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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큰롤 베테랑, 푸 파이터스의 순수성에 대한 고찰

푸 파이터스(Foo Fighter) < Medicine At Midn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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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 < Medicine At Midnight >까지 30년에 가까운 활동에서 그들은 4년을 넘기지 않게 정규 작품을 지속해서 발매하고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투어를 이어왔다. 평작은 있을지언정 단 한 번의 졸작을 발표한 적이 없는 '록 레전드'다. (2021.02.10)


지금의 록의 시대가 아니다. 그래도 현재 록 음악계에서 '꾸준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굴까. 바로 푸 파이터즈(Foo Fighters)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다. 깡마른 체구로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뒤에서 힘 넘치는 드러밍을 펼쳤던 그가 2021년 록 장르 최후의 보루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1995년 데뷔작인 < Foo Fighters >를 시작으로 이번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 < Medicine At Midnight >까지 30년에 가까운 활동에서 그들은 4년을 넘기지 않게 정규 작품을 지속해서 발매하고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투어를 이어왔다. 평작은 있을지언정 단 한 번의 졸작을 발표한 적이 없는 '록 레전드'다. 잘하는 것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숭고한 과업인지 보여주는 록큰롤 베테랑이다.

< Wasting Light >(2011)로 취했던 그래미의 영광 이후 미국의 8개 도시를 주제로한 음악 지도이자, 음악사에 바치는 러브레터라 명명했던 < Sonic Highways >(2014)와 전설적인 스튜디오 사운드 시티와 그 핵심 엔진이었던 니브 콘솔,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왔던 수 많은 마스터피스와 뮤지션들에 대한 존경을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 < Sound City >(2013)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너바나 활동 이후 푸 파이터즈 활동만 해도 25년이다. 지칠 법도 하고 쉬엄쉬엄할 만도 하지만, 여전의 기복이 없이 더욱 탄탄한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전작인 < Concrete And Gold >(2017)에서부터 함께 합을 맞춰온 프로듀서 그렉 커스틴(Greg Kurstin)의 역할이 크다.

많은 뮤지션과의 작업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그는 < 25 >(2015)로 아델(Adele)을 전 지구적인 슈퍼스타로 올라서게 한 인물이며, 모든 음악인의 우상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경의 < Egypt Station >(2018)과 브릿팝의 영원한 탕아 리암 갤리거(Liam Gallagher)의 성공적인 솔로 데뷔 작품 < As You Were >(2017)을 진두지휘한, 이제는 거장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은 명 프로듀서다. 2017년 영국의 음악 잡지인 '뮤직 위크'의 인터뷰에서 “그렉은 음향, 소리에 대한 직감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빌어먹을(Fxxking) 천재다.”라며 격정적인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그롤이 그렉 커스틴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2020년 12월, 푸 파이터즈 유투브 계정을 통해서 'Kurstin x Grohl: The Hanukkah Sessions'이라는 커버 곡 콘텐츠를 공개하기도 했다. 유대교의 명절인 '하누카(Hanukkah)' 혹은 '빛의 축제(Festival of Lights)'를 기리는 뜻으로 8곡의 유대인 뮤지션의 곡이 업데이트 돼 있다. 그렉 커스틴은 유대인이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 Foo Files >라는 타이틀의 스트리밍 음원을 발매했고, 주로 라이브 음원과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데모들이 주를 이뤘다. 총 10장의 이 시리즈는 밴드 25주년이라는 자축의 의미도 담고 있다. 동기간에 제작된 신작 < Medicine At Midnight >의 기조는 늘 그렇듯 '하던 대로'다. 조용한 멜로디의 트랙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확실한 쾌감을 전하는 곡에서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냥 때리고, 부스고, 내지른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록 음악 전형의 폭발은 푸 파이터즈 작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공개한 싱글은 'Shame shame'이라는 타이틀로 2020년 11월 선보였다. 사이키델릭한 코러스 위 기괴한 기운이 맴돈다. 어쿠스틱 기타 리듬 커팅 사이 데이브 그롤의 보컬은 굴곡 가득했던 삶을 반추하듯 차분하다. 그간의 곡들과는 이질감이 크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다면의 음악색은 그들이 가진 큰 장점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선보인 'No son of mine'은 분위기를 반전한다. 퀸(Queen)의 'Stone cold crazy'에서부터 모터헤드(Motörhead)의 < Ace of Spades >(1980), < Iron Fist >(1982)의 시기와 메탈리카의 < Kill 'Em All >(1983)의 연주들이 순차적으로 교차하며 불을 지핀다. 이는 '메탈 DNA'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의 선배들에 대한 헌사다.

2021년 1월 14일 52번째 데이브 그롤의 생일을 자축하며 공개한 'Waiting on a war'는 그의 둘째 딸인 하퍼 그롤(Harper Grohl)을 위해 쓴 곡이다. 딸을 학교로 데려다주는 중 “아빠, 이제 전쟁이 일어나요?”라는 질문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기억을 회상했다. 그롤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똑같은 불안감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음에 큰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곡은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멋진 미래를 이어줘야 한다는 메시지와 의지를 담고 있다. 더불어 앨범 크레딧에는 친숙한 이름이 보인다. 종종 무대 위 깜짝 게스트로 출현했던, 첫째 딸 바이올렛 그롤(Violet Grohl)이다. 그녀는 9곡 전곡의 백 보컬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고품격 하드록이 즐비하다. 우선 오프닝 'Making a fire'는 간결한 드러밍과 기타 리프, 신나는 여성 코러스 조합은 < Medicine At Midnight >의 경쾌한 스타터로 제격이다. 귀에 잘 들리는 록 리프가 넘실거리는 'Cloudspotter'는 푸 파이터즈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정석적인 하드록 넘버다. 'Holding position'은 완숙한 노련미가 넘친다. 쉼 없이 새로운 톤의 리프가 등장하며 팝 기반의 멜로디, 건반의 오밀조밀한 조화가 멋지게 뒤섞인다. 이어지는 'Chasing birds'는 의외의 서정미가 돋보이는 레이드백(laidback) 트랙이다. 전체적으로 강성의 레퍼토리가 주를 이루지만 포근한 진행이 매력을 더하는 푸 파이터즈 식 발라드다. 이들이 왜 록의 베테랑인가는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트랙 'Love dies young'에서도 구성의 미가 돋보인다. 명료한 파워 코드와 따라 부르기 좋은 선율과 어쿠스틱 무드는 마무리로써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데이브 그롤과 테일러 호킨스(Taylor Hawkins)는 앨범의 레퍼런스를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1983년 작 < Let's Dance >의 팝 기반 사운드를 지향했다고 한다. 그리고 디스코와 모던 댄스 레코드류는 지양했다. 이런 분위기는 앨범의 타이틀 트랙 'Medicine at midnight'에 잘 녹아있다. 특히 기타 솔로 파트는 'Let's dance'의 그것과 닮아있다. 블루스의 명인 알버트 킹(Albert King)을 오마쥬했던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의 또랑또랑한 기타 톤과 연주를 크리스 쉐프릿(Chris Shiflett)이 멋지게 구현했다. 보위의 마스터피스는 그야말로 레퍼런스로써 훌륭한 교본이었고, 'Medicine at midnight' 그에 걸맞은 영민한 결과물이다.

록 패밀리의 든든한 지지는 당연히 좋은 음악에 있다. 지금의 트랜드와 인기를 끌고 있는 음악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행을 자처한 푸 파이터즈의 모든 행보를 앞으로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의 연결. 그들은 대중 음악계의 핵심 과업을 이행하는 '행동가 집단'이 되었다. 그가 좋아했던 선배들의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며 좋은 곡을 써내고자 고심한다. 어쩌면 벗어나지 못할 악령처럼 그를 쫓았을 전설의 밴드 멤버였으며, 리빙 레전드 밴드를 이끄는 그지만 현재라는 시제를 치열하게 다그친다.

데이브 그롤과 푸 파이터즈는 과거와 지금을 잇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존재다. 인생의 과업처럼 최첨단을 거부하고 시대를 거스른다. 그가 이야기하는 한 장의 레코드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의 영향력은 시대와 동떨어진 고담이 되었고, 말 그대로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모든 음악 장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즘이지만 '생음악'을 그대로 레코드로 구현하려 애쓰고 이를 바로 무대 위에서 연주한다. 이는 현재를 사는 음악가와 대중 모두가 잃고 있는 '순수성'에 대한 고찰이며, 그 고민은 그대로 우리 모두에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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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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