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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43화 : 육혈포 권총이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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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달영이 순사보조에서 정식으로 순사 발령을 받은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가 총독부 경무국이 인정하는 큰 공을 세웠던 때문이었다. (2019.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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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일철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머리에는 도리우치 캡을 쓰고 양복 상의에 당꼬바지 차림의 그가 낯이 익었지만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이일철이 맞소만 누구시우?”

 

 “하이 차식 나야 최달영이, 보통학교 때 우리 같은 반이었잖아?”

 

이름을 듣고 나서야 일철은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영등포 보통학교 부근에 있는 언덕 너머에 토박이들이 오랫동안 마을을 이루어 살던 모랫말 동네가 있었고 그 곳에는 초가집들이 많았다. 동네에 돼지를 기르는 촌가가 많았고 달영이 녀석의 집에서도 돼지를 여러 마리 길렀다. 어느 집이나 돼지 먹이를 주는 것은 남자아이들의 일이어서 최달영의 옷에서는 늘 시궁창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그 냄새 때문에 학급 아이들의 놀림도 많이 받았는데 일철이는 잊어버렸지만 그를 몇 번 두둔해 주었다고 한다. 일본인 선생이 월요일 아침에 위생검사를 하다가 최달영의 앞에 서더니 코를 쥐고 손가락을 뻗쳐 교실 바깥을 가리켰다.

 

 “밖으로 나가랏!”

 

그 일은 일철이도 기억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달영이가 미쳐 결정을 못 내리고 얼굴이 빨개져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선생은 아이의 머리를 출석부로 내려치면서 다시 말했다.

 

 “칙쇼! 당장 옷을 빨아 입고 와라.”

 

그때에 일철이가 일어났다.

 

 “최군 집에서는 돼지를 기릅니다. 냄새가 조금 나는 게 당연합니다.”

 

일철이가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어서 선생은 의외였던지 성난 기색을 억제하며 말했다.

 

 “호오 너는 이 녀석의 냄새가 좋단 말이지?”

 

 “어려운 사람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일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선생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요오시 너두 나가라! 건방진 놈 같으니.”

 

최달영은 눈물을 찔찔 짜며 교실 문을 밀고 뛰쳐나갔고 일철이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두 소년은 학교 담장 가에 있는 수도로 달려갔다. 달영이가 상의를 벗자 알몸이 되었고 바지도 벗으면서 중얼거렸다.

 

 “에이 씨발 내 다시는 돼지 밥 주나 봐라.”

 

수도를 틀어놓고 상의와 바지를 구겨서 던져 놓고는 달영이가 내려다보고 있는데 일철이 신발을 벗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는 그의 옷들을 두 발로 밟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보고 달영이도 같이 제 옷을 밟았다. 그제야 소년들은 웃음이 나왔다.

 

 “너 철도국 입사했다는 소문은 들었다.”

 

최달영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고 일철이도 반가워하면서 그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차림새로 보아 그냥 막일꾼은 아니고 제법 어디 사무실에서 일하는 복장이었던 것이다. 

 

 “넌 어디 다니냐?”

 

최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말했다.

 

 “응? 어어 나는 저어……식산은행에 다닌다.”

 

그가 보통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던 것으로 아는 일철은 속으로 좀 놀랐다. 식산은행이라면 총독부 직계의 동양척식회사와 함께 식민지 침탈의 경제부문을 담당하는 국책 기관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간부가 일본인이고 조선인도 전문학교 이상을 나온 인텔리가 아니면 입사하기 어려운 회사였다.

 

 “이야 너 대단하구나. 거길 어떻게 입사를 했냐?”

 

일철의 감탄에 최는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아니 정식사원은 아니고 머 그저 고스까이다.”

 

일철은 그가 하인 또는 용인이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말을 듣고 함께 웃어주면서 말했다.

 

 “머 우리 조선인들이야 어디서 일하건 고스까이 아닌가.”

 

 “여어 우리 이렇게 만났는데 그냥 싱겁게 헤어질 수 있나. 어디 가서 입주 한 잔 해야지.”

 

일철은 잠깐 배 상자를 내려놓고 상의 안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어 들여다보았다. 일곱 시가 다 되었으니 신금이가 퇴근하는 그를 위해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릴 시각이었다. 그러나 늦더라도 집안에서는 아버지의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져 있으니 신금이는 물린 상을 치울 것이었다. 그런 일은 야근과 비번 휴무 등으로 귀가와 출근이 불규칙한 그에게는 늘 있는 일이어서 아내도 그러려니 할 것이라 여겼다.

 

 “역시 기관수 나리는 좋은 회중시계를 지녔구먼.”

 

최달영은 호기 있게 역전 광장을 건너 중마루 동네 일본인 주민들의 본정통 길로 들어섰다. 이일철도 바깥쪽 큰길인 역전 중앙로를 따라 늘 지나다녔지만 막상 이렇게 그 동네로 들어가기는 이제까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가 들어간 곳은 문 앞에 휘장을 늘어뜨린 이자카야였다.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주방에서 일하던 주인 남자가 어서 오시라고 일본어로 목청껏 외치며 인사를 건넸다. 사람 키 절반 높이의 칸막이가 쳐진 안쪽 구석진 자리에 최달영이 먼저 가서 앉았다. 그는 홀에서 일하는 일본인 중년여성에게 한 손을 쳐들어 아는 체를 하는 걸로 보아 이 집의 단골인 듯 했다. 그가 상의를 벗어 거는데 허리띠의 가죽집에 육혈포 권총이 꽂혀 있는 게 보였다. 일철은 그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은 내가 은행이 아니라 경찰에서 일하구 있어. 아까 둘러대서 미안하다.”

 

최달영은 아마도 그 말을 하려고 일부러 상의를 벗었는지도 몰랐다. 일철은 속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는데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아우 이철의 얼굴이었다. 최근에 아우에게 뭔가 긴장할 일이 생겼다고 하던 아내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또한 그가 데려온 신여성과 함께 지낼 살림집까지 구해준 일도 있어서 일철은 앞에 앉은 최가와 잘 사귀어둘 필요가 있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뭐야 높은 사람이 됐잖아! 이거 조심해야 되겠는 걸.”

 

일철이 일부러 과장한 목소리로 놀라움을 표시하자 최는 길에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가 되었다.

 

 “네가 철도학교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걸 멀리서 본적이 몇 번 있었다.”

 

 “아니 그랬으면 오늘처럼 날 불러 세우지 그랬어?”

 

 “철도국의 기관수라면 내지인들도 모두 부러워할 직업이다. 조선인 모두 고쓰까이라는 건 어딘가 불온한 소리가 아닌가?”

 

일철은 일순간 대답할 말을 잊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야 머……자네가 먼저 고쓰까이라구 하길래.”

 

최달영이 일철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웃었다.

 

 “농담이다. 하여튼 우리 둘 다 이만하면 잘해왔단 말이지.”

 

 “나야 뭐 험한 일이지만 자네가 출세한 거지.”

 

최가 회 몇 점과 나베 요리를 시키고 마사무네 두 도쿠리를 시켰다. 술 몇 잔이 급히 오간 뒤에 최달영이 말했다.

 

 “내가 잊었을 줄 아냐? 너하구 수돗가에서 돼지똥 묻은 옷을 찬물에 빨던 일을 말야. 그담부터 내게는 친구가 있다면 너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 잊어버리구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고맙구나.”

 

 “거 봐, 나는 지금까지 잊지않구 있는데, 그 뒤로 졸업식 때에도 너는 나 같은 건 거들떠보지두 않았지.”

 

일철은 보통학교 졸업식 날 자기가 뭘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뭘 했던가 단체사진 찍고 개인별로 예약한 사진사에게 몇 사람의 친구나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석 장쯤 박았고, 각자 헤어져 청요릿집 또는 집으로 직행하여 살만한 집에서는 생일잔치 때처럼 친구들 불러서 불고기와 전 붙이를 차려 주었다. 그가 최달영을 특히 기억하여 사진도 함께 찍거나 집으로 불러들이지는 않았다. 아마 최는 멀찍이서 끼어들지 못한 채 바라보고만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홀아비 이백만이 자기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다 작은 잔치를 차려 주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청요릿집 집에 데려가 막음이 고모와 두쇠 이철이와 아버지 등 식구들만 둘러앉아 짜장면 또는 우동을 먹었을 것이었다.    

 

 “내가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험한 일을 많이 겪었는지 너 같은 모범생이 알 리가 없겠지.”

 

하는 최달영의 말에 일철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나. 나야 머 선생님이 갈쳐주는 대로 시험 보고 진학하고 그랬을 뿐야.”

 

 “우리 같은 놈들은 그런 욕을 견디면서 차근차근 딛고 올라가는 수밖에 더 있겠냐. 주인에게 충성하고 받들면 그쪽이 알아주게 되는 거지.”

 

일철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려고 했다.

 

 “참 그런데 너희 부모님들 모두 안녕하시지?”

 

 “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누이동생들 하구 도림정에 사시지. 하나는 곧 시집 보낼테구 작은 애는 취직이나 시킬까 하구 있네. 참 느이 아우 이철인 머하구 사냐?”

 

 “공장 다니다 그만 두구 점포 차려서 장사한다.”

 

 “왜? 너희 아버지하구 너하구 철도국 직원으루 사는데 그 녀석은 나처럼 공부하군 담 쌓은 모양이네.”

 

최달영은 자기 가슴을 두드려 보이며 다시 덧붙였다.

 

 “나처럼 경찰이나 헌병 보조 시험을 보면 좋을 텐데.”

 

 “글세 말야, 요새는 경쟁률이 이십 대 일이 넘는다는데. 너처럼 머리가 좀 돌아가야 합격두 하구 그러지 않을까?”

 

일철의 말에 최가 턱을 흔들며 크게 웃었다.

 

 “설마 내가 펜대 굴려서 들어갔겠냐? 그거 아무 소용없다구. 겉으론 공고가 그렇게 나가지만 특채가 지름길이다.”

 

일철은 오늘 최달영을 만났으니 밤 시간은 이제 모두 그에게 맞추어 주기로 결심을 했던 바여서 느긋하게 술잔을 주고받았다.

 

사실 최달영이 순사보조에서 정식으로 순사 발령을 받은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가 총독부 경무국이 인정하는 큰 공을 세웠던 때문이었다. 김형신이 체포되던 그날 방우창의 합숙소에서 며칠 동안 잠복하다 그를 미행했던 정탐이 바로 최달영이었다. 순사보조라고 아무나 고등계에 소속되어 정탐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십대 때부터 자청하여 일본경찰의 끄나풀이 되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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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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