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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창문의 적막한 숨결

창문의 블라인드를 쳐야만 고요하게 잠들 수 있는 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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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괜스레 불안해지면서 블라인드를 내릴 때가 있다. (2017.06.30)

솔직히 말해서_0630_이나영.jpg

출처_pixabay

 

나의 금요일 저녁은 창문을 가로막고 있던 블라인드를 걷으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평소에는 블라인드로 덮고 있던 커다란 창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창의 숨통을 만들어두고 나면, 그때서야 한 주를 털어낼 만큼의 여유가 생겨나는 것만 같다. 저 건너편 건물의 사무실의 사람들이 모두 불을 끄고 퇴근한 금요일 저녁에만 느낄 수 있는 여유다.


나는 큰 창을 갖고 있음에도 제대로 창을 건너다 볼 수 없는 '건물 속의 집'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마주하는 건물과의 사이가 무척 가까워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다. 행여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사무실이 저 건너편에 있으면 집에서 쉬고 있는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일 것 같아 블라인드를 창 끝까지 내려 나의 '보이지 않을 권리'를 조용히 주장하고 있다.


누군가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보이는 시선에 있다는 것은 꽤나 많이 신경이 쓰인다. 집에서 별나게 있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보고 있을까봐 경계하게 된다. 어떤 때는 이 느낌이 거의 공포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예전에 대학 근처의 원룸에서 자취를 할 때, 날이 너무 더워 창을 열어두고 자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다가 슬쩍 잠이 깬 나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전에는 사실 누군가가 나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나 경계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을 겪은 뒤로, 창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때라도 경계를 하게 되었다. 창 밖에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을는지 늘 경계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창은 내게 ‘공간의 숨을 불어넣는 곳’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공간에 숨이 깃들지 않은, 그러니까 블라인드로 집의 모든 숨구멍을 닫아놓은 상태의 집에서 생활하다 보면 공간에 스스로가 매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혼자 사는 나에게는 창은 바깥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어떤 의미가 되기도 하기에, 나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무뎌지게 만든다. 가령, 어두워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 언제나 한밤중처럼 여겨져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침대에 먼저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스스로 잊어버리게 만든다. 단지 창이 막혀있을 뿐인데 나는 나의 상태를 자각하기가 어렵다. 창은 내게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의 한 부분이다.

 

창이 삶의 질에 미치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생각해 보면, 공간의 조건과 삶의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창으로부터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키운다. 지나간 경험의 이야기보다 현재 그 경험을 뚜렷이 살고 있는 사람과의 대면이 주는 전율처럼, 창과 벽의 상대성과 상호성은 나의 현재와 깊이 관련된 것이므로 의미가 있다.
-『진심의 공간』 87쪽

 

얼마 전 친구와 몰래 카메라 이야기를 했었다. 난데 없이 몰래 카메라 이야기가 나온 것은 유럽의 한 한인 민박에서 호스트가 게스트가 샤워하려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은 사건이 있었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은 통로는 바로 창문이었다. 친구와 이제는 카페 화장실에 가서도 창문이 있으면 경계하게 될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눴다. 공간의 숨을 위한 통로가 바로 창문인데, 그 통로가 열려 있으면 되려 경계를 하고 폐쇄되어야 안심을 하게 된 것이다. 가장 편안하게 있어야 할 내 집에서도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고 있으면 불안하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내가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은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만이 아니라, 그 시선들을 걷어내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밖을 나가면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의 시선이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그 시선을 의식하면서 행동하게 된다. 그 의식 속에서 나는 상처받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집에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각종 시선들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기방어의 일환으로 말이다.

 

창 앞에서 나는 관찰자가 되고, 창 안에서는 보호받기를 원한다. 창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 결과일 수밖에 없어서, 창이 많아질수록 시선으로부터 갇히고 벽이 많을수록 마음은 자유롭다. 창은 나와 타인의 공간 사이에서 거대한 모순을 직면하게 만든다. 그러나 끊임없는 소모와 충전으로 메워지는 인간의 삶이 주는 고달픔과 무의미함에 대항하는 아름다움도 바로 여기에 있다. 행복과 관련된 법칙들은 규칙성, 헌신, 자율성이며, 아름다움 중 최상급은 관계의 아름다움이다. 공간의 아름다움은 결국 관계의 아름다움이다.
-『진심의 공간』 103쪽

 

마침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다. 퇴근 후 집에 가서 비교적 사람들의 시선이 거두어진 창 밖의 세상을 내 방으로 끌어들여 내 방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 그래서 내 방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그 안에 있는 나도 나의 위치를 자각할 수 있도록. 자기방어를 위해 어둡게 쳐 버렸던 블라인드를 걷어낼 오늘 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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