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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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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기괴한 제목에 마음 끌려 영화 감상을 한 듯했으나 왜 이리 오래 대사들은 남는 것인가. 그럼 되었지,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는데.......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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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최 ‘너췌’의 열풍이 이해 안 가는 나를 스스로 토닥이면서 영화를 봤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제목을 줄여 ‘너췌’라고 부른다고들.
 
그러니까 원작 소설이 80만 부 넘게 팔렸다고? 그 유명한 서점대상 후보에 올랐다고? 스미노 요루가 ‘소설가가 되자’라는 투고 사이트에 올렸는데 선배 작가가 알아보았다고? 스미노 요루는 책을 잘 안 읽는 작가라고? 남녀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이 라이트노벨이 일본 어른들 사이에서 열풍이었다고? 정말 당최 모르겠는 심정이었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목소리의 형태> 같은 맥락인 것인가.
 
영화는 자못 화사했다. ‘일본적’으로 어여쁜 영상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정갈한 주택가와 오래된 거리, 벚꽃 만개한 풍경. 학교 도서관과 디저트 가게의 묘사는 고전적이고 사랑스러운 엽서 그림 같았다. 죽음을 앞둔 여학생 사쿠라는 이름처럼 예뻤고 발랄했다. 유명한 작가가 바로 떠오르는 하루키는 책 속으로만 도망치는 조용하고 순진한 남학생이었다.

 

그뿐이었다. 정말 영화는 예쁠 뿐. 시한부 환자의 얼굴이 저토록 깨끗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도 영상이니까, (원작에 없는) 성인이 된 하루키가 상당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된 것도 캐스팅의 문제니까. 사쿠라의 절친인 교코의 결혼식 날, 하필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교코에게 뒤늦게 발견된 유서를 전달하는 건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니까. 영화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꽤 너그럽게 학교물 판타지를 보듯 즐겼다. 영화는 그러니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다소 진부하고 간지럽지만 한없이 진지한 대사는 왠지 기억에 또렷했다.
 
“너에게 산다는 것은 뭐야” 하루키의 질문에 “혼자 있으면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없어. 타인과 관계들이 살아 있게 해”. 이 대화를 나눈 곳이 병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울림이 컸다.
 
돌아와서 원작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얼굴이 들려주는 대사들이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었기에. 일본 열풍이 어쩌면 이 대사들, 원작 소설의 문장이 불러일으킨 감흥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 첫 장부터 문장이 경쾌했다. 툭툭 치듯 가볍게 스탭을 밟는 듯한 문장이었다. 10페이지 정도 넘겼을까. 이런 대화가 나왔다.
 
“너나 나나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는 너나 나나 다를 거 없어, 틀림없이, 하루의 가치는 전부 똑같은 거라서 무엇을 했느냐의 차이 같은 걸로 나의 오늘의 가치는 바뀌지 않아. 나는 오늘, 즐거웠어.” 사쿠라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친구 하루키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도서관 도서 정리 같은 것에 써도 되느냐고 걱정스레 물었을 때 답이었다. “당연히 괜찮지”라는 말에 이어서 나온 말이다.

 

우리 모두 죽는다. 당연하지! 답이 정해진 게임에서 나올 법한 즉각 반응이 어울리는 명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산다면 사쿠라처럼. 너의 췌장을 먹고 싶은, 간절하고 진실한 관계를 추구하는 하루하루를.
 
원작 소설을 읽고 느꼈다. 일본인들도 나도 시한부 삶의 사쿠라가 불현듯 꺼낸 이야기가 내 안에서 살아 있었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감성 충만한 삶,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보려고 노력하는 삶,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애쓰는 삶의 갈망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을. 현실의 중압감에 잊은 듯 쿨한 척했지만 그 진실한 갈망을 인정할 수밖에.
 
사쿠라가 뜻하지 않게 죽고(이건 스포일러니까 함구), 장례식에 불참했던 하루키. 뒤늦게 사쿠라의 휴대폰에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자신이 보낸 메시지가 수많은 미수신 메시지 속에 ‘읽음’으로 표시된 것을 확인하고, 마음 놓고 울어버린다. “제가 좀, 울어도, 괜찮겠습니까.” 일본인 특유의 ‘양해의 말씀’을 사쿠라 어머니에게 먼저 건네 후. 참으로 일본적이다!
 
다소 기괴한 제목에 마음 끌려 영화 감상을 한 듯했으나 왜 이리 오래 대사들은 남는 것인가. 그럼 되었지,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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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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