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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연애가 판치는 세상에 비연애를 허하라”

『연애하지 않을 자유』펴내 연애/연애 아님의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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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가 너무 쉽게 사귀는 거와 아닌 거, 썸인 거와 아닌 걸로 갈라서 분리하려는 시도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많은 이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특히 20대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하면 습관적으로 ‘남자친구/여자친구 있어요?’를 상대방에게 물어본다.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알기 위해 먼저 물어보는 정보가 그 사람의 연애 여부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 TV에서는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가 같이 얘기만 해도 서둘러 커플 탄생을 축하하고 지나가는 강아지도 성별을 확인 후에 다른 성별끼리 붙어있으면 CG로 분홍빛 하트를 박아 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만인에 의한 대(大)연애의 시대다.


<채널예스> 칼럼을 연재하기도 한 국내 최초 ‘비연애 칼럼니스트’ 이진송은 솔로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존중하며 말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 <계간 홀로>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처음 300부로 시작한 독립출판물은 크라우드 펀딩 후원을 받으며 부수가 점점 늘어났고, 최근에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라는 책도 출간했다.


책 제목을 놓고 보면 연애하기 싫어하는, 혹은 연애를 못하는 사람의 연애 거부 선언 같지만 인터뷰 내내 이진송 저자는 오히려 ‘자유로운 연애’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란 연애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규정한 연애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날리는 일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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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곧 연애할 자유

 

제목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까요. 연애하지 않을 자유라고 하는데, 누가 하지 말라고 했냐는 식으로 딴지를 걸어올 수도 있을 텐데요. 책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서 따 온 문장이에요. <계간 홀로>의 부제이자 <한겨례21> 칼럼의 제목이기도 했고요. 예전에 저는 연애를 하려는 적극적인 액션을 전혀 취하지 않았는데, 연애 전략서나 자기계발서를 보면 제 상태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누워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게으른 상태로 묘사를 하더라고요. 하지 않는 것도 실천의 일부인데, 왜 항상 뭔가를 안 하는 건 항상 게으르거나 못 하고 낙오됐다고 이야기를 하나 의문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할 자유만 이야기를 해 왔는데, 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할 자유는 또 다른 강요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연애에 대한 오지랖은 특히 20대라면 매일같이 듣고 경험합니다. 비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있었나요?


여자가 25살까지 한 번도 연애를 안 하면 학이 된다는 농담이 있어요. 그전까지 저는 연애를 안 해도 제 자신에게 문제가 전혀 없었거든요. 제 친구들도 굳이 연애하라고 구박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부모님까지 포함해 바깥에서는 연애를 안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온도차를 많이 느꼈죠. 친구들끼리 사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공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독립잡지가 여기저기 생길 무렵이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준비하고 만들기 시작했죠.


혼자 만들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초반에는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아트 디렉터들을 모셨는데 잘 안됐어요. 이러다가는 못 내겠다 싶어서 편집은 아예 제가 맡고 원고는 초반에 지인에게 많이 ‘뜯었어요’.


잡지를 내고 반응은 어땠나요?


반응은 미미했죠. 300부를 신촌 주변에 뿌리고 인증샷도 받고 설렜는데 2호는 크라우드 펀딩에 실패했어요. 3호는 펀딩에 성공해 버리는 바람에 열심히 만들었죠(웃음). 그 이후에 논문 쓰면서 적당히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립잡지라는 게 안 나오면 그만이고 도서 출판 등록도 안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계속해서 연애 관련해서 이슈가 생기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니까 성질이 뻗쳐서 안되겠다 하고 다시 만들었죠.


잡지 발간부터 칼럼 연재, 책 출간까지. 3년 동안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기 지겹지 않으셨나요?


기고가 늘어나면 질리고 소모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면 계속 이야기할 게 생기는 거예요. 하다못해 오늘도 열애설이 터진 연예인 당사자가 실시간 검색어 1위였는데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도대체 남의 연애가 뭐라고 전 국민이 총동원해서 알아야 하고 온종일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계속해서 새롭게 이야기할 거리가 생긴다는 점에서도 연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거든요. 특히 작년에는 데이트 폭력이 가시화됐잖아요. 그 전부터 주변에 이상한 상황이 많았어요. 좋아서 만나는 건데 남자가 노예 부리듯한다든가, 남녀 공학을 다니는 친구들이 알려주는 미묘한 폭력들, 물리적으로 때리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그 애를 찍었다고 집단에 소문을 내면서 당사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게 다 연애와 관련해 미시적으로 뻗어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릴 때에도 엄마나 선생님에게 누군가 괴롭힌다고 하면 쟤가 너 좋아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게 너무 열이 받는 거예요. 칼럼을 쓴 적도 있어요. (이진송의 칼럼 “좋아해서 그래” 편 보러가기) 연애 이야기만 해도 끝없이 연관된 주제가 나오다보니, 앞으로도 한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황이 변하지 않는데서 오는 피로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폭력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늘 하지만 계속해서 데이트 폭력 기사가 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물론 요새 들어서 더 극성이긴 해요. 그런데도 지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해요. 같은 기사가 계속 나오지만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거든요. 하나하나 파서 피곤하게 만드는 거죠. 작년이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불쾌하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가는 흐름이었다면, 최근 문제가 되는 기사는 공론화되고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흐름이 가능해졌다는 측면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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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연애가 인정되는 그 날까지

 

빠순이의 ‘덕질’을 유사 연애관계로 보지 말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이돌이나 배우를 좋아할 경우 유사 연애 관계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빠순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할 때 오로지 유사 연애 관계로만 생각해요. 연애를 못하는 애들이 환상 속에 빠져서 남자친구의 역할을 그 사람에게 아웃소싱한다고 생각하는데, 덕질을 하나로 단일화할 순 없어요. 사람들이 연예인이 열애설이 터져서 빠순이들이 탈덕을 하거나 실망하면 ‘그래봤자 너네랑 사귈 거 아닌데 착각하더니 꼴 좋다’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데,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협업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고, 본인이 보고 싶은 대상의 모습이 연애하는 실제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고, 욕망이 다양해요. 연예인을 좋아하는 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대상을 어머니같이 서포트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게 반드시 에로스라고 생각하는 연애 감정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덕질에도 이 개념이 통용되는 거죠.


작가님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누군가요?


남자 아이돌 좋아하지만 남자로서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요. 엄밀히 좀 달라요. 저는 특히 하얗고 작은, 소동물 같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해요. 우리나라 남자들 중 예쁜 남자라는 게 없잖아요. 꾸미는 거 자체를 비남성적으로 여기고 피해야 하고, 계집애 같다는 건 치명적인 남성성의 훼손인데, 저는 예쁜 남자들이나 자기들이 예쁜 걸 즐기는 남자들을 보면 그게 너무 재밌고 좋은 거예요. 흔히 말하는 남성성이랑 다른 행동이나 외모가 보존되고 존중되는 직업은 거의 연예계밖에 없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 여자 아이돌 중에서도 무대 밖에서는 평범하지만 무대만 올라가면 자아가 바뀐 것처럼 빛나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런 걸 보면 제가 평생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니까 경외하는 심정으로 보는 거죠.


연애하지 않을 자유가 누구에게나 가리지 않고, 특히 남자분들에게도 필요한 이유를 말해주신다면요?


에바 일루즈는 연애 시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모두 남자의 인정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물론 여자도 이성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가 성적 대상화의 의미로 중요하지만, 남성의 경우 연애 경험은 그 사람의 능력을 입증하는 거예요. 남자들 사이에서는 연애 여부와 연애 경험의 풍부함이 남성성의 입증이고 서열의 기준이 되고요.


특히 연애를 많이 안 한 남자분들하고 대화를 해 보면 콘서트에 한 번도 안 가봤다거나,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 본 적이 없다거나, 자기 옷을 자기가 직접 오프라인에서 사 본 적이 없다거나 하는 의외로 평범한 경험이 없는 분이 많아요. 연인들을 위한 장소라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공간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남자가 그런 문화를 혼자 즐기는 건 남성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분위기 때문도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남자가, 여자가 연애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도식에 갇혀 있을수록 그게 자기와 일치하지 않으면 괴롭거든요. 연애를 하지 않는 게 너무 큰 사건이 되다 보니까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억하심정 같은 것도 있고요.


저는 최근 10년 사이 심해진 여성 혐오 현상에는 어느 정도 연애지상주의의 문제도 있다고 봐요. 누군가 내가 구애를 했는데 거절하면 내가 저 사람 취향이 아니구나, 정도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 거죠. 이것도 에바 일루즈가 현대적인 특징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적인 관계와 자기 정체성을 엮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모욕감을 느끼고, 여자들이 선택한 남자들의 조건을 보고 그 여자한테 조건을 보는 김치녀라는 식으로 엮어서 욕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연애를 남성, 여성의 특성으로 이분해서 일반화할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의 특성을 먼저 보고, 그 사람이 만약에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했을 때는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일 뿐이지, 자기가 그 취향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욕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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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분들이 상처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연애 관계가 위계적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보다 낮은 계급의, 나에게 있어 거절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거절했다는 느낌인 거잖아요.


대중가요에서도 ‘내가 이렇게 많이 좋아하는데’ 식으로 불리는 가사가 많아요. 구애 서사를 보면 상대방이 그걸 원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집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방식이 자신의 순정을 입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자기도 연애 상대를 고르고 탐색하고 평가할 수 있다면 상대방도 같은 입장이 될 수 있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오해하실 분들을 위해 사족을 붙여야 돼요. ‘모든 남자들이 그런 건 아니다.’


계속 얘기하기 조심스럽긴 한데, 여자 솔로랑 남자 솔로의 결이 다르긴 해요. 평생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을 살피도록 훈육된 여자와, 다른 방식으로 교육된 남성은 아무래도 다르죠. 제가 이렇게 낙인을 찍어버리면 이것도 차별이 되기 때문에 말하기는 어려운데, 연애 전략서도 대개 여자들 대상이거든요. 서점 가서 보면 여자들 대상으로만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쳐 주고, 남자들 대상으로는 주로 픽업 아티스트류의 책이 많이 나와요. 어떻게 하면 빨리 원나잇으로 진도를 뺄 수 있는지 알려준다는 책들. 그래서 저는 ‘여자어’라고 매일 조롱당하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류의 농담을 싫어해요. 사실 감정 노동은 오히려 여자분들이 더 하고 있거든요.


다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요즘에 동아리에 놀러 가면 스무 살, 스물한 살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매일 외롭다고 얘기하는데, 왠지 만나야 될 것 같아서, 장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게 평가해서 만나보라는 주변 말 때문에 덥석 만나지 말라고 해요. 안 그래도 괜찮으니까, 안 만나도 괜찮으니까, 네가 진짜 좋은 사람이랑 만나라.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그러다가 서른 되고 노처녀 된다고 겁을 줬잖아요. 사실 모두가 경험이 있겠지만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견딜 수 있는 지점과 견딜 수 없는 지점이 있는데, 굳이 견딜 수 없는 지점을 눌러가면서 자신을 연애의 장에 나가라고 밀어낼 필요가 있나? 그냥 이 비연애상태를 즐기면 안 되나?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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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왜 이렇게 모두가 연애를 강조하고 장려하는 걸까요?


연애를 제외한 사회적 관계가 다 파편화되고 불안정해지니까 무조건적인 자기 편, 언제든 시시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무 살 초중반에 제가 항상 연애를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사람은 그냥 여자친구라는 표상이 필요한 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 자리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들어가도 상관없겠구나, 이 사람은 적당하니까 만나는 거구나 싶었어요.


미디어나 이런 데에서 솔로를 희화화하고 불쌍한 존재처럼 만드는 걸 대한 영향도 많은 것 같아요. 솔로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사람들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나는 솔로인데 먼저 눈물 좀 닦고’, ‘울지 말고 얘기해 봐’ 이런 반응을 먼저 보여요. 한 발짝 쉬어서 생각을 해 보면 우리의 슬픔과 기쁨은 굉장히 유동적이고 연애를 하는 사람도 외롭고 안 하는 사람도 행복하고 충만할 때가 있는데 항상 연애는 행복, 비연애는 짠하고 불쌍하다는 도식으로 나누거든요.


저번에 친구를 만나러 지방에 내려갔는데 친구가 차를 태워서 교외 레스토랑으로 데려갔어요. 교외 레스토랑이니까 커플밖에 없었거든요. 제가 들어가서 아무 생각 없이 다들 데이트하네, 했더니 친구가 갑자기 반사적으로 괜찮아, 우린 둘 다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당당해, 기죽지 말자,라는 거예요. 그것도 이상해요. 그러면 연애를 안 하는 사람들은 그런데 가면 내심 기죽어 있어야 하나? 그런 사소한 일상에 숨어져 있는 것들이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옥죄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애의 장이 아닌 다른 공간이나 다른 관계의 장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맞아요. 연애만이 관계의 전부가 됐어요.


연애 관계가 아닌 다양한 관계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기승전썸이나 기승전연애로 몰아가는 게 빠질 필요가 있어요. 어떤 집단에서든 누구와 조금만 친하게 지내면 자꾸 연애 관계로 몰아가잖아요. 그 사람이 반드시 이성애자고 좀 친하면, 친절하면 호감이 있는 관계라는 전제가 바탕인데, 그게 되게 폭력적이거든요. 연애 관계가 아니면 인간적인 호감을 표시하거나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요.


여러 이유로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가 너무 쉽게 사귀는 거와 아닌 거, 썸인 거와 아닌 걸로 갈라서 분리하려는 시도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연애가 아닌 친한 직장 동료, 친구, 서로의 정치적인 견해를 응원하는 지인, 이런 많은 이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비혼이나 솔로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주로 돈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솔로와 비혼을 향한 눈길은 점점 변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비혼을 N포 세대로 호명하는 건 게으른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N포 세대라는 말을 할 때 진짜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은 N포 세대라고 부를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연애를/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모든 사람을 싸잡아서 전부 N포 세대라고 하는 건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선택이나 개인의 차이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모든 안 하는 선택을 N포 세대로 호명한다는 건 비연애 사람들에게 연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누가 좋다고 하면 사귈 거라고 비난하는 경우와 똑같아요.


인기 많으면서 연애를 안 하면 또 눈이 높다고 하겠죠(웃음).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반드시 만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잡지에서 예쁜 여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은 주변에 구애하는 사람이 많지만 연애를 하기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그러다가 자기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또 연애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분처럼 예쁘지 않으면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말할 자유조차 없는 거예요. 3년 동안 익명으로 숨어서 잡지를 발간한 이유도 그중 하나인데, 결국 나중에 얼굴 공개하면 결국 못생겨서 연애 못한 거라고 재단할 게 뻔해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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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국이 누구도 연애 관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고 ‘니 연애 니나 재밌지’ 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요?


그게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이자 결코 오지 않을 미래가 되겠죠? 훨씬 더 새롭고 다양한 관계,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나 가족이 만들어지고 성 정체성으로 핍박받는 성 소수자들도 훨씬 자유로워질 거예요. 주변만 해도 동성애자는 아예 비가시화되잖아요. 그런 경우도 저는 비연애인구로 넣는데, 세상이 그걸 연애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연애하라고 몰아붙이지만 그 연애는 승인한 연애만 해당돼요. 예를 들어 누군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하면 주변에서 발 벗고 나서서 헤어지라고 할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비슷한 조건의 비슷한 계층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전제로 한 건전한 교제만, 소수의 승인된 연애만을 권유하는 시대에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랑 다양한 연애들의 출현이 중요하다는 거죠.


저출산 얘기도 해 보죠. 비혼 여성과 동성애자들에게 저출산의 비난 화살이 돌아가는 세태도 있습니다.


항상 얘기해요. 있는 애들이나 잘 하라고. 전국적으로 초등학생 사라진 애들 찾는 거 최근에 난리였잖아요. 있는 애들 밥도 제대로 안 주고 있는 애들도 제대로 못 키우는데,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되거나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출산과 양육을 중단하기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일은 굉장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비혼주의자와 동성애자가 많아도 애들을 낳으려는 이성애자의 수를 초월할 수는 없어요. 이번에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무상 이용시간을 제한했는데, 전업주부라는 게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대학원생까지 포함하는 개념인데 이런 사람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낳고 싶은 사람은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게 만들고 비난은 다른 데로 하면 안 되죠. 낳고 싶은 사람만 제대로 지원해 줘도 알아서 해결이 될 텐데 비난을 엉뚱한데 돌리는 거잖아요. 프랑스도 우리 나라보다 동성혼과 동거 커플이 훨씬 비율이 높은데, 출생률도 우리나라보다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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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계속된다

 

연애를 하고 계시잖아요. 어떠신가요?


좋아요. 연애를 함으로써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오히려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진짜 강조하고 싶은 건 연애도 노동이거든요. 누구를 만날 때는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아무리 내가 힘들고 바빠도 그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있는데, 연애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잖아요. 인간 관계의 조건과 예의를 모두 갖췄음에도 연애에 실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언젠가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에게 인간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까. 연애 여부가 그 사람의 가치와 매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어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자기도 모르게 연애를 하지 않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 연애 안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오지라퍼들, 연애 오지라퍼들에게 시달리는 사람들, 결혼이나 출산처럼 사회적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요되는 통과의례에 놓여 있는 사람들. 왜냐하면 연애를 한다고 해서 결코 이 오지랖이 끝나지 않아요. 연애하면 결혼할 거야? 결혼하면 애는 언제 낳을거야? 첫째가 아들이면 딸은 있어야지, 딸이면 아들은 언제 낳을거야? 끝나지 않아요(웃음). 그리고 나서 끝나나요? 딸 결혼 안해? 가 이어지고 손주는 언제 보나? 하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끊어야 해요.


2080 모두에게 어울리는 책이네요.


1080 모두에게요. 연애를 억압받는 사람들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의 연애도 이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잖아요.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자유가 있었으면 해요.

 

 

이진송의 <나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칼럼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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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지 않을 자유 이진송 저 | 21세기북스
[연애하지 않을 자유](21세기북스)는 ‘행복한 비연애생활자를 위한 본격 싱글학’을 표방한다. 저자는 연애 여부가 곧 그 사람의 가치인 양 치부되고, 연애 이외의 관계는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연애지상주의에 이의를 제기한다. 타인의 삶에 무차별적으로 개입하여 훈수를 두는 세상의 모든 오지라퍼들에게는 뜨끔한 일침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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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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