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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버린) 산책

어느 디제이에게 보내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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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을 하다가 울었습니다. (201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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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두 번째 회사에 다닐 적에 당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자주 들었어요. 본 방송은 새벽 세 시라 들을 수 없었고, 다시 듣기로 출퇴근길에 들었었지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어쩐지 들을 일이 없었는데, 몇 년 만에 다시 회사에 다니게 되니 당신의 방송이 떠올랐어요. 회사원에게 출퇴근 시간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때 듣거나 보는 것에 따라 사는 세계는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하거든요. 세계를 넓혀주는 일은 보물찾기처럼 요리조리 찾아봐야 겨우 발견할 수 있는데, 제게는 당신의 방송이 그런 것이었어요.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려 하는데 지난 4월에 방송이 폐지되었더군요.

 

당신은 마지막 방송이라는 걸 알려주며 오프닝을 시작했어요. 들어보니 이 프로그램을 2001년에 시작하셨다고요. 저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사만 아홉 번을 다녔고요. 그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반복하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그런 저로선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당신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벽 세 시에는 늘 한자리에 앉아있었던 거예요.

 

"<이주연의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담담하게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반이 좀 지났어요. 아직까진 잘하고 있죠? 여러분이 제 목소리가 따뜻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표현이 뜨겁고 호들갑스럽기보다는 좀 담담한 편이라 평소에 그렇게 따뜻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는 못하는 편이에요. 영화 음악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을 듣다가 울음이 터졌습니다. 왜 울음이 터진 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놀랐습니다. 주저앉아서 울거나 어딘가에 앉아서 울면 지각을 면할 수가 없었기에, 이상한 눈물을 훔치며 출근길을 걸었습니다. 요즘은 사실 울고 싶었습니다. 울고 있던 아침에는 몰랐고, 이 밤에 당신에게 사연을 적고 있으니 알 것 같습니다. 울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요. 왜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슬픔이 애매하게 돌아다니는데 바빠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예요. 계속 어딘가에 그걸 둔 채로 꾸역꾸역 살다가, 엉뚱한 곳에서 울만 한 일이 생기면 그대로 엉엉 울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슬펐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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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글을 씁니다. 두 번째 회사에 다닐 때까지는 책을 만들었고요. “요즘 같은 때에 책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딱히 통계를 찾아보거나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적지 않을 거라 믿고 있어요. 질문한 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제 눈앞이나 귓가에 그것들이 존재하는 한, 고심해서 답할 만한 질문이 아닐 거라 여깁니다. 아시다시피 라디오에는 정말이지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요. 귀가 밝아지죠. 못 듣던 소리를 듣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소리를 이제는 알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해요. 라디오 속의 사연들은 사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자극적인 사연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도 드물지요.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을, 오늘 스쳐 지났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어디 한 번 들어보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자주, 내가 얼마나 못된 인간인지를 확인하곤 해요. 한없이 작아진 마음으로 출근길에 꽉 물었던 어금니의 힘을 빼기도 하고, 숨어있던 설움을 조금은 누그러뜨립니다.

 

요즘은 공감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초보 디제이의 방송을 들어요. 주로 퇴근한 뒤에 씻고 누워 생방송으로 듣습니다. 누군가의 사연을 애써 공감해주려고 노력하는 데 전혀 공감하지 못 하는 게 티가 나서 웃기더라고요. 저 역시도 공감 능력이 빼어나지 않은 사람이라 그 부분이 좋아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밤, 그 방송은 제 안에 어지럽게 있는 단어들을 단순한 방식으로 맞춰주곤 합니다. 어떤 일이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담담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이렇게나 복잡한 서울에서 서툰 위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일이, 돋보이지 않는 자리에 머물러주어 고맙습니다. 어디서든, 새벽 세 시를 지날 때면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쇠퇴한 문화란 아주 사라지기보다 그저 압축 파일처럼 축소되어 구석에 간직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거라면 잘 축소해 특유의 매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돌고 도는 거라 언젠가 꼭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은 세상의 어느 쪽을 보느냐의 문제다. 세상의 변화를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무언가가 살아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12곡의 구성을 놓고 고민할 때, 나는 여전히 앨범으로 음악을 듣는 소수를 생각하며 만든다. 현재 내 음악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나 기타 새로운 방식의 채널에서도 함께 발매되지만, 앨범의 구성을 놓고 고민할 때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케이스를 열고 기대감 속에 첫 곡부터 들어 볼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든다.

조그만 사무실에서 아직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김목인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중에서 (3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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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선아(비주얼 에디터)

산문집 『20킬로그램의 삶』과 서간집 『어떤 이름에게』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비주얼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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