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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리버럴’하다”

『경제, 알아야 바꾼다』 손혜원 의원이 묻고, 주진형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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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와 90%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90% 중에서도 가운데 40-50%는 그런대로 살아요. 문제는 하위 20-30%의 사람들이죠. 이들은 정말 아무도 이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데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슈화가 안 되는 거죠.

손혜원 의원은 이 책을 “대통령 후보자들한테 보여주려고” 급히 만들었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문제인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갈피를 잡게 해준 것이 주진형과의 대화였기 때문이다. 손혜원 의원의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한 주진형과의 대화, ‘경제, 알아야 바꾼다’(일명 ‘경제알바’)가 책의 모양새를 갖추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과정이다.


스스로 “경제 정책 만들어보기가 취미”라는 주진형은 『경제, 알아야 바꾼다』에서 일자리 문제, 재벌 문제, 직장 민주화와 연금, 조세 등 열두 가지 주제를 꼼꼼하게 짚는다. 어느 한 대목 빠른 해결책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핵심은 원청-하청으로 구분되는 계층의식과 중앙집권형 국가구조라고 지적한다. 노동 안에서의 불평등을 말하지 않는 진보와 자본 안에서의 불평등을 말하지 않는 보수를 모두 비판하는 주진형의 ‘전복적’ 진단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다음 세상으로” 이동시킬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우리 사회는 원청과 하청으로 갈려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신분사회 코드에 일제강점기의 국가운영 방식, 전후 미국식 제도가 복잡하게 뒤섞인 결과다. 이 세 가지가 모여 지금과 같은 퇴행적 갈라파고스 사회를 만들었다. 각자도생의 반상사회, 중앙집권적 관원 대리체제, 관료와 재벌기업이 주무르는 경제.(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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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청-하청의 문제


페이스북 라이브로 ‘경제알바(경제, 알아야 바꾼다)’를 시작할 때, 두 분이 특별히 기대하셨던 건 뭔가요?

 

주진형: 그냥 하자고 해서 따라했기 때문에(웃음) 별로 생각한 그림이 없었어요. 정말 준비 없이 시작했어요. 사실은 위험한 거죠. 물어봤는데 ‘모르는데요’라고 할 수도 있고, 틀린 소리를 할 수도 있는 거라 원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됐어요. 그렇죠?


손혜원: 즉흥적으로, 되는 대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있었죠. 방송을 하면서 주 선생(주진형)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마음속에 그것들을 정리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준비 없이 방송을 시작한 게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인데요. 열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각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꼼꼼하게 다루고 있거든요.


주진형: 농담이기도 하지만 진담인 게, 저는 경제 정책 만들어보기가 취미예요.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됐죠. 아버님이 경제학자고, 어려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 이야기를 들으며 컸고요. 고등학교 때나 학부 때도 교과서와 지금 내가 보는 한국 사회를 비교해 들여다보는 버릇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곰곰이 관찰하는 거죠.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세계은행에 다닐 때도 항상 비교 분석을 하던 버릇이 있었어요. comparative economic systems(비교 경제 시스템)이라고 할까, 그걸 항상 했죠. 전공이 아닌 분야도 마찬가지였어요.


손혜원: 오래 알고 지냈는데요. 주진형은 굉장히 창의적이에요. 또 지난 20대 총선 때는 함께 일을 했잖아요. 정책 공약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이게 진짜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냥 내가 주진형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듣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다 욕심이 나서 이걸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한 번, 두 번, 세 번, 방송이 쌓이면서 이것은 이 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책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이 책을 대통령 후보자들한테 보여주려고 급히 만들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대통령 될 사람이 이 책을 보고, 지금 우리한테 벌어진 문제들에 대해 주 선생이 얘기하는 전략이나 정책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본질이 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렵다, 해결책이 없다, 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한 번도 명쾌한 정답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요. 다만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면 ‘원청-하청’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주진형: 한국에 돌아와 기업을 몇 년 다녀보니까 굉장히 이상한 대립이 있어요. 하나는 나라 경제 소득 수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자인데요. 자기들의 기득권은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그 태도가 다른 어느 나라의 노조보다 극심해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야말로 정글에 놓여 있죠. 이 양자 사이의 불평등 또는 보호망의 차이에 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왜 다른 나라에는 없는 현상이 한국에는 이렇게 극심하게 드러나게 될까를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게 된 게 그런 것들이죠. 원청-하청을 말하면 사람들이 금방 이해를 하더라고요. 체감하는 일이니까요.

 

보호망 바깥이 정글이기 때문에 계층 분화가 더욱 극심해진다는 진단도 하셨죠.


주진형: 진보 측에서도 여러 불평등을 말하지만 자본과 노동 간의 불평등을 이야기하지 노동 안에서의 불평등 얘기는 안 해요. 마찬가지로 막상 자본가 안에서도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대기업 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데 그걸 뭉뚱그려 얘기를 하고요. 이 구조의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대개 그렇지만 회사나 산업, 국가도 다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각각의 문제는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문제만 풀어서는 해결이 안 되죠. 문제 안에도 우선순위가 있는 거고 그것이 결국은 우리 안에 있는 계층적 의식, 또 그 의식을 유지시키는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 두 가지로 본 거예요. 그걸 깨뜨려야 하는데 한국 사회가 자발적으로 진화해 온 나라가 아니라 자꾸 다른 곳의 트렌드를 끼워 맞춰온 곳이다보니 실은 자기가 누군지 우리가 모른다고 느낀 적이 굉장히 많아요.

 

비유적으로 좋은 옷이긴 한데 남의 옷을 입고 있다고 표현하셨어요.


주진형: 사실 민주주의도 우리 것이 아니에요.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한 마디로 일리버럴(illiberal, 자유를 제한하는)해요.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아주 일리버럴하죠.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존중해야 하죠. 존중의 첫째는 자유인데요. 이 개념이 전혀 없는 문화에서는 불가능한 거잖아요. 정치와 사회의 발전이라는 것이 기술을 수입하는 것과는 달라서 수입이 불가능한 거죠. 결국 일반 대중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개개인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부르주아 혁명에 가까울 만한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세대는 70년대 이후 세대가 아니겠느냐, 라는 이야기를 책에서 한 거고요. 결국 한국 사회는 도시화, 산업화된 환경에서 대다수 사람이 자란 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될 때 비로소 확 바뀔 거다, 그 전까지는 어렵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 중에서도 연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의미 있게 들렸거든요. 각자도생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데요. 이것도 세대가 바뀌면 좀 변화할 수 있다고 보세요?


주진형: 리버티(liberty, 자유)에 대한, 또는 인권,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부분에서는 세대 간 차이가 있는데요. 연대라는 점에서는 세대와 무관하게 그런 경험을 별로 안 갖고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연대 경험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것들이잖아요. 386세대가 많이 기성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공동의 경험을 겪었다는 것에 대한 연대의식이 정치적으로 좀 있거든요. 그러나 그것은 일회성이고 꾸준하게 가기 위해서는 계층 간 연대의식, 계급 안에서의 연대의식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할 텐데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계급의식은 안 만들어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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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나와 상관없는 것?


중앙집권체제도 문제의 핵심이에요. 들여다보니 공기업을 포함해 GDP의 45%를 중앙관료가 집행하고 있었잖아요. 정말 놀랐어요. 당연히 민주적으로 견제도 되고 있지 않은 부분인데 이런 진단이 왜 더 크게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주진형: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정치적으로, 진영 논리로 접근을 하니까 막상 중요한 의미는 빠지게 되는 거죠. 보수 측에서는 민영화를 해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접근을 하고요. 진보 측에서는 국영화를 해야 한다고 접근을 해요. 막상 그 부분의 거버넌스(governance, 국가경영)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양쪽이 다 얘기를 안 하는 거죠. 그러나 사실은 기득권 세력에서는 민간 기업도 영향력을 끼치는 상황이니 거버넌스는 자신들의 약점이거든요. 진보 쪽은 공공부문에 있는 것만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생각하고요. 실은 민영화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말도 못 꺼내게 하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더 중요한 거버넌스에 대해서 한국은 별로 관심이 없는 거예요. 원래 그런,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포커스가 잘못된 거죠. 어떻게 공공이 이익에 부합하게 운영되도록 거버넌스를 바꿀 것이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조세 지출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었고요. 국회 예산정책처가 2003년에야 만들어졌다면서요.


주진형: 삼성전자에 갔는데 월급 내역을 보니 아예 세금 내역을 안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봤더니 몰라요. 그래서 인사부에 물어봤더니 설명을 해주는데요. 설명해주는 사람의 표정은 ‘왜 이런 걸 알고 싶어하세요?’(웃음)였어요. 전혀 자기 세금에 관심이 없는 거죠. 그런데요, 잘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어요. 세금이 워낙 적어요. 때문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영향이 별로 없어요. 1억을 받아야 이런 저런 공제 떼고 나면 천만 원 내니까요. 그런데 서양은 훨씬 높아요. 공제 없어요. 실제적으로 20% 정도를 내거든요. 그래서 서양은 대학 때는 한창 진보 흉내를 내다가 회사 들어가서 월급 받아보고 공화당으로 돌아선다는 애들이 많아요.(웃음) 그런데 한국 사람은 세금이 워낙 적고, 온통 간접세니까 나와 직접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공제가 많아 실제 내는 세금은 많지 않다는 점을 여러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분석하고 있거든요. 눈에 띄는 부분이었습니다.


주진형: 한편 세금이 낮은 나라치고는 세금 올리는 것에 대한 반응은 그 어느 나라보다 극심하죠. 그것도 되게 독특한 현상이에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는 우리보다 세금이 더 센데도 이런 저런 것들을 마련할 때 정치적으로 싸움이 일어나긴 해도 일반 대중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증세 반대한다는 식으로는 안 나오거든요. 그 이유는 국민들이 내가 낸 세금을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국가가 가져간 돈 중에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는데, 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맞아요, 주변에도 보면 낸 만큼 바뀌면, 낸 만큼 받을 수 있으면 세금 더 낼 의향이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하지만 믿음이 없는 거죠.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의심부터 하게 되잖아요.


주진형: 저부담 저복지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요. 보면 실제로 경제 성장을 위해 길을 닦거나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도로, 하철, 항만, 공항, 학교, 병원, 공원 등과 같은 사회적 생산 기반), 재단 만들고 공단 만드는 데에는 열심히 쓰지 개개인한테 직접 들어오는 식으로는 우리가 세출을 잘 안 했어요. 제대로 된 나라라면 세금을 물리기 위해서는 소득에 세금을 물려야 하는데요.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소득이 굉장히 불투명한 체제예요. 일본은 지금도 금융실명제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예요. 한국도 사유재산 등록이 굉장히 불투명한 나라죠. 때문에 소득에 기초를 둔 세금 부과가 구조적으로도 어렵죠. 게다가 그들이 중앙집권의 권력을 갖고 있으니까 자기한테 세금이 올라가는 방식으로는 하질 않았고요. 그것은 국가가 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안 해왔단 의미예요. 국가란 나에게 조(租)와 역(役)을 시키던 것이지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라 사람들인 거죠.

 

이 논의를 기업 공간으로 가져온다면 어떨까요? 저자는 증권사 등 기업 재직 당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파격 행보로 많이 회자되기도 했는데요. 아쉬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주진형: 이게 바로 원청이 갖는 기득권에 대한 욕심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다른 나라도 기업이 적자가 나고 어려우면 폐업할 수도 있고, 사람을 줄일 수도 있죠. 물론 그것에 대해 노조가 좋아하진 않고,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한국처럼 이렇게 극렬하진 않거든요. 왜 저렇게 극렬한지 생각하면 워낙 원청과 하청 사이에 격차가 크니까 나가는 순간 내려가야 되는 것 때문인 것이죠. 적은 차이라면 이렇게까지 극렬하진 않을 거란 말이에요. 


그것은 또 연결하면 사회보장의 문제기도 할 거예요.


주진형: 네, 그래서 사람들한테 실업보험을 더 올리자고 제안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놀라울 정도로 말이에요. 아니, 어떻게 일 년에 8-9조를 걷는데 아는 사람도 없어요. 독특한 나라인 거죠. 굉장히 독특한 나라예요.

 

실업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책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거든요.


주진형: 복지제도 이야기를 할 때 처음은 노령연금이에요. 그 다음이 건강보험, 그 다음이 실업보험이거든요. 사회의 역사를 보면 그래요. 그만큼 우선순위가 높은 이슈죠. 그런데 한국은 국민연금도 그렇고, 건강보험도 그렇고, 사회적 요구가 없을 때 그냥 들어왔어요. 실업보험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막상 제도의 주인이어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관심이 없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 제도는 말하자면 ‘상놈’들이나 걱정할 문제, 내 일은 아니야, 이런 거죠. 그것이 문제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니었나 생각해요. 실업보험을 사람들이 인식했던 건 김대중 정권 말부터였던 것 같아요. 소위 IMF 위기 이후, 자기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중산층 중에도 해당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여론 주도층은 실업보험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2006년 1분기 실업보험 신규 신청자가 30만 명인데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위 10%에 해당하는 대기업, 공기업 부문에서 대량감원을 하려고 하면 큰일이 난 것처럼 난리다, 중산층 이상에만 이득인 정책이 많다, 고 한 지적들이 떠오르네요.


주진형: 그런 숫자를 전혀 몰라요. 뉴스도 별로 없죠. 실업보험이 게토화된 거예요. 나는 열심히 해서 그런 상황을 막으면 돼, 라고만 생각해요. 대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사실 이들을 대변해야 할 게 정의당이어야 해요. 그러나 그들은 대기업 노조에서 안 나가는 것만 열심히지 나간 사람을 어떻게 하자, 는 자기 일이 아니에요. 10%와 90%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90% 중에서도 가운데 40-50%는 그런대로 살아요. 문제는 하위 20-30%의 사람들이죠. 이들은 정말 아무도 이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데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슈화가 안 되는 거죠. 실업보험이 정말 요긴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없고 그런대로 목소리가 있는 사람들은 실업보험 그거 얼마 된다고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노인 빈곤 문제도 같은 거죠.


주진형: 노령연금도 그렇죠. 원청에 있는 사람은 부동산 가격 오르고, 퇴직금 받고 하면 국민연금 신경 안 써도 됐어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힘 있는 공무원, 교수들은 저희들끼리 따로 연금이 있었고요. 한국에 왔을 때 정말 놀랐어요. 교수들이 국민연금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사학연금은 아주 잘 알고요. 자기 것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부모들도 다 부양가족으로 넣으니까 건강보험 문제에도 관심이 없고요.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소득수준별 부과 방식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있어왔잖아요.

 

주진형: 자영업자가 재산 기준으로 건강보험을 내기 때문에 불합리하다는 이야기는 다들 알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요. 그런데 그걸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월급 받는 사람들이 부모를 공짜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고 하면 놀라요. 암묵적인 거죠, 사실은. 이번에도 못 바꿨잖아요. 조금 바뀌는 것도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기사화도 안 됐고요. 신문사에 정책 좀 담당한다는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몰랐다고 해요. 큰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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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문제임을 아는 것일 텐데요. 그래야 목소리도 낼 수 있고요. 결국 시민정치교육의 부재가 굉장히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서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표현했어요.


손혜원: 요즘 팟캐스트가 굉장하지 않습니까. 공부한다는 거예요. 뉴스나 종편에서 전하는 왜곡된 정보 때문에 목마름이 있었는데 팟캐스트를 통해서 해소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알게 된 지식을 써먹는 거고요. 욕구가 엄청났던 거죠. 특히 경제 이야기는 어렵잖아요. 아무리 들어도 써먹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경제알바’는 어렵고 무서운 이야기를 쉽게 해주니까 입에 올릴 수가 있는 거죠. ‘직장 민주화’가 그래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걸 보니까 ‘맞아, 맞아’ 하면서 퍼지는 거잖아요. 실은 이건 제가 제물이 되면서(웃음) 한 건데요. 그래도 한 이유가 일반인들이 경제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부터도 굉장히 많은 걸 알게 되었고요.

 

자기 회사의 인사 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사장이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에 비해 외국은 아래 단계부터 모든 결정을 자기가 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그래서 좋은 결정을 하는 사람이 계속 올라가는 거예요. 윗사람에게만 잘 보여서 되는 게 아니라 좋은 결정을 해온 사람이 올라가는 겁니다.(중략) 우리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를 알아야 위로 올라갑니다. 대강 보면 별게 아닌 듯해도 사회 전체로 치면 얼마나 큰 문제냐는 거죠.(192-193쪽)

 

주진형: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정통 미디어의 실패예요. 어느 나라나 언론은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거라 기득권 세력의 앵글이 주조를 이루기 마련이라고는 얘기하는데요. 한국은 그것에 더해 족벌이 메이저 언론을 소유하고 있죠. 방송도 조종하고요. 이런 나라가 없거든요. 왜 대중이 정치나 경제에 대한 교육이 낙후되었는가에서 하나의 큰 이유는 바로 언론이 기득권 세력에 지나치게 포획되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일본도 그 문제가 있는데요. 한국은 너무 심하죠. 그렇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니까 국민들도 그만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고요. 지식인들도 그만큼 소위 민주 국가를 자치적으로 운영할 만한 경험이나 지식 자체가 워낙 얕았던 사회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사실 아시아가 다 그렇고요. 저는 항상 일본이 우리의 최대치다, 라고 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

 

책에서 다룬 열두 가지 이슈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슈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주진형: 연금이죠. 지금 불이 난 거예요. 당장 사람이 죽고 있는 문제죠. 다른 분야는 그래도 조금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연금은 너무 오해가 커서요. 식자들 중에서도 그렇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요. 우리 인구를 보면 30년대 생이 80대, 40년대 생이 70대잖아요. 이들 숫자에 비해 50년대 생의 숫자가 엄청 크다고요. 지금도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이들 5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늙기 시작하면 한국 사회는 난리가 날 거예요. 차라리 그게 문제가 되면 그들의 자식 세대가 위기감을 더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아마 뭐가 바뀔까요. 기가 막히죠. 지금은 아예 말도 못 꺼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연금제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놀라울 정도예요. 워낙 30년 동안 이상하게 박혀서 그 선입관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손혜원: 제 경우 연금 문제는 정말 관심이 없었어요. 국회에 들어와서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런데 주 선생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는데 한 단계, 한 단계 들어가다보니까 어느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다음으로 가고, 다음으로 가고, 그렇게 된 거죠. 저는 정말로 확 다음 세상으로 가는 그런 계기가 되었어요. 또 직장 안에서의 문제를 ‘직장 민주화’라는 단어로 시작했잖아요. 재벌이나 중소기업의 문제를 원청과 하청으로 이야기했고요. 그랬을 때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게 된 것 같아요.

 

대선 앞인데요. 각 후보들이 내놓은 경제 정책 중에서 흥미롭게 본 것이 있으세요?


주진형: 보니까 기초연금을 올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제안이 있더라고요. 어쨌든 기초연금을 올린다는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대담한 것이거나 금기시 되던 것이었는데요. 이제는 안 그런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아동수당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가 비교적 자유롭게 개진이 되고 그런 면에서는 조금씩 진전은 있는 것 같아요. 또한 문재인 캠프가 도심 재개발 이야기를 했어요. 시외곽에 신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도심 주거지역의 재개발을 통해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하는데요. 그 얘기가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다는 것도 신기하긴 하지만요. 그게 다 부동산 신화를 이제 포기하면서 가능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도심 재개발을 소규모로 하자는 얘기는 처음 나온 거라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시민의 변화와 참여 필요성을 많이 느낄 것 같거든요. 당부의 말이나 다짐의 말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손혜원: 이 얘기들을 끝없이 했으면 좋겠어요. 될 때까지 말이에요. 문제가 이거다, 라는 이야기를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바뀔 것 같아요. 주진형 혼자 하는 걸 제가 하게 됐고, 이 책을 본 사람들과 다 같이 하게 됐잖아요. 이것이 합창이 되어서 안 할 수 없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경제, 알아야 바꾼다주진형 저 | 메디치미디어
경제,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현장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주진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각조각 불분명했던 퍼즐이 완성된 그림으로 선명하게 맞춰진다. 밤낮없이 일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여유가 없는 걸까? 거침없는 경제학자 주진형이 우리 앞에 진실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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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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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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