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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신뢰가 있어야 혼자 잘 있는다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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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알아서 잘 지내는 고양이를 보면서 ‘나도 저럴 수 있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들었던 것이 아닐까? (2018.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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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무엇이든 넘치면 좋지 않다

 

몇 년 전 모나코에서 열리는 작은 학회에 간 적 있다. 함께 가기로 했던 동료가 막판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학회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평소 같으면 학회 일정이 끝나면 저녁에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 잔 하는 것도 학회의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루 세 끼 혼밥을 하고, 혼자 거리 구경을 하고, 밤에 호텔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방영되는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카페나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서 하는 말은 다양한 유럽어들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만 빼고 다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본의 아닌 묵언수행을 처음 하게 된 셈인데, 처음에는 불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어떨 때에는 입이 근질근질해져서 카페 점원과 대화라도 나누고 싶어졌고, 학회에서 안 하던 질문을 하려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정이 끝나가니 처음의 공허함, 비어있는 기분이 주는 낯선 느낌이 불편한 두려움에서 묘한 편안함으로 변해가는 걸 발견했다. 카페에서 떠드는 사람들 말을 못 알아들은 게 사실은 내 뇌를 철저히 쉬게 해준 것이라는 사실을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깨달았다. 모든 목소리를 다 알아 듣는 게 이처럼 피곤한 일이었다니! 두려움에서 벗어난 후 몇 일동안 이런 저런 자연스러운 공상을 할 수 있었고, 그 당시 고민하던 일에 대한 나름의 대안들과, 이를 위한 색다른 시도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는 것은 덤으로 얻은 수확이었다. 결론적으로 혼자 있는 거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의외로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인간(人間)이란 단어 자체가 ‘사람 사이’를 뜻하고, 또 사람 인(人) 한자가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형상이라고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상호의존적인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니 말이다. 감옥에서 독방에 가두는 것, 고대사회에서는 부족에서 추방을 하는 것이 최고의 형벌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 넘치면 좋지 않다. 지금 사회는 지나친 네트워크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최근 정보기술의 발전은 시간적 제한 없이, 지구의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인간을 든든히 묶어 놓아 도저히 잠시도 혼자 있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고독과 외로움은 많이 줄어들었고, 친구의 일상을 낱낱이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잃은 것은 혼자 있는 것이다. 서로 엮일수록 천천히 사색하고 침잠하며 되새김질하는 능력은 거꾸로 점점 퇴화되어 버린 셈이다. 이제는 관계 속에 사람들이 너무 타이트하게 묶여있는 바람에 실제 ‘나란 존재’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경고도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너무 복잡해져버린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관계를 더 잘해내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지내려는 노력에서 찾아야한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하는 책이 있다. 마이클 해리스의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Solitud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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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사회적 털고르기

 

마이클 해리스는 캐나다의 논픽션 작가로 이 책은 그의 두 번째 책이고 ‘소셜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온 고독의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학, 인문학, 사회학, 뇌과학 등의 다양한 연구결과와 전문가와 인터뷰를 한 결과를 책으로 만들어냈다.

 

먼저 그는 구글 검색의 자동완성을 예를 든다. fear of being을 치면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fear of being alone)이, fear of without을 치면 핸드폰이 없는 두려움(fear of without a cellphone)이 가장 먼저 뜬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핸드폰 없이, 혼자 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실제로 2013년 미국 7,500명 스마트폰 사용자 대상 조사 80%가 깨어난 후 15분 이내 휴대전화기 사용하고, 이를 18-24세로 한정하면 89%에 달한다. 그만큼 스마트폰과 SNS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사는 한 눈을 뜬 순간부터 의식이 깨어있는 한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있고, 연결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항시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회적 에티켓도 변했다. 친구가 올린 포스팅에 대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지 않으면 혹시 화가 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불편을 줄여야 하는 것도 또한 관계의 의무가 되었다. 어느 순간 홀로 있음은 금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저자는 사회적 털고르기(social grooming)이라고 칭한다. 마치 원숭이들이 서로 털고르기를 해주는 것으로 친교 행위를 하듯이 우리는 사회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하기에 일부는 일종의 ‘군중 멀미’에 시달릴 수 있고, 양적인 투입 대비 얻는 만족은 줄어드는 한계효용 체감 원칙이 작동한다. 그래서 아무리 사회적 연료를 계속 채워도 여전히 마음은 더 이상 흡족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서로를 불안해하고 끊임없이 인식하며 살아가게 된다.

 

2014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혼자 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가 되면 뭔가 두려운 생각이 떠오를까 무섭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자극을 원한다는 것이다. 피험자들을 혼자 있게 하자 6-15분 뒤 집중력을 잃었고, 일부는 차라리 전기충격을 받겠다고 선택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혼자 있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이제 많은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홀로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상의 복잡성에서는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 자기이해와 깊은 내면과의 접촉을 증진할 수 있다.

 

저자는 “홀로 있음은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자아가 결국은 괴물이 아님을 일깨운다”고 말한다. 그는 소아 정신분석가 위니코트를 인용하면서 혼자 잘 있는 사람은 어릴 때 충분히 보살핌과 좋은 관계의 경험을 가져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외로움과 불안의 해소는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홀로 있으면서 행복한 사람은 타인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이다. 역설적이게도, 고립을 차분하게 체험할 때 타인에 대한 신뢰를 입증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타인을 더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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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몽상의 자유

 

혼자 있는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몽상의 자유다. 지금껏 사회적 뇌는 최대한 효율적이고 가장 빠른 답을 찾는 방식으로 발달했다. 하지만 이건 주어진 세팅에서 최적화된 답을 찾는 것일 뿐, 창조적이고 세팅을 파괴할 혁신은 찾을 수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몽상이다. 뇌과학적으로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의 작동인데, 심리용어로는 zonening이라고 하기도 한다. 몽상을 잘 할 때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고, 혁신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끝없는 도서관의 복도를 헤매며 이 책 저 책을 꺼내보는 것과 비슷한다. 목적지향적 사고관에서 보면 사치스러운 일이나,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런 몽상 능력이고, 인공지능과 경쟁해야하는 인간에게 고유한 능력을 하나 꼽자면 몽상에 의한 창조성이 아닐까 한다.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속에서 ‘나의 개성과 선택’을 잃어버릴 위험이 높아진 현재, 혼자 있기를 통해 내 안의 내적인 나만의 기벽이 훼손되지 않게 잘 봉인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 저자는 직접 뱅쿠버 인근의 작은 섬에서 핸드폰, 인터넷 없이 일주일간 혼자 지내는 시도를 해보았고, 그 과정에 경험한 심리적 변화를 생생하게 적었다. 처음에는 매우 낯설고 두렵기도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편안해질 수 있었고, 사회로 돌아와보니 더욱 관계가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저자는 밝힌다.

 

현대사회의 관계의 홍수 속에서, 대중의 선택이 곧 나의 취향이 되어버리고 있다. 포털의 별점에 따라 영화를 보고, 식당에 가고 그것이 나의 취향이 되었다. 이와 같은 현대사회에서 나만의 개성을 지켜나가고, 관계에 휩쓸려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를 독하게 잘해내려고 노력하기보다, 거꾸로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역설적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잠시 혼자 있어도 된다. 아니 있어도 되는게 아니라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혼자 있으려는 본능적 욕망과 현실의 그렇지 못함의 내적 갈등이 엉뚱하게 최근 세상 사람들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방향으로 뻗힌 것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관계의 피곤함에 지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에, 혼자서도 알아서 잘 지내는 고양이를 보면서 ‘나도 저럴 수 있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들었던 것이 아닐까?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마이클 해리스 저/김병화 역 | 어크로스
독창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움트게 하고, 불안한 정신을 치유하여 생산적 정신 상태로 만들어주며,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추억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감을 강화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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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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