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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글징글한 내 새끼

『싯다르타』 아들은 내 삶의 장애일까, 혹은 기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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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들의 그 다가옴이 너무 기쁘고 고맙고 대견했던 것이다. 자식에게 눈 멀은 고슴도치 부정(父情)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비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그는 이 사랑이, 자기 아들에 대한 이 맹목적인 사랑이, 일종의 번뇌요, 매우 인간적인 어떤 것이라는 사실과, 또한 이 사랑이 윤회요, 흐릿한 슬픔의 원천이요, 시커먼 강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와 동시에, 그 사랑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랑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자신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느꼈다. 이러한 쾌락도 만족시키고 싶었으며, 이러한 고통도 맛보고 싶었으며, 이런 어리석은 짓도 저질러보고 싶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179 쪽

 

1.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고 2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뭐하세요?” 라는 형식적인 질문에, “뭐하긴, 일하지”라고 또한 형식적인 답을 했지만 그 사이에 내 머릿속에는 생전 전화 한 통 없던 아들의 이 살가운 저의를 추리하고 있었다. 용돈이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무슨 사고라도 친 것일까, 두 가지를 빠르게 생각했으나, “아빠, 지금 학교에 와 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말에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았다.

 

친구와 싸웠다고 했다. 친구는 아버지가 병원에 데리고 갔고 경찰서에 신고한다는 말도 했다고 전한다. 아들은 말을 더듬고 조금은 떨고 있었다. 서로 얼마나 다쳤는지를 물었고,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말에 우선은 안도하며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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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드라마 <통 메모리즈>의  한 장면


강변북로는 봄으로 화사했으나 마음이 지옥이니 길가에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몇 년의 방황 끝에 또래보다 일년 늦게 2학년이 되었다. 작년에는 아침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아이가 잘 일어나서 학교를 가면 천국, 그렇지 않으면 지옥이었다. 다행히 1학기보다는 2학기가 출석률이 좋았고, 올해는 단 한번의 지각도 없이 학교를 가는 것이 그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교무실에 있었다.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두 녀석이 쓴 진술서도 봤다. 아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둘이 몸싸움을 했다. 그 과정에 아들은 가슴이 밀렸고 친구는 목이 긁혔다. 선생님은 말했다. 아이들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저쪽 부모님이 몹시 화가 나셔서 강경한 조치를 원합니다. 선생님에게 이유가 무엇이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아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차 안에서 아들은 억울하다고 했고, 전학이나 경찰서에 가야 하는지를 불안해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들은 좀 더 차분해졌고, 아들의 불안감을 달래줬고,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한 후 사과를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아이를 다시 학교에 데려다 주고 회사로 가는 길에 아이 친구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 분 역시 속상하고 놀랐을 거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더 속상했다. 얼마 후에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빠, 선생님이 걱정하지 말래요. 친구에게 먼저 욕한 것을 사과하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변북로의 벚꽃이 이제야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몇 시간 동안의 걱정과 불안이 잘 해결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선생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얼굴 한 번 본 적없는 아들 친구의 아버지에게 죄인처럼 잘못을 빌 때, 부아도 치밀었고 자존심도 상했으며 자식 새끼 낳아서 이런 뒷치닥거리를 하는 내 팔자가 한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의 방황이 한창일 때, 쉼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찾아간 부모를 외면하던 아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자기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부모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 애가 이제 혹시라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될까 봐 겁내 하며, 아버지에게 SOS를 치고 있다. 나는 아들의 그 다가옴이 너무 기쁘고 고맙고 대견했던 것이다. 자식에게 눈 멀은 고슴도치 부정(父情)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

 

1922년에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싯다르타』는 종교적 성장 소설이다. 실제 붓다의 출가 전 이름을 제목으로 가지고 왔고,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헷세의 ‘싯다르타’와 붓다 ‘싯다르타’는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

 

붓다가 왕자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고 6년의 고행 끝에 그 한계를 절감한 후 수행과 명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 설법했다면 헷세의 ‘싯다르타’는 훨씬 다이나믹하다.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자아를 찾아 친구와 집을 나가고 사문들과 함께 지내며 실제 붓다를 만나기도 했으나 진리는 가르침이 아닌 경험 속에서 체득되야 한다며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카말라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육체적 쾌락에 빠지기도 하고 장사꾼이 되어서 도박과 향락에 빠지지만 그것의 허무함을 깨닫고 뱃사공이 된다. 강에서 명상하며 현상의 양면성과 시간의 일체성 등을 깨닫는데, 이쯤 되면 헷세의 ‘싯다르타’는 불교의 무상함과 도교의 무위자연, 기독교의 사랑과 칸트의 경험주의를 총 망라한 인물이 되는 셈이다.

 

특히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붓다 ‘싯다르타’와 헷세 ‘싯다르타’가 아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점인데 16세에 결혼을 한 붓다는 자신의 출가에 장애가 되는 존재라며 아들의 이름을 장애라는 뜻을 가진 ‘라훌라’라고 지었다. 반면 헷세의 ‘싯다르타’는 아들 바보다.

 

열한 살 먹은 아들을 다시 만났을 때, 아들은 아버지를 거부하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반항한다. 아버지는 그것을 기꺼이 다 받아낸다. 살면서 무언가에 완전히 빠지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들 때문에 싯다르타는 어린애 같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들은 집을 나가고, 싯다르타는 아들을 찾아 숲을 헤매고, 아들을 그리워하며 그 상처로 사는 존재가 헷세의 ‘싯타르타’다.

 

3.

 

소설을 읽은 후 문득 이렇게 자문한다.

 

사고를 치고 아빠를 놀라게 하는 아들은 내 삶의 장애일까, 혹은 기쁨일까.

 

돌이켜보면 태어나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온전히 기쁨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지금까지는 기쁨보다 한숨과 고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아들이 없을 때, 저 웬수를 낳아서 내 삶이 이리 장애롭구나, 라며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딱 들어서는 순간, 그 얼굴을 슬쩍 보는 순간, 장애는 사라지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안쓰러움이 먼저 생기며 사계절 내내 애비 마음에 꽃봉오리를 팡 하고 터트리게 하는 것, 그게 새끼라는 이름의 요물이지 싶다. 아주 징글징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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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박병덕> 역7,2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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