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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인생은 혼성 장르 - <썸머 필름을 타고!>

마츠모토 소우시의 <썸머 필름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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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최고의 청춘 로맨스X시대극÷SF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의 홍보 문구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그라인더에 넣고 갈아버린 것처럼 엉망진창으로(めちゃくちゃ) 장르를 섞는 영화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절묘한 문구다. (2022.08.04)



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썸머 필름을 타고!>의 줄거리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의 한낮. 청춘 남녀가 각자 다른 건물의 옥상에 올라 마주 보고 서있다. 문득 소년이 외친다. “너를 좋아해!” 소녀가 외친다. “뭐라고?” 소년이 다시 답한다. “너를 좋아한다고!” 꺄아아아~!!!

함성과 함께 화면이 바뀌면 장소는 한 고등학교의 영화 동아리 방이다. 8월에 열리는 학교 축제에서 상영할 영화를 찍고 있는 동아리 회원들이 지난 촬영분을 모니터링 하는 중이다. 모두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카린(마히루 코다)을 추켜세우며 즐거워한다. 단 한 명, 맨발(이토 마리카)만은 입을 삐죽거린다. 대사라곤 “좋아해” 밖에 없는 사랑 타령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영화(를 빙자한 시간 낭비)란 말인가.

시대극 마니아인 맨발에게도 찍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 카린의 멜로드라마에 밀려 촬영이 불발된 <무사의 청춘(武士の靑春)>이라는 사무라이 영화다. 맨발의 절친인 킥보드(카와이 유미)와 블루 하와이(이노리 키라라)는 동아리 활동과 무관하게 <무사의 청춘>을 찍자고 제안하지만, 맨발은 주인공을 연기할 적절한 배우를 찾을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던 중, 옛날 영화 전용관에서 동갑내기 소년 린타로(카네코 다이치)를 만나 첫눈에 ‘삘(feel)’을 받는다. “너라면 <무사의 청춘>을 찍을 수 있겠어!” 왜인지 린타로는 계속 출연을 거절하지만, 그가 아니라면 영화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듣고 출연을 결심한다. 그렇게 ‘드림팀’이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썸머 필름(SF)이 시작된다.



영화, 시간의 예술이자 시간의 기술

영화란 무엇일까? <썸머 필름을 타고!>는 영화란 무엇보다 시간의 아트, 그러니까 시간의 예술이자 기술이라고 말한다.

개성 있는 청춘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우당탕탕 나아가는 학원 청춘물에서 출발한 영화는 ‘의문의 소년’ 린타로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돌연 SF로 선회한다. 린타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온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미래에 거장이 된 ‘맨발 감독’의 팬으로, 맨발의 데뷔작이자 마스터가 사라져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무사의 청춘>을 보기 위해 오늘의 여름, 맨발이 <무사의 청춘>을 연출하고 상영했던 시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린타로가 살고 있는 미래에는 더 이상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내가 온 곳에서는 동영상이 5초를 넘지 않는다”고. 흥미로운 건 동영상의 시간이 그렇게 짧아지고 종내에는 영화조차 사라져버리게 된 현실의 이면이다. 미래의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산다”는 것.

그러므로 <썸머 필름을 타고!>에서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라는 건 순간을 캡처한 스틸 이미지에 시간을 부여하여 운동을 생성하고 생명을 불어넣어 기어코 시간 속에서 쌓인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영화가 ‘시간의 기술’이라는 건 사람이 타인에게 (마음의 다른 말이기도 한) 시간을 내주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마침내 서로 연결되는 그 ‘사랑의 기술’이야말로 영화의 요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맨발의 시대극 사랑은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으로부터 왔고, <무사의 청춘>을 찍을 수 있었던 건 킥보드와 블루 하와이가 맨발의 마음을 읽어준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가 만들어진다. 맨발과 그의 드림팀은 과거를 품고 현재를 창조해 미래로 연결시키는 일을 하는 자들, 즉 영화인인 것이다.

극장 역시 이런 맥락에서 다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린타로의 시대에는 더 이상 극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과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며 같은 공기를 나누는 시간의 경험이 무용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맨발 시대의 극장은 그 ‘함께’의 과정 속에서 의미가 새롭게 쓰여지고 영화의 결말 자체가 재탄생하는 곳이다. 린타로는 그저 <무사의 청춘>을 보고 싶었을 뿐이지만, 그가 맨발의 시간에 접속해 경험한 건 영화적 시간 그 자체이며, 영화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미래로 돌아가 영화를 지킬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 경험 덕분일 터다.


영화도, 인생도 혼성 장르 

“올 여름 최고의 청춘 로맨스X시대극÷SF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의 홍보 문구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그라인더에 넣고 갈아버린 것처럼 엉망진창으로(めちゃくちゃ) 장르를 섞는 영화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절묘한 문구다. 사실 이 영화의 혼성 장르적 성격은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자 기술이라는 철학적 사유와도 연결되어 있다.

드림팀의 구성원들은 개성이 강하고 각자가 꿈꾸는 인생 장르도 다양하다. 맨발의 장르는 시대극이고, 킥보드의 장르는 SF다. 블루 하와이는 로맨틱 코미디를 사랑하고, 린타로는 어쩌면 역사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감독 대 감독으로서 맨발과 승부를 보는 카린은 멜로 드라마를 경유해 자신을 설명한다. 이들 장르는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다가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하면서 혼성 장르로 합체, 확장된다. 맨발은 깨닫는다. 사무라이의 결전은 사랑이고, 시대극은 멜로 드라마이면서 SF-코로이며, 감독이 내화면으로 뛰어드는 영화적 실험이 때로는 ‘우리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 그러니까 ‘인생’이 혼성 장르인 건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늘 타인의 장르에 의해 간섭당하고 침범당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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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희정(문화평론가,『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프로젝트38 연구원.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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