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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문 그리고 한자어와 한자 사이

최종희의 『열공 우리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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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한문은 엄연히 다릅니다. 한자어와 한문도 다릅니다. 그 차이점들을 들여다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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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한자와 한문


앞서, ‘사’ 자 뒤에 붙는 한자에 따라서, 각종 자격이나 직책의 성격이 구분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처럼 한자는 간단한 한 글자일 뿐인데도 그 의미가 무척 달라질 정도로 함축적입니다. 그만큼 쓸모도 많습니다.

 

지난해 한글날의 일입니다. 모 방송국에서 서울의 어느 대학교에 찾아가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을 한자로 써 보라고 하면서 그 결과를 방송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이른바 일류대라고 하는 학교였음에도, 그것을 바르게 쓴 학생들은 매우 드물었고, 모든 획을 정확하게 쓴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韓’은 그리다시피 해서 간신히 꿰맞춘 것까지도 정답 처리를 해주어서야 겨우 몇 사람이 합격(?)했습니다.

 

그때 답 쓰기를 포기했거나 제대로 쓰지 못한 학생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들이 나왔습니다. “한문은 어려워요.” “우리는 한문을 배우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을 大韓民國으로 적는 것은 한문을 쓰는 게 아니라 한자로 적는 것일 뿐입니다. 한자와 한문은 엄연히 다릅니다. 한자어와 한문도 다릅니다. 그 차이점들을 들여다보기로 하죠.

 

한자(漢字)는 중국에서 만들어 오늘날에도 쓰고 있는 ‘문자’를 말하는데, 일종의 표기 도구죠. 그 때문에 그걸 사용하는 국가마다 조금씩 서체가 다를 수도 있고 그걸 뭉뚱그려 이르는 말도 다릅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지안지’를 사용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일본식 약자체인 ‘신자체’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나름으로 만든 약자를 포함한 ‘통용 한자’를 제정하여 사용 중입니다. 즉,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자를 중국에서는 ‘지안지’체, 일본에서는 ‘신자체’라 하고 우리나라는 ‘통용 한자’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에는 그 나라에서만 사용되는 새로운 한자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한자에도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만 쓰고 있는 글자들도 제법 됩니다. 예를 들면 乭(돌)ㆍ串(곶)ㆍ畓(답)ㆍ垈(대)ㆍ洑(보)…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국산(?) 한자는 다른 나라에서 알아보지도 못하고,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바둑 선수 ‘이세돌’의 우리식 표기는 李世乭이지만, 중국에서는 선수 명단에 李世石으로 표기합니다. 乭이라는 한자가 중국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문(漢文)이란 ‘한자(漢字)만으로 쓰인 문장이나 문학’을 뜻합니다. 즉, 한글이 전혀 쓰이지 않는다는 점과 낱말이 아닌 문장(글)을 뜻한다는 두 가지 점이 특징이면서, 한자어와 구별되는 사항이기도 하죠.

 

한자어와 한문

 

한편 우리말에서의 한자어(漢字語)는 이러한 ‘한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말’인데, 그 표기는 한글로 하고 필요할 경우에만 괄호 안에 우리나라 식의 한자를 사용하여 한자 표기를 덧붙입니다(한자 병기). 즉,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한자어는 한글로 표기되므로(필요할 경우에만 한자를 부기) 한자로만 표기되는 한문과는 다르고, 우리말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한자어를 자칫 한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크게 잘못이죠. 위의 학생들처럼 그런 실수들이 잦은데,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한자어와 한문의 차이와 관련하여 좀 더 말씀드릴게요.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군요.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시 작품 중에도 제목이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게 있다는 것,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시죠?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가 바로 그것이랍니다.

 

한문으로 ‘산에 꽃이 있습니다.’를 표기하면 두 가지가 되는데요. ‘화재산(花在山)’과 ‘산유화(山有花)’가 그것이죠. ‘山有花’에서 주어가 뒤에 있는 것은 한문에서 동사 ‘있다’의 뜻을 나타내는 ‘有’는 어법상 주어가 도치되게 마련이어서 부사어구가 주어 앞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대 중국어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를테면 ‘책상 위에 사전 한 권이 있다’를 중국식 한문으로 적으면 ‘탁자상유일본사전’이 되는데 부사구 ‘책상 위’가 주어의 앞에 놓입니다. 반면, 동사를 ‘有’ 대신 ‘在’를 사용하면 주어가 도치되지 않아서 ‘花在山’이 됩니다.

 

따라서 ‘산유화’는 산에 있는 꽃, 즉 ‘산꽃(≒山花)’을 뜻하는 한자어 명사가 아니라, 시의 첫 구이기도 한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를 한문으로 요약/번역한 제목입니다. ‘산유화’라는 꽃 이름이 우리말에는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산꽃’을 뜻하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죠. ‘산꽃’을 뜻하는 한자어로는 ‘산화(山花)’만 있습니다. [단, ‘산유화’가 ‘메나리(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방에 전해 오는 농부가의 하나)’를 뜻할 때는 두 말이 동의어이며, 명사가 됩니다.]

 

이제 한자어와 한문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하시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지요?

 

우리말에서의 한자어의 위상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율이나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일반명사만 기준으로 하면 70% 이상이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한자어들을 익히는 데서 한자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한자를 모르고는 정확한 뜻풀이는커녕 우리말 공부를 하는 데에서도 지장이 많습니다. 심지어 소경이 문고리 잡듯 해야 할 때도 많다고 비유하는 이도 있지요. 

 

그러므로 한자어를 공부할 때 무조건 낱말을 암기하려 들기보다는 한자를 익히거나 관련 한자를 떠올려 보는 것이 요긴할 때가 많습니다. 그 낱말에 쓰이는 한자를 정확히 알고 있거나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올바른 낱말을 고를 수 있거나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가 빨라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가 아닌 우리 식의) 한자를 익히라는 말을 하는 것이랍니다.

 

손쉬운 예로, ‘성대묘사’는 ‘성대모사’의 잘못인데요. ‘모사(模寫)’는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거나 본을 떠서 똑같이 그림. 또는 원본을 베끼는 것’이고, ‘묘사(描寫)’는 ‘어떤 대상을 언어나 그림 따위로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로 다른 사람이나 동물을 흉내 내는 것은 ‘묘사’가 아니라 ‘모사’여야 한다는 걸 한자 뜻풀이를 통하면 비교적 손쉽게,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에 한자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모사(模寫)’에 사용된 한자 ‘模’가 베끼거나 본뜨거나 흉내 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다음과 같은 수많은 관련어들의 익힘이나 추론과 활용, 나아가 전문어의 신어 조어에서도 매우 편리해진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모형(模型/模形) : 실물을 모방하여 만든 물건. ⇒모형도(模型圖)/모형판(模型板)/모형기(模型機)/모형선(模型船)/모형화(模型化)/모형실험(模型實驗)≒모의실험/모형시험조(模型試驗槽)/모형무대(模型舞臺)/모형계기분석(模型繼起分析)≒인과순환분석(因果循環分析)
모범(模範) : 본받아 배울 만한 대상. ⇒모범생/모범수(模範囚)/모범적(模範的)/모범림(模範林)/모범촌(模範村)/모범상(模範賞)/모범택시(模範taxi)/모범학교(模範學校)
모방(模倣) :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 ⇒모방자(模倣者)/모방작(模倣作)/모방설(模倣說)/모방색(模倣色)/모방주의/모방예술/모방유희(模倣遊戱)
모의(模擬) : 실제의 것을 흉내 내어 그대로 해 봄. 또는 그런 일. ⇒모의점(模擬店)/모의총(模擬銃)/모의탄(模擬彈)/모의전(模擬戰)/모의고사(模擬考査)≒모의시험(模擬試驗)/모의실험(模擬實驗)/모의국회(模擬國會)/모의재판(模擬裁判)/모의수업(模擬授業)/모의송전선(模擬送電線)
모작(模作)≒모제(模製/摸製)  : 남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듦. 또는 그 작품.
모창(模唱) : 남의 노래를 흉내 내는 일.
모조(模造) :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본떠서 만듦. 또는 그런 것. ⇒모조품(模造品)/모조석(模造石)≒인조석(人造石)/모조지(模造紙)/모조금(模造金)/모조백금(模造白金)/모조진주(模造眞珠)
모각(模刻) : 이미 있는 조각 작품을 보고 그대로 본떠 새김. ⇒모각본(模刻本)
모상(模像) : 모방하여 만든 상.
모법(模法) : 방법을 본뜸.

 

‘이용(利用)’이란 말을 오용/악용 말고, 함부로 변용하지도 말자

 

한자어의 다양한 활용력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손쉬운 한자인 ‘쓸 용(用)’이 들어간 말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가장 흔한 이용(利用)이 있습니다. 본래 이롭게 씀을 뜻하는 말입니다. 조선시대의 실학을 규정할 때면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와 이용후생(利用厚生.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국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이란 말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데요. 그때의 이용후생(利用厚生)에서 쓰인 것과 같은 좋은 의미의 말입니다. 무척 유용(有用)한 말이기도 하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말이 ‘그럴 때만 나를 이용하려 드는 나쁜 사람’과 같은 데서처럼, ‘다른 사람/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씀’을 뜻으로 말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본래 좋은 뜻의 말이 아주 나쁜 뜻의 말로 바뀌어 쓰이게 된 거죠. 지금은 본디 뜻보다도 변형된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듯도 합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 역시 그 활용(活用. 충분히 잘 이용함)에 있어서 제대로 잘 선용(善用. 알맞게 쓰거나 좋은 일에 씀. ‘바르게 씀’으로 순화)해야 합니다. 오용(誤用. 잘못 사용함)되거나 남용(濫用. ①일정한 기준/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 ②권리/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되어서도 안 되겠고요. 영어에서도 ‘오용’과 ‘남용’을 구별하기 위하여 ‘-use’ 뒤에 각각 다른 접두어를 붙여서, ‘misuse’와 ‘abuse’로 달리 쓰고 있지요. 아동 학대를 ‘child abuse’라 하는 것처럼요.

 

언어생활에서 잘못된 말인 줄도 모르고 난용(亂用. 정해진 용도의 범위를 벗어나 아무 데나 함부로 씀)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나쁜 뜻으로 변용되어 쓰이는 말인 줄도 모른 채 그런 말들을 과용(過用. 정도에 지나치게 씀)하게 되면, 생각 없이 사는 일로 손쉽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언어 앞에서 이따금 차렷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그래서도 필요하지요. 그런 일은 뜻밖으로 우리의 내면에 즐거운 긴장을 더하기도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낱말 정리] ‘-용(用)’이 쓰인 말들
이용(利用) : ①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②다른 사람/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씀.
유용(有用) : 쓸모가 있음.
유용(流用) : ①남의 것이나 다른 곳에 쓰기로 되어 있는 것을 다른 데로 돌려씀. ②세출 예산에 정한 부(部)/관(款)/항(項)/목(目)/절(節)의 구분 가운데 목과 절의  경비에 관하여 각각 상호 간에 다른 데로 돌려쓰는 일.
활용(活用) :  충분히 잘 이용함
선용(善用) :  알맞게 쓰거나 좋은 일에 씀. ‘바르게 씀’으로 순화
오용(誤用) : 잘못 사용함.
남용(濫用) :  ①일정한 기준/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 ②권리/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
난용(亂用) : 정해진 용도의 범위를 벗어나 아무 데나 함부로 씀
과용(過用) : 정도에 지나치게 씀


 

 

열공 우리말최종희 저 | 원더박스
『열공 우리말』은 우리말에 대한 13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1천여 표제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그 표제어와 분류별, 유형별, 실생활 사용례별로 연관된 1만2천여 단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설명한 우리말 어휘 공부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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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종희

“언어는 그 사람”이라는 소신을 지닌 우리말 연구가이다.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 대표이며, 경기교육청 ‘학교로 찾아가는 인문학’ 강사이다. 충남 서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퇴직하고 나서 꼬박 5년을 바쳐 완성한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은 현재 국립도서관에 “마지막으로 납본된” 중대형 종이 사전이 되었다. 『박근혜의 말』, 『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워크북』, 『내가 따뜻한 이유』(공저) 등을 썼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셀프 혁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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