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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특집] 공간 감성을 떠올려보라

<월간 채널예스> 2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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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풍부한 사람은 감성 풍부한 공간을 만들고, 감성 풍부한 공간은 감성 풍부한 사람을 만든다. 나는 여기서 감성 풍부한 공간의 네 가지 속성을 짚고 싶다. (2018.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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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는 게 바로 나를 만든다.’ 모두 인정하는 팩트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에 따라 내 건강, 몸집, 체질, 컨디션이 영향받는다. ‘내가 입는 옷은 나를 표현한다.’ 모두 인정하는 바다. 무엇을 어떻게 걸치느냐에 따라 나의 캐릭터와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의 맛 감성, 패션 감성은 놀라울 정도로 발달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간 감성은 어떨까? ‘나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또 나를 만든다’를 받아들일 정도에 이르렀을까? 과학적인 판단을 내릴 수야 없겠지만 우리의 공간 감성은 이를테면 ‘발아 단계’가 아닌가 싶다. 무척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자랄 여지가 크다.

 

멋진 공간, 독특한 건축, 근사한 공간이 엄청나게 많아졌고 ‘저기가 어디야?’ 할 정도로 유혹적인 공간도 많아졌는데 왜 아직 발아 단계라고 하느냐고? 카피하는 성향이 너무 많다는 것. 또한 사용자의 주체적 자신감이 흔들린다는 것.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요리나 패션에 대해서 느끼는 친근감이나 주체적 선택권에 비해 공간에 대해서는 어려워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자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공간 감성은 훨씬 더 자라야 한다.

 

 

공간의 효능은 어떤 걸까?


공간은 다채롭게 작동한다. 항상 거기에 있고 항상 배경으로 가만히 있기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나의 몸과 뇌와 동작과 느낌에 영향을 준다. 좋은 공간은 건강을 지켜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며 정신을 밝혀주고 영혼의 기쁨을 자아낸다. 오히려 정반대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나쁜 공간은 건강에 끔찍한 해악을 끼치며, 마음을 조이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성하고, 사람의 정신을 옥죄면서 자유정신과 창의성을 억누르고, 이윽고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며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고민이 되는 점은 나쁜 공간은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이 되지만(예컨대 수용소, 감옥, 히틀러 시대나 전체주의, 제국주의, 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온갖 건축물과 광장과 조형물처럼), 일상적으로 쓰는 공간이나 세상에서 칭찬받는 공간 속에 스며 있는 불건강성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좋은 공간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가지기도 쉽지 않거니와 많은 사람을 위해서 좋은 공간을 만들기까지 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요리나 패션과 달리 공간은 인간의 즉각적인 반응을 자아내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간 감성이 둔해지기 십상이다. 공간을 만들고 바꾸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또 한번 형성된 취향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간 감성은 보수성이 강하다는 특색도 있다. 게다가 이른바 공간 미학적으로 뛰어나다고 하는 공간(예컨대 전문가들이 예찬하거나 미디어에 나오는 유명한 공간들)을 사람들이 꼭 좋아하라는 법도 없거니와, 공간 취향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특색도 있다.

 

 

감성 풍부한 공간의 속성은?

 

공간 감성이 풍부하면 감성 풍부한 공간을 만들까, 감성 풍부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공간 감성이 풍부해질까?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의문이지만, 양방향 상호 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감성 풍부한 사람은 감성 풍부한 공간을 만들고 감성 풍부한 공간은 감성 풍부한 사람을 만든다. 나는 여기서 감성 풍부한 공간의 네 가지 속성을 짚고 싶다.

 

첫째,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충분히 ‘복잡’할 것. ‘충분히 복잡’ 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은 무질서로 보이는 혼잡 속에서도 자신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감성과 지능이 발전된다. 단조롭고 획일적이고 지나치게 빤한 공간은 우리의 뇌를 자극하지 못한다. 예컨대, 곧바른 도로, 지나치게 가꿔진 조경, 번호 말고는 다 똑같아 보이는 건물, 깨끗하게 정리됐다고 여겨지는 환경이 결코 좋은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칫 사람을 기계적으로 만들고 지루하게 만들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지능도 감성도 자라지 못하게 한다. 현대의 도시 계획, 건축이 절대적으로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컴퓨터 그래픽처럼 완전무결한 공간을 선호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충분한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는 오래된 동네 공간들이 자꾸 사라지는 데 대한 자탄이기도 하다.

 

둘째, 사시사철 변화무쌍하게 느끼도록 만들 것. 항상 똑같게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연이란 최고의 감성 공간이다. 같은 풍경이지만 하나도 같은 데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구조를 갖고 있지만 똑같은 이파리가 하나도 없는 이치와 비슷하다. 도시 속의 길보다 자연 속의 길을 산책하는 것이 지루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치다. 햇볕도 달라지고 그림자도 달라지고 빛깔이 달라지며 돌멩이 하나, 바위 하나가 다 달라 보이는 것이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뻥 뚫린 큰길보다 올망졸망한 가게들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산책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운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셋째, 주눅 들지 않게 만들 것. 고압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엔 이런 공간들이 널려 있다. 기실 역사상 많은 건축물이 사람을 길들이고 주눅 들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신에 대한 경외와 지배자에 대한 경외를 동일시하며 웅장한 공간을 만들었고, 권력자의 압도적인 권능과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심기 위해서 궁전과 관청과 종교 시설과 광장들이 그렇게 엄숙하고 권위적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시장의 지배자들 역시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서 화려하고 특별한 공간을 만듦으로써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든다. 부러움으로 버무려진 허영은 이 시대 특유의 코드인 것이다. 허영의 공간에 주눅 들지 않고 사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넷째, 내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느껴질 것. 바로 ‘놀이’가 개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사람은 참으로 오묘한 동물이다. 자신이 질서를 부여하려 든다. 자신이 뭔가 해보려 든다. 호기심의 발로이기도 하고, 탐험 정신이자 컨트롤 욕구이기도 하고, 장악 본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야 성에 차고 신이 난다. 그게 놀이의 속성이다. 놀이가 가능하면 사람들은 주체적이 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자신감이 붙는다. 새로운 것을 궁리하게 되고 무언가 새롭게 시도하려 든다. 궁리와 시도 자체가 흥미롭고 끝나지 않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꾸며진 공간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공간 감성을 표현하며 살고 있나?

 

이 네 가지 속성을 개념적으로 정의해보자면 ‘복잡계, 변화성, 자존감, 놀이성’ 이다. 이런 속성을 갖춘 공간에서 우리는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즐거우며 정신이 활짝 깨어 있게 되고 영혼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행복해진다. 어려워 보인다고? 그럼 자신의 집을 떠올려보라. 혹시 너무 정리 정돈만 잘 돼 있나? 언제나 똑같아 보이나? 그런 게 좋은 거라고 별로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사는 건 아닌가? 혹시 남이 꾸며준 고대로 살면서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는 ‘집 놀이’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더 나아가 자신이 일하는 공간을 떠올려보라. 자신이 들르는 공간을 떠올려보라. 자신이 여행 떠나고 싶은 공간을 떠올려보라. 이윽고 깊숙이 자리 잡은 자신의 공간 감성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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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진애(도시건축가)

『집 놀이』, 『여자의 독서』, 『왜 공부하는가』 저자.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김진애의 도시이야기’ 코너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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