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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매료된 재능, 카일 크래프트

카일 크래프트(Kyle Craft) <Dolls of Hig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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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리는 선율과 풍성한 편곡, 여러 이야기, 다채로운 트랙리스트가 주는 멋의 존재는 크고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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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향수가 물씬 풍겨온다. 앨범에는 카일 크래프트가 동경하는 밥 딜런과 데이비드 보위, 그들과 같은 시대에 함께 음악을 했던 더 밴드와 모트 더 후플, 심지어 엘튼 존까지도 담겨있다. 루이지애나 출신의 이 젊은 아티스트는 자신의 우상들이 오래 전 만들었던 포크와 리듬 앤 블루스, 로큰롤, 글램 록을 첫 정규음반에 매만져 쏟아 놓는다. 그렇기에 <Dolls Of Highland>라 이름 붙은 이 앨범은 어쩌면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송라이팅과 사운드 메이킹에 고전적인 작법들이 곳곳에 가득 들어있다. 1989년도라는 아티스트의 출생 년도를 제외하고 본다면 2010년대에 만들어진 레트로 작품이라는 표현보다도 1970년대에서 건너온 빈티지 작품이라는 표현이 음반을 수식하기에 더 적합해 보이기도 하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Dolls Of Highland>는 과거의 앨범들과 함께 산더미 같이 쌓인 옛 정취 속으로 섞여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카일 크래프트와 그가 만든 작품은 현대적 감성을 너무도 쉽게 지나쳐간다. 트랙리스트 여기저기에 끼워 넣은 홍키 통크 피아노, 크런치 톤 기타, 빈티지 오르간, 하모니카와 같은 악기들서부터 포크, 컨트리, 리듬 앤 블루스의 전형에 충실한 멜로디와 코드에다, 약간의 리버브 톤을 더해 만들어낸 음반 전반의 옛스러운 사운드 필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구성 요소들이 오랜 스타일의 복각과 견인에 충실해있다. 까칠한 목소리로 한껏 소리쳐대는 보컬 스타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세련과는 거리가 멀어 오늘날의 무언가가 끼어 들 틈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1970년대의 문법으로 써낸 음반에는 구시대의 흥취만이 가득하다. 홍키 통크의 컨트리로 시곗바늘을 한참 돌려 앨범의 포문을 여는 「Eye of hurricane」은 작품의 시작점에서 <Dolls Of Highland> 전반의 사운드 컬러를 잘 설명한다.

 

그러나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지나쳐 버리기에 <Dolls Of Highland>는 아쉬운 작품이다. 괜찮은 재능을 가진 싱어송라이터가 만든 음악은 실로 듣기에 괜찮다. 편곡과 스타일링을 통해 쌓아놓은 묵은 먼지와 텁텁한 공기 아래에는 아티스트가 써낸 듣기 좋은 멜로디들이 자리해있고 여러 이야기를 담은 흥미로운 가사들이 위치해있다. 카일 크래프트는 온갖 매력으로 가득한 곡들로 트랙리스트를 빼곡하게 채운다. 로킹한 컨트리 사운드를 내세운 와중에서도 조금은 음울한 텍스트로 서정성 또한 충분히 강조하는 「Eye of a hurricane」과 「Berlin」, 브라스가 함께하는 풍성한 사운드와 고독한 가사를 병치해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Gloom girl」, 동화 같은 스토리텔링이 담긴 「Black Mary」, 「Jane beat the reaper」, 울림 가득한 오르간과 드럼 사운드를 통해 정경을 그려내는 「Trinidad beach (before I ride)」 등의 아름다운 노래들이 쉬지 않고 등장한다.

 

놓치기 쉬운 수작이다. 첨단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자칫 구시대의 유물로 보일 수도 있겠고 골동품 애호가들에게는 까딱하면 큰 매력 없는 모작으로도 보일 수 있겠다. 고전에 경도하고 복고를 천착할 때 생기는 위험이 앨범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그 위험이 <Dolls Of Highland>의 장점을 다 가리지는 못 한다. 잘 들리는 선율과 풍성한 편곡, 여러 이야기, 다채로운 트랙리스트가 주는 멋의 존재는 크고 분명하다. 이 앨범은 우려보다 찬사를 더 많이 따를 작품이다. 1970년대에 매료된 젊은 재능이 근사한 결과물을 내보였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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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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