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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카페에 간다

카페는 집과 세상 사이에 돋아난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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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이 있다면 아버지와 함께 갔던, 낙원상가 근처의 옛날 다방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보겠다. (2019.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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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그곳이 어디든 아는 동네라면, 두어 군데 단골 카페가 있기 마련이다. 홍대 근처에도 몇 군데 즐겨 찾는 곳이 있다. 커피와 케이크 맛이 좋아 들르는 ‘미카야’, 글쓰기 좋아 일감을 싸들고 가는 ‘북티크(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주인 안부를 물으러 들리는 ‘커피산책자 소요’, 역시 주인과 담소를 나눈 후 커피를 포장해 나오는 ‘카페가또’ 등이다. 그밖에 브런치를 먹기 위해 들르는 곳도 있고,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 좋아 들르는 카페도 있다. 2층 창가에 앉아 나뭇잎 흔들리는 풍경을 보려고, 1년에 두어 번 찾는 카페도 있다. 그곳에 앉으면 ‘서울을 서울 아닌 듯’ 바라보게 되어 아껴 간다. 자주 들르면 그 맛을 못 느낄 테니까.

 

파주로 이사한 지 2년. 동네에 단골 카페들이 생겼다. 요새 즐겨 찾는 곳은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마감이 급할 때 일하기 좋은, ‘카페 루버월’이다. 루버월에는 고양이가 네 마리 있고, 근사한 오디오장치가 있다. 그윽한 커피 향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귀퉁이 자리가 있다. 테이블마다 스탠드가 있고, 친절한 주인 부부가 있다. 고양이 ‘탱고’는 오로라 같은 눈을 빛내며 테이블에 앉아 손님들을 맞는다. 어쩌다 탱고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애교 섞인 눈웃음을 보내보지만… 탱고는 마음이 내킬 때가 아니면, 아는 척도 않는다. 한번은 탱고의 턱을 살짝 만졌는데(무엄하게도!), 찰싹. 바로 앞발로 응징했다. 손등에 상처가 생겼지만 탱고의 아름다움과 위엄에 눌려 끽소리도 못하고, 곧장 사과했다. 탱고는 “괘념치 말거라”고 말하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카페에 앉아, 가볍게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을 본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사람. 턱을 괴고 멍하니 창 밖을 보는 사람. 이들의 몸짓과 눈빛, 커피 내리는 작은 소음이 한데 어우러져 카페의 분위기를 만든다. 내게 카페는 집과 세상 사이에 돋아난 쉼표, 헝클어진 생각을 정돈하는 곳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글을 쓰는 곳, 책을 읽거나 빈둥거리는 곳이다(이 글도 카페에서 쓰고 있다). 하루 중 가장 느긋한 시간을 골라, ‘영혼을 부려놓으러’ 들르는 휴게소랄까. 현대인의 ‘실내 공원’, 일상의 작은 사치를 누리는 장소! 카페의 적당한 잡음이 좋다.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누리는 익명성, 오롯이 ‘혼자’이면서 ‘전체의 일부’가 되는 일도 즐겁다.   

 

1980년대 후반, 종로 낙원악기상가 근처에는 다방이 여럿 있었다. 그때도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은 필요했다. 나는 젊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다방에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나팔 바지에 앞코가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장발을 한 멋쟁이 친구들을 만났다. 기타나 드럼, 색소폰으로 생계를 꾸리는 젊은 연주자들. 다방에 어린 아이는 나 하나였기에 낯설어 했다. 그러다 내 몫으로 설탕을 듬뿍 넣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받고 나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 달큼한 맛은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거였으니까. 아버지가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무얼 마셨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담배를 피우며, 내가 통 못 알아먹겠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그때 분위기는 기억한다. 어두운 조명, 눅눅한 소파, 퀴퀴한 냄새, 어른들만 풍기는 분위기 따위. 그날 이후 아버지가 “낙원 다녀올게”라고 말한 뒤 나가면, 혼자 상상했다. ‘낙원’이라는 말의 어감과 다방의 낯선 분위기, 아이들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어쩌면 ‘낙원’은 그 말뜻과는 달리 찬란한 곳은 아닐지 모른다고 종종 생각하곤 했다. 차라리 ‘낙원’은 최백호의 노랫말 속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슬픈 낙원이랄까. 잃어버린 것을 기다리는 정류장이랄까.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세상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  최백호 노래 <낭만에 대하여> 중에서.

 

타임머신이 있다면 아버지와 함께 갔던, 낙원상가 근처의 옛날 다방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보겠다. 그곳을 드나드는 이들의 옷차림과 구두를 구경하고, 어린 내가 우유를 마시는 모습도 가만히 바라볼 것이다. 미래 ‘카페 생활자’인 내 전신(前身)을, 맹랑한 씨앗을 눈여겨봐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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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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