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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카뮈, 두 천재의 만남- 뮤지컬 <페스트>

부조리한 세상에서 피어난 희망의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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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가득 메우는 음악들은 왜 서태지인가, 에 대한 의문은 말끔히 해소 시켜주었다.

무대12.JPG

 

 

왜 페스트 인가


뮤지컬 <페스트>는 개막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알베르 카뮈의 만남이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충분했다. 서태지의 노래들과 알베르 카뮈의 소설이 보여 줄 신선하고 참신한 새로운 작품을 모두가 기대했고 기다렸다. 하지만 많은 기대와 주목이 무색할 만큼 <페스트>는 다소 아쉬운 완성도를 보이며 그 모습을 드러냈고, 기대를 충족 시키지 못했다.

 

뮤지컬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동명의 소설 페스트』의 큰 줄기만 가져오고, 많은 부분을 새로 각색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극 의 배경이다. 소설 페스트』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이후지만, 뮤지컬 <페스트>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80여년이 지난 2096년이다. <페스트>가 그리는 2096년의 미래에는 전 세계가 하나의 도시인 오랑시티로 통일 되고, 국가가 개인의 감정과 생활 등 모든 것을 100%로 통제한다. 시민들은 누구 하나 반발하지 않고 국가의 시스템에 순응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 도시에 갑자기 페스트가 창궐하게 되고, 그들이 믿고 따르던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랑 시민들은 난생 처음 겪는 전염병 앞에 혼란스러워 하고, 조금씩 비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탐욕에 가득 찬 기득권자들은 시민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할 뿐이다. 그런 고난 속에서 시립병원 원장인 리유와 식물학자 타루, 기자 랑베르는 함께 페스트와 맞서 싸우고, 결국 오랑 시민들 역시 그들을 도와 시련을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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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멀지 않은 미래에, 전 세계가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되고, 사람들은 100%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다는 <페스트>의 설정은 다소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이다. 완벽하게 첨단화 된 미래에서 쥐를 통해 발병하는 페스트가 대체 왜, 어떻게, 나타나게 된 건지, 가장 기본적인 시작부터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기본적인 토대가 흔들리면서 전체적인 극의 흐름은 부자연스러워 지고, 온전히 작품에 몰입하는 게 힘들다. 캐릭터 설정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특히 리유와 타루의 러브라인은 극의 개연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이쯤 되면 굳이 카뮈의 페스트』를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 마저 든다.

 

배경 구현에 제한적인 공연의 특성상, 미래라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미니멀하고 세련된 무대 세트와, 다양한 영상의 활용을 통해 최대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그 느낌이 100%로 와 닿지 않는다. 왜 2096년이라는 배경을 택했는가, 라는 의문은 극을 보는 내내 해소 되지 않아 찝찝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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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태지인가

 

기존에 있던 곡으로 뮤지컬 넘버를 구성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래라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가 쉽고, 몰입도 또한 높여줄 수 있다. 하지만 노래와 스토리의 연결이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 어색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과감하게 서태지의 노래들로 넘버를 구성한 뮤지컬 <페스트>는, 아쉽게도 주크박스 뮤지컬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부각시켰다.

 

물론 ‘너에게’, ‘시대유감’, ‘코마’, ‘라이브 와이어’ 등 주옥 같은 서태지의 노래들은 그 자체만으로 큰 울림을 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웅장하고 묵직하게 극장을 가득 메우는 음악들은 왜 서태지인가, 에 대한 의문은 말끔히 해소 시켜주었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음악과 스토리는 좀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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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1막의 중반부분과 2막의 초반, 그러니까 전체적인 극의 중심부였다. 음악과 스토리의 연결도, 인물들의 감정 변화도 자연스러웠다. 단체곡은 압도적이었고 진한 여운과 함께 감정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2막의 중반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빈약한 스토리가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 풀어나가야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들은 랑베르의 대사 몇 마디로 허무하게 전달됐고, 제대로 된 결말도 없이 급하게 끝을 맺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 드러난 인간 군상에 대한 세밀하고 날카로운 묘사나 진중한 사유가 충분히 녹아 들지 못한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페스트>는 개연성 없는 스토리, 설득력 없는 인물들간의 관계 등 다소 부족한 완성도로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화려한 무대 세트나 다양한 효과, 중독성 있는 넘버 등 몇 가지 내세울 만한 요소들 역시 가지고 있다. 충분한 고민과 보완을 통해, 보다 탄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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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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