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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에 온천을, 사보 다카사키노유

온천 명인 안소정의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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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온천의 기운이 차오르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혼자서 즐기는 사치스러운 시간에 몸과 마음을 모두 맡겼다. (2019.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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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공동 온천은 기본, 집에서도 온천이 흐르고, 극장에도, 경륜장에도 온천이 있는 도시, 벳푸. 웬만큼 특이한 온천은 다 가봤다고 생각했건만 그건 착각이었다. ‘사보 다카사키노유(茶房 たかさきの湯)’는 한국어로 옮기면 ‘다방 다카사키의 탕’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은 다방이다. 그런데 온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대화가 평범하게 오고간다.

 

“사장님, 온천 먼저 가도 될까요?”
“네, 지금 비어 있네요. 그럼 주문은 다녀와서 하시겠어요?”
“네, 부탁합니다!”


얼른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싶다고 생각하며 찻집에 막 들어서던 찰나, 코앞에서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졌다. 한발 늦었다 싶어 아쉬웠지만, 괜찮다. 먹고 마시며 기다리면 된다. 찻집에서 차 한 잔만 마셔도 무료로 온천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처럼 차를 마실까 했지만 점심 무렵이라 식사를 주문했다. 이윽고 사장님이 물과 함께 내어준 것은 온천 스탬프였다. 사장님의 접객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천 마니아를 알아보는 걸까. 하긴 이곳에 오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온천이 목적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비프카레는 여느 집밥 같은 푸근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 세련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요리를 대접받는 느낌이라 좋았다. 식사하는 동안, 앞서 온천에 들어갔던 두 사람이 내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합석 양해를 구했다. 가벼운 눈인사를 건넨 순간, 손에 들린 후로 마라톤용 스파포트가 눈에 띄었다. 궁금함에 말을 건넸다. “후로 마라톤 참가 중이세요?”


벳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이타시(大分市)에 살고 있다는 두 사람은 후로 마라톤 참가 중 이곳에 들렀다고 했다. 관심사가 같으니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좋았던 온천은 기본이고 한국 목욕탕에서 때 미는 법, 예상치 못한 김밥 속 재료 이야기까지 나눴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수건을 목에 건 사람, 바가지를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테이블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온천 마니아에게 인기 있는 카페 겸 온천의 풍경다웠다.


식사도 마치고, 즐거운 대화도 나눴겠다. 이제는 온천에 들어가볼까! 다행히도 온천이 비어 있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목욕 가방을 챙겨 코앞의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은 마당 한구석의 독립된 건물에 있었다.

 

 

3_사보 다카사키노유 2.JPG

 

 

의외로 본격적인 온천이 나타났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암석 탕, 아름다운 벽화,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보이는 푸른 나무까지. 차 한 잔 값으로 들어가기가 미안할 정도로 깨끗하고 운치 있는 온천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곧장 온천으로 뛰어들었다.


탕 가득 흘러넘치는 온천수가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한눈에 봐도 깨끗한 온천수였는데, 몸에 부드럽게 감겨 황홀했다. 게다가 온도에 맞춰 탕의 경계가 나뉘어 있었다. 뜨거운 곳에 몸을 담갔다가, 더울 때는 미지근한 곳으로 옮겨가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온몸에 온천의 기운이 차오르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혼자서 즐기는 사치스러운 시간에 몸과 마음을 모두 맡겼다.


사실, 찻집 온천은 사장님의 가족 전용 온천이었다고 한다. 좋은 온천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찻집을 열고, 기꺼이 온천의 문을 활짝 연 사장님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내게 이런 온천이 있다면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쉽사리 다른 이에게 내어주지 못할 것 같은데……. 그 넉넉한 마음과 온천을 향한 사랑에 깊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온천을 마치고 나와 카페 곳곳을 둘러봤다. 한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온천에 관한 각종 책자와 전단이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건, 지난 벳푸 여행 때 품절로 구매하지 못했던 벳푸 온천 명인에 관한 책! 벳푸 시내 어느 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었던 책이 여기 있다니. 과연 벳푸 온천 마니아의 사랑방다웠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구매하고 자리를 떠나는 내게 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어색하지만 또박또박 힘을 실은 한국어로 화답해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멀리 사라지는 나에게, 끝까지 손을 크게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나도 찻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서 오래 손을 흔들었다. 온천 명인이 되고 나면, 언젠가 다시 와야지. 그때는 들어갈 때부터 손을 흔들며 인사해야지. 언젠가 찻집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싱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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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오이타현 벳푸시 아사미1초메2-11(大分縣 別府市 朝見1丁目2-11)
영업시간 | 10:00~17:00
정기휴일 | 매주 화요일
찾아가기 | 미유키바시(御幸橋)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5분 또는 벳푸역에서 도보 15분
입욕요금 | 차 또는 식사 주문 시 온천 무료 이용 가능(별도 이용 불가능)
시설정보 | 대야, 의자 있음
수질 | 단순 온천
영업형태 | 카페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안소정 저 | 앨리스
좋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특별합니다. 또 무언가 좋아하게 되면,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는 일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매일을 더 윤기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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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안소정(작가)

보통의 회사원. 볕 좋은 가을날 온천에 들어갔다가 뒤늦게 적성을 발견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목욕탕을 여행하고 기록해왔다. 내친김에 목욕 가방 들고 일본의 소도시 벳푸를 거닐다 제7843대 벳푸 온천 명인이 되었다.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안소정> 저13,320원(10% + 5%)

연분홍빛 타일,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끈한 물, 습기로 뿌옇게 된 창문, 열기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가득 떠서 몸에 끼얹는 짜릿한 순간. 그리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마시는 고소한 우유 한 모금. 이쯤 생각하니, 온천에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막상 ‘온천’이라고 하면 ‘값비싼 료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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