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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많이 하면 연애를 잘한다고?

『징글맞은 연애와 그 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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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는 여러모로 반면교사가 되는 책이다. 또, 나도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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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 문화부 기자는 매력적인 인물로 자주 등장한다. 문화에 대한 폭넓은 식견은 물론, 기자답게 똑 부러지게 처신하고, 스타일도 자유롭고, 차가운 느낌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다 보니, 백이면 백 훈남 훈녀다. 이런 경향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내게 판타지를 심어주기에 차고 넘쳤다.

 

20여 년 전 미혼 시절 ‘문화부 기자와 연애’를 꿈꾸기도 했다. 정신과의사와 문화부 기자라니, 왠지 어울리는 조합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잠이 안 오는 밤에 이런 상상을 하며 이불 속을 뒤척이다가 문득 든 생각은 ‘이들은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또 기자라 아는 것도 많으니 연애도 엄청 잘할 거다. 사귀었다가 농락당하기만 하면 어쩌지?’라는 김칫국 드링킹식 불안감이었다. 환상과 불안의 롤러코스터만 하다가 로망을 현실화해보지 못한 채 나이만 들어버린 게 나의 현실인데, 지금도 궁금증은 남아있다.

 

이들은 진짜 연애박사들일까? 나의 이런 오랜 궁금증에 답을 해주는 책이 등장했다. 한 명이 쓴 책이면 ‘이 사람 한 명의 개인적 경험’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무려 다섯 명이 자기 경험을 녹여서 썼다. 그것도 실명으로 하면 진솔해지지 못할까 봐 비겁하게 익명의 커튼 뒤에 숨어서 적나라한 무용담을 썼다. 전현직 문화부 기자 김호정, 김효은, 송원섭, 이영희, 정아람)이 내놓은 ‘『징글맞은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다.

 

이 책은 중앙지면 혹은 웹공간에서 ‘연애를 00으로 배웠네’라는 코너로 영화, 드라마, 소설, 그림, 가요를 소재로 자신들의 연애경험을 녹여내서 꽤 인기를 끌었던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저자들은 ‘연애라는 과목에서 우등생과 열등생을 한 반에 섞어놓은 평준화 학교 같았다’라며 연애경험과 결과의 편차치가 컸다는 고백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다 읽고 덮은 이 순간에 누가 우등생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평준화학교는 맞는데, 내 눈에는 하향평준화가 아닌가 싶었다.

 

이 책에는 일단 익숙한 문화 콘텐츠들이 등장한다. 영화로는 ‘<그녀>, <늑대아이>, <미 비포 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제리 맥과이어>, <최악의 하루> 등이, 가요는 「끝사랑」, 「나만 바라봐」, 「우아하게」, 「편지」, 「마법의 성」, 드라마는 <프렌즈>, <질투의 화신>,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클림트와 호퍼의 그림도 등장하고, 돈후안, 바냐 아저씨,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고전 희곡과 오페라도 소재로 등장한다. 해당 콘텐츠를 보지 않았다 해도 상관은 없다. 필요한 부분만 살짝 발췌해서 친절하게 소개하고 바로 글쓴이 자신의 실감나는 경험으로 넘어가는 덕분이다.

 

영화 <그녀>는 외로운 남자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사만다를 구매하여 소통을 나누다가 실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글쓴이는 소개팅을 할 남자를 소개받고 카톡으로 연락했다. 서로 좋아하는 뮤지션과 배우가 같은 것을 확인하고 사회경험하고 나면 그렇게 만나기 힘들다는 취향이 딱 맞는 이성이라는 걸 발견하고 흥분했다. 무려 한 시간을 카톡으로 대화했는데 정작 만날 약속은 잡지 못했다. 그렇게 대화만 하면서 보름을 지내다가 글쓴이가 참지 못하고 “우리 이번 주말에 볼까요?”라는 질문을 한 순간 남자는 사라져버렸다. 실제 만남은 두려워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만은 모든 걸 다 받아주고 엄청나게 풍부한 콘텐츠와 반응력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허탈함을 <그녀>를 보면서 글쓴이는 통감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익명의 글쓴이의 필명은 ‘당신의 씨버러브 기자 iwannatouchyou@'이다.

 

남자들은 술만 마시면 자신의 첫사랑을 이야기한다. 김범수도 「끝사랑」에서 ‘그대 오직 그대만이 내 첫사랑 내 끝사랑, 그대만이 영원히 내 사랑’이라고 노래한다. 여자들은 흔히 남자들은 첫사랑을 평생 못 잊는다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글쓴이의 경험과 통찰에 의하면 사실은 ‘몇몇 남자들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팔아먹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니 오랜만에 나타나서 “알고 보니 네가 내 첫사랑이었어”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믿어서는 안 된다며 훈수를 둔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는 츠네오가 아니라 조제에 감정이입을 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장애인인 조제와 사랑에 빠진 츠네오, 누가 뭐라고 해도 두 사람은 행복하게 지낸다. 1년이 지나 둘이 처음 여행을 떠나고 가족들에게 조제를 정식으로 소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츠네오는 마음을 바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그 사이 들른 해변에서 사진을 찍는데 그때 조제는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글쓴이는 두 사람의 연애를 보면서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루에 열 번씩 전화하던 그가 뜸해지고, 곧 온다던 그가 1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차라리 ‘모든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정해져 있다면 내 마음도 알아서 식어갈 수 있을 텐데 라며 한탄한다. 두 사람의 유효기간의 차이가 달라서 벌어지는 마음의 상처는 참 힘들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반복되는 소개팅에 지쳐가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나가보지만 ‘자신을 끔찍하게 아끼는 남자’, ‘제삿날이라 밤을 깎아야 한다며 밤칼을 보여주는 남자’, ‘첫 만남에서 연봉을 까라고 하는 남자’와 같은 생생한 폭탄 경험담이 재밌다. 또, 영화 <싱글즈>에서 그랬듯이 남자사람친구와 우발적으로 키스를 하고 사귀게 되었을 때 생기는 후유증, 썸 타는 두 사람 사이에 물타기로 같이 들어가서 함께 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다가 뒷통수 맞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영화 <연애의 온도>를 소재로 나온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역시 연애는 공부를 잘한다고, 글을 잘 쓴다고, 영화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많이 보고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일찍이 『공부 중독』에서 엄기호 선생과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공부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수학, 지리, 역사와 같이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자전거 타기, 자동차 운전과 같이 지식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을 통한 습득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전자만 공부로 여기는 태도가 만연해 있어서 문제다.”

 

연애는 어느 쪽일까?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공부를 한다고 간접경험을 위해 드라마 영화를 많이 본다고 실전 능력이 좋아지기 어렵다. 자동차에 대한 책을 많이 보고, 폭풍의 질주를 전편을 다 본다고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그렇다. 이 책을 덮은 소감은 연애는 공부로,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 아무리 상처받고 실패하더라도 자꾸 해보려고 노력하고 시도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을 쓴 문화부 기자들이 연애에 쓴 상처를 많이 본 실질적 이유는 이들이 ‘잘 알면 잘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영화만 섭렵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빡센 기자의 삶이 누굴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만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바쁘면 연애고 뭐고 다 귀찮아지고 더 이상 기 빨리기 싫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비록 이들이 연애에 대해 썼지만 정작 본인은 징글맞은 연애조차 제대로 못하고, 그 후의 일상은 바쁨바쁨바쁨일 수 밖에 없었다. 독자들에게는 여러모로 반면교사가 되는 책이다. 또, 나도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징글맞은 연애와 그 후의 일상 김호정, 김효은, 송원섭, 이영희, 정아람 공저 | 중앙북스(books)
연애의 적나라한 현실과 씁쓸함, 그리고 이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가감없이 담아낸 책, 『징글맞은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출간됐다. 이 책은 누구나 고민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사랑과 연애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현실연애의 진실’을 재치있게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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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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