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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김창훈 “앞으로의 삶을 더 음악 중심으로”

밴드 ‘블랙스톤즈’로 록의 영토를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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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일 겁니다. 산울림으로 시작했고 밴드가 하나의 DNA이기 때문에 밴드 외에는 생각을 잘 해보지 않은 거죠. 그리고 본능 외에 부언을 드리면, 우리나라도 좀, 밴드다운 밴드가, 오래가는 밴드가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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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의 전설 '산울림' 하면 대부분은 먼저 3형제의 맏인 김창완을 떠올린다. 산울림의 숱한 명곡들을 써냈고 팀의 간판이자 정신적 기둥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연상은 정당하다. 하지만 1970년대 록 수요자들은 둘째 김창훈의 지분도 만만치 않았음을 기억한다. 베이스기타를 맡았고 좋은 곡을 썼으며 때로 록 성향이 짙은 노래를 목청껏 질렀던 '또 하나의 축'이었다. 다시 청춘음악의 흐름을 록으로 돌리는데 기여한 1977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곡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부터가 창완 아닌 창훈이 썼다.

 

산울림 2집에 실린 사이키데릭의 극치 '이 기쁨'과 3집의 명작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을 위시해서 애청곡인 「회상」, 「독백」, 「소낙비」, 「산할아버지」 등이 모두 창훈 오선지의 결과물이다. 덜 알려지긴 했지만 산울림 5집의 「오솔길」, 「봄」, '포도밭으로 가요', '무녀도'로 이어지는 연작은 그의 표현 컬러가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재기에 넘치는 가를 증명한다. 댄스 여가수 레전드 김완선의 오늘을 있게 한 곡 '오늘 밤'과 '나 홀로 뜰 앞에서'가 김창훈 작곡과 프로듀싱이 가져온 개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때인 1992년에 첫 개인 앨범을 냈고 막내 김창익의 사망에 따른 산울림 해체 직후 2집(2009)을 발표한데 이어 3집 <행복이 보낸 편지>(2012) 그리고 지난해 10월 4집 <호접몽> 등 성실하게 솔로활동에 임하고 있다. <호접몽>은 빼어난 곡 질감으로 찬사를 받았다. 의욕 충천한 그는 본격적으로 록의 영토를 찾기 위해 밴드 '블랙스톤즈'를 결성했다. 3월에는 새 밴드와 함께 첫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왜 밴드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본능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터뷰 내내 겸손을 잃지 않았지만 음악에 대한 의지를 전하는 대목에서는 톤이 꽤 올라갔다.

 

지난해 하반기에 5년 만에 네 번째 앨범 <호접몽>을 발표했습니다. 다분히 록적이었던 전작에 비해 템포를 많이 조절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요.


그 전에 디스코그래피를 설명 드려야겠네요. 2009년 2집 <The Love>는 우리 막내가 갑자기 그렇게 된 후 음악에 대한 조급함, 창작에 대한 갈구, 나에 대한 치유 등의 감정이 뒤섞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 아티스트들과 엮은 1992년 독집 첫 앨범의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 뮤지션들과 작업을 했죠. 하지만 그때 제가 미국에서 사업을 했던 관계로 한국에서 음악작업을 하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 3집 <행복이 보낸 편지>는 다시 미국 뮤지션들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낸 앨범이었습니다.

 

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나요.


첫 앨범이 하비(hobby), 취미라는 개념에서 냈다면 <The Love> 앨범은 여러 가지 사고를 겪은 후에 그리고 당시 제 역량을 충분히 쏟아 부어 프로페셔널하게 만든 앨범인데 음악 시류도 바뀌고, 제가 (한국에) 와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보니 나름 좌절이 생겼죠. 그럼에도 팬클럽인 '산매(산울림 매니아)'로부터 신곡에 대한 니즈(요구)가 계속 올라왔어요. 다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생겼죠. 하지만 제작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죠. 여기서 산매(산울림 매니아)의 도움과 주문이 있었습니다. 끝이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팬들이 어떤 주문을 하던가요. 좀 전에 얘기 드린 것처럼 3집 <행복이 보낸 편지>는 산울림 전성기 때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와 같은 곡에서 더러 구사한 그로울링(growling) 보컬이 등장할 만큼 록 성향이 강하던데요. '난난 여기, 넌넌 저기'라는 곡은 싱글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좀 강력한 음악을 해 달라!, 록을!!” 그런 주문이었죠. (당시 K팝 시장이 댄스음악으로 굳어지던 때라 더 그런 것 아니었겠느냐 하자) 그랬겠네요. 어쨌든 과거에 했던, 조금 전 얘기한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와 같은 헤비 록 스타일의 곡을 갈구하더라고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춘 점이 있지요.

 

그래도 미진한 구석이 있었나 봅니다.


아쉬움이 있었어요. 충분히 시간적으로, 더 숙성을 시키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밴드적인 요소가 아쉬웠죠. 그러니까 곡 자체가 록적인데 밴드의 하모니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또 시간이 간 거죠. 제가 그래요. 지쳤다가도 3, 4년 지나면 뭔가 꿈틀꿈틀 다시 곡이 나오더라고요. 다시 안하려고 했던 앨범 작업인데 <호접몽> 앨범을 구상하게 됐죠. 결정적 계기는 창완형과 식사 자리였어요. 2016년 설 때 창완이 형과 밥을 먹는데 뜬금없이 “이제는 곡을 많이 써가지고 발표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나이가 들어가니 더 정력적으로 음악을 하자는 얘기?


그런 것도 있을 것 같고. 외로움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고, 음악적으로 '김창완밴드'를 꾸리고 있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든가. 아니면 내가 주변에서 휘젓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점도 있을 겁니다. 산울림 음악의 어쨌든 한 축이니 그걸 계속 해주길 바랐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게 제게 굉장히 큰 자극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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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 싱글은 지난해 초에 공개되었지요.


첫 싱글을 내면서 팬들에게 어떻게 약속을 했냐면 “매달 싱글을 하나씩 내서 그게 쌓이면 2016년 말에 정규 4집을 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싱글 '어머니'까지 냈는데, 그 다음 싱글을 준비하며 데모 버전을 레이블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에게 들려줬는데, 너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싱글로 찔끔찔끔 내는 거보다 빨리 모아서 앨범으로 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떤 곡이었냐고 묻자) 「절규」였습니다.

 

들어보니 「4월의 눈물」과 「절규」가 옛날 (김창훈) 록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확 꽂힐만한 곡이던데요.

 

「사운즈 오브 러브」에도 깜짝 놀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곡이 앨범 타이틀이죠? 「사운즈 오브 러브」보다 전 「커피마니아」에 끌렸습니다.


네. 저도 원래 「커피마니아」를 생각했는데 그쪽에서 모니터를 하면서 「사운즈 오브 러브」를 골랐고 타이틀곡이 둘이어도 된다고 해서 더블 타이틀이 됐죠. 「사운즈 오브 러브」와 「커피마니아」. 그렇게 정규 앨범이 된 거예요.

 

전작과 지향점에서 차이가 있다면.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3집 때는 제가 (기업에서) 풀 타이머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예요. 그런데 이번 <호접몽>은 프리랜서가 돼서 시간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운, 따지고 보면 40년 만에 제일 자유로운 상태에서 쓸 수 있었어요. 제목이 된 「호접몽」이라는 곡도, 제가 자다가 일어나서 썼으니까요. 새벽 한시인가 두시인가 됐는데, 예전 같으면 내일 출근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지(웃음). 일어나서 서너 시간 작업했던 것 같아요. 시간적으로 어떤 것이 딱 포착이 되었을 때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올인할 수 있잖아요. 그게 3집과 큰 차이였죠. 두 번째로는 녹음 방식을 바꿨다는 것. 3집의 아쉬웠던 점을 메우기 위해 미국에서 밴드를 결성해 그들에게 미리 데모를 들려주고 녹음실에서 제가 노래를 부르면서 바로 녹음에 들어간 거죠. 세 번째는 주제 면인데요, 그간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다루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또 자연히 장르 면에서 다양함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은 '산울림 코드'를 지키려고 하나요, 아니면 완전 별개인 '창훈음악'에 집중하려 하나요? 왜냐면 그 두 가지가 모두 있는 것 같아서요.


어느 한 쪽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죠. 말씀하신 대로 두 가지가 다 있다고 봐야겠죠. 산울림이 표현하지 못했다든가, 산울림이 당시 다루지 못했던 것들, 표현의 한계나 주제의 한계, 그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해결하는 부분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산울림이라는 백그라운드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동떨어지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잖아요. '산매'라는 팬들이 있고. 그걸 배제하는 것은 어렵잖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코엑스 러브」와 같은 곡에서 보면, 형 창완과 음색이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 쉬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김창완밴드가 낸 앨범인가 착각할 때가 있어요. 산울림 활동 때 김창훈씨가 노래했을 때, 그 땐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주 거칠게 가거나 천진난만하게 가는 부분이 공존했죠. 여기서 제게 숙제를 던져주시네요 하하하. (이 대목에서 밴드 '블랙스톤즈'가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신보는 젊은 뮤지션의 앨범과 다르게 '어른답게' 자신의 욕망, 갈증, 갈망, 약간의 서운함 등등 여러 자신의 감정들이 어떤 울타리 속에서 꾸려낸 것 아닌가, 그렇게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거짓말하지 않는, 누군가 말대로 '엮지' 않은 리얼 앨범이라고 봅니다. 1차 관객인 블랙스톤즈 멤버들에게 묻습니다.


김태일 : 좋았어요. 잘 만든 앨범.


나성호 : 「절규」를 듣고 밴드에 합류할 결심을 했죠. 뭔가 더 좋은 곡들이 나올 수 있겠다, 새로운 음반을 할 때 뭔가 제대로 된 걸 내볼 수 있겠다, 그런 생각.


유병열 : 자연스러운 앨범이라고 느꼈어요. 요즘 나오는 음악들이 워낙 가공도 많이 하고 자르기도 많이 하고. 그런데 딱 들으니 '원 테이크'더라고요. 최고 미국 세션 맨도 아니고 우리 정서랑 다른 게 있는데도 좋더라고요. 내추럴 느낌?

 

록 연주에 관한 한 유병열(기타), 나성호(드럼), 김태일(베이스)은 말 그대로 베테랑이다. 각 악기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안치환의 밴드 '자유' 그리고 윤도현밴드 출신 유병열이 주도한 밴드 '비갠후' 등을 거치며 이력을 축적, 많은 제자와 후배를 거느리고 있다. 공연에는 이들의 연주를 보려고 찾아오는 악기지망생들도 많다. 김창훈이 이런 굵직한 경력의 멤버들과 손잡았다는 것 자체가 부담을 넘어서는 그의 의욕을 말해준다. 그는 “최소 10년은 흔들림 없이 간다”고 강조했다.

 

1, 2, 3, 4집 다 록밴드 세션들과 함께 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팀을 새로 결성했습니다. 근데 멤버들이 다루기 쉽지 않은 베테랑들입니다. 록이 대세인 시절도 아니고.... 참 어려운 결정이라고 보이는데요. 그렇게 밴드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요.


본능일 겁니다. 산울림으로 시작했고 밴드가 하나의 DNA이기 때문에 밴드 외에는 생각을 잘 해보지 않은 거죠. 그리고 본능 외에 부언을 드리면, 우리나라도 좀, 밴드다운 밴드가, 오래가는 밴드가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어떤 막연한, 막연하지만 또 현실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 또 아우들도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고 풍요롭게 펼칠 수 있는 장이 필요했지요.

 

이번 싱글 「독백」이 블랙스톤즈와의 첫 작업이 되는 거죠.


그렇죠. 질문을 하시겠습니다만 제가 이 곡 녹음을 하면서 우리 아우들의 음악적 역량, 감성, 이게 매우 섬세하고, 또 제가 원하는 수준 이상으로 잘 표현해줬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옛날 산울림 7집 수록곡인 「독백」을 선택했나요, 대중적 친화력 때문에?


사실 (밴드와의) 싱글보다 공연 일정이 먼저 확정이 됐어요. 3월 3일부터 5일까지. 밴드는 작년 10월에 결성이 됐구요. 그러면서 여러 곡을 블랙스톤즈 식으로 다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거죠. 곡을 좀 더 익히고, 숙성을 시킨다는 계획으로 2017년 하반기에나 싱글을 내지 않겠나 생각을 했는데, 편곡 수준이 만족한 수준에 오르고, 더 시간을 끈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가 않아서, 그리고 공연 즈음에 맞춰서 싱글을 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표하게 된 거예요. 근데 공연하면서 열 몇 곡 레퍼토리를 올렸는데 그 중 멤버들이 뽑았던 곡이 「독백」이에요. 거의 만장일치였죠. 산울림 곡을 공연에 올리는데 그게 싱글이 된 것뿐입니다. 마니아층에게는 알려진 곡이지만 젊은 층은 모르는 곡이라는 점도 작용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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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접몽> 앨범 얘기로 돌아가 어떤 곡이 본인 마음에 들던가요.


제 나이나 경력이나 그런 데에 어울리는 테마나 곡은 사실 「호접몽」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앨범 명일 수밖에요. 곡을 쓰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게 비교적 이후에 나온 곡이거든요. 어찌 보면 최신곡이랄 수 있는데, 앨범의 전체적인 균형이나 조화가 그 곡으로 인해서 잘 정리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디어 전개에 있어서 표현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 애착이 가는 건 「코엑스 러브」죠. 리듬, 코드 전개 그런 것들이 맘에 들었죠. 제가 원했던 건 간단한 것 같지만 듣기는 어려운 코드! 그 곡이 코드가 네 개인가 밖에 안 되거든요. 근데 그게 묘하게 배열이 되면서 자연스러우면서 다양한 느낌이 나왔어요. 또 하나는 라이브 했을 때 비틀스 「Hey Jude」같이 뒷부분에 관중과 호흡을 할 수 있는 곡은 없을까 했는데 「코엑스 러브」 후반부가 그렇죠.

 

「코엑스 러브」도 그렇고, 「커피 마니아」 후반부를 들으면 아직 피치가 살아있습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청년의 아우성이 여전하던데요.


고맙습니다. 칭찬을 해주시지만 앞으로 더욱 개선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요소로 생각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3집 <행복이 보낸 편지> 수록곡인 「부메랑」과 '알리바이'는 그로울링 요소가 두드러졌는데 <호접몽>에서는 싹 후퇴했습니다.


아, 그 보컬 관련해서는… 그로울링을 끝까지 하는 것은 저도 부담스럽고, 관객들도 부담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전(全)곡으로 구성하는 것보다는 부분, 부분 배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절규」라든가 「커피 마니아」 등은 노멀(일반적인) 보컬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섞어서 하는 방식으로 나온 거죠.

 

이번 앨범을 정의하신다면.


글쎄요. 아쉬움이 덜한 앨범? 그동안 앨범을 내면 항상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앨범이 나온 뒤 잘 안 듣게 돼요. 하지만 이번 <호접몽> 앨범은 늘 차에서 틀어놓고 들을 정도로 아쉬움이 들지 않아요. 또 이번 앨범을 통해서 아우들과 '블랙스톤즈'를 결성하게 되었잖아요. 블랙스톤즈를 만든 앨범이기 때문에 굉장히 각별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블랙스톤즈 멤버들은 어떻게 연결이 된 건지.


4집이 작년 10월에 나오면서 주변의 제안 내지는 교감으로 밴드를 결성해보자는 의견이 툭툭 던져졌어요. 그러면서 미러볼뮤직의 주선으로 우리 큰 아우(유병열을 이렇게 불렀고 멤버들은 아우라고 했다)랑 컨택이 됐고 큰 아우가 아우들을 규합했죠.

 

지금까지 본인이 쓴 곡 가운데 기억나는 곡은요?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직접 듣고 싶습니다.


많이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나 어떡해」, 그리고 「회상」, 창완 형이 독집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에서 부른 '초야'가 기억나고... 이번에 발표한 「독백」, 김완선이 부른 '오늘 밤', '나 홀로 뜰 앞에서', 그리고 「산할아버지」,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내 마음」은 원래 제목은 '황무지'인데, 그 당시는 심의를 받았잖아요. 들어보지도 않고 금지 때릴까 봐 '내 마음은'을 붙인 거예요.

 

형(김창완)과 비교해서 곡 만드는 것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나요.


글쎄요. 그건 평론가의 몫으로 보는데요. 산울림 시절에는 형이 프론트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는 양념 같은 역할, 샐러드의 소스 같은 역할, 그런 역할을 했다면 개인 앨범에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정서를 충분히 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1~4집의 개인 앨범에 저만의 음악적 컬러가, 표현이, 개성이 더 잘 드러나 있지요.

 

블랙스톤즈는 그래서 김창훈의 개성을 부각하는, 새로운 음악 쪽으로 가야겠지요. 이 대목에서 기타리스트 병열 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유병열 : 저는 솔직히 뭐 형님을 '완전 새롭게'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한계가 있다고 보구요, 몇 십 년을 쌓아온 창법이나 표현력을 단숨에 바꿀 수는 없단 말이죠. 그리고 형님이 가진 그 '늙지 않은' 톤이 있어요. 김창완 형님도 마찬가지고 그 산울림의 소년 같은 톤이 있잖아요. 그걸 최대한 살리면서, 편곡적인 것만 올드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봐요.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나라 40대 이상의 음악, 어덜트 문화가 없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있어봤자 트로트 음악, 댄스 음악 이렇게 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른들이 들을 수 있는 음악. 형이 그런 걸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지금 40, 50대가 제일 할 게 없어요. 붕 떠 있는 문화잖아요 사실. 뭐가 없는. 그래서 올드한 정서도 흐르지만 구닥다리는 아닌, 현대적 요소를 넣은 것을 하고 싶습니다.

 

그 현대적인 요소, 그 모던함을 어떻게 사운드와 곡조로 담아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보는데...


나성호 : 아직은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시도하는 단계.


김태일 : 근데 진짜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얘기하신 게 그러니까 가장 어려우면서도 우리가 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블랙스톤즈와의 음반 계획은요


현재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창 준비 중인데, '0집'으로 나갑니다. 0집. 제로요. 0집으로 제목을 다는 것은 다 리메이크, 리믹스 넘버이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산울림과 제 곡을 블랙스톤즈가 재해석을 하는 거죠. 「독백」같이. 이걸 10곡정도 해서 0집으로 낼 거예요. 그리고 나서 비로소 1집을 만들 겁니다. 어제 제가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1집은 우리 블랙스톤즈 멤버들의 역량을 아니까, 그걸 충분히 극대화해서, 조화롭게 꾸밀 겁니다. 저도 최대한 자유분방하게 쓰려 하고. 제가 솔로로 발표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아주 비정형적인, 틀이 없는 그런 음악, 그런 걸 지금 꿈꾸고 있어요.

 

'세대 간 소통'을 들먹이지만 소통은 안 되더라도 '동행'은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앨범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고통당하는 20대들에게 기성세대로서 최소한 미안함을 갖는 그런 성격의 앨범.


제목이 하나 딱 생각이 났는데, 좋게 잘 받아들이고 잘 구현해 보도록 하지요.

 

3월 초 공연에 대한 산매를 비롯해서 관객들의 인상은 어땠나요.


산매의 반응하고 우리 어머니의 반응하고 말씀을 드릴게요. 어머니가 토요일에 공연을 오셨는데, 밴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나 봐요. 이 밴드가 잘 될까. 88세이신데, 워낙 공연을 워낙 많이 다니시고 해서 뭔 연주 실수를 하고 이러면 다 아세요. 그런데 보시고 나서 한시름 놨다고 그러는 거예요. 첫 곡에 이미 안심을 했다는 거예요. 걱정이 한 번에 사라졌다면서 “둘째는 둘째다. 둘째의 컬러나 개성이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형과 비슷하면 어떡하지?'하는 우려가 있었나 봅니다. 블랙스톤즈와 김창완밴드를 사과와 오렌지 혹은 사과와 배처럼 같은 과일이지만 완전히 다른,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산매는 이제 우리 밴드 멤버들에게, 멤버마다 굉장히 호감을 갖고. 또 저와 잘 조화가 된다고 해요. 본인들이 바라던 음악을 해주었다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반응이 뜨거웠어요.

 

태일 씨는 창훈형이 베이스를 연주하신 분이라서 부담은 없었나요.


김태일 : 시간이 조금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내 마음을 적셔주는 부분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래서 그게 좀 더 확장됐으면 좋겠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대화도 하고 연습도 많이 하면서 이미지를 그려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 숙제인 것도 같아요. 전체적인 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창훈 형의 장점을 성호 씨가 말한다면.


나성호 : 가사에 있어 예를 들어 '보고 싶다' 같은 얘기 하나를 해도 다르게 표현을 하시거든요. 그걸 음악적으로 구현하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하셨지만, 테크닉 좋고, 뭐 이렇게 녹음해서 가고, 뭐… 잘하는 사람들 많아요. 정말 잘하는 친구들 많죠.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배님의 강점은 표현이 다르다는 겁니다. 좀 전에 말했듯이 같은 말을 해도. 우린 그걸 우리가 음악적으로 잘 그려내야 한다는 거죠. 어찌 보면 숙젠데요, 가장 중요한 문제 같아요.

 

밴드의 리더 격인 병열 씨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밴드에 임했는지.


유병열 : 저는 뭐 딴 거 없어요. 그냥 순수하게 접근했고요. 약간의 혼란스런 시점에 제가 어렸을 때 정말 힘들 때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했던 곡이 「독백」이었어요. 그처럼 뭔가 좀 어루만져지는 느낌. 일단 맹목적이겠지만 계산적인 것 없이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죠. 이제 저도 나이를 먹었고 편안하게 연주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난 체 안 하고, 너무 테크닉적이지도 않은 그런 연주와 음악이랄까요. 제가 몇 개를 치지 않아도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그런 생각이 결성에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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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 하신다면


우리가 계속 해나가는데, 한글, 한국어가 갖고 있는 강점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한글이 가진 한계가 어딘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우리 음악에서 한글 가사가 영어가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델리키트하면서 한글이 갖고 있는 어떤 장점들, 그런 것을 음악으로, 언어적으로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이게 하나의 샘플이 될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코엑스 러브」에 '말을 더듬 더듬 더' 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어법으로,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단어죠. 그렇지만 한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거라고도 보이거든요. 긴장을 하고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는데 '더듬더듬'까지 말이 안 나올 거 아니잖아요. 언어가 완성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거기가 끊어지는 거거든요. 손이 떨리는데 뭐 딱 떨어지겠어요. 그런 불완전을 언어로 표현한 건데. 이런 언어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의 곡에 반영이 될 수 않을까 합니다.

 

그게 특기 아닌가요. 전공이신데. 이런 질문을 주변에서 해왔습니다. 형 김창완과는 달리 직장 생활을 오래 해왔는데, 생업과 음악 창작이라는 두 모습 간의 균형이랄까, 그런 걸 맞추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는지요. 그 두 가지가 분리되는 것인지 아니면 함께 뒤섞여 있는 것으로 느끼는지요.


굉장히 좋은 질문인데, 양쪽에 다 이방인적인 요소가 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데 뮤지션이라는 백그라운드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우리 때는 딴따라라는 단어가 유행을 했고. 특히 사회생활, 그러니까 직장생활의 세계에서는 절대 이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결과물을 내더라도 항상 사실을 삐딱하게 본단 말이지(웃음). 근데 하나의… 그러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그런 비판, 어떤 편견, 이런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그래도 대체적으로 창의적이란 시선이었죠. 그래서 직장생활 속에서도 그걸로 버텨 온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제가 음악적으로는 채무가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음악적으로 미완성적인, 이쪽도 완전치 않고 저쪽도 완전치 않은, 그런 것을 후반부에 제 나름대로 어떤 매듭과 완성을 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동안에 이제 양다리적인 그런 인생을 정리 하고, 보다 무대 중심 내지는 앞으로의 삶을 더 음악 중심으로 옮겨가는, 그런 전환점이 되도록 해야지요.

 

음악 중심이라는 것은 결국 뭘 하나 하더라도 행복해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그래요. 3집 <행복이 보낸 편지>에도 그런 테마가 담겨있죠. 행복이 주변에 있는 거고, 우리 삶에 있는 건데. 그런 것들이 우리 음악을 통해서 저의 어떤 성찰과 사색이 대중과 폭넓게 호흡이 되면 더 좋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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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블랙스톤즈. 왼쪽부터 김태일(베이스), 나성호(드럼), 김창훈(보컬), 유병열(기타)


사진 : 박수진
인터뷰 : 임진모, 정민재, 조진영
정리 :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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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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