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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출판을 어데로 데려가나

출판은 인류가 지능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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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현재 출판에서 인공지능은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책들이 전체적으로 잘 팔리고 있으니까요. (2018. 01. 02.)

앞으로 책에 관한 어떤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질까? 책의 모양은 천 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책을 다루는 직업들은 수없이 달라졌다. 필경사가 사라졌고 전기수도 사라졌다. 대신에 인터넷서점 MD가 생겨나고 epub 제작자가 생겼다.

 

인공지능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어떤 직업이 남고 어떤 직업이 사라질 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글을 쓰는 일은 끝까지 인간의 영역일 줄 알았는데,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위화감 없이 읽힌다고도 하니 출판계도 안전하지는 않을 거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부여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멈추지 않고 그 자신의 목표와 해결법을 찾아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평범한 인간은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을 거라는 아서 C.  클라크의 말처럼 어쩌면 마법처럼 보일 시대에 무엇이 유망 직종일지 고민하는 것은 조금 부질없어 보인다. 

 

인공지능까지 갈 것도 없이 컴퓨터의 발전만 해도 많은 직업을 변화시켰다. 출판에만 국한시켜본다면 전자조판과 옵셋 인쇄가 보편화되면서 식자공이 사라졌다. 흔히 인쇄라고 생각하면 떠올리는 팔만대장경이나 고무판을 조각칼로 파내어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방식의 볼록 인쇄를 할 때는 활판에 하나씩 글자를 채워 넣는 일이 필요했다. 원고에 맞춰 틀에 ‘글자를 심는다’는 말은 낭만적인 비유처럼 들린다. 그러나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원리를 이용하여 평판 인쇄를 하는 지금은 식자를 할 일이 없다. 눈앞에서 한 직업이 사라지는 것을 본만큼 과학의 발전이 출판에 끼치는 영향을 신경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직업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컴퓨터의 발전이 출판인들에게 큰 기쁨을 준 것은 하리꼬미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하리꼬미는 우리말로 터잡기라고 하는데 터잡기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실무자가 한 명도 없을 거라 계속 하리꼬미라고 부른다. 큰 전지에 8쪽, 16쪽 등을 한 번에 인쇄하여 여러 번 접고 주변을 잘라내어 묶으면 책이 된다. 이때 접은 종이를 펼치면 판면이 여러 방향으로 다르게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인쇄를 위해 판을 배열해주는 것을 하리꼬미라고 한다.

 

쉽게 하리꼬미를 이해하기 위해 종이를 하나 접어 16쪽짜리 책을 만들어본다. 종이를 세 번 접어 책처럼 한쪽을 잡고 잘라 순서대로 쪽 번호를 적어본다. 이것을 펼치면 하리꼬미를 한 상태를 볼 수 있다. 하리꼬미는 종이를 어떤 방향으로 접는지, 몇 번 접는지 등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수동으로 직접 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위가 쓰리다. 이것을 잘못하면 페이지 순서가 엉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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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리꼬미를 쉽게 알아보자

 

평판 인쇄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커다란 필름지를 라이트박스 위에 놓고 눈이 빠져라 보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필름에 잘못된 글자가 있으면 해당 글자를 잘라내고 다른 글자를 붙여 넣는 일명 따붙이기를 했는데, 이때 지문이 남거나 칼선이 남는 일도 종종 있다. 필름 주변의 여백을 잘못 알고 메모를 남겼다간 그대로 인쇄되는 일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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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에 남긴 글씨가 슬프게도 인쇄되었다. 사진제공 @diego

 

필름을 거치지 않고 바로 판을 뽑는 CTP 인쇄가 일반화되면서 이런 일도 사라져 간다. 이렇게 저렇게 책에 관한 직업은 조금씩 사라져가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책에 관한 일로는 역시 독자가 제일이겠다.

 

지능이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해가는 능력이라고 생각할 때 출판은 인류가 지능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출판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래서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현재는? 적어도 현재 출판에서 인공지능은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책들이 전체적으로 잘 팔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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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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