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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얘기

<월간 채널예스>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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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작성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첫 메일에 꼭 임금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9. 09. 05)

일러스트 손은경.JPG

일러스트 손은경
 

 

지난 몇 년간 가장 많이 반복해서 쓴 메일은 그래서 얼마를 주실 거냐고 묻는 답장이었다. 숱한 원고 청탁이나 강연 제안 메일이 오는데, 열어 보면 돈 얘기는 쏙 빠진 경우가 허다하다. 잡지의 취지와 운영진의 큰 뜻과 강연의 중요성 등 온갖 구구절절한 얘기는 다 써 놨으면서 돈 얘기만 생략되어 있다. 추천사 청탁이나 광고 제안에서도 그런 일은 잦다. 메일은 나의 수락 여부를 물으며 끝난다. 하지만 대가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일을 맡을지 말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나. 사랑과 우정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말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부터 돈 얘기 빠진 제안이 왔을 때 나는 몇 번이고 이런 답장을 쓴다.
 
“안녕하세요. 이슬아입니다. 보내 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제 작업에 관심 가져 주시고 제안서를 적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준비하고 계신 기획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고료에 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네요. 이 일을 맡으려면 제 시간과 몸과 마음을 써야 할 텐데요. 저는 일간 연재를 하는 중이고 부업으로 여러 수업과 행사를 뛰고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다른 일을 추가로 맡으려면 조금 무리해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을 만큼 합리적인 수준의 임금이 책정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첫 메일에 원고료나 강연료 등의 돈 이야기가 적혀 있지 않으면 일을 맡을지 말지 제대로 고려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급을 모르는 채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없듯, 혹은 월급을 모르는 채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 없듯, 원고료와 강연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액뿐 아니라 지급일도 명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고 마감일을 알려 주신 것처럼 돈이 지급되는 시기도 알려 주시는 게 공평한 약속일 듯합니다. 
수년간 프리랜서로 지내 오면서 돈 얘기를 얼렁뚱땅 넘기는 경우를 자주 겪은 터라 확실하게 힘주어 적어 봅니다. 서로에게 좀 더 명확한 청탁 메일을 쓰는 문화로 바뀌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메일 작성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첫 메일에 꼭 임금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좋은 오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슬아 드림”
 
이렇게 메일을 보내면 다양한 답장이 돌아오는데 유형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죄송하지만 재능 기부로 운영되는 행사라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교통비 정도만 지급된다.

 

→ 이 경우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체력은 한정적이며 열정 페이 노동보다 더 절실한 일들이 코앞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2. 돈 얘기는 두 번째 메일에서 하려고 했다. 첫 메일부터 돈 얘기를 하는 게 터부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견 작가들에게는 돈 얘기를 먼저 하는 게 실례다.

 

→ 중견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생계형(대출금 상환형) 연재 노동자임을 강조하고 고료가 얼마인지를 재차 묻는다. 돈 얘기를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게 더 터부일 것이다.  


3. 그제야 원고료(강연료)를 밝힌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적다.

 

→ 이 경우엔 다른 일들이 우선순위라 못 하겠다고 다시 답장한다. 원고 청탁의 경우 200자 원고지 기준 매당 1만 원 이하면 맡지 않는다. 강연이나 북 토크는 특별한 동기가 없으면 대부분 거절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많은 말을 하는 건 아슬아슬한 일이다. 그런 일방적인 말하기 시간마다 나는 몹시 송구스러워진다. 무대가 전장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뾰족한 질문이 누구에게서 날아올지 몰라서 염려하는 마음으로 강연을 진행한다. 집에 돌아오면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다. 수십 명을 의식하느라 기가 흩어지고 마감을 위한 체력 또한 바닥난다. 그런 소진을 감수할 만큼의 강연료가 책정되어 있을 때에만 강연을 수락한다. 물론 고마운 사람들 혹은 미안한 사람들이 있는 자리는 적은 강연료로도 흔쾌히 일을 맡는다. 영리 목적이 아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주제로 기획된 행사 역시 시간과 마음을 내어 참여한다. 
 
이런저런 사정과 정성이 담긴 메일에 날마다 답장을 하며 지낸다. 돈 얘기가 없을수록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묻는다. 메일을 쓰느라 심신이 지칠 때면 필사적으로 예전을 기억한다. 아무도 일을 제안하지 않아서 힘들었던 시절을 말이다. 어쨌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힘을 내서 답장을 적는다. 프리랜서 생활을 무사히 지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는 돈 얘기를 확실히 하는 출판사 대표가 되자! 송금을 빨리 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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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슬아(작가)

연재노동자 (1992~).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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