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고양이가 보내온 SOS

<월간 채널예스> 2019년 9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다행이다. 순둥이가 다시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2019. 09. 02)

9-1.jpg

 

 

“아이구, 순둥이가 아롱이한테 쫓겨났나봐. 인석이 배가 불룩하게 새끼 낳을 때가 됐는데, 먼저 새끼 낳은 아롱이가 지들 새끼만 키우려고 쫓아낸 거 같어. 사흘 전 순둥이가 사료 먹으러 오긴 했는데, 하이고 바싹 말라서… 밥 먹고 가는 걸 따라가 봤더니 저기 산 밑에 빈 외양간으로 가더라고. 새끼도 거기 낳은 거 같고. 그래 거기다 사료를 몰래 놓고만 왔지.” 이웃마을 전원할머니가 나를 붙잡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쩐지 순둥이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더랬다. 녀석을 다시 만난 건 거의 달포가 다 되어서였다.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사료 포대를 이고 할머니 댁으로 들어서는데, 대문 앞에서 녀석이 냐앙냐앙 울고 있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갑다며 한참이나 발라당을 했다. 때마침 현관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는 순둥이를 쓰다듬으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이구, 우리 순둥이 왔네. 일루와 어여 밥 먹자!” 배가 고팠는지 순둥이는 순식간에 사료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다. 할머니에 따르면 그동안 몇 차례 외양간으로 사료배달을 했는데, 거기 주인이 어떻게 알고는 사료가 보일 때마다 치워버리더라는 것이다. 순둥이는 밥을 다 먹고도 할머니를 바라보며 냐앙냐앙 울어댔다.

 

 

9-2.jpg

 

 

그런데 녀석의 행동이 좀 이상했다.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냐앙냐앙 울어대는 거였다. 바지춤에 얼굴을 부비더니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하면서. 처음엔 그게 만져달라는 건 줄로만 알고 목덜미를 쓰다듬었더니, 저만치 걸어가 발라당을 하며 또 다시 냐앙냐앙거렸다. 어쩐지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다가가면 벌떡 일어나 또 몇 미터쯤 걸어가 냐앙거리기를 네댓 차례.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녀석의 의도를 알 것만 같았다. 녀석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거고,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려는 거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구나! 그래 가자!”

 

내가 걸음을 재촉하자 녀석은 이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 걸었다. 얼마나 따라갔을까. 100여 미터는 족히 넘게 따라간 뒤에야 녀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르던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풀이 우거진 과수원 고랑이었는데, 할머니가 말한 외양간 바로 앞이었다. 순둥이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놀랍게도 그곳에는 조막만한 아깽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녀석들은 외양간 앞 배수구 구멍을 드나들며 숨바꼭질 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추밭 오이밭 고랑을 잰걸음으로 내달리기도 했다. 모두 다섯 마리였다. 순둥이는 바로 저 녀석들을 보여주려고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녀석은 내게 “우리 아이들 밥 좀 주고 가세요!”라며 SOS를 보낸 것이다.

 

 

9-3.jpg

 

 

내가 비상으로 가져온 샘플사료 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느라 바스락거리자 외양간 앞에서 제멋대로 놀던 아깽이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더니 혼비백산 배수구 속으로 숨어버렸다. 다행히 내 옆에는 순둥이가 있었으므로 녀석들은 얼마 가지 않아 배수구 밖으로 하나 둘 걸어 나왔다. 저 많은 녀석들 배불리 먹으려면 샘플사료 한 봉지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우선 허기나 면하라고 사료봉지를 뜯어 버려진 나무판 위에 부어놓고 서둘러 차로 되돌아왔다.

 

 

9-6.jpg

 

 

그리고는 차에 있는 사료를 비닐봉지 가득 담아 외양간으로 향했다. 이미 부어놓은 사료는 흔적도 없었고, 한 번 더 나는 그곳에 사료를 듬뿍 내려놓았다. 산중에는 이제 아깽이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사료를 먹는 소리가 앙냥냥냥 냐옹냠냠 울려퍼졌고, 순둥이는 안심이 된 듯 느긋하게 그루밍을 했으며, 나는 눈으로 보고 귀로만 들어도 배가 불렀다.

 

 

9-4.jpg

 

 

그 후로 2~3일에 한 번씩 나는 사료를 챙겨 순둥이네 은신처를 찾았다. 그런데 어느 날 외양간에 갔더니 아깽이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얼마 가지 않아 의문이 풀렸다. 전원할머니 댁을 방문했더니 뒤란에 떡하니 순둥이네 가족이 모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글쎄 어젯밤 순둥이가 지 새끼들을 데려왔어. 아롱이 때문에 앞마당에는 못 가구, 저기 보일러 아래다 새끼들을 데려다 놨더라구.” 그렇게 순둥이는 다시 자기가 살던 할머니 댁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녀석은 집중호우 예보가 있던 하루 전날 아이들을 이곳으로 피신시켜 놓았다.

 

 

9-5.jpg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던 순둥이는 새끼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아롱이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이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산둥이와 새끼들을 위해 할머니는 살진 멸치도 한 그릇 내오고, 따로 불러서 백숙 국물도 먹였다. 혹시 비가 들이칠까 뒤란에는 순둥이 가족을 위해 비가림용 비닐막도 따로 설치했다. 다행이다. 순둥이가 다시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이상 아깽이들이 굶을 일은 없으므로. 정말 다행이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이용한(시인)

시인. 정처 없는 시간의 유목민.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 제작과 시나리오에도 참여했으며,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오늘의 책

그럼에도 인간은 선하다

전쟁, 범죄, 불평등, 동물 학대 등 오늘도 뉴스는 불편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인간 본성은 악할까? 네덜란드의 대표 언론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 기존 연구의 허점을 밝히고 인간의 선함을 입증했다.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법

천문학자에게 천문학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주의 비밀을 찾아 헤매는 천문학자도 현실은 연구실 안에서 데이터와 씨름하느라 바쁘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비정규직 행성과학자로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천문학자 심채경의 첫 에세이.

가지각색 고민에 대한 요시타케 신스케의 대답

아기부터 어른까지 인생은 수많은 고민들의 연속입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고민들에 유쾌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지쳐서 그런건지 자기 상태를 모를 때는 지친 셈 치고, 아무도 날 봐주지 않으면 큰 소리로 울어보라는 천진한 답변이 유머러스한 그림과 어우러져 깊게 다가옵니다.

생활과 가까운 언어로 전하는 공감과 위로

박솔뫼식 감각으로 선보이는 공감과 위로의 이야기. 작품의 인물들은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지만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삶에는 존재하거나 존재했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삶을, 가능성을 그린다. 한번쯤 떠올려보았을 생각과 상상이 활자가 되어 펼쳐지는, 낯설고도 친근한 세계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