정은: 『쓰기 일기』에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쓴 일기가 실려 있잖아요. 그런데 연도순이 아니라 날짜순으로 일기를 모으셨더라고요. 왜 그렇게 하셨어요?

서윤후: 처음에는 삶이 너무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니까 제가 그냥 시간에 복무하고 있다는 생각을 너무 강하게 하고 있었어요. 아주 사소한 기쁨과 슬픔을 실감하지 못하고 그냥 시간에 복무하고 있다는 강렬한 권태로움이 저에게는 일기 쓰기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 원인 중에 하나였거든요. 그런데 이 일기들을 책으로 내니까 좀 더 예쁜 제목으로 구성을 하는 것보다 내가 지나왔던 내가 복무했던 한 시절을 시간 순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도와는 상관없이 사계절이 흐르듯이 그냥 시간 흐름대로 두는 것이 이 일기들을 보는 데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서 그렇게 구성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쓰기 일기』의 첫 문장이 “어릴 때부터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였고요. 이전 산문집에서도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을 신뢰한다’라고 하셨거든요. 일기 쓰기의 어떤 면을 좋아하세요?

서윤후: 일기를 쓴다는 건 어쨌든 생각을 한다는 거고 무언가를 참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오랫동안 참아왔지만 그거를 터뜨릴 줄 아는 사람들이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요. 보통 일기 쓰면 되게 내향적이고 소극적이고 이런 걸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약간 강단 있는 사람들, 폭발력 있는 사람들이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 것들을 좀 봐주려고 하는 것 같고. 그리고 이전에 산문집에도 썼지만 30대 남성이 일기를 쓴다고 했을 때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해 하거든요.

황정은: 저는 그 이야기가 오히려 의아했어요.

서윤후: 그렇죠? 여행지에서 만난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해서, 저 스스로 한편으로는 좀 뿌듯했거든요. (웃음)

황정은: 뭔가 어린 시절의 습관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숙제처럼 해치우던 것으로 오랫동안 일기를 그렇게만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일기 쓰기를 낯설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서윤후: 맞아요. 그런 오해들이 있었지만, 주변에 일기를 쓰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너무 반가워요.

황정은: 제가 반가우셨겠네요. (웃음)

서윤후: 네, 너무너무 반가웠고.

황정은: 그런데 작가들 많이들 쓰지 않습니까? 일기.

서윤후: 작가들은 많이 쓰죠. 그런데 작가들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이나 다르게 알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저 일기 써요’라고 하면 반갑고. ‘일기 쓰세요?’ 이런 질문을 종종 하거든요. 일기를 쓴다고 하면 뭔가 같은 과구나, 그런 내적 친밀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황정은: ‘일기 쓰세요?’라는 질문은 어떻게 발생을 하는 거죠? 어떤 대화의 맥락에서 나오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서윤후: 그냥 일기를 쓸 것 같은 사람에게만 물어보긴 해요. 저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보통은 좀 속마음을 모르겠는 사람들 그러니까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기 쓰세요?’ 물어보고 일기를 쓴다고 하면 약간 안도감이 들어요. 저 이야기가 자기 안에서 너무 고여 있지 않게 하는 사람이구나, 자기에게 지혜로운 사람이구나, 이런 좀 섣부른 판단을 하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황정은: 일기를 쓰면서 “들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쓰기도 하셨거든요. 조금 전에 들려주신 이야기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긴 합니다만 어떤 마음일지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세요.

서윤후: 책에도 나오긴 하는데, 학교 다닐 때 진짜 싫어하던 아이가 있었거든요. 그냥 모든 여자애들을 놀리고 덩치는 제일 커서 본의 아니게 반 짱이고 공부도 너무 형편없이 하고 그래서 악영향을 주는 아이였어요. 제가 모든 학창시절을 반장으로 보냈는데 그런 애들이 눈엣가시였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키도 되게 작고 왜소해서 그런 애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는데, 교실에 일기를 지붕처럼 덮어놓잖아요. 선생님한테 제출하려고 그날 일기를 펴서 제출하는데, 그 친구는 항상 늦게 제출했기 때문에 맨 위에 있었거든요. (친구들이) 하교하고 제가 남아서 뭔가를 할 때 그 친구 일기를 몰래 봤어요. 일기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너무나 천진한 아이인 거예요. 그냥 엄마가 해준 갈비가 맛있었다,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그냥 저 아이도 나름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있고 우리가 늘상 먹는 저녁밥을 해먹고... 그런 걸 보면서 좀 달리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기라는 게 누군가에게 닿았을 때 이런 느낌이 들 수도 있구나,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 바라지 않았는데 어떤 부분을 그냥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기 쓰기에 대한 신뢰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일기장을 읽고 그 사람을 용서하는 상상을 하거든요.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어떤 내밀함을 다녀오는 방식이라서.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본다는 게 흔치는 않잖아요. 뭔가 합법적으로 블로그나 일기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구독해서 자주 읽고, 결국에는 그런 것들을 보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누군가 일기를 볼 때. 제가 다자이 오사무의 서한집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정말 형편없이 자기의 어떤 욕망을 쉽게 들춰내고 자기가 왜 상을 못 받냐고 막 심사위원에게 편지 쓰고 이런 거 보면 너무 엉터리지만, 자기 자신에게 너무 솔직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런 편지가 저는 일기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내가 몰랐던 누군가의 어떤 부분을 용서하거나 이해하게 될 때, 일기는 그런 영역으로까지 침투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기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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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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