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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기억 실종 사건 (1)

선생님. 혹시 어머니가 치매는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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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했다. 김 부장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불 꺼진 거실에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했다. 어머니가 있는 방 문틈에선 아침까지 불빛이 새어나왔고 안에서는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20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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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시

 

터미널에 도착한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길

 

“치매, 음식이 답입니다. ㅇㅇㅇ생식.”
“치매 예방에 특효! 뇌 자극하는 운동법 다섯 가지.”
“치매에 대해 궁금하세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전국 어디서나 국번 없이 15XX-99△△로 지금 전화주십시오.”

 

김형철 부장은 스마트폰 액정을 껐다. 정보는 넘쳐났지만 막상 도움이 되는 건 없었다. 그는 반딧불 의원 대기실에 나란히 앉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새 대통령이 치매는 이제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언제 실현될 지 모르는 일이다. 어머니에게 문제가 생긴 게 맞다면 지금처럼 어머니를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볼 사람부터 당장 정해야 했다.

 

어머니는 건강한 편이었다. 고혈압 약을 드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큰 병은 없었다. 10여 년 전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뇌에 피가 고였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까지는 하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병원에 입원해야 할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노인들이 많이 걸린다는 독감 한번 걸리지 않았다.

 

적지 않은 동료들이 갑작스레 생긴 부모의 건강 문제로 힘들어하곤 했다. 암, 중풍, 치매, 관절염, 척추 협착증. 노인이 된 부모를 찾아오는 질병은 참으로 다양했고,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다행이라고. 하지만 정말 건강하셨던 걸까. 얼마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젠 확신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사는 전주까지는 자동차로 세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친가 인근에 사는 동생과는 달리 김 부장이 어머니를 만나는 것은 기껏해야 서너 달에 한 번이었다. 지난 겨울, 전화 건너편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을 때 어머니는 찬송가를 많이 불러 목이 쉬었다고 했지만 실제론 몸살로 드러누워 앓다가 전화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것 역시 오래전부터일지도 모른다.

 

3개월 전이었다. 갑자기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컸다. 아기 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까지 당신이 아이들을 키우다시피 하셨기 때문에 애착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쉬 드러내진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갑작스런 전화가 의외라 생각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본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데리고 전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첫째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것은 여간해선 쉽지 않았다. 주말이면 학원 보충수업을 줄줄이 들어야 했고 남는 시간엔 밀린 잠을 보충해 공부에 필요한 체력을 유지해야 했다. 고3이 된 올해는 설 명절에도 내려가지 못했다. 어머니도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최근엔 직접 서울에 올라오곤 했다. 올라와도 손자 얼굴을 보는 것은 잠깐뿐이었지만, 그래도 당신 손으로 손자 먹을 밥 한끼는 꼭 차려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터미널에 도착한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길, 김 부장은 백미러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여느 때와 달리 멍한 표정이었다. 텃밭에 키우는 고구마와 호박, 고추 작황이 잘 되었느니, 하루(어머니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다)가 밥을 잘 안 먹느니 등등 평소라면 묻지 않아도 말씀을 쉬지 않았을 텐데. 뒷좌석에 앉은 그녀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머니는 멀미를 많이 하는 편이라 장시간 버스를 타는 것을 힘들어했다. 김 부장은 아내에게 전화해 어머니가 피곤하신 모양이니 미리 자리를 펴두도록 일렀고, 집에 도착해 자리에 누운 어머니는 저녁이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린 것은 거실로 나온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말을 건넸을 때였다.

 

“된장찌개 냄새가 좋구나. 냉장고에 애호박이랑 부추가 있을 텐데, 넣었니?”
“어머님, 호박은 넣었는데 부추는 사둔 게 없어요.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금방 사올게요.”
“아니다. 내가 어제 냉장고에 넣어뒀으니 찾아보면 있을 게다.”

 

순간 아내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김 부장을 바라보았다. 그도 어리둥절해 아내와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식사를 하면서도 어머니는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다. 그와 아내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 어머니가 문득 생각난 듯 이야기했다.

 

“너희 사는 아파트는 전세 값이 많이 올라 힘들지 않냐. 서울에선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괘, 괜찮아요.”

 

김 부장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다시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는 이제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내내 전셋집에 살다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한 게 벌써 5년 전이었다. 한동안 어머니는 친지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아들이 서울에 큰 평수의 아파트를 샀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지난 오 년 간의 기억이 마치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어머니는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늦더라도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손자를 기다렸다가 얼굴을 보고 잠자리에 들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날은 아이들이 들어오는 소리에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할머니 몸이 안 좋으시다고 둘러댔다. 김 부장이 걱정스런 마음으로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가방의 옷가지와 소지품들을 모두 꺼내 방바닥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있었다.

 

“어머니 뭐 하세요?”
“이것들은 내 물건이 아닌데 누가 내 가방에 넣어뒀나 보다. 그래서 꺼내놓으려고.”

 

아내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했다. 김 부장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불 꺼진 거실에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했다. 어머니가 있는 방 문틈에선 아침까지 불빛이 새어나왔고 안에서는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아침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김 부장은 그녀가 자는 동안 몇 번씩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박동 소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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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시

 

선생님. 혹시 어머니가 치매는 아닌가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잠을 깬 어머니는 머리가 좀 아프다고 했을 뿐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는데, 서울에 올라온 뒤 하루 동안의 일은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 날 김부장은 휴가를 내고 어머니와 함께 종합병원을 찾았다. 인지기능검사와 뇌 MRI 결과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진료실을 나간 뒤 그는 참았던 질문을 조심스레 꺼냈다.

 

“선생님. 혹시 어머니가 치매는 아닌가요?”
“기억력이 약간 떨어져 있긴 하지만 치매라고까지 하긴 어렵습니다. 어제와 같은 증상이 왜 생겼는지는 확실치 않네요. 현재는 큰 이상이 없는 상태니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또 생기는지 잘 지켜보세요.”

 

어머니는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괜찮다며 집으로 바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기차역에서 그녀를 보낸 뒤 김 부장은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를 각별히 챙길 것을 당부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음 날부터 매일 같이 동생과 어머니에게 번갈아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했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어 보였다.

 

사흘 전, 어머니가 다시 서울에 올라오는 날이었다. 생일을 맞은 손자가 좋아하는 장조림을 해 오시겠다 했다. 전화 건너편 어머니의 목소리는 활기가 넘쳤다. 지난번의 기억이 꺼림칙했지만 그동안 수시로 확인한 어머니의 상태엔 변화가 없었기에 설마 또 그런 일이 생길까 싶었다. 이번엔 아내도 같이 터미널에 나가기로 했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리는 어머니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의아한 얼굴로 말을 건넸을 때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희가 여기 웬일이냐. 의철이는 어디 가고?”

 

어머니는 전주에 있는 동생을 찾는 것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를 잊어버린 눈치였다. 그날 저녁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는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밥을 해야 한다고 반복해 중얼거렸고, 김 부장과 아내는 어머니를 안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밤이 되자 어머니는 침대 다리에 벌레가 기어 다닌다며 걸레질을 되풀이했다. 3개월 전처럼 꼭두새벽에 잠들었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잠이 깬 어머니는 이번에도 서울에 도착한 이후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이번에도 검사 결과엔 큰 문제가 없었다. 신경과 전문의는 속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서울의 아드님 댁에 오실 때만 문제가 생기는 거네요. 혹시 아드님이나 며느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지는 않나요?”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가? 아내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육아를 도맡아주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을 항상 아쉬워했다. 친 모녀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흔히 말하는 고부 갈등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걸 행운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젠 모를 일이었다. 김 부장은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듯했다. 일단 의사의 권유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예약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식사를 위해 메밀국수 집에 들렀다. 근방에선 나름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고 메밀국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너 담배 끊었니?”

 

반딧불 의원이 떠오른 것은 저녁식사를 하던 어머니가 건넨 말 때문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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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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