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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오늘은 황인찬과 김민정의 대화입니다" (G. 김민정 시인)

책읽아웃 – 황인찬의 신변잡기 (3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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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우리를 살게 한다”고 말씀하시는, 김민정 시인님 나오셨습니다.


불을 켜는 사람이 있었다 

밤인데도 

불을 밝히는 사람이 있었다 

밤이니까 


안녕하세요. <책읽아웃-황인찬의 신변잡기> 황인찬입니다. 잠시 오은 시인을 대신해 자리를 맡았습니다. 오은 시인의 빈 자리가 많이 느껴지시겠지만, 그 빈 자리 허전하지 않게 제가 잘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금 읽어드린 시는 오은 시인의 시 「그것」의 한 대목입니다. 시집 『없음의 대명사』에 수록된 작품인데요. 이 시를 읽으며 밤에 불을 켜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어두운 밤, 무엇을 보기 위해 불을 켜는 것일까요. 그 어두운 밤에 어떤 외로움이 불을 밝히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밤, 불이 켜졌을 때 눈앞에는 무엇이 보이게 되는 걸까요. 잠시 불이 켜지는 그 순간에 대해 생각해보신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게스트를 한 분 모십니다. 이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오은 시인의 시를 조금 바꿔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시니까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시니까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시를 사랑하는 시인, 그리고 시인을 사랑하는 시인, 김민정 시인을 모시고 시에 대한,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삶에 대한 여러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인터뷰 – 김민정 편> 

황인찬: 김민정 시인님은 <책읽아웃>의 각별한 손님이기도 합니다. 여러 의미에서 그런데요. <오은의 옹기종기> 1회 게스트이시기도 하고요. 특별 편성 코너 <황인찬의 신변잡기>에도 첫 번째로 출연을 해 주신 귀한 손님이십니다. 시인님, 출연 연락 받으셨을 때 어떤 생각하셨나요?

김민정: ‘처음’이라는 포문은 징 같은 거잖아요. 징채를 쥐고, 잘 쳐서 묵직하고 큰 소리를 내야 되는데요.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징채를 쥐는 손에 힘도 없고요. 그런 자리에 가서 앉아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앉을 자리가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오은 시인님이 처음 진행하게 됐을 때는 ‘은이니까’ 했죠. 그리고 황인찬 시인일 때는 또 ‘인찬이니까’ 하게 됐어요. 이 무조건적인 좋은 마음 때문에 사실 왔습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었고요. 또 제가 ‘옹기’ 좋아하고 ‘종기’ 좋아합니다. 

황인찬: 너무 너무 좋습니다.(웃음) 근데 정말로 김민정 시인님은 약간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구니까 한다, 라고요. 그렇게 누군가를 각별하게 여기는 마음이 정말 큰 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게 한편으로는 시인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고요. 또 그 시인에 대한 사랑은 시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오프닝에 시인님을 소개하면서 제가 아는 사람 중 시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시인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 드리기도 했는데요. 이런 평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민정: 시와 시인을 가장 많이 사랑한다는 말은, 좀 맞는 것 같아요.(웃음) 제가 시와 시집을 사랑한다고 해서 제 생활이 윤택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죠. 사실 목적이 없는 사랑이거든요. 그렇지만 사랑은 목적이 없어야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도 해요. 시라는 것 자체가 어쨌든 목적이 없지만 세상에 숨어 있는, 작고, 여린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이 시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황인찬: 그래서 오늘 시에 대한 사랑과 시인에 대한 사랑, 그밖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데요. 일단 오랜만에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과 인사하시는 거니까요. 근황을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김민정: 요즘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우와, 눈 떴다’ 하면서 감사하고요. 밤에 자면서 ‘우와’ 하고 또 감사해요. 그리고 많이 웃으려고 노력해요. 이건 옛날에 안 했던 짓이에요. 그러니까 감사하나 안 하나, 노력하나 안 하나, 제 스스로 저를 감시하며 살고 있어요. 전에는 탈수기에 저를 집어넣고 미친듯이 짜내는 삶을 살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둬보기도 해요. 또 표현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은데요. 너무 좋아, 너무 싫어, 너무 행복해, 그런 말을 많이 말하려고 애써요. 그러면서 책의 언저리 안에서 자다가 일어났다가 걷다가 누웠다가 하죠. 여전히 책 주변에 있는 것 같아요.

황인찬: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초반 스타트보다 막판 스퍼트가 내 체질이다.’ 그러면 요즘 막판 스퍼트를 한창 올리면서 지내시는 건가요? 

김민정: 제가 원래 단거리 선수였잖아요. 멀리뛰기 선수였고요. 그때 제 몸으로 제 스타일을 알았어요. 단거리 선수한테 가장 중요한 게 스타트잖아요. 저는 늘 남의 뒤통수를 보고 뛰었어요. 총을 의식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의식하니까 출발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근데 뛰다 보면 내 몸의 근육이 느껴지고, 근육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면서 남의 시선이 의식되지 않고요. 그러면서 폭발적인 스피드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계주할 때도 항상 2주자였어요. 

늘 시작할 때는 뭔가 쭈뼛쭈뼛 하는 건 있는데요. 조금만 익으면 시선 의식을 안 하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스타일 같아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약간 눈치를 보다가 11월, 12월을 마치 1월, 2월처럼 일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황인찬: 막판 스퍼트를 내는 일, 타이밍을 맞추고 유연하게 움직이기 모두가 다 시의 어떤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막판 스퍼트가 체질이라고 하셨지만 또 이런저런 초반 스타트를 많이 하기도 하셨잖아요. 시인선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제가 이 얘기를 꼭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었는데요. 저는 김민정 시인이 우리 한국 문학사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민정 시인이 관여해서 출범한 시인선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랜덤하우스 시인선이고, 또 하나가 문학동네 시인선이죠. 이 두 가지의 시인선 모두가 말하자면 기존의 한국 문학의 지형도 자체를 바꿔버린 일대 사건이었거든요. 근데 거기에 깊숙이 들어가서 그거를 해버린 사람이 김민정 시인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김민정 시인이 최소한 한국 시문학을 세 번은 뒤집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은 랜덤하우스, 한 번은 문학동네 시인선, 그리고 가장 크게 뒤집은 건 김민정 시인의 시죠. 저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시인님은 2009년부터 문학동네의 시인선을 계속 해오셨잖아요. 이게 200호가 넘었고요. 200호가 넘으면서 이제 조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근데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건 어떤 이야기죠? 

김민정: 관둔 거죠.(웃음) 제가 2009년 1월 3일에 문학동네에 입사를 했을 거예요. 근데 문학동네 시인선 런칭이 2011년 1월 11일이거든요. 2년 걸린 거죠. 회사 입장에서는 2년 동안 저한테 준 월급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언제 저걸 런칭하려고 하는 걸까, 그러면서 답답도 했을 텐데요. 이게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저는 앞서 시인선을 한번 런칭해 봤기 때문에 알고 있었죠. 그 시인선이 44명을 계약해서 44권을 다 내고 정리가 됐던 거였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단 한 건도 품절이나 절판되는 거면 안 된다는 허락을 받고 갔던 거예요. 그렇게 그냥 묵묵히 기다려 주셨던 것을 되게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처음 시인선을 할 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진짜 흙더미밖에 머릿속에 없었거든요. 진짜로 고민을 긴 시간 했고요. 확신이 섰을 때는 거침없이 갔어요. 사실 10번까지 고비가 상당히 많았어요. 문학동네 시인선 10번까지는 정말 많은 얘기를 들었죠. 안 좋은 얘기를 말이에요. 서체, 디자인부터 종이까지 들은 얘기가 너무나 많았어요.  

저한테 맷집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던 게, 저한테는 이거 말고 없었어요. 저는 이거 외에 다른 수가 있었으면 아마 바꿨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야, 이게 맞아”라는 얘기가 계속 나가더라고요. 사표를 몇 번이나 썼죠. 나는 이거 아니면 아니니까요. 그렇게 제가 어느 정도 일을 했잖아요. 이제는 나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섰던 거예요. 100번 이후부터는 또 감사하게도 문학동네의 한국문학 편집자들이 시에 대한 애정이 너무 많았고요. 그게 저한테 되게 고마운 점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애정이 너무 많으니까, 이렇게 잘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나는 적당히 뒤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면 내가 살짝 주워서 사라지는 것 정도가 역할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던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고요. 그래서 안녕, 하고 관둔 거죠. 목욕탕 의자 같은 거 들고 이제 물러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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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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