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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내 책이 말하는 것은 페미니즘, 걷기, 저항”

미국의 저술가이자 비평가 리베카 솔닛
신간 출간 기념해 내한, 한국 독자들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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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작가 지망생에게 버지니아 울프가 했던 이야기 전하고 싶습니다. ‘여성을 위한 직업’ 이라는 글에서 ‘가정의 천사를 죽여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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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창비

 

변화의 여지가 있고, 또 변해야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저술가, 비평가인 리베카 솔닛의 저서 3권이 국내에 동시 출간됐다. 창비에서 출간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둠 속의 희망』과 반비에서 펴낸 걷기의 인문학』이 바로 그 것. 2015년 국내 출간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페미니즘 도서 열풍’을 만든 리베카 솔닛은 2010년 <유튼리더>가 꼽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로 ‘맨스플레인’(man explain)이란 단어를 전세계적으로 알렸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미국에서만 9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한국에서는 각종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그 해에만 1만 5천 부가 팔렸다. 솔닛의 글을 통해 유명해진 ‘맨스플레인’은 2015년 <뉴욕 타임스>에서 ‘올해의 단어’로 꼽히는 등 이제는 30개 언어에서 쓰이고 있다.

 

리베카 솔닛은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통해 자신이 직접 ‘맨스플레인’을 당한 일화를 소개하며, 여성의 삶에 일종의 ‘정답’이 강요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8월 25일, 서울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솔닛은 “페미니스트 혁명의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많은 참여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쓴 책이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라고 밝혔다. 또한 “현실은 여성혐오에 관한 범죄가 끊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변화의 여지가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베카 솔닛은 이 책에서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여성혐오 살인, 강간문화, 여성을 배제하는 문학작품, 코미디, 역사까지 다양한 주제를 오가며 여성에 대한 침묵과 그 침묵을 강요하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아직 미완성이고 여성인권에 대한 유린도 많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여성 차별의 문제를 불과 50년 만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식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성들의 상황은 계속해서 개선되고 있습니다. 6개월, 1년 단위로 본다면 변화가 작다고 느껴지겠지만, 긴 시간을 놓고 큰 그림으로 본다면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뤘습니다.” (리베카 솔닛 모두 발언 中)

 

창비에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함께 펴낸 『어둠 속의 희망』 개정판은 ‘리케나 솔닛의 희망 3부작’ 중 하나로 미국에서 2004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제2판, 제3판을 거듭해 출간됐다. 솔닛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어둠 속의 희망』 전자책을 한시적으로 무료 배포했고, 1주일 만에 약 3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창비에서 2006년 출간했던 제2판과 비교하면 번역서를 기준으로 100쪽 분량의 4개 장을 추가해 최근의 변화를 반영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리베카 솔닛은 “『어둠 속의 희망』은 미국의 좌파 진영이 이라크 전쟁을 저지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해서 엄청난 좌절에 빠졌던 상황에서 쓴 책이다. 좌절과 무기력은 패배를 기정사실화했을 때 생기는 것인데, 곧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전제에서 기인한 좌절감이다. 그러나 희망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행동할 수 있다. 희망이란 열려 있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동할 여지가 있고, 가능성과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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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창비

 

3권은 모두 ‘걷기’에 관한 책

 

또한 반비에서는 리베카 솔닛의 대표작 걷기의 인문학』을 펴냈다. ‘리베카 솔닛 에세이의 정수’라 불리는 이 책은 ‘걷기’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솔닛은 이 책을 텍스트 연구와 고증뿐 아니라, 두 다리로 직접 걸어 다니고 경험하며 써 내려갔다. 정신 vs 육체, 사적인 것 vs 공적인 것, 도시 vs 시골, 개인 vs 집단 같은 전통적인 철학적 모티프에 대해 소수자의 관점과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고 썼다. 솔닛은 이례적으로 한국어판 서문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왔다.

 

“이 책을 쓴 것은 거의 20년 전입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보행의 여러 가지 기쁨과 성과와 의미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도 거의 그대로 통할 듯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도시와 시골의 모든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걸을 가능성, 그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사적 공간에 틀어박히고, 점점 몸을 망각하고, 실리콘밸리가 만들어낸 컴퓨터, 스마트폰, 온라인 기반의 여가 활동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됩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현상이 지나치게 과도해질 때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삶의 기쁨, 삶의 역동, 그리고 그 밖의 삶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중략)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걷기의 인문학』 한국어판 서문 中)

 

리베카 솔닛은 “한국에서 이번에 출간된 책 3권은 모두 ‘걷기’에 관한 책이다. 걷기의 인문학』이 보다 직접적으로 걷기를 말한다면, 나머지 두 책은 방황하고 여기저기를 누비는 과정을 담았다. 아직까지 우리가 하지 못한 이야기들,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서 보지 못한 것들을 계속 탐색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3권은 모두 ‘저항’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육체에서 멀어진 채, 인터넷 세계에만 머물고 있는 삶에 대한 저항을 ‘보행’이라는 행위로 연결했다.

 

‘페미 데이’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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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 리베카 솔닛 강연회가 북티크 서교점에서 열렸습니다. 리베카 솔닛의 강연과 더불어 독자와의 질의 응답, 전문을 소개합니다. (녹취록 제공_ 반비)

 

오늘 여러분과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의 큰 간격을 초월해서 공통의 관심사라는 다리를 건너 강연을 들으러 와줘서 고맙습니다. 미국인으로서 외국에 나와 있는 게 이상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다시피 트럼프가 조국인 미국을 통치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 두렵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일말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매일 새로운 위기, 스캔들이 터지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있으니 여전히 이상합니다. 곧 히말라야로 떠날 것인데 다시 돌아왔을 때 이 세계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굉장히 걱정스럽게 생각합니다.

 

걷기의 인문학』은 사실 제가 오래 전에 썼던 책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공간으로부터 분리돼서 인터넷과 실내의 사적인 공간으로 자꾸 들어가 버리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의미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걷기의 인문학』은 여러 가지 걷기의 행위를 기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서 시를 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서,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혼자 걷는 것도 있을 것이고, 둘씩 짝지어 연인들이 걷는 그런 유형도 있을 것이고 또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시민사회로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걷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걷기의 유형에 대해 기념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걷기의 인문학』에도 적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발로 함께 걸으며 도시의 풍경에 우리의 역사를 쓴다고 적은 바 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힘과 가능성을 기억하는 것은 제가 쓴 희망에 관한 책, 자연재해와 이를 극복하는 공동체에 관한 책 등 다양한 저서에서 중심축으로 작용하였고, 저항을 독려하기 위한 저의 다양한 활동들에 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서를 써왔는데, 저의 저서는 몇 가지의 공동적인 테마를 중심으로 저술해왔습니다. 핵심적인 테마 중의 하나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다룬 다른 사랑이라는 테마입니다. 우리는 보통 가족에 대한 사랑, 가정, 성, 그리고 그 외에 사적인 삶을 윤택하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 외에 우리 삶을 더 의미 있게, 더 만족스럽게 만드는 다른 요인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요소에는 목적의식,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 미래에 대한 희망 자연, 영성, 기타 비 인간세계에 대한 교감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해방의 과업입니다. 저는 특히나 전(全) 여성의 해방에 대한 걸 굉장히 집중적으로 다뤄왔습니다. 왜냐하면 제 가슴과 삶, 제 어머니, 할머니의 삶과 직결되어 있고 직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페미니즘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제가 볼 땐 불교에서 주장하는 모든 존재 해방, 그 큰 해방에 포함되는 하나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희망에 대해서 많이 저술해왔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직 모른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아직 미래가 쓰이지 않았다는 것,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죠. 이것이 결국에는 우리가 미래를 쓰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희망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미래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달성한 수많은 승리를 돌아보는 데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의 상상이 장소를 어떻게 형성해나갔느냐 하는 것과 반대로, 장소가 우리의 상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또 우리의 젠더와 역사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다만 제가 미국에서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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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사진에도 나와 있지만 이곳이 네바다주에 있는 테나야호수라는 곳입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끔찍한 사건이 이 책을 쓰는 데 하나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1890년대 미국 군대는 원주민들을 땅에서 내쫓기 위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곳에 매장된 금을 채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양한 경제적 활동을 하기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미군에 속한 사람 중 한 명이 부족장을 호숫가에 데려가서는 “당신들은 이 땅에 다시는 돌아와 거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이 호수를 부족장의 이름을 따서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부족장이 “이 호수는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이 있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부족장이 “이 호수는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이 있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원래 우리가 향유했던 문화가 있고 우리 고유의 역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텅 빈 페이지로 있어서 당신들이 마음대로 역사를 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백인은 부족장을 존중하는 태도로 얘기했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당신들의 존재를 지우겠다, 우리의 풍경에 당신들을 장식품으로 삼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 땅에서는 상당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노스다코타주 정부청사 앞 잔디에 있는 비스마르크상의 모습입니다. 이 지역에 대규모 송유관 건설이 추진되고 있었고, 이곳에 원주민 저항운동 있었습니다. 송유관이 잘못되었을 때 강과 호수가 오염될 수 있어서 이른바 스탠딩록 운동이라는 저항운동 펼쳐졌습니다.

 

여기 보이는 조각상에는 한 단란한 가족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가족은 백인 침공자, 서부 개척자입니다. 이 조각상이 의미하는 것은 이 땅에 쓰인 이야기가 원주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백인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올바르게 바로잡기 위해서 이런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를 보호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이 사진에서 하나의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했지만 남부 지역에 가면 노예제를 옹호했던 많은 남부 지역의 유명인들을 기리는 조각상이나 기념비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조각상 기념비를 철거하기 위한 운동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기념비와 조각상은 인종차별, 불평등을 상징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뉴올리언스에 있었던 이 조각상은 철거되었지만, 철거 전 조각상에 “흑인들의 삶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누군가가 그래피티로 남겼던 것을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종주의와 관련한 갈등을 촉발시켰던 계기가 찰스턴에서 아홉 명의 흑인들이 집단 살인이 됐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사진을 보고 계시는 분은 브리 뉴섬이라는 여성운동가인데요. 남부의 깃발을 떼는 작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 행위로 인해서 체포됐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영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이런 저항운동에 여성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고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조각상도 남부군을 상징하는 조각상인데요. 흑인 여성이 철거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철거되었는데요. 철거될 때 보니깐 안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념비 중에는 이런 시민권운동을 상징하는 기념비도 있습니다. 이것 보시면 민권운동 당시에 흑인들 공격했던 경찰견들 형상화한 것인데요. 이처럼 우리가 거하고 있는 도시 풍경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도 있고 묻혀서 전달되지 않는 숨어 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풍경 속에 드러난 이야기와 숨어 있는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좀 더 진정한 의미로 시민으로서 산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전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징적인 전쟁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주로 거듭날 수도 있고 그런 권리가 배제되는 주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풍경 덕분에 존재감을 더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도시 풍경에서 다뤄지지 않는 사람은 존재감이 위축되고 지워지기도 합니다.

 

제가 쓴 걷기의 인문학』에서 인용한 미국의 여류시인 실비아 플래스가 있는데 실비아 플래스가 19살에 일기에 썼던 것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길에서 일하는 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 인지,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 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걷기의 인문학』, 374쪽)

 

요지를 이야기해드리면 자유롭게 걷기 위해, 내가 즐기기 위해 걷기 위해서는 특별히 필요한 요소가 있다, 자유로운 시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제약당하지 않을 신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여자들은 공공장소에 있는 동안 사적인 영역을 침해 당하는 일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발생합니다. 영어에도 여자의 걷기를 성별화하는 경우가 많다. 창녀를 의미하는 단어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street walker), 거리의 여자(woman on the street), 공공의 여자(public woman) 등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에서 여자를 남자로 바꾸면 공인, 유행에 밝은 사람, 건달이라는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성에 관한 관습을 깨뜨린 여성를 묘사하는 ‘방황한다’라는 의미의 여러 표현들은 여자의 여행에 성적인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또는 여자가 여행을 떠날 때 여자의 섹슈얼리티는 관습을 위반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들은 도시 속에서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당했습니다. 걷기의 인문학』 영어 버전 중 포함된 인용구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엘리자베스 윌슨 작가가 19세기 한국여성들에 대해 묘사한 것 있습니다.

 

“밤이면 이런 제약들은 반대로 뒤집혀서 적용됐다. 서울시의 여러 대문들이 폐쇄되고 나면 맹인이거나 관리인 남성 제외하면, 모든 남성들은 거리에 나올 수 없었다. 이 도시들은 여성들의 것이 되었다. 그들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담소 나누며 걸었다. 어둑어둑한 등을 들고 다녔는데 어둑함 속에서도 부채, 장옷을 이용해서 얼굴을 가렸다. 그래서 이 도시 안에서의 여성의 경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숨어 지낸다는 것과 동일했다.”

 

그리고 저는 항상 정말 서울이 기존의 남성들이 도시에 대한 자유를 누리고 여성들은 갇혀 지내는 제도들을 뒤집은 곳이 맞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런 시도들이 남미, 콜롬비아 등에서 실제로 있었습니다. 남성들이 야간에 아이를 보고 여성은 자유롭게 산책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이벤트 조직한 사람의 말 인용해보겠습니다.

 

"여성들만의 밤’ 행사를 하고 남성들에게는 자율적인 통금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이 상징적인 이벤트는 관련 기관, 주 당국 사회 전반에 있어서 가정폭력과 사회 속에서 남성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보여드리는 그림은 루이스 부르주아, 제임스 서버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입니다. 하나는 여성의 몸을 집으로 형상화한 그림입니다. 여성은 집에 국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여성이 움직일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여성을 공간으로 형상화인데, 과연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관련해서 텍스트에 나온 것 읽어드리겠습니다.

 

“여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적 추행은 여자들이 안심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일상적 추행은 나의 역할 중에 성적 존재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사실, 내가 남자에게 이용의 대상, 접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일상적 추행은 여자로 하여금 여자가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공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도록, 여자에게도 가고 싶을 때 가고 안심할 상태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남자든 여자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도시, 외국인, 청년, 빈민 등에 의해 공격 당할 수 있고 통제되지 않는 공간 등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폭력의 일차적 표적은 여자다. 성폭력은 온갖 장소에서 자행되고, 연령과 부에 관계없이 모든 남자들에게서 자행될 수 있습니다. 성폭력의 가능성은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수위 높은 모욕적, 악의적 언사, 수작에 담겨있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강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실내 공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걷기의 인문학』에 소개했던 일화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10대 때 걷다가 성추행을 당했던 얘기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관광지에서 당한 얘기입니다.

 

“관광지 근처에서 차를 운전하는 남자가 나를 따라오면서 역겨운 성적 제안들을 줄줄 늘어놓기에 돌아서 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내가 감히 그런 말을 했다 는 사실에 정말로 충격을 받은 듯 흠칫 놀라더니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면서 나를 죽여버린다고 했다. 비슷한 일들을 수백 번 겪었지 만 그때 일이 유독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죽여버린다는 말에 담긴 진심 때문이었다. 내가 밖에 나가면 살아 있을 권리, 자유로울 권리, 행복을 추 구할 권리가 없어지는구나, 세상에는 생판 남인데도 내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내가 괴롭기를 바라는 것 같은 사람이 많구나, 성은 이렇게 금방 폭력이 되는구나, 이런 상황을 사적인 문제가 아니 라 공적인 문제로 보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없구나 하는 것을 문득 깨 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걷기의 인문학』, 386쪽)

 

지금 보는 조각상은 해리엇 터브먼이라는 흑인 여성의 조각상입니다. 이 여성은 많은 이들에게 해방자라는 이미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조가상은 뉴욕시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기릴 만한 여성 조각상 5개 중 하나입니다. 여성 인물을 기리는 조각상이 다섯 개밖에 없다는 얘기죠. 그만큼 뉴욕은 남성성, 백인을 기리는 풍경을 가진 도시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섯 개의 여성 조각상으로 승화된 다섯 명의 여성 인물 중 두 번째를 보고 있는데 루즈밸트 영부인입니다. 본인이 인권운동가로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뉴욕시를 그리는 지도책을 제가 올바로 잡아보자 해서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책을 좀 보여드릴게요. 제가 이제 샌프란시스코, 뉴올리언스, 뉴욕 3개 도시에서 지도책 작업을 했는데요. 뉴욕이 가장 최근에 한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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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저희가 새로 만든 지도입니다. 뉴욕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여성 랩퍼, 댄서, 공직자, 노조위원 또는 기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름, 작가의 이름 등으로 바꿔봤습니다.

 

계속 말씀 드리면 제임스 브라운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는데, 제목이 「남자의 세상이다」입니다. 1966년에 뉴욕 스튜디오에서 노래했는데요. 싫든 좋든 그 사람 말이 맞습니다. 이 도시의 여러 거리를 걷다 보면 젊은 여성들이 추행의 대상이 되고 그런 추행을 당하면서 이 도시가 그들의 거리,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강요 받습니다. 그리고 이동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계속 상기하게 됩니다. 언제든 타인의 공격 대상이라는 것도 상기하게 됩니다. 항상 타인에게 순종하고 그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미소를 지어.’ 이건 마치 그 여성을 소유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여성의 얼굴이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의 삶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는 그런 강요를 당연하게 합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는 의미를 지니고 여성의 의미는 지워집니다.

 

좀 더 은밀한 의미에서 이름은 도시에 끊임없이 젠더 부여하고 영속시킵니다, 모든 도시에는 남성의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권력, 중추적 역할을 했던 사람, 큰 부를 가진 사람 등등 많은 이들에 의해 기억되는 남성들의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반면 여성은 익명의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여성은 결혼하며 남편 성 따르고 사적인 공간에서 생활했고, 상대적으로 잊힙니다. 극소수 예외 있긴 해도. 이런 이름을 주는 행위들은 대륙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 서부지역 산봉우리 이름 보면 마치 대기업 이사회 임원들 이름 열거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여성인물들의 이름을 딴 지명은 거의 찾기 힘듭니다. 제가 읽은 다른 에세이에서 뉴욕시에서 여성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성 조각상은 5개밖에 없습니다. Joan of Arc, Golda Meir, Gertrude Stein, Eleanor Roosevelt, and Harriet Tubman 다섯뿐입니다. 그나마 다섯 중에서 4개의 조각상은 지난 30여년 속에서 추가된 것입니다. 1984년까지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잔다르크였습니다.

 

제가 액션영화들을 보면 그 중에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성 영화들, 와호장룡 헝거게임을 보면 굉장히 충전된 기분 제가 충전된 기분입니다. 힘과 자신감의 마약을 주입 받은 것 같은 강렬한 기분입니다. 이런 평생 동안 이런 에너지를 주는 영화를 한 열 편 정도 반복해서 보는 동시에 거의 매 시즌마다 여성들의 슈퍼파워를 멋지게 표현해내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서 그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런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세계는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남성이라면 지금 극장에 가도 남성 액션 히어로 가득합니다. TV에는 그런 액션 히어로 넘쳐난다. 만약 어린 시절 뭔가 여성들의 이름을 지명으로 차용한 곳이 많은 그런 도시들에서 자랐다면, 그리고 영예롭고 성공적이었던 여성의 기념비로 가득했던 도시에서 자랐다면 제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시티오브우먼, 여성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도를 통해서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이 어떨 것인지 상상해보게 하는 그런 노력들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뉴욕시에 유명한, 영향력 있었던 여성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들이 공부하고 춤 쳤고 저항했고 철학적 사고를 했고 가르쳤고,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떨쳤던 그런 공간들에 그 여성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실제 뉴욕시에는 그런 여성들이 주도한 아주 놀라운 역사가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17세기만 하더라도 퀘이커 교도 중에 Hannah Feak Bowne라는 여성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의 이름은 역사에서 항상 지워진 채로 서술됐습니다. 그녀의 집도 그녀 이름 따서 불려지고 있지 않고 존 보운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페미니즘의 상당 부분이 뉴욕에서 펼쳐졌습니다. 19세기에 미국대선에 출마했던 페미니스트 Victoria Woodhull to Shirley Chisolm 게릴라걸즈까지 미국 페미니즘 역사의 상당부분이 뉴욕시에서 펼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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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하철역에다 표시하지는 못했고 중요한 기여했던 여성들, 기여할 뻔했던 여성들 중 상당수도 잊히거나 기억되지 못합니다. 많은 여성들은 의미 있는 누군가가 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많은 영웅들 중에서 역사 속에서 잊힌 이들도 많습니다. 그 중 일부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고 가시성을 쟁취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이 지도에 표시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지도는 그들을 위한 하나의 기념비이자 그들을 축하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콜럼비아대학교에서 지난 10월 수업을 진행했는데 만약 이런 여성들의 이름을 딴 도시 속에서 학생들이 살고 있었다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 것 같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성의 존재가 존중 받고 기념 받는 도시환경 속에서 살았다면 삶이 어떻게 다를까 물었던 것입니다. 그 중 두 명이 인상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평생 구부정하게 살았는데 만약 여성의 이름을 딴 도시 속에서 살고 있었다면 내가 똑바로 서서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학생은 “여성의 이름을 딴 도시에서 내가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내 삶이 얼마나 다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장소 자체에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텍스트입니다. 그 텍스트 안에서 누가 드러나고 감춰지고 누구의 목소리가 드러나는지가 우리 경험에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텍스트를 바꿔나갈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저는 걷기의 인문학』에서 했던 걸 다른 방식으로도 풀어내고 있습니다. 걷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공공장소에 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의미들이 어느 장소이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런 것들을 다양한 작업을 통해서 천착하고 있습니다.

모든 풍경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 그런데 그 텍스트 안에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지시사항이 담겨 있고 이 장소가 누구에게 귀속되어 있고 누구의 것인지 아닌지도 담겨있습니다.

 

모든 풍경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상상에 의해서 쓰인 책과도 같습니다. 그들이 정의, 불의, 권력, 가능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냐는 책과도 같다. 그런 책들 중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다시 쓰이고 있는 그런 책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번 달 제 조국인 미국에서 급진적으로 여러 장이 수정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공공장소를 다시 쓰는 작업은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고 이 모험은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 하고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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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리베카 솔닛에게 묻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날마다 낙관과 비관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부모자식 동시에 여성과 여성으로서의 관계에서도 많은 생각이 듭니다. 『멀고도 가까운』에서 어머니에 대해 얘기해주셨는데, 지금의 심정과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이 어머니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엄마와 저와의 관계는 너무 안타깝게도 비극적이게도 굉장히 낭비됐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가부장제가 어머니의 가치를 비하했고 근데 어머니가 그것을 직시하기보다는 그 가치를 나한테 적용해서 나의 가치를 깎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를 동지로 보기보다는 경쟁자로 여겼고 본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했고, 그래서 딸인 제가 가진 외적인 아름다움에 적개심으로 반응했습니다. 자신을 억압했던 남성을 싸우고 맞서지 않고 그 고통을 나한테 전가해 퍼부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페미니스트적이었지만 자신의 가치를 남성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뒀고 나를 경쟁자로 보아서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 관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것을 담담하게 직시하고 책을 썼을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불평등의 관계를 다시 조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를 해방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 된 딸을 키웁니다. 아이 용품은 대부분 블루는 남아, 핑크는 여아용입니다. 그래서 종종 거기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블루를 사서 입히거나 사용하는데요. 근데 얼마 전 화이트와 핑크가 적절히 섞인 후드를 입혔는데 너무 예뻤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으로 사회화되어서 그런가 봐요. 내 딸과 핑크, 공주라는 단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저도 딱히 답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애도 없습니다. 근데 제가 고모이기도 하고 여러 명 조카가 있습니다. 최근에 제 조카중 남자애 옷을 사러 갔더니 말한 것처럼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더라고요. 색상뿐 아니라 여자아이 옷은 꽃, 고양이 등 귀여운 것들이 그려져 있는데 남자아이 옷은 상어, 우주비행사 등 끌어안기 불편한, 너무 친밀하지 않은, 차갑고 거리감 느껴지는 것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걸 입는 남자애들은 관심을 덜 받으려나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이런 성별을 구분해서 그 역할에 아이들을 구속하고 싶지 않다는 것에 너무 공감합니다. 한편으로는 외딴 섬에 사는 게 아니라 아이들 학교에도 보내야 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는 성 역할을 강화하는 일을 벌어집니다. 여기에 대응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시기입니다. 대학교 캠퍼스에 친구가 교편 잡고 있는데요. 미국 캠퍼스에서는 강간 문제 심각합니다. 대학교에 이미 들어오는 남자들에게 강간하지 마라는 건 너무 늦었습니다. 아동기에 교육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거, ‘폭력은 쿨한 게 아니다’라는 걸 어릴 때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 안에는 이런 잘못된 게 많아서 깨트려야 합니다. 제 주변에서는 페미니스트가 많아서 그들이 양육하는 것을 보면 그 결과들이 다르게 나오는 걸 보게 됩니다. 만약 나에게 딸이 있다면 누가 내 딸을 해하면 어떡하지, 남자애가 있다면 얘가 남을 해하면 어떡하지 걱정할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에 만연한 포르노, 인터넷 게임이 남자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멀고도 가까운』에 쓴 것이 있는데, 타인을 해하기 전에 타인을 해하는 사람은 먼저 공감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낀 자신 안의 뭔가를 죽여야 한다. 그렇게 죽였을 때야만 타인을 해할 수 있다는 말을 언급한바 있습니다. 그래서 공격 성향, 폭력 지배하려는 성향을 남자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치는 이런 사회를 어떻게 벗어나도록 하는지가 어려운 문제인데 이런 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첨언하면 여자아이들이 귀여운 거 괜찮습니다. 다만 여자아이들에게도 액션 히어로가 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남자아이들도 액션 히어로가 되고 싶은 것 괜찮지만 남자아이들도 끌어안기 좋은 귀여운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이분법적으로 남녀는 이래야 한다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계속 타파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페미니즘 이야기는 많이 하셨을 것 같아서, 페미니즘뿐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막 글쓰기 시작한 여성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요.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보시라. 여러분을 제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많은 경우 여성이 글을 쓰려고 하면 여성다운 주제를 택해라, 혹은 개인적인, 사적인 관점에서 쓰라는 주문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이런 주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뭔가 개인적인 주제를 벗어나 다른 주제를 택하는 게 용기가 필요한데, 해볼 만한 것입니다. 오늘날 전쟁터 특파원, 철학자, 저널리스트 다양한 직종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좀 더 윗 세대의 여성 저널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최근 들어 여성들이 전쟁터 특파원으로 파견되면서 전쟁에 대한 보도방식 바뀌었다고 얘기합니다. 남성만큼 영웅주의에 도취되는 보도를 덜 하고, 전쟁 상황 속에서 민간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더 공감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그런 가능성들을 더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또 젊은 작가, 작가 지망생에게 버지니아 울프가 했던 이야기 전하고 싶습니다. ‘여성을 위한 직업’ 이라는 글에서 ‘가정의 천사를 죽여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에게 친절하라고, 너에게 달콤하라고 강요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 강요하는 가정의 천사를 죽여라. 너의 의견을 주장하고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는 감추라는 걸 죽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만약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면 그거에 대해서 싫어할 수 있지만 개의치 말라고 조언하는 그런 글이 있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남의 기분을 맞춰줄 것을 요구 받고 남에게 많이 칭찬해줄 것으로 요구 받고 그러다보면 진실로부터 멀어진다 생각합니다. 근데 작가의 본업은 진실을 다루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활동을 제약하는 그런 가정의 천사를 죽이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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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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