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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88화 :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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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과 노동자들이 합쳐져서 2만여 명의 군중을 이루었다. 이들은 군정청을 향하여 구호를 외쳤다. 쌀을 달라! 식민지교육 반대한다! 수감 중인 애국자를 석방하라! 테러를 배격한다! (2020.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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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전투는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그만큼 사상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이전에 일제와 싸우던 때에도 이렇듯 과감한 살상 진압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매우 놀라고 당황했다. 그들은 사수하던 곳마다 한 블록씩 내주며 침착하게 부상자를 수습하며 후퇴했다. 청년 노동자들이 이미 전평회관에서 일차적 폭행을 당하고 부상당하여 농성장에 들어왔던 이일철에게 제안했다.

 

 “부지회장님, 일단 피하시지요.”

 

 “아니 끝까지 함께 하겠다.”

 

 “밖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조직 보위를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조영춘이 달려왔다.

 

 “뭘하구 있어요? 어서 피하세요. 여기는 내가 맡겠습니다. 안 지회장도 이미 체포 당했답니다.”

 

그는 얼결에 청년 두 사람에 이끌려 공장 안쪽 후미진 곳으로 갔다. 하수구의 뚜껑이 열려 있었고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철제 디딤대가 보였다. 청년이 먼저 내려갔고 그는 더듬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뒤에서도 그를 호위하던 청년 노동자가 내려오면서 뚜껑을 닫았다. 공장 폐수가 발목까지 차오른 하수도를 따라서 그들은 샛강 쪽으로 나가는 곳까지 상반신을 숙이고 나아갔다. 그들이 다시 뚜껑을 열고 어둠 속의 공장지대로 나오자 그는 멀찍이 보이는 공작창 쪽에서 벌건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등포 철도 공작창 농성은 수십여 명이 살상되고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검거 연행 당하면서 끝이 났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퍼진 총파업은 계속 중이었고 슬로건의 내용도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었다. 쌀 배급의 확대, 노동자 결사의 자유 보장, 민주적 노동법의 제정, 정치범의 석방 등에서 시작하여 ‘모든 권력을 인민위원회로’ 라는 혁명적 슬로건이 파업 노동자들의 구호가 되었다.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전국의 학생들도 동맹휴학을 통해 투쟁의 대열에 합류했고 대부분의 신문들도 동조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철도노동자들은 용산과 영등포를 망라하여 1천 7백여 명이 검거되었다. 그러나 항쟁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고 전국으로 번져나가게 된 도화선은 대구에서 시작된다.   

 

서울에서 전평의 총파업이 결정되자 우선 전기노조 체신노조 그리고 방직공장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9월 30일에는 대구 시내의 거의 모든 공장이 총파업에 들어갔다. 가두시위에서는 모든 요구 조건이 ‘쌀을 달라’는 기아행진으로 조직되었다. 학생들은 학급에서 배운 이태리 민요 ‘싼타루치아’를 ‘쌀 털러 가자’라는 노래 가사 바꾸기로 대중들 속에 퍼드렸다.

 

 창고에 쌓인 쌀 찹쌀과 멥쌀

 니 배만 고프냐 내 배도 고프다 

 쌀 자루 가지고 쌀 털러 가자

 쌀자루 가지고 쌀 털러 가자

 

군정의 강제 미곡 수집과 미곡 반입금지령에다 때마침 퍼지고 있던 호열자의 전염을 방지한다고 통행금지까지 시켜서 식량반입이 불가능해지면서 대구의 기아상태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전매청의 연초공장에서는 담배 잎을 마는 종이에 바르는 풀이 나오면 직공들이 그 풀을 다 먹어치울 정도였다. 굶어서 힘이 없어 누워있는 사람들을 미군과 경찰은 호열자에 감염되었다고 실어가 환자들만 격리 수용된 곳으로 끌어다 놓았다. 기아행진을 하고 시장실에까지 쳐들어간 아낙네들에게 쌀 대신 비누를 배급하겠다거나 살림 사는 여자가 쌀도 없느냐는 시장의 폭언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대중적인 분노가 일어났다.

 

10월 1일에 대구의 4백여개 공장의 노동자들은 총파업 지지대회를 가진 뒤 모여든 학생 일반시민 등과 합쳐져 수만 명의 군중이 되어 ‘미군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대적인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경찰의 위협사격으로 연탄공장의 노동자가 피살 되었다. 분노한 대구시민 1만5천여 명이 철야로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오전 열 시 경에 대구경찰서 앞에 집결하여 집회를 개최하였다. 분노와 흥분으로 들끓는 군중들 앞에 한 청년이 나서서 ‘동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이때를 두고 다시 없다’며 열변을 토했고 경찰이 쏜 총에 맞아 그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계속해서 다섯 명의 연사가 다투어 나섰으나 그들 역시 경찰의 조준사격으로 차례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분노한 군중들은 투석을 시작했고 경찰의 일제사격으로 현장에서 17명이 사망했다. 대구 시민들은 총탄을 무릅쓰고 경찰서로 돌입하여 점령하고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한 청년들이 있었다. 이들은 수백 명씩 대를 나누어 시내의 모든 파출소를 공격하고 대구 전체를 장악했다.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일제 때부터 원성의 당사자였던 사찰 형사들이 시민들에게 피살되었다. 시장 전매청장 도지사의 관사도 습격을 받았고 시민들은 탈취한 쌀과 광목들을 달성공원에 실어다 놓고 질서 있게 배급하기도 하였다. 동네마다 청년들이 완장을 차고 교통정리를 했으며 신발가게 주인은 시위대에게 신발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오후부터 충남경찰 병력이 도착하면서 저녁 여섯 시에 대구지역 일원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탱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미군이 시내에 진입하고 경찰의 대대적인 반격 진압이 시작되었다. 저녁 7시부터 통행금지령이 내리고 시민들의 체포가 시작되었다. 대구에서 봉기가 시작되고 인접해 있는 영천, 의성, 군위, 왜관, 선산, 그리고 포항 영일 등지에서 각 지역별로 집회가 열린 다음 봉기에 들어갔는데 격렬하게 폭력적으로 번져갔다. 농촌에서 항쟁이 폭력화 된 것은 군정 아래에서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일제 때부터의 경찰들이 여전히 폭압을 자행하여 해방이 결코 해방이 아니라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농민들은 모심기 노래를 가사 바꾸어 불렀다.

 

 이 물꼬 저 물꼬 다 터놓고 주인네 양반 어델 갔소

 문어 전복 손에 들고 첩의 집에 놀러갔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집집마다 연기나네

 우리야 부모는 어데 가고 연기 낼 줄 모르시나

 비린내야 비린내야 검은개 놈 피비린내야 

 서발바리 포승줄에 묶여 가신 울 오랍아

 군정재판 받더라도 강제공출 반대하소

 

농민들의 구호는 단순명료했다.

 

 “쌀 공출을 폐지하라, 토지개혁 실시하라, 모든 권력을 인민위원회로!”

 

경상도의 전 지역이 항쟁에 휩싸였고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이고, 충청도와 대전, 전라도 광주 화순 목포 등 전국적으로 번져갔다. 미군은 경찰, 그 즈음 갓 창설한 국방경비대, 우익 청년단과 깡패들 등을 총동원하여 진압 작전에 나섰고 과거와 다른 것은 거침없이 양민 학살을 마다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마산에서는 시위 중인 6천여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를 감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2만 8천여명이 살상을 당했으며 무려 1만 5천여 명이 체포 연행 당했다. 체포된 민중의 가옥은 경찰과 깡패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고 약탈 되었으며 경찰서로 끌려가서는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하였다. 엄청난 대량 체포로 인하여 감옥과 유치장이 더 이상의 수용 능력을 상실하자 임시수용소를 설치하여 파업 참가들과 시위자들을 가두어 두었다. 이렇듯 항쟁은 3개월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10월 3일에 지산은 동맹휴학 중이었지만 등교했다. 민청이었던 상급생들의 전달을 받았던 것이다. 중학교 5학년이 졸업반이었는데 지산이 같은 3학년생들은 이른바 중간 토막으로서 학교마다 말썽쟁이 학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산이는 아직 민청원은 아니었지만 선배들과 시국토론을 벌일 정도로 이론에 밝았다. 그것은 감옥에서 죽은 삼촌과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터였다. 학교에 나온 것은 삼백여 명쯤이었고 연이어 이웃 학교들과 연락하여 군정청 앞에 이르렀을 때에는 수천 명이 되었다. 여기에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합쳐져서 2만여 명의 군중을 이루었다. 이들은 군정청을 향하여 구호를 외쳤다.

 

쌀을 달라! 식민지교육 반대한다! 수감 중인 애국자를 석방하라! 테러를 배격한다!

 

예전에는 육조 앞길이고 일제 때에는 총독부 대로였던 길을 따라서 경찰 진압대가 실탄을 장전한 총을 겨누고 다가왔고 그 뒤에는 기마경찰대가 일제 강점기부터 쓰던 장봉을 쳐들고 따라왔다. 이들은 군정청 건물을 향하여 양쪽으로 갈라져서 접근했고 남대문 방향에서도 일단의 경찰대가 행진해 왔다. 경찰은 청사 앞 광장에 모인 군중을 둘러싸고 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군중은 광장 한가운데로 점점 몰리기 시작했다. 기마경찰대가 이들의 가운데로 짓쳐 들어가며 긴 곤봉으로 사람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날 이십여 명이 혼잡 가운데서 타살 당했다. 지산이는 속옷을 찢어 터진 머리를 감싸 매고 걷다가 뛰다가 하며 영등포 집에까지 간신히 돌아왔다. 이미 주위는 캄캄한 밤중이 되었다. 동네 골목입구에 나가서 가슴을 졸이며 서성이던 신금이는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아들을 보자 달려가서 부둥켜안았다.

 

 “아이구 이게 무슨 꼴이냐? 어디 보자……”

 

어머니의 키만큼 자라난 이지산은 품에 안기자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고 한다. 물론 지산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뻗대었고 이백만도 손자 편을 들어주었다.

 

 “아무렴 울기까지야……분해서 헐떡거렸겠지.”

 

진오는 국민학교 시절에 할머니 신금이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 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 쪽 편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하던 것이었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좀 느려서 답답하긴 하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덧붙였다.

 

 “오래 살다 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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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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