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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특집] 맛이 어떻게 변하니? - 소설가 권여선

<월간 채널예스>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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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집은 아직 없는 집으로 내가 언젠가 차리고 싶은 식당이다. 냄비국수와 김치볶음밥을 팔 것이다. (2019.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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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럴 수가!” 가끔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내가 내뱉는 감탄사이다. 왜 똑같은 재료를 똑같은 조리법으로 만들었는데 오늘따라 이렇게 맛이 있거나 없단 말인가. 그럴 때면 나는 똑같다고 알고 있었던 것들 속에서 발생한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려고 기를 쓴다.

 

한때 나를 고민에 빠뜨린 건 김치볶음밥이었다. 나는 아침에는 주로 간단히 한 그릇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겨울이면 뜨거운 국에 밥을 말고, 여름이면 찬물에 밥을 말고, 봄가을이면 주로 밥을 비비거나 볶아 먹는다. 볶음밥 중에는 김치볶음밥을 자주 해 먹는데,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김치볶음밥이 종종 나로 하여금 “아니, 이럴 수가!” 탄식하게 만들었다. 원인이 주재료인 김치에 있었다면 그러려니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똑같은 김치에 똑같은 재료를 넣고 볶는데도 맛이 번번이 다르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리 볶고 저리 지지고 하다 결국은 알아낸바, 김치볶음밥의 맛을 좌우하는 미세한 차이 중 하나는 볶는 불의 세기와 볶는 시간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김치볶음밥은 처음엔 좀 센 불로 볶다 중불로 줄이고 약불로 잠시 두었다 다시 중불로 올리고 마지막에 센 불에 볶다 자칫 타겠구나 싶을 때 불을 후딱 꺼야 한다. 볶는 시간도 좀 길게 인내심을 갖고 볶아야 고슬고슬 맛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 입맛에는 분명히 그렇다.

 

이렇게 현란한 불질을 하여 내 입맛에 꼭 맞는 김치볶음밥을 찾아냈다 싶었지만, 자꾸 먹다 보니 또 다른 미세한 차이들이 혀 위에서 아우성을 쳤다. 역시 온갖 실험을 거듭한 끝에, 어느 시간 어느 불의 세기일 때 어떤 재료를 넣는가가 미세한 차이들을 낳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주재료인 김치가 가장 중요한데, 처음부터 쭉 넣고 볶는지 중간에 넣는지 앞뒤로 반씩 나누어 넣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졌다. 부재료인 채소와 버섯과 고기도 각기 넣는 시점에 따라 맛이 변했고 다소 둔한 재료인 햄과 참치마저 자기들만의 적절한 투입 시점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발견은 응용을 낳는다. 나는 김치볶음밥에서 얻어낸 교훈들을 다른 볶음밥에도 적용하여 이런저런 실험을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무슨 요리연구가처럼 엄청난 실험을 하는 것 같지만 굳이 그러려는 건 아니고 매일 세 끼씩 뭘 해 먹는 김에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는 편이다. 나는 어떤 음식이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을 잘 기억해놓았다가 바로 그 맛을 딱 내려고 애쓰는데, 간절히 찾는 자는 결국 찾기 마련이다.

 

사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믿고 가는 단골식당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맛을 딱 내주는 식당들이다. 나는 그 식당들이 더 맛있는 음식을 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는 내가 번갈아 가는 단골 국숫집들이 여럿 있다. 첫 번째 집은 직접 반죽을 밀어 썬 울퉁불퉁한 면발에 진한 멸칫국물을 말아주는데 고명이라고는 파와 김이 전부이지만 매운 양념장을 넣어 얼큰하게 먹을 수 있어 뜨겁고 매운 게 당기는 날 간다. 양도 많고 값도 싸서 늘 사람들이 북적이므로 합석은 물론이고 심지어 네 명이 앉는 탁자에 네 명 모두 초면인 혼밥러들이 모여 기도하듯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앉아있기도 한다. 두 번째 집은 매끈하고 얇은 기계식 면을 약간 조미료 맛이 나는 국물에 걸쭉하게 끓여주는데 라면 버금가는 중독성이 있다. 국수 말고 비빔밥도 파는데 역시 값이 지나치게 싸서 합석은 당연하고 직접 주문하고 받아오는 자율배식이라 손님들끼리 몸을 부딪치는 일이 다반사에 불행히도 가끔 음식을 쏟는 일도 생긴다. 세 번째 집은 전형적인 바지락칼국수를 파는 집으로 값은 싼 편이 아니지만 바지락을 듬뿍 넣은 국물이 아주 시원하고 식전에 꽁보리밥을 주어 열무김치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을 수 있다. 네 번째 집은 칼국수가 아닌 잔치국수를 파는데 주인 할머니가 좀 무섭고 툭하면 주방에서 꽝 꾹 우당탕탕 하는 최루탄 터지는 소리를 내긴 해도 싼 가격에 비해 오뎅 계란 호박 유부 등 푸짐한 고명을 자랑한다. 다만 국물의 온도감이 아쉬워 때로는 미지근한 국수가 나오는 게 흠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집은 아직 없는 집으로 내가 언젠가 차리고 싶은 식당이다. 냄비국수와 김치볶음밥을 팔 것이다. 냄비국수는 1인 1냄비에 끓여내는 잔치국수로 국물도 뜨겁고 고명도 풍성하고 매운 양념장을 곁들일 수 있으며 김치볶음밥은 제대로 된 불질로 볶아 김치는 쫄깃하고 밥알은 살아 있다. 술꾼이나 해장꾼 들을 위해 소주를 잔술로나마 팔고 싶지만, 모르겠다. 다른 손님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생맥주는 괜찮을까. 없는 식당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지만, 아무튼 내가 식당을 차린다면 모든 걸 떠나서 처음 냈던 그 맛을 끝까지 지키는 데 목숨을 걸 것이다. 발전도 진보도 좋지만 영영 그대로여서 좋은 것도 있다. 내게는 맛이 그렇다. 내게 행복을 주는 맛은 언제나 한결같은 의리에서 온다. 친구처럼, 오래된 애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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