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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솔지 “한 글자가 갖는 힘이 굉장히 커요”

여덟 개의 단편소설, 『휘』
쓰면서 자주 우는 작가, 손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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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모양 자체도 예쁘잖아요. 모양이 가지는 의미와의 조합이 저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악’이라는 글자도 기역이 압정처럼 뾰족하게 박히는 느낌이 있죠. 발음할 때도 그렇고요.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손솔지 작가의 『휘』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 제목이다. 왜 한 글자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왜 한 글자가 아니어야 하는가, 로 돌려줄 수 있다. 한 글자는 힘이 세다. 그 한 개의 글자는 그대로 어떤 세계이며 몸짓. 손솔지 작가는 “이 방법이 내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 글자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울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삶은 고통스럽고 누구나 외롭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을 선뜻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손솔지 작가는 그렇게 떠오르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개의 목소리로, 폭력에 신음하는 여성의 목소리로 “우리는 다 같이 억압되어 있는 현실”이라 말하며 그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애쓴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 아주 조금은, 떠오른 기분이 들었다.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은밀하고 그늘진 구석까지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비춰줄 뿐이다. 한순간 바람이 깊이 불어와 심지에 달라붙어 타오르던 불씨를 앗아간다. 그러나 이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치듯이 푸른 불꽃이 심지를 붙들고 일어선다. 또렷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눈동자처럼, 절대로 꺼지지 않을 등대의 불빛처럼.(252쪽,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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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식


수록된 단편들의 제목이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어요. 이를 테면 한 글자 연작인데요. 한 글자로 소설을 써보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일 처음 쓴 소설이 「휘」예요. 등단 전이었는데요. 단편을 많이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니 막막했어요. 등단을 위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걸 쓰려고 하니까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시험을 위한 공부처럼 등단을 위한 소설을 써서 등단한들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뭘까 싶었어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소설을 위한 소설을 쓰기로 했죠. 그렇게 마음을 먹고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바람이 휘휘 불면서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거예요. 그때 우연찮게 어른들 말씀이 떠올랐어요. 이름에 무슨 글자가 들어가면 뭐가 사납다, 는 식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미신이죠. 그런데 무심코 들은 그 말이 떠오르면서 만약 이름에 바람이 부는 소리 ‘휘’가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쓰기 시작했는데 쓰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 방법이 내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소설을 위한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등단작은 막상 다른 작품이었죠?

 

등단하던 해에 그렇게 한 글자로 쓴 단편들과 이전에 써두었던 단편을 다 투고했어요. 그 중 하나가 된 거예요. 「한 알의 여자」는 대학교 때 썼던 소설이거든요. 이 작품이 되고 나니 내가 잘못 가고 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설을 혼자 쓰잖아요.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요.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렇진 않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등단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앞으로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쁨보다 불안함이 컸어요. 이후에도 방황을 많이 했죠. 그러던 중에 아는 분이 적극적으로 투고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러려면 많이 써보자, 장편을 써보자, 생각해서 써서 투고를 했고, 그게 운 좋게 됐어요. 『먼지 먹는 개』가 그거죠. 그제야 조금 자신이 생기더라고요.(웃음)  

 

어떤 대목은 글자를 그 자체로 이미지로 보고 있기도 해요. 활자 혹은 언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온 작가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소설 한 편에 굉장히 많은 글자가 들어가잖아요. 어느 순간 글자를 남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글자, 한 글자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한 글자가 갖는 힘이 굉장히 큰데 왜 이렇게 덧붙이고 덧붙여 설명하려고 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휘’라는 한 글자로 소설을 쓰고 나니까 한 글자가 갖고 있는 힘을 좀 더 꺼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 쓴 소설이 「종」이에요. 그렇게 열 편 정도를 더 쓰게 됐고요. 

한글은 모양 자체도 예쁘잖아요. 모양이 가지는 의미와의 조합이 저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악’이라는 글자도 기역이 압정처럼 뾰족하게 박히는 느낌이 있죠. 발음할 때도 그렇고요.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아버지 이름에는 악樂 자가 들어 있었다. 늘 즐겁게 살기를 바라던 조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을까. 적어도 어머니만은, 아버지의 그 이름에 깊이 찔려 치명상을 입은 채로 겨우 삶을 연명했다. 날카로운 기역 받침에 가슴 한구석이 꾹 압정처럼 눌려 이따금 참지 못한 비명을 흘리곤 했다.(13쪽, 「휘」)

 

중의적인 표현도 많죠. 가령 「종」이나 「초」 같은 작품이 그래요. 한국 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에요.

 

모국어의 장점이겠죠. 만약 번역이 되어 외국 사람이 읽는다거나 외국 사람이 한국어를 공부해서 읽는다면 좀 애매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갖고 있는 이미지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것을 이용하면 좀 더 감각적으로 읽는 분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늘 한국어와 한글의 아름다움을 놓치면 안 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해왔어요.

 

확실히 아주 미세한 결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독자가 획득하는 장점들이 있죠.


쓸 때 힘든 글이 읽을 때 편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술술 읽히는 글도 쓸 때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잖아요. 물론 결을 자세히 보고 세세하게 쓴다고 해서 굳이 그걸 다 찾아주시길 원하진 않아요. 그 중에서 이 부분 정말 공감한다, 이거 나중에도 생각나더라, 라고 하는 부분이 한 군데라도 있으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하는 게 저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그렇다면 작가가 좋아하는 소설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소설을 좋아하세요?


신기한 건 예전에 제쳐두었던 소설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크게 공감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빠져 읽다보면 늘 달라요. 주변에서 무슨 소설이 재미있느냐고 물어오면 항상 이렇게 대답해요. 지금 막 마지막 장을 덮은 소설이 제일 재미있다고요. 그게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있듯 소설도 굉장히 여러 소설이 있잖아요. 같은 작가의 작품 안에서도 각 작품이 가진 매력이 다르고요. 그래서 때때로 다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어려서부터 즐겨 읽었던 건 추리소설이고요. 미스터리 소설 좋아해요.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도 추리소설이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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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우리의 현실


한편 다루고 있는 소재에 시선이 가요. 화자가 ‘개’인 작품도 있고(「개」), 고3 교실을 밀도 있게 다루기도 해요(「홈」). 등장인물들이 많은 경우 가난하거나 삶의 고통에 놓여 있는데요.

 

아무래도 현실에 놓여 살면서 느끼는 약자로서의 불안이나 힘든 점들에 대해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진 게 많고, 억울하거나 힘든 게 별로 없는 사람은 말하지 못한 고민이 덜할 거라고 생각해요. 표현할 수 없는, 해도 되는지 모를 고민이 있는데요. 유난한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굉장히 큰 고민들이 있죠. 저는 이게 어떤 특정 약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고요. 그냥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길을 지나가다 본 평범한 학생이나 아파트 난간에 기대 바닥을 보며 노는 어린 아이나 지나가는 개나 전부 들여다보면 살면서 갖게 되는 힘든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게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절대로 남이 되어보지 않고는 남의 심정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뒷모습”이라는 「초」의 한 대목이 떠오르네요. 작가는 그 반대편에 있는 존재들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작가는 타인의 아픔을 알고 공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모두 그걸 느끼고 있는데 살다보면 힘들어요. 바쁘게 사느라 공감하고 연민하면서도 지우고 살아야 하잖아요. 지금 당장 먹고 살기 너무 힘드니까요. 계속 흘러가는데 멈출 수도 없어요. 그럴 때 작가가 특별한 것은 아니고, 다만 잠깐 멈춰 서서 그런 면을 짚어서 글로 쓰고 보여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한 등장인물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들이라고 느꼈어요. 관계나 상황에 억눌려서 해방이 필요해보이는 주인공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다 같이 억압되어 있는 현실이잖아요. 압정이 잡아 누르듯이 다 현실에 붙잡혀 있는데요. 숨이 좀 트이는 순간, 공간이 필요하죠. 그것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문에 아무래도 다들 무언가로부터의 자유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기도 할 텐데요.


네, 저는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역삼 쪽을 걸어가는데 ‘수면의원’이 있는 거예요. 그쪽에 평범하게 많이 있는 병원이더라고요. 그리고 맞은편에는 ‘카페인프리’ 카페가 있고요. 이제는 커피를 마셔도 잘 수 있다(웃음), 이러면서요. 신기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잠을 자고, 먹는 건 기본적인 욕구잖아요. 놓아두면 다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렇지 못해요. 자는 것, 먹는 것조차 다 어디 한 곳에 매여 있는 거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충족이 필요한데 그게 지금은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모두가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 사회라서 더 두드러지는 면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떠세요?


시대적인 상황이기도 한데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억압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회도 비슷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중에서도 각자 나라가 가지는 특성이 있잖아요. 한국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다들 계급적인 부분에 얽매여서 살아야 하고요. 퇴근 시간이 퇴근할 수 없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하면 하는 거지만, 할 수 없잖아요. 그런 한국 사회만의 특이한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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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작가

 

「휘」에 등장하는 소녀나 「톡」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엄마 등을 보면 여성이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요. 여성 서사가 많이 요구되고 있기도 한데요.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그리려고 한 건지 듣고 싶습니다.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그 부분이에요. 등단작 「한 알의 여자」는 남성 권력 중심 사회에서 억압 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예요. 그 작품으로 등단했는데 어느 자리에서 제가 ‘페미니스트 작가’로 소개가 되더라고요.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쓴 소설이기 때문에 좀 놀랐던 것 같아요. 그때도 그냥 평범하게 우리가 느끼는 힘든 부분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쓴 거였거든요.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닌데, 라고 생각했었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힘든 적은 많이 있었지만 그걸 딱히 어떻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면이 있거든요. 내가 얼마나 억눌려 있었는지 인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쓸 때도 나오지 않잖아요. 그래서 요즘 많이 공부도 하고, 소설도 보고 있어요. 내 스스로가 신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가능성은 훨씬 커지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례한 상황을 많이 만나요. 만나왔고요. ‘이 사람 무례하네’하고 참아왔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도 누가 조금 더 빨리 이걸 알려줬거나 이런 소설을 좀 더 빨리 읽었다면 좀 마음이 편했을 것 같더라고요. 내가 참아야 할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잘못한 거였다는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으면 훨씬 편한 것 같아요.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읽는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들의 정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달라지는 부분 안에서 자존감을 찾는 면도 있고요. 평등 사회로 가기 위해서 지금은 여성이 얼마나 억압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게 첫 번째 단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에 대한 소설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좀 있어요. 게다가 여자로서의 억압을 생각하다보면 널리 퍼지거든요. 장애를 가진 분들의 차별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요. 내가 약자이고,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해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잖아요. 그걸 생각하면서 살려고 하다보니 굉장히 마음이 힘들고, 고민해야 할 부분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런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되면서 점점 어려워져요.

 

정말 어렵죠!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우는 게 어려웠거든요.(웃음) 그걸 칭찬으로 듣고 자랐잖아요. 착하다, 예쁘다, 여성스럽다, 차분하다, 여자는 이래야지, 라고 하는 말이 자라면서 크게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어요. 이미 순응하고 물들면서 자라왔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이제는 내가 왜 예뻐야 하지, 이런 고민을 요즘에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머리를 한다거나 화장을 한다거나 귀고리를 한다거나 하는 게 남을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는 자기만족이죠.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누굴 위하여 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걸 스스로 알고 나서 나갔을 때랑 모르고 나갈 때 인식의 차이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개개인이 고쳐야 할,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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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않나요


「초」는 세월호 이야기예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셨을 것 같아요. 읽는 마음도 참 어려웠거든요. 쓰는 마음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단편집을 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넣고 싶었던 작품이 「초」였어요. 써놓은 소설은 아니었는데요. 단편 계약을 할 당시가 한창 촛불집회를 다녔을 때였거든요. 주말마다 광화문을 다니면서 골병이 들고 있을 때였어요.(웃음)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안 나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하고요. 책만 보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사회나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알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초」를 단편집 마지막에 넣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써지지가 않는 거예요. 구상만 정말 여러 번 바꾸었어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상을 하다보니 너무 억지스럽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슈를 이용하고 싶어서 쓰는 건 아니잖아요. 그 고민 때문에 오래 걸렸어요.

 

실제로 작가 자신이 굉장히 많이 들어 있는 소설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요. 광화문 찬 바닥에 앉아서 깨달았어요. 이 주제에 관해서는 그냥 내가 느낀 그대로를 쓰면 그대로 봐주는 분들이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 제게 있었던 일들, 우리에게 일어났던 그 날의 일들을 썼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어찌보면 에세이 형식을 갖고 있는 거죠. 제 마음이 좀 많이 들어가 있고요. 화자도 저고요. 저도 평범한 시민 중 하나였고, 그 날을 힘들게 보낸 사람 중 하나였죠. 저는 우리 모두 평범한 날을 보냈고, 안도했고,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공통적으로 아파했고,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않나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형식으로 쓰게 된 거예요. 현실과 소설 사이의 경계를 밟고 제 마음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세요?


우리가 울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정말 길에서 줄줄 울면서 살진 않잖아요. 이 거리감을 잘 조절해야지 하면서도 소설 쓰면서 자주 울어요. 특히 「초」를 쓰면서 많이 울었는데요. 이 소설을 쓰고 나니까 정말 소설 쓰는 게 어려워졌어요. 소설이라는 건 그냥 쉽게, 재미있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소설을 보여주려면 스스로를 다잡고 써야겠구나, 그런 마음을 많이 느꼈어요.
살면서 지우고, 누르고 살아야 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꼭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지만 그러지 못해서 생각의 근육이 없는 분들에게 제 소설을 잠시 펼쳤을 때 ‘어쩌면 이런 걸 잊고 살아서 더 힘들었는지도 몰라, 누군가를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현재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뭐예요?


두 권의 소설을 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편하게 읽기가 힘들다는 의견을 들었어요. 그런 부분이 뭘까, 어떻게 하면 읽기 편하면서도 이해를 할 수 있게 할까, 하는 고민이 있고요. 저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묘사나 표현하는 데 비해 스토리가 잔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멈춰서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같이 헤쳐 나가듯이 빠져들어서 가는, 그런 변화무쌍한 소설을 쓰면 어떨까 생각을 해요.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다가 내릴 때가 되어 책갈피를 꽂았을 때 다음이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지는 소설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가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소설을 쓰는 게 지금 제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예요.

 

이제 막 손솔지 작가를 만난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좀 어려운데요.(웃음)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같은 고민을 하셨겠지만 저는 틀렸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이러면 안 되는데, 인정 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나로 살아야 하는데, 하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면서 자랐고 지금도 많이 하면서 살아요. 그런 생각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저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럴 수도 있어요. 실수하는 사람도 많고, 어쩌면 잘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거든요. 우리가 모두 스스로를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억압이 다른 곳으로 잘못 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남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슬픔을 스스로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요. 그리고 그럴 때 소설을 읽고요. 소설은 작가와의 소통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와의 소통이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지내면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손솔지 저 | 새움
기발한 서사, 낯선 상상력, 섬세한 묘사로 독자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아온 신인 작가가 그려낸 ‘우리’ 이야기, 『휘』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한 글자 제목의 소설 여덟 편이 실렸다. 작가는 한 글자가 가진 마법 같은 힘을 포착해 그것에 홀린 듯 이야기를 펼쳐낸다.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 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소리였다가 문장이었다가 인물이 되고 마침내 서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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