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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과 예술인 사이 - 프리랜서의 자세에 대하여

프리랜서에게 쨍그랑은 좀체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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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계약을 한 후엔 '제가 이런 일을 처음 해봐서요'라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 능력 밖의 일을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덥석 물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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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가량 혼자 일하다 보니 종종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하는 것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첫 5~6년간은 이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아마도 '쟤가 지금은 저래도 정신 차리고 취직하겠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혼의 성인을 보는 시각과도 매우 흡사하다. 쟤가 지금은 저래도 정신 차리고 결혼하겠지. 그러다 10년 차, 15년 차쯤 되니 슬슬 정식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듯하다. (애초에 남의 인정이 필요한 문제인가 싶긴 하지만)

 

하여간 그러다 보니 대학 후배, 친구 동생, 부모님 아랫집 자녀의 육촌의 사돈의 팔촌 등 다양한 사람들이 프리랜서에 대한 진로상담을 한다. 그중 유난히 자주 되풀이되는 질문은 두 가지다.

 

1. 프리랜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제 성격이 이러이러해서 프리랜서가 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라는 것인데

 

1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질문자의 전문 분야 및 경력 등에 따라 너~허허허허무나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관계로 대뜸 이러이러하게 하라고 말하기 매우 어렵다. '자취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거주 지역을 정한 사람과 정하지 못한 사람, 이미 집을 구한 사람과 아직 못 구한 사람, 살림살이를 꽤 갖춘 사람과 다이소부터 한 바퀴 돌아야 하는 사람, 출퇴근하는 사람과 재택근무하는 사람 등등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내가 직접 겪어본 일에 대해서만 대답할 수 있다.

 

그런 고로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끄덕끄덕 열심히 듣고 듣고 듣고, 내 얘기를 할 틈이 있으면 하고, 또 듣고 듣고 듣고 듣는다.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하다 보면 스스로 정리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음의 위안도 될 거라 믿는다. 저 같은 사람도 어찌어찌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특히 고기를 좋아합니다) 함께 화이팅합시다.

 

문제는 2번 질문인데, 지금까지 '제 성향은 아주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사교성도 대박이에요'라며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아니 아직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저는 내성적이고 단체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니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저기 잠깐만요, 프리랜서로 일하려면 영업도 실무도 돈 달라는 소리까지 혼자 다 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당신은 1인 자영업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물어봐야 한다.

 

형형한 눈빛의 장인이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를 손에 들고 요리조리 돌려보다 이건 아니야! 하며 망치로 후려쳐 쨍그랑 깨트린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등장하는 익숙한 장면이다. 쨍그랑 소리는 경쾌하지만 내 마음은 무거워진다. 우와, 저거 언제 처음부터 다시 해서 마감일에 맞춰? 그 사이의 손해는 뭘로 메꾸고? 사무실 운영비는 어디서 나온대? 쨍그랑 마인드를 위해선 마감일이 대단히 여유 있거나 아니면 마감이란 것 자체가 아예 없어야 할 것이다. 내 성에 찰 때까지, 내 눈과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을 갈고 닦고 때로는 과감히 깨트려야 하는 작업.

 

하지만 프리랜서에게 쨍그랑은 좀체 허용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포로 모난 귀퉁이를 살살 갈거나 흙덩어리를 구멍에 채워 슬쩍 메꾸는 게 빠르다. 옳다 그르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단 약속한 날짜에 뭔가 보여주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보여준 다음, 욕을 잔뜩 먹고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지더라도.

 

대학 후배가 아주 오랜만에 연락해선 나도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 조직 생활은 영 맞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선 일감을 구하기 어렵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포트폴리오도 함께 들여다보고 스케줄도 확인한 후 당시 진행하던 일의 한 부분을 맡겼는데... 여기까진 참 좋은데...

이 작자가 마감 당일 오전, '죄송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만 보내고선 핸드폰을 꺼 놓은 채 잠적했단 말이죠. 그리하여 급한 불을 정신없이 끄고 숨 좀 돌릴 무렵 여차여차 연락이 되어 화를 내니 후배 왈.

 

후배: 작업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자존심이 상해서 못 보여드리겠더라고요.
나: 야 인마, 그럼 혼자 예술을 해야지.

 

이게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신용을 포기한 채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가 후배여...

 

물론 자존심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일단 제가 할게요, 라고 외친 후 수습하지 못한 것이겠지. 프리랜서는 용병이다. 내부 인력으로만 일을 진행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외부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다. 일의 내용과 범위, 일정을 확인한 후 내가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조직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단 계약을 한 후엔 '제가 이런 일을 처음 해봐서요'라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 능력 밖의 일을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덥석 물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이번 달 카드값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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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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