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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비밀의 샘, 무겐노사토 슌카슈토

온천 명인 안소정의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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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과 나, 세상에 단둘이 남겨진 것 같은 극도의 일체감.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2019.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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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려지지 않은 온천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꿈꾸기 마련이다. 깊은 산골짜기에 숨겨진 비밀의 온천을 만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산 좋고 물 좋다는 말은 온천에도 적용되어서, 도심과 먼 자연 속에 훌륭한 온천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벳푸에서는 호리타가 그런 곳이다. 벳푸시 서쪽 외곽에 있는 호리타는 온천의 수도 적고 이름난 관광 명소도 없다. 하지만 일부러라도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알찬 온천이 곳곳에 있는 동네다. 그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무겐노사토 슌카슈토(夢幻の里 春夏秋冬)를 소개한다.


무겐노사토 슌카슈토는 한국어로 옮기면 ‘몽환의 마을, 춘하추동’이다. 멋을 잔뜩 부린 이름에서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어떤 온천일까. 택시를 타고 굽이굽이 가파른 산길을 얼마간 지나자 산장같이 생긴 온천 건물이 나타났다. 모르는 사람은 짐작도 할 수 없는 위치였다.


접수처에서 한 명이라고 하자, 직원이 탕 대절을 원하는지 물어왔다. 박진감 넘치는 폭포와 함께 온천을 즐기는 ‘폭포탕’ 등 전세 탕이 유명하긴 하지만, 혼자라 대욕장을 선택했다. 이어서 환경보호 차원에서 온천에 비치된 친환경 샴푸와 린스만 쓸 수 있다는 규칙을 알려줬다. 그리고는 직접 대욕장까지 안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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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곳은 여성 대욕장 ‘무겐노유’. 혼자 즐길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며 왔는데, 마침 신발장이 비어 있었다! 행운이 따라주니 기대가 빵 반죽처럼 부풀었다. 작은 오두막처럼 생긴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탈의실이 있고, 거기서 안쪽 문을 열면 온천이 있는 연결 구조였다. 너무나 궁금했기에 옷을 입은 채로 안쪽 문을 열었다. 그리고 꿈에서나 보았을 법한 아름다운 온천을 보았다.


온천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온천에 예를 갖추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온천을 독차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서둘러 탈의실로 돌아가 옷을 벗고 곧바로 몸을 담갔다. 은은한 유황냄새가 코끝에 번지고, 부드러운 물이 온몸을 휘감았다. 실크를 두른 것처럼 매끄러운 촉감이 황홀했다.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안긴 듯 따뜻하고 편안했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유노하나가 꽤 많았다. 얼핏 보면 기름띠처럼 보일 정도였다. 온천 수질이 좋을 수밖에. 물결을 따라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는 유노하나를 보니, 어느 숲속 비밀의 샘을 발견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고라니 한 마리가 몸을 담그고 쉬어간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과 가까운 온천을 혼자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시간, 더 바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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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안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니, 온통 푸른 나뭇잎뿐. 언제까지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 싶어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가을의 문턱을 채 넘지 못한 계절, 아직 푸르기만 한 단풍이 싱그러웠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 물결이 이는 소리. 그 모습 그대로인 자연이 어쩜 그리도 황홀한지, 새로운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왜 이곳이 몽환의 마을인지를. 온천과 나, 세상에 단둘이 남겨진 것 같은 극도의 일체감.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잡념이 사라지니, 모든 걱정이 덧없어졌다. 몽환의 탕이 주는 행복에, 한참이나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온천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 들어갈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작은 아름다움을 보았다. 단단하게 여물어 귀여운 알밤이 탁자에 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둘러보니, 정원의 물그릇에 예쁜 들꽃이 담겨 있었다. 소박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정겨운 모습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전하고 싶은 이곳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봄이면 흩날리는 꽃잎을, 여름이면 빛나는 반딧불을, 가을이면 오색으로 물든 단풍을, 겨울이면 설경을 즐길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온천, 무겐노사토 슌카슈토. 숲속 비밀의 온천에 잠시 머무른 것만으로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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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오이타현 벳푸시 호리타6구미(大分縣 別府市 堀田6組)
영업시간 | 10:00~18:00(접수 마감 17:00), 기상 상황에 따라 부정기 휴무
찾아가기 | 호리타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15분
입욕요금 | 대욕장 성인 700엔, 아동 300엔, 대절탕 2500~3000엔
시설정보 | 샤워기, 대야, 의자 있음, 샴푸ㆍ린스ㆍ샤워젤 있음, 개인 용품 사용 불가
수질 | 유황천
영업형태 | 외탕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안소정 저 | 앨리스
좋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특별합니다. 또 무언가 좋아하게 되면,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는 일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매일을 더 윤기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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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안소정(작가)

보통의 회사원. 볕 좋은 가을날 온천에 들어갔다가 뒤늦게 적성을 발견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목욕탕을 여행하고 기록해왔다. 내친김에 목욕 가방 들고 일본의 소도시 벳푸를 거닐다 제7843대 벳푸 온천 명인이 되었다.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안소정> 저13,320원(10% + 5%)

연분홍빛 타일,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끈한 물, 습기로 뿌옇게 된 창문, 열기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가득 떠서 몸에 끼얹는 짜릿한 순간. 그리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마시는 고소한 우유 한 모금. 이쯤 생각하니, 온천에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막상 ‘온천’이라고 하면 ‘값비싼 료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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