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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파이어, 시대를 대표하는 댄스 팝

아케이드 파이어 'Everything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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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작들보다 간단하고 명료하며, 감상에 부담을 덜 지운다는 이유는 앨범이 가진 뛰어난 댄스 록 사운드를 충분히 가리지 못 한다.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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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파이어는 쉬워졌다. 전작 <Reflektor>에서 주된 장치로 쓰였던 즐기기 쉬운 댄스 사운드는 더욱 강조됐고 업비트의 캐치한 멜로디가 빈번하게 등장하며 비교적 짧아진 러닝 타임을 바탕으로 하는 간편한 곡 구조 역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Everything Now>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트랙 「Everything now」가 이번 쉬운 아케이드 파이어의 주요한 예에 해당한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디스코 리듬과 밝게 찰랑이는 멜로디, 앤섬 식의 코러스 라인이 중심이 되는 이 아바 풍의 댄스 팝 트랙은 작품이 그리 어렵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예고한다. 타이틀 곡을 이어받는 다음의 트랙들에서도 이와 같은 기조를 계속 확인할 수 있다. 시스터 슬레지나 MFBS를 연상시키는 빈티지한 디스코의 전형이 「Sign of life」에서 트랙의 주류를 이루고, 안정된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신스팝이 「Creature comfort」의 골자에 앉아 있다.

 

큰 동요 없이 흘러가는 댄스 튠 「Good god damn」과 「Electric Blue」역시 마찬가지. 이렇다 할 굴곡 없는 댄스 록 사운드가 트랙 리스트 전반을 수놓는다. 감상에 용이해지고 편해진 분위기는 개개의 트랙에 국한되지 않는다. 「Everything now」의 사운드 테마는 세 번 복재돼 곡의 오프닝과 클로징, 타이틀 트랙 등, 앨범 전체의 열세 장면 중 무려 세 개의 트랙을 점령하고 있으며 「Infinite content」의 멜로디는 스트레이트한 펑크와 나른한 내쉬빌 컨트리의 옷을 각각 입고서는 서로 다른 두 분위기만을 취한다.

 

비슷한 제목을 걸고 트랙의 맥락을 이어가는 모습은 물론 전에도 있었으나, 동류의 트랙들 가운데에서 상이함의 격차를 크게 벌렸던 지난 창작과는 다소 다르다. 다채로운 편곡으로 앨범의 볼륨을 키우고 있음에도 노래의 실재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곡을 연이어 사용하고 있어 완벽하게 다른 영역을 만든다고는 보기 힘들다.

 

전과는 꽤나 다른 낯선 지점, 어쩌면 밴드의 음악에 대한 호오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그 지점에 아케이드 파이어의 오늘이 서있다. 챔버 팝과 포스트 펑크, 신스팝, 바로크 팝, 펑크와 디스코, 월드뮤직, 심지어는 하트랜드 풍의 로큰롤에까지 이르는 너른 영역을 숨가쁘게 오가며 방대한 아트록 세계를 펼쳐놓던 과거와 <Everything Now>에 위치한 이들의 현재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집착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앨범에서 밴드는 댄스 음악이라는 일부 스타일에 집중하고 있으며, 전개 구조를 간략화하고 단순화하는 팝의 문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댄스 록이라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전작 <Reflektor>도 이 맥락에서 함께 보자. 댄스 리듬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이행하되 트랙 내부에 다채로운 전개는 물론, 앨범 전체에도 거대한 서사시를 끌여들였던 지난 작품과 비교해 <Everything Now>는 단조롭고 평이하며 헐겁다.

 

새 앨범에 대한 비판과 냉시가 발생한다면 그 도착지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 있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Everything Now>는 과연 그저 그런 앨범이라는 정도에 머물러야 할까. 다시 한 번 앨범 전체를 살펴보자.

 

<Everything Now>에는 수작이라는 평가가 따르기에 충분하다. 복잡하지는 않으나 여전히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사운드 메이킹이 자리하고 있고, 고뇌와 냉소가 뒤섞인 가사가 전과 같이 흐르고 있으며, 이력 내내 밴드가 선사해온 서정성으로 무장한 캐치한 멜로디가 존재하고 있다. 앨범의 러닝 타임이 끝에 다다를 때까지 밴드는 이러한 구성 요소들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혼잡하고 장중한 외피들이 가심으로서 위의 매력들에는 한층 더 힘이 실린다. 웅장함을 선사할 거대한 편곡 장치나 곡의 진행을 극적으로 뒤집는 전개상의 변곡점이 없는 대신, 잘 들리는 멜로디, 댄서블한 리듬 라인, 존재와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오늘날의 소비 문화에 대한 실망을 아우르는 가사는 더욱 큰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를 보자. 스트링 섹션과 윈 버틀러의 목소리에 교대로 올라타며 곡을 휘젓는 「Everything now」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Infinite_content」의 나른한 컨트리 선율, 팔세토 가창과 키보드 라인에 함께 어린 「Electric blue」의 멜랑콜리한 멜로디 모두 곡의 전면에서 상당한 흡인력을 내세운다. 피치가 흐느적거리는 키보드와 건조하고 정적인 보컬을 따라 서정성 짙은 멜로디가 흐르는 앨범 막바지의 트랙 「We don「t deserve love」과 웅웅거리는 드론과 리드미컬한 보컬 사이에서 선율감 상당한 리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Creature comfort」은 또한 어떠한가. 가뿐해진 구조 속에서 좋은 멜로디의 위력을 십분 발휘한다.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사례들이다. 접근성 높은 선율과 단순한 곡 진행, 다수의 트랙들에 실린 디스코 리듬, 「Peter Pan」과 「Chemistry」를 장식하는 레게 비트에 다소 가려져있으나, 밴드가 자랑해온 사운드 차원에서의 여러 접근 역시 확실하게 자기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 소울, 디스코, 내쉬빌 컨트리, 바로크 팝의 스타일을 오가는 큼지막한 오케스트레이션과 고전적인 댄스 팝의 컬러를 끌어올리는 레진 사샤뉴의 보컬 코러스와 같이 앨범 전체에 걸쳐 놓인 요소들은 물론, 프랜시스 버베이의 「The coffee cola song」에서 가져와 「Everything now」에 월드 뮤직의 색채를 덧입히는 플룻 샘플, 후반부로 갈수록 부피감과 몽환감을 쌓아올리는 「Electric blue」의 코러스 레이어링, 드론 식으로 곡의 기저를 헤집고 다니는 「Creature comfort」의 왜곡된 키보드 사운드 등 개개의 트랙에 멋을 더하는 터치들 또한 각양으로 배치돼있다. 댄스 사운드를 중심으로 모이는 앨범의 곡들은 기존의 풍성한 내러티브와 다채로운 플롯 구성이 없이도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으로서 모자람 없이 잘 만들어졌다.

 

<Everything Now>는 탁월한 댄스 록, 댄스 팝 음반이다. 여기에는 높은 소구력을 자아내는 팝 멜로디도, 다양한 스타일을 오가며 만들어진 댄서블한 리듬도, 이들을 멋들어지게 감싸안는 근사한 사운드 연출도 있다.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직관성으로 무장한 여러 댄스 트랙들을 마주하고서는 이 앨범을 등한시하기란 아무래도 쉽지 않다. 비슷한 경계 내에 놓인 여타 댄스 록 앨범들보다도 상회하는 수준을 가진 <Everything Now>가 그럼에도 야박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면 그 기준은 애석하게도 아케이드 파이어 밴드 자신에 있을 테다. 새 시대의 록 음악 회랑에 바로크 시대의 장엄함을 품은 걸작들을 수차례 걸어놓던 이들의 과거는 전에 비해 단순하고 가벼운 댄스 트랙들로 가득한 <Everything Now>를 어렵지 않게 평범한 팝 앨범으로 보이게 한다. 여전히 아름답고 유려하고 풍성하다 할 동인들이 <Everything Now> 도처에서 빛을 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앨범을 두고 이루어질 온당한 평가는 밴드의 지난 날이 뿜어대는 거대한 아우라로부터 조금은 떨어진 지점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지난 행보로부터 취했던 감동과 기대에서 한 발자국 걸어 나와 이 음반을 바라볼까. 위대한 전작들보다 간단하고 명료하며, 감상에 부담을 덜 지운다는 이유는 앨범이 가진 뛰어난 댄스 록 사운드를 충분히 가리지 못 한다. 밴드의 새 앨범도 역시나 비범하고 아케이드 파이어도 여전히 대단하다. 앨범의 모양새가 어떻게 달라졌든 간에 아케이드 파이어의 시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Everything Now>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댄스 팝 앨범이고.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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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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