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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시대, 리더는 어디에 있는가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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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면 정글과 같은 세상이 펼쳐지게 됩니다. 크세노폰은 진정한 ‘정의’는 통치자의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라 정해진 법을 준수하고 그것에 맞게 결정을 내릴 때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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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고대 그리스에서는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의 아포리아(Aporia)라 명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았다. 이때 기록된 책이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다.

 

이들 고전은 중세에 군주나 봉건 귀족의 자제를 위한 리더십 교육 과정으로 재탄생한다. 새로 탄생한 왕자(Prince)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거울(Mirror)과도 같다고 해서 그 이름도 ‘군주의 거울(Mirror for Princes)’이라 했다. 혼탁한 세상에 나라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탁월한 리더에 대한 갈망이 교육 과정을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마키아벨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로 우리 사회를 탁월하게 통찰해온 김상근 교수가 고대 그리스 고전을 재해석한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출간했다. 아포리아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가 성찰해야 할 가치들을 통해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망의 시대에 날카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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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아포리아와 군주의 거울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아포리아(Aporia)’는 ‘길 없음’, ‘막다른 지경에 도달함’이라는 뜻입니다. 항해술이 발달했던 그리스에서는 배가 좌초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르렀을 때를 ‘아포리아’라 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아포리아’에 빠져 있습니다. 나라의 방향이 상실되어 있고, 미래의 청사진은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헬조선’을 외치고, 중년들은 ‘각자도생’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옛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 시대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붕괴하면서 유럽의 각 지역은 봉건 국가로 분열되었고, 국가별로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등장한 리더를 위한 독서 목록이 바로 ‘군주의 거울(Speculum Regia)’입니다. 기원후 8세기부터 서구 국가들에서는 왕자가 태어나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읽혔습니다. 장차 리더가 될 사람들에게 본받아야 할 역사적 모델을 거울로 제시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인문학 열풍은 개인의 마음공부에 집중되어 있거나, 그야말로 얕고 넓은 지식을 과시하는 지식의 축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군주의 거울’은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아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한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입니다.

 

그리스 고전 중 『키루스의 교육』을 최고의 군주의 거울로 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키루스 대왕은 세계 최초의 제국을 만든 사람입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한니발을 무찌른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도 키루스 대왕을 모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군주의 거울’ 장르의 완성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최고의 모델로 키루스 대왕을 꼽고 있습니다.

 

『키루스의 교육』을 쓴 크세노폰은 단순한 철학자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그는 철학과 역사를 통섭시킨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유의 결과를 책으로 펼쳐냈던 플라톤과 전혀 다른 차원의 책을 썼습니다. 플라톤이 잉크를 찍어 책을 썼다면 크세노폰은 땀과 눈물, 전우들의 피를 찍어 책을 쓴 사람입니다.

 

키루스 대왕의 행적을 기록한 『키루스의 교육』은 대한민국의 현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가 건국한 페르시아는 대한민국처럼 작은 변방 국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키루스는 이 작은 국가의 백성들을 이끌고 세계 최강의 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리스 고전에 나오는 인물 중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단연코 페리클레스(Pericles)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둔 아테네의 지도자였습니다. 예기치 않는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 때문에 아테네인들은 기고만장해졌고, 사회는 극심하게 타락합니다. 황금을 숭배하고 아름다운 몸을 찬양하는 물질주의적인 세계관이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을 뒤흔들 때였습니다. 바로 이때 위기가 찾아 왔으니, 스파르타가 주축이 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전쟁을 걸어온 것입니다.

 

페리클레스는 바로 이런 아포리아 시대에 아테네를 이끌었던 리더였습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적의 위세에 눌려 기가 죽으면 감동적인 연설로 그들을 격려했고, 작은 전투의 승리 때문에 우쭐해지면 그들을 추상과 같은 연설로 자제시키는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냉철한 이성적인 판단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나라를 이끌었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키루스의 교육』에서 이야기하는 리더의 요건 중 총선의 후보자들을 평가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플라톤은 그의 주저인 『국가』에서 통치자는 ‘지혜’를, 수호자는 ‘용기’를, 그리고 통치를 받는 시민들은 ‘절제’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각각의 사회 집단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다른 집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통치자가 ‘지혜’를 가졌다고 해도, 만약 그 통치자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면 정글과 같은 세상이 펼쳐지게 됩니다. 크세노폰은 플라톤의 이런 약점을 지적하고 진정한 ‘정의’는 통치자의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라 정해진 법을 준수하고 그것에 맞게 결정을 내릴 때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총선 후보들은 특별히 공천을 받고, 투표에서 이기는 방식에 대해서 아주 지혜로운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당선이 되고 나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혜를 사용합니다. 총선 후보를 투표로 선택할 때 이 점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을 어지럽힌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리더라는 말은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삶을 이끄는 리더인데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리더의 의미를 설명해주세요.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Studia Humanitatis)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기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리더’는 먼저 개인의 반성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아포리아 상태라면 이런 아포리아 상태에 도달한 우리에게 책임과 불행이 동시에 있습니다. 앞으로 참된 리더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리더를 잘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리더십이 미치는 범위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 모두 어떤 형태로든지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것이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의 한 부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우리는 내 인생의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되겠지요. 지금 대한민국은 군주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국민이 군주입니다. 만약 그 국민이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군주의 거울’입니다.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위기 극복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를 앞으로의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연관지어 설명해주세요.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인문학을 심화시키는 작업과 확산하는 작업입니다. 전자를 위해서 전문 연구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해야 할 대학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인문학의 문제는 대학의 인문학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대학은 여러 분야의 학문이 모이는 곳인데, 지금의 대학은 이런 융합적 특징이 무너지고 지나친 세분화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철학과 독문학이 같은 주제, 예를 들면 칸트나 괴테의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따로 연구하고 서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인문학과 과학, 그리고 공학은 완전히 다른 분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공공재로 만드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전문 연구자들이 인문 고전에 대한 해석의 독점권을 쥐고 있는 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지혜를 사유화하는 행동입니다. 고전은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지 한두 사람의 전문가가 해석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새로운 방식의 고전 읽기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인문학 강연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하는 집단은 공공단체도 아니고 대학도 아닙니다. 인문학을 가장 목말라 하는 이들은 경영 현장의 CEO들입니다. 일정에 쫓기는 경영자들이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합니다. 반면 인문학 공부를 가장 소홀히 하는 집단은 정치인들입니다. 무릇 정치는 사람에 대한 것인데,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일전에 마키아벨리 학회에서 주제발표를 하러 갔을 때 일부 정치인들이 오셨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궁금해서 오신 줄 알았는데, 기자들이 와서 그 학회를 취재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너무 허탈했습니다. 실제로 개막식에서 사진 촬영이 끝난 다음 대부분 자리를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바쁜 일정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분들이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정말 무거워졌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이런 답답한 상황이 개선되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대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적절한 리더의 행동을 분별할 수 있는 날카로운 관점이 필요합니다. ‘군주의 거울’은 이런 안목을 우리에게 길러줍니다. 진정한 군주(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가짜 리더를 분별해 낼 힘을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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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김상근 저 | 21세기북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우리는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인문학이 처음 태동했던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려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의 아포리아(Aporia)라 명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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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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