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부드럽게 유영하는 나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도 물을 잡을 수는 없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지만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말이 많은 성질과 내향적인 성질은 함께 있을 수 있다. 둘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2020. 07. 10)

언스플래쉬

그는 내가 다른 여자들과 달리 질투가 없다고 칭찬했다. 두 가지 점에서 이 발언은 잘못되었다. 하나, 질투는 여자의 특성이 아니다. 둘, 나는 그의 곁에서 감정을 최소한으로 느껴야 했다. 그때 질투는 잉여 감정이었다. 이제 나는 질투심을 느낀다. 승승장구하는 친구가 부러워서 SNS 게시글을 모조리 찾아 읽으며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는 이의 마음이 아쉽기도 하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남자들도 많이 보았다. 다른 사람의 성과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토라져 버리는 남자들이 있었다. 이상한 경쟁심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의 원인은 질투였다.

MBTI 유형이 유행이라 여러 사람들이 내게 결과를 물었다. I(내향적 성격)라고 말할 때마다 농담거리가 된다.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는 내 사진들을 보면서 친구들이 웃는다. 나도 깔깔 웃으면서 십년 전에 유료 검사를 했었고 98% I 성향이었다고 대답한다. 친구들과 나는 다시 웃는다. 내향적인 박주연, 이것은 우리들 사이에 하나의 밈으로 정착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관용어구가 된 것이다. 



‘단편적인 피해자다움’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말투, 표정, 행동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피해자다움의 형태도 물론 다를 수밖에 없다. 

『김지은입니다』 중 

몇 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질은 무수히 세분화되어 있고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성질쌍은 성질의 제곱만큼 많다. 하나의 성질로 사람을 읽어내려 할 때 생기는 오류가 두렵다. 나는 그가 두려웠기 때문에 그 앞에서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목소리가 크고 농담하길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수적이고 편안하다. 노동자로서, 친구로서, 나는 상황과 맥락에 맞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들은 내가 일할 때의 단호함을 모른다. 나와 업무상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내가 동물을 대할 때의 혀 짧음을 모른다. 하지만 모두 나의 속성이다. 

MBTI 결과를 두고 놀리는 친구들도 나도 사실은 알고 있다.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지만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말이 많은 성질과 내향적인 성질은 함께 있을 수 있다. 둘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엔 내가 내향적이라는 것이 농담이 될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맥락과 합의 속에서만 이 농담이 가능하다. 반면 나를 칭찬했던 그는 내가 얼마나 많은 감정을 그 앞에서 억눌러왔는지 모른다. 그는 나의 맥락을 모른 채 나를 판단했다. 반쪽짜리 관계였다. 나는 최대한 그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했고 그는 나의 그런 모습밖에 몰랐다.

때로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반박을 보내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내가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나를 일정한 맥락 속에서만 알고 있어요. 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도, 세상 모든 사람들도 그래요. 우리는 유형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그물로 나를 잡으려 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도 물을 잡을 수는 없다. 



김지은입니다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저
봄알람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박주연(도서 MD)

수신만 해도 됩니까.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저15,300원(10% + 5%)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일이 우리의 정의(正義)다 김지은은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로 세간에 기억된다.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의 비서였던 김지은은 재직 당시 ‘순장조’라 불렸다.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무덤에 묻히는 왕의 물건처럼,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마지막엔 죽음으로 그 입..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저11,900원(0% + 5%)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일이 우리의 정의(正義)다 김지은은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로 세간에 기억된다.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의 비서였던 김지은은 재직 당시 ‘순장조’라 불렸다.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무덤에 묻히는 왕의 물건처럼,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마지막엔 죽음으로 그 입..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