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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서 애쓰지 않는 연습

노력은 하되 아등바등하지 않는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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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애는 써야 하는데 애쓰면 안되고, 힘은 빼야 하는데 힘을 들여야 하는 그 어딘가를 맞춰야 된다는 거지? 뭐가 그래? (2018. 06. 29)

출처_언스플래시.jpg

           언스플래쉬

 

 

올해 초부터 격주에 한 번씩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처음 레슨부터 선생님은 악보를 잘 본다는 칭찬으로 시작해 이 정도로 치기에는 아깝다며 조금 더 난이도 있는 곡에 도전하자고 말했고, 나는 아기코끼리 덤보마냥 귀가 팔랑팔랑해져서 그래요? 그럼 쇼팽 에뛰드를 칠까요? 라고 말하게 되었다. 6개월 후, 선생님이나 나나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6개월째 같은 곡에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선생님이 본 문제의 원인은 이렇다 : 나는 틀린 음을 칠까 봐 무서워서 미리 손가락 모양을 잡아놓고 있고, 모양을 잡아놓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틀린다. 팔에 힘이 안 빠져서 터치도 맑은 소리로 나오지 않는다. 상태는 너무 잘 알겠는데, 문제는 힘을 어떻게 빼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못 잡고 무저갱을 헤맨다. 이 느낌인가 싶으면 멀리 도망가 있고, 한 곡을 겨우 치고 나면 손목이 욱신거린다.

 

성인은 무턱대고 연습하기보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고 나서 치면 오히려 낫다는 조언을 받았다. 나는 반대로 생각하는 게, 성인은,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머리가 굵어져서 문제다.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온갖 생각만 늘어난다. 컴퓨터 타자를 너무 많이 쳐서일까? 핸드폰을 너무 많이 봐서 손목에 무리가 갔나? 확신이 안 선다. 힘을 빼려고 생각하면 힘이 들어가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한다. 뭐라도 하면 더 악화시키는 것 같다. 뭐라도 안 하면 더 나쁠 것 같다.

 

내가 어떻게 걷고 있지, 생각하면 할수록 스텝이 꼬이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 양 발이 정면을 향한 상태에서 왼발을 앞에 내밀어 발뒤꿈치부터 땅에 딛고 구르듯이 자연스럽게 뒤로 밀면서 몸의 가운데쯤 갔을 때 뒤에 있던 오른발의 앞꿈치로 바닥을 밀어내듯이 땅에서 발을 떼려고 하면 땅과 나는 불화한다.

 

힘이 넘칠 때는 힘을 주고 다녀도 별 문제가 없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옷으로 차려입고도 남아돌아서 머리에 힘을 주고 남들한테 힘내라고 힘을 퍼주고 다니면 집에 들어와 잘 잤다. 그때는 몰랐지, 힘을 펑펑 써도 가벼울 때. 춤을 추면 무게중심이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서 어디든 점프할 수 있었던 기분.

 

요새는 오후 3시부터 힘이 빠진다. 퍼도 퍼도 나오던 에너지가 아침부터 바닥을 긁어야 간신히 한 줌 잡힌다.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려니 또 애를 쓴다. 연극을 하던 시절, 애쓰지 말라고 배우에게 소리지르던 연출가가 있었다. 너 임마, 애쓰지 마! 왜 연기를 애써서 해.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정확하게 설명을 하라면 못 할 것 같은 기분으로 대본에 적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애쓰지 마.' 그리고 막공이 끝나던 순간, 연출은 배우를 토닥이며 '애썼다'라고 말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연극하면 안되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애는 써야 하는데 애쓰면 안되고, 힘은 빼야 하는데 힘을 들여야 하는 그 어딘가를 맞춰야 된다는 거지? 뭐가 그래?

 

그중에서도 내내 기억나는 장면은 어떤 NG장면이었다. 의도대로 연기가 되지 않는지 연신 심각하게 고민하던 남자 배우는 상대역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 지금 어떻게 말하고 있어?"
그러자 상대역의 배우가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대화는 한동안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 중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떻게 치고 있나요? 필요한 것보다 더 힘을 많이 주는지 확인하려고 또 애를 쓴다. 영상을 찍어보니 막대기처럼 굳어 있는 팔이 보인다. 혼자서 하려던 일을 하다못해 영상기기에라도 나누니 적어도 문제는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치고 있었구나. 영상 속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노력은 하되 아등바등하게 애쓰지 않는 어떤 범위를 알려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야 한다. 혼자 애써 봤자 애써서 애쓰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려면 일단 들어줄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또 나는 애쓰는 범위로 넘어간다. 이제까지 눈치 보는 법만 배워 왔다. 틀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여전히 손가락을 옭아맨다. 눈치를 안 보는 연습은 또 어떻게 해야 하지.  이래서 성인 피아노가 문제다. 연습은 안 하고 생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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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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