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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90화 : 코쟁이들이 나가겠구나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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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이 되자 영등포 경찰서 사찰과에서 형사 세 사람이 찾아왔다. 그들은 말없이 대문을 두드렸고 이백만이 나가서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와 신발을 신은 채로 안방과 건넌방 공방 그리고 뒷방까지 샅샅이 뒤졌다. (2020.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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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이제 남편은 다시는 집은커녕 영등포 근처에도 얼씬해서는 안 될 거였다. 자기라도 집을 떠나 있어야 어떻게든 지하에 피신한 남편과의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박선옥이야말로 자신과 이일철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의 선이었다. 신금이는 그래서 박선옥의 신변을 자기 목숨 지키듯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박선옥에게 자기도 일단 피해야겠다는 언질을 주고 나서 잠깐 기다리게 하였다. 지산이는 건넌방에서 자고 있는지 기척이 없었고 마당 건너편 공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신금이가 공방의 문 앞에 가서 조그맣게 아버님, 하고 불렀더니 이내 이백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 있냐?”

 

그는 돋보기를 벗어 작업대로 쓰는 널판자 위에 놓았다. 물소 뿔을 펴서 갈고 있던 중이었다.

 

 “아버님 오늘 노조원들이 야마시타를 처단했답니다.”

 

 “저런, 큰 일이 벌어졌구나.”

 

 “그렇잖아도 지산 아부지를 눈이 벌개서 찾구 있는데 날이 밝으면 우리 식구들 모두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게 될 거예요.”

 

이백만은 원래가 좋고 나쁜 일에 대하여 별로 표를 내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사태의 급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두쇠의 항일활동과 죽음을 지켜보았고 형무소에 가서 시신까지 수습했던 아픔을 겪었다. 또한 해방 이후 한 해 동안에 모든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맏아들 한쇠마저 일제 때와 똑같이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지 않았던가.

 

 “사찰계 것들이 들이닥칠 텐데 하다못해 한 달만이라도 아니 보름만이라도 피해 있어야겠어요.”

 

며느리의 말에 이백만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가 한마디 했다.

 

 “내 집이 여긴데 어딜 가자는 게냐?”

 

 “지산이두 이제 머리통이 커져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알아요. 저놈들도 지산이를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거예요.”

 

 “어디루 가자느냐?”

 

 “아버님 모시고 김포루 나가있다가 잠잠해지면 돌아올라구요.”

 

며느리가 친정에 가있겠다는 말을 듣고 이백만은 다시 침묵이었다. 신금이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어서 일어나시지요.”

 

 “거시키니……누구라도 말대꾸할 사람이 집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냐?”

 

 “그러니 곤욕을 당하잖아요. 다들 어디 갔냐면 뭐라시게요?”

 

 “글쎄……나갔다가 들어오니 모두 가버렸더라고 그러지 뭐.”

 

 “누구보다두 아범 행방을 찾으려 할 텐데요.”

 

며느리의 말에 이백만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이제 지산이 애비는 여기 사람이 아니다.”

 

신금이는 그 말에 다시 가슴이 무너졌다고 나중에 말했다. 파업하고 항쟁이 일어났던 시월이 지나고 그해 겨울에 소요관련자 537명에 대한 공판이 열렸을 때 16명이 사형 언도를 받았다. 사실상 지방에서는 현장에서의 즉결총살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형사들이 우리 찾으면요 충청도 갔다구 그러세요. 예전 공장에 같이 다니던 동무네 시골에 내려갔다구요. 아범은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아예 끊겼다구 하시구요.”

 

며느리의 말에 이백만은 그냥 이렇게 중얼거렸다.

 

 “왜정 때 하던대루 하지 뭐.”

 

신금이는 대번에 이백만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최달영의 야마시타 조가 이철의 행방과 가정 사정을 살피러 올 때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던 것이다. 빨갱이들은 부모도 처자식도 모르는 놈들이라 자식으로 생각 않은지 오래라고. 내가 당신네들보다 더 자식 놈을 웬수로 안다고.   

 

신금이는 박선옥과 의논하여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서 새벽에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두 여자는 안방에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했다.

 

 “정말 삼팔선을 넘어가야 할까 봐.”

 

신금이의 말에 선옥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그럴 수 없어요. 삼백만 당원들이 있는데 나만 살자고 도망칠 수는 없잖아. 당중앙도 아직 지하에서 활동 중이고. 정 피치 못할 경우에만 넘어가고 있어요.”

 

 “북에서 내려오는 월남민들도 점점 늘어가구 있잖아.”

 

 “저쪽은 진작 토지개혁하구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했거든요. 장사꾼들은 아직 경계선이 없다네요. 넘나들며 물건을 팔아야하거든.”

 

 “그래 일철씨가 삼팔선 넘어가면 우리하군 언제나 만나게 될까?”

 

박선옥은 그때 자신만만하게 힘주어 말했다.

 

 “머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우리 민족이 만만한 사람들 아니니까. 양키들 나가면 곧 남북 인민위원회가 합쳐지고 통일이 되겠지.”

 

 “그래 코쟁이들이 나가겠구나!”

 

두 여자는 그렇게 불확실한 장래에 대하여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오자 박선옥이 먼저 눈을 떴고, 신금이는 아직 잠이 덜 깨어 어리둥절한 지산이를 깨워 보퉁이와 륙색을 이고지고 집을 나섰다. 그들이 나설 때 이백만은 마당에 나와 기다리고 서있었다.

 

 “아버님 진지 꼬박꼬박 챙겨 드시구요, 무슨 일 있으면 공작창 사람들께 부탁하세요.”

 

 “그래 내 걱정은 말구 어서 가거라.”

 

신금이는 지산이를 데리고 박선옥과 동행하여 김포를 향해 새벽길을 걸었다. 오목내 다리를 건너 염창나루에서 하구로 나가는 썰물 배를 타고 김포까지 갈 작정이었다. 박선옥은 일단 김포 신금이의 친정에서 며칠 지내다 인천으로 나간다고 했다. 신금이의 친정 사정은 부친이 해방 몇 해 전에 작고했고 큰오빠와 막내오빠가 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일철은 처가에 들를 사이가 없어졌고 신금이만 지산이를 데리고 작년에 친정나들이를 다녀왔었다. 큰오빠는 그래도 동네 유지라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막내오빠는 군정청의 미곡공출을 겪고 나서 분노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지방 관서의 하급 관리나 이전 순사들이 다시 경찰서나 지서를 차지하고 미군을 이끌고 다니며 추곡을 강제로 거두어 가는 것에 진절머리를 냈다. 그는 전농의 조합원이 되어 있었다. 집 마당에 들어서자 마루에 앉았던 막내오빠가 방안의 식구들에게 외쳤다.

 

 “금이가 왔네, 어머니 금이 왔다니까요. 지산이두 왔어요!”

 

큰오빠와 올케들이 제각기 부엌과 안방 건넌방에서 뛰쳐나왔다. 식구들은 안부 인사를 나누고 대뜸 일철이 소식부터 물었다. 어머니가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서방은 지금두 기차 끄느라구 바쁜가보구나.”

 

 “에이 어머니 지산이가 있는데 이 서방은 왜 찾아요?”

 

막내오빠가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는 문건을 통해서 총평의 그간 활동을 알고 있었고 현재가 그들에게 비상시국이라는 것도 알았다. 뒷마당의 방 두 칸짜리 별채에 있던 아이들을 안채에 한데 몰아넣고 신금이 일행이 쓰도록 해주었다. 박선옥은 며칠간 같이 지내다 인천으로 갔다. 그녀는 이일철과 선이 닿으면 식구들이 처가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로 했고, 또한 그에게서 연락이 오면 선옥이 김포에 오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박선옥의 판단은 정확했다. 역시 이튿날 아침이 되자 영등포 경찰서 사찰과에서 형사 세 사람이 찾아왔다. 그들은 말없이 대문을 두드렸고 이백만이 나가서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와 신발을 신은 채로 안방과 건넌방 공방 그리고 뒷방까지 샅샅이 뒤졌다. 장롱과 반닫이를 온통 들쑤셔 놓아서 방안에는 옷가지와 잡동사니들이 널려있었다.

 

 “이일철이는 그 사이 연락이 없었소?”

 

조장인 듯한 나이 든 형사가 물었고 이백만은 대꾸했다.

 

 “지난번에도 와서 다 뒤지지 않았소? 그 자식 집 나간 지가 석 달이 넘었시다. 총평회관에 간다구 나가선 그날부터 엽때껏 소식 두절이라오.”

 

다른 형사가 물었다.

 

 “헌데 이일철이 처……그러니까 당신 며느리 말요. 어디 간 거요?”

 

 “며칠 전에 충청도에 오랜 동무가 있다며 자식까지 데리구 갔어요.”

 

형사들은 마루에 나란히 앉아 번갈아 고압적으로 질문하고 있었고, 이백만은 마당에 서서 공손히 대답하고 있어서 마치 주객이 바뀐 것만 같았다.

 

 “혹시 이일철이와 온 식구가 삼팔선 넘어간 거 아닌가?”

 

형사의 질문에 이백만은 갑자기 화를 내며 외쳤다.

 

 “그런 못된 빨갱이 새끼! 그것들은 원래가 부모도 처자식도 모르는 불쌍놈들이오. 내가 아들 없는 셈치고 살아온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우리 메누리두 그 자식을 서방으루 여기지 않소. 속 뒤집어 놓지 마슈.”

 

야마시타 정탐조의 보조였던 형사는 이이철의 사건도 잘 알고 있는데다, 이백만이 두 아들과는 달리 철도국 공원으로 평생 일하다 퇴직했고 이전에 철도관사에 살 때에도 성실한 신민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가 들쳐본 동향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지방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이미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고 전쟁 중에는 더욱 심해졌지만 아직 도시에서는 차마 버젓한 폭력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형사들은 저희끼리 짐작했던 대로 빈손으로 돌아갔다. 대문을 나가기 전에 조장 형사가 머뭇거리더니 되돌아 와서 이백만에게 넌지시 말했다.

 

 “우리도 이일철이 이번 사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누군가 책임을 져야 되겠지. 그 사람 이젠 여기서 살 수 없소. 차라리 저쪽으로 넘어가는 게 살길이겠지요.”

 

나중에 시아버지 이백만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었던 신금이는 말하곤 했었다.

 

 “형사나 끄나풀 중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는 건 맞기두 하구 틀리기두 하지. 역할을 저희끼리 정하기두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보험 들어 두자는 게야. 세상이 하루 아침에 뒤바뀌던 시절이었으니까.”

 

이일철은 그때에 관악산 기슭의 나꿀 마을에 은신해 있었다. 일제 때처럼 전평의 레포가 교대로 그에게 연락선을 대주었다. 최성칠 선생은 보통학교 때에 그의 담임선생이었고 아우 이철의 담임도 맡았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 신금이와 결혼할 적에 최 선생에게 주례를 부탁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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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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