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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희 “살아갈수록 언어를 사랑하게 되는 것”

소설가 방현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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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수록 언어를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소설가의 일인 것일까. 살아갈수록 소설이 애틋해지고, 소설을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그것이 소설가로 살아가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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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이든 언어로 옮기려하면 불완전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생각이든 언어로 옮겨놓으면 확실해진다. 언어는 언어와 침묵으로 나뉜다. 언어의 끝은 침묵이고 시작도 침묵이다. 언어는 침묵에서 비롯된다. 자기가 태어난 세상이니 언어만큼 침묵을 잘 알 수 있는 것도 없을 테다. 침묵만큼 무한하고 많은 것을 품고 있는 것이 또 있으랴. 그러나 언어로 새겨지는 침묵이어야 비로소 침묵이 되는 것.


어떤 나방은 잠든 새의 눈물을 먹는다. 사위는 어두워야 하고, 새는 잠들어 있어야 하고, 나방은 그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핥아먹어야 한다. 나는 때로 이런 의미부여가 신물 나지만, 또한 그 이미지 없이 우리가 어떤 쾌감과 어떤 슬픔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먹는다 한들, 그것을 언어로 옮기지 않았다면 그 이미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 그것들은 다 침묵이었으리. 그것들은 모두 잠든 우주의 일이었으리. 나방이 눈물을 핥아먹지 않았다면 소설은 태어날 수 없으리. 살아갈수록 언어를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소설가의 일인 것일까.


살아갈수록 소설이 애틋해지고, 소설을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그것이 소설가로 살아가는 일일까.


소설 하나를 끝내기 직전, 다른 소설을 생각한다. 그 하나의 소설에서 하지 못했던 언어들이 또 하나의 소설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의 슬픔은 타인의 슬픔에 가닿고 타인의 슬픔은 내게 그 슬픔에 깊이 침잠하게 만든다. 그렇게 깊이 빠져있는 동안 나는 새로운 소설을 꼼지락꼼지락 주무르고 있다. 다음 소설은 아마도 모든 것에 실패하고 지방의 낡은 호텔에 숨어든 여자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명사의 추천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권상미 역 | 문학동네

타고난 대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자애롭지 못하고 배려도 없으며 포악스러운 사랑은 비록 어머니의 사랑이어도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우리 역시 모두들 그렇게 고귀한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천대받는 사랑이어도 자신에게는 절실하다는 것. 그리고 절실한 사랑은 어떻게든 타인에게 가서 닿는다는 것.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저/김현우 역 | 반비

얼음 폭풍 속에서 아사한 친척(남편과 아이들)을 먹고 살아난 이누이트족의 아타구타룩. 백 년이 지나 아타구타룩을 이야기하고 또 백 년이 지나 아타구타룩을 이야기하는 우리. 삶의 고독함과 죽음의 연대에 관한 에세이.

 

 

 

 

 

 

 

H서류
이스마일 카다레 저/박철화 역 | 문학동네

'기대'가 만들어낸 '거짓'과 '환상'. 그러나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억압과 통제, 감시 시스템을 통해 드러내는 블랙 유머의 전형.

 

 

 

 

 

 

 

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저/정영목 역 | 문학동네

모든 소년은 부모와 불화해야 한다는 명제를 유쾌하게 보여준 소설. 한 민족의 역사와 관습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에 저항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조롱과 풍자를 제대로 보여준 소설.

 

 

 

 

 

영화

 

바벨 2006
William Bradley Pitt/Cate Blanchett | 미라지 엔터테인먼트

언어의 불통에 관한 통렬한 깨달음을 주는 영화. 서로 말을 하고 있으나 전혀 말을 하고 있지 않은 관계들.

 

 

 

 

 

 

 

로렌스 애니웨이
자비에 돌란 / 멜비 푸포, 쉬잔느 클레먼트 | 하은미디어

내가 오래도록 천착해왔던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의 경계'를 허무는 영화. 성의 외피를 바꾸어도 사랑을 버릴 수는 없는 사랑.

 

 

 

 

 

 

 

고하토
오시마 나기사/기타노 다케시,마츠다 류헤이,아사노 타타노부

감독이 휠체어 앉아 연출한 영화. 살해욕망을 지닌 아름다운 남성과 그를 둘러싼 남자들의 사랑과 죽음. 남자들 간의 맹혈이란 어쩌면 우정이나 이념만이 아니라 찐득찐득한 애정이 깃들어 있을 때 가능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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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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