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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

이효리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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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세터'라는 페르소나를 이제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이로서 온전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아티스트로서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게 된 느낌이 든다.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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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chrome>(2013)이 대중의 요구를 기반에 둔 변신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규정되어져 있던 이미지를 벗는 탈피에 가깝다. 여기엔 사람들이 선망하던 이효리의 모습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한 시대의 스타가 스스로 격리를 택한 후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과 생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괜스레 우울해지는 것처럼,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와 같은 음률이다. 기쁨을 이야기하건 슬픔을 이야기하건, 이제는 천천히 내려가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의 허무 섞인 회한. 그 한 가운데에 정서적 바로미터가 맞추어져 있다.

 

컨트리와 로큰롤을 접목했던 전작에 이어 새롭게 가져온 것은 바로 둔탁한 비트를 중심으로 한 일렉트로니카와 트립합. 여러 감정을 어지러이 헤매는 듯한 몽환적인 부유감은 앨범 전반에 걸쳐 있다. 애처로운 곡조의 휘파람 소스를 메인으로 대도시에 대한 애증을 풀어내는 선공개곡 'Seoul'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적확히 보여주는 트랙. 가사를 힘겹게 읊어내는 나지막한 보컬, 여기에 뿌연 대기를 형성하는 미니멀하고 둔탁한 반주. 예능에서의 유쾌함을 위해 어둠은 모조리 음악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이 묘한 괴리감을 자아낸다.

 

이처럼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으나, 음악적 매력을 감지하기는 어려운 시간들이 이어진다. 음악보다 의도가, 송메이킹보다 프로듀싱이 앞서 다가오는 탓이다. 산스크리트어 내레이션, 이국적인 악기의 사용으로 새로운 자신의 탄생을 고하는 'White snake' 역시 주술적인 무드가 우선시될 뿐 무난한 선율과 맥 빠지는 가창으로 인해 윤곽만 잡은 채 끝나버린다. 타이틀감으로 거론되었다는 레게리듬 기반의 'Love me'는 포인트 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나 다른 트랙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질 뿐, 전체 흐름을 깨는 이질적인 메인 신스루프로 인해 통일성을 해치고 만다.

 

괜찮은 구간을 찾자면 역시 타이틀곡 'Black'이다. 아프리칸의 정취가 느껴지는 이국적 퍼커션, 어쿠스틱과 디스토션이 교차하는 기타 사운드는 자신을 웅변하기에 더 없는 무대장치다. 노랫말과 멜로디 또한 어느 수록곡보다 명징한 덕분에 주제의식이 가장 명확히 다가온다. 힘에 부쳐하는 젊은 날의 자신에게 내미는 '예쁘다'라는 손은 현악세션을 통해 극대화시킨 서정성이, 대화하듯 건네는 말랑말랑한 가창과 어우러지며 의도하는 바를 적확히 나타낸다. 그럼에도 앞의 곡들과 큰 차별점을 갖지 못하는 '변하지 않는 건'은 지루하고, 이적과의 듀엣곡 '다이아몬드'는 좋은 의도와 달리 홀로 다른 곳을 응시하며 전체의 완성도를 저해한다.

 

완성도에 있어 좋게 보기는 힘든 작품이라는 것엔 동의한다. 다만 이건 언급하고 싶다. 단순히 가창력을 이유로 본 앨범에 비판을 가하는 건 적절한가. 반대로 생각해, 그의 히트곡 중 노래를 잘해서 인기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 곡은 얼마나 되는가. 여러 복합적인 매력과 활동루트로 20년의 커리어를 이어온 그녀에게 있어, 이번 미흡함의 원인을 '가창력' 하나로 단정짓는 건 너무 일차원적이 아닌가 싶다. 그보단 음악과 가창법에 있어 방향을 잘못 설정한 프로듀싱에 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본인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음악적 역량의 한계를. 그래도 타인에 대한 과한 의존이 표절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던 2집과 4집에 비해, 발전적인 실패를 남겼다는 점만큼은 긍정적이다. 주요 음원차트 순위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물간 취급을 받는 현 대중음악 신에서, - 소위 잘나가는 프로듀스들과 함께 체면치레할 수도 있는 기회를 내려놓은 채 - 포장을 벗긴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가 일목요연하게 목격되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다 비우고 만들었다던 본인도 은연중에 이번 시도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리라 조금은 기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역으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트렌드 세터'라는 페르소나를 이제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이로서 온전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아티스트로서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게 된 느낌이 든다. 스스로의 의도를 끝까지 믿고, 또 다른 갈래를 만들어 낸 그 행보에 대해선 퀄리티와 별개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디 이번의 시행착오가 다음을 위한 교두보가 되기를, 그리고 장기적인 음악활동을 위한 본격적인 시작점이 되기를.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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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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