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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전업작가로 산다는 것

『나를 살리는 글쓰기』 장석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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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눈부시고 찬란한 광채를 두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좋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학으로 먹고사는 삶을 꿈꾼다면 단순히 글 쓰는 것을 좋아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2018. 04. 30)

사진_장석주선생님.jpg

 

 

장석주에게 글쓰기는 온전한 자신의 완성이었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존재한다. 글을 쓰지 않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말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쓰는 일이란 유일한 갈망이고, 숭고한 소명이며, 그걸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본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글을 쓰지 않는 자신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명확한 선언이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 는 장석주의 개인사 속에 문학에 대한 고민, 글쓰기에 임하는 태도, 늙음과 죽음에 대한 고찰 등을 빈틈없이 배치한 이 책은 위태롭고도 보람 있는 전업작가의 삶이 가져다주는 만족감과 행복감에 대한 진지하고도 질박한 고백이다.

 

 

글을 쓰는 것, 작가로 사는 것이 ‘운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운명을 처음 느낀 것은 언제, 어떤 계기였나요?

 

뭔가 강렬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책 읽는 걸 좋아하고 15세에 첫 시를 발표했으니, 내게 문학적 재능이 있나, 하는 느낌은 있었어요. 20대 무렵 꾸준히 도서관에서 습작을 했고, 이때 쓴 시와 문학평론이 운 좋게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지요. 글쎄요. ‘운명을 느꼈다’보다는 ‘내 앞에 놓인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제가 직접 꾸리던 출판사를 접고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지요. 당시 힘든 일을 겪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로 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은 번민에 빠졌었지요. 그때 제 인생의 큰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먹고 사는 현실 문제에 압도되어 미루었던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보자고 결심을 했던 것이지요. 그 전까지 다른 일을 했던 건 전업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요. 15년 동안 준비한 것치고는 처음 한동안은 위태위태했지만요.
 
출판사 편집장과 사장을 거쳐 전업작가가 되셨습니다. 처음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걸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셨나요? 이전의 다른 직업들과 비교해서요.


출판사를 정리하고 수입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외부 매체의 원고 청탁도 많이 받지만 처음엔 그런 게 전무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살림을 꾸리는 게 어려웠지요. 절박한 심정으로 일면식도 없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냈어요. 많은 출판사에서 출판 거절을 당했습니다. 어쩌다 한 권 두 권 책을 내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제 책을 찾는 독자도 늘었습니다. 그 사이 날마다 문장을 쓰고 지우고 고치는 일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오늘에 이르렀지요. 사실 전업작가로 나설 때 시골에 내려가 집을 짓느라 은행 빚도 지고 미래도 보장되지 않은 불안한 상태였지만 꾸역꾸역 글을 썼습니다. 전업작가로 여러 출판사에서 활발하게 책을 내고 오늘날같이 경제적 안정에 이르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 다시 전업작가로 첫 발을 떼던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한창 출판사를 경영하실 때 고(故)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를 출간했다가 옥살이를 하셨지요. 슬프게도 권력에 의한 문화 탄압은 최근에도 있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전 출판사 사장으로서, 그리고 현 작가로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즐거운 사라』  를 펴내고 구속될 때는 큰 충격을 받았지요. 슬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운명이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그 사건으로 인해 출판사를 폐업하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개인적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예술가들을 차별적으로 관리했다는 사실에 경악했어요. 지금 시대에 그런 야만적이고 전근대적 작태를 태연하게 저지르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라는 게 어떤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런 정권이 국민 탄핵을 겪고 당사자들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 것은 당연합니다. 참다운 문화나 예술에는 정치권력이 썩는 것을 막는 소금 같은 소임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국가를 통치할 만한 역량도 도덕성도 전무한 자들이 권력을 틀어쥐고 문화예술계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소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30년 전업작가로서 글을 잘 쓰는 비결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꾸준히 많이 읽을 것, 지치지 않고 쓸 것, 체력을 단련할 것입니다. 이중 뒤의 두 가지를 간과하는 사람이 많아요. 글쓰기는 격렬한 노동은 아니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하지요. 자기 몸을 갈아 넣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쌓아가는 일이니까요. 무질서한 생활을 하면서 어두운 골방에서 곰팡이 핀 빵 조각으로 허기를 채우고 글을 끼적거리는 예술가란 아마도 전근대 작가의 모습일 겁니다. 오늘의 작가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체력을 단련해야 합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체력이 부실해 쉽게 피로를 느낀다면 몇 시간씩 앉아서 쓸 수 없고, 당연히 어떤 원고도 완성할 수 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날마다 수영과 조깅으로 제 몸을 단련하고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로 강한 체력을 유지하지요. 작가는 ‘몸이 재산’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업작가란 온전히 자기 몸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글쓰기는 괴로우면서도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글이 완성됐을 때의 행복을 형기를 마친 A5. 죄수의 기쁨에 비유하셨는데, 그렇다면 글을 쓸 때의 괴로움은 무엇에 비견될 수 있을까요?


책을 100여 권 썼는데, 그렇게 여러 권을 집필했지만 막상 새로운 책의 집필을 시작할 때 막막합니다. 한겨울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 물이 시내를 이뤄 강으로 나아가는 것 같으니까요. 어떤 문장이든지 그것이 모여 한 권을 이룬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엄청난 땀과 피, 시간과 노고가 그 안에 녹아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책을 쓴다는 것은 시지프스의 고독한 노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장을 쓰는 일은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올리고,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내린 바위를 밀고 올라가는 일과 같습니다. 가끔 내가 이 많은 것들을 쉬지 않고 해냈구나, 뿌듯할 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합니다. 어느 작가가 ‘글 감옥’이라는 말도 했는데, 그 표현이 적절합니다. 한 권을 책을 다 쓰고,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 정말 오랜 수형 생활 끝에 감옥에 풀려나 자유를 얻는 느낌입니다. 그 기쁨과 성취감은 정말 큽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햇빛 한 줌, 바람 한 줄기, 흙냄새가 다 황홀하게 느껴집니다.

 

본문에 ‘자기 자신이 심오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독서가 행복감을 A6. 준다는 오르한 파묵의 말을 인용하셨습니다. 반세기를 독서가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지적에 화가 나진 않으셨나요?


화는 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젊은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도 과연 이 책읽기가 내 인생에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을 읽을 때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고즈넉한 행복과 평화를 얻었다는 사실! 그래서 늘 궁금했습니다. 이 평화와 행복감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오르한 파묵의  『다른 색들』 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이게 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물론 독서의 행복은 이런 ‘착각’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책읽기의 삼매경에 빠져 현실의 고통을 잊을 때, 새로운 앎에 뇌가 반응할 때,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걸 느낄 때 역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작가 지망생을 위한 짤막한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문학을 ‘눈부시고 찬란한 광채를 두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좋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학으로 먹고사는 삶을 꿈꾼다면 단순히 글 쓰는 것을 좋아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문학이 벼랑이라고 하더라고 끝까지 갈만큼 문학을 사랑하고 미쳐야만 합니다. 문학의 아우라만을 보고 불구덩이를 향해 달려드는 부나비 같은 행태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문학을 향한 일체의 낭만적 기대에서 벗어나 엄중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기 재능을 갈고 닦는 ‘수련의 고통’을 감내할 만한 인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업작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많습니다. 생활의 무질서와 게으름, 빈곤, 수시로 밀려드는 재능에 대한 회의, 주변의 몰이해, 가족의 질타 등등. 이것을 딛고 넘어서서 전업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글쓰기가 삶에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갖는지 다시 번민하고, 번민하고, 또 번민해도 부족합니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 는 전업작가에 이르기까지 제가 겪은 글쓰기와 관련된 여러 번민과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께 좋은 조언이 되길 바랍니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장석주 저 | 중앙북스(books)
운명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와 글쓰기만으로 온전히 먹고사는 지금의 인생, 그리고 삶의 의미를 주는 진정한 글쓰기에 대해 솔직하고도 담담하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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