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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명동로망스>의 배우 김준원

“이중섭 선생님도 저처럼 생활면에서는 젬병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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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작품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데, 더 잘 해야죠. 저는 나이가 들수록 작품 욕심이 막 생기는 거예요. 좋은 작품 있으면 마구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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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가에서는 세계적으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가 인기라는데, 때마침 무대에서도 시간여행을 하는 작품이 개막했습니다.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명동로망스>. 2015년을 살아가는 흔남 공무원이 1956년 명동의 한 다방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시대와 예술을 논하던 세 명의 예술가를 만나게 되는데요. 그들이 바로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그리고 작가 전혜린입니다. 과거에 가서 이 엄청난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요? 또 그들은 미래에서 온 청년에게 무엇을 묻게 될까요? 꽤 신선한 발상에서 시작한 작품은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요. 아마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극중 이중섭 화백을 맡은 배우 김준원 씨와 공연이 끝난 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술꾼들이죠(웃음). 왜 술이 생명수이고 예술가들에게 중요한지는 말해봐야 입이 아플 정도로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술을 마시면서 작품 얘기도 하고, 세상 얘기도 하고.”

 

명동로망스라는 다방에 모인 세 청년 예술가에 대해 물었더니 아주 간결한 답이 돌아왔네요. 그런데 왜 하필 이 세 명을 등장하게 했을까요?


“글쎄요, 모두 1956년을 살았던 사람들이고, 이중섭, 박인환 선생님은 그 해에 다 돌아가시고, 전혜린도 10년쯤 뒤에 타계하고. 배경도 캐릭터도 서로 다른 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런 상상력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실존 인물들이지만 재탄생된 캐릭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도 실제 이중섭 선생님처럼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거든요. <명동로망스>에 맞는 이중섭을 찾는 게 더 중요했어요.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짙은 인물.”

 

실제로 공연 끝나면 술 많이들 드시나요?


“그렇죠. 저는 어마어마하게 마셔서 병원에서 이제 그만 마시래요. 평생 마실 술 이미 마신 것 같다고. 박인환과 비슷한 증상이 있대요. 그래서 한 달 반은 끊었는데, 안 마실 수가 있어야죠. 스트레스 받는 게 더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이 작품 하다 보니까 ‘예술가들이 술 때문에 마흔 언저리에 죽는구나! 조심해야겠다 싶어요(웃음).”

 

주로 연극을 많이 하시잖아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웃음).


“첫날부터 노래 때문에 망했죠. 뮤지컬은 10년 전에 <인당수 사랑가>라는 작품 한 번 하고 그 뒤로는 연극만 했거든요. 노래를 좀 알아야 연기적으로 커버를 하든지 할 텐데,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어요. 돈을 내고 오시는 관객들에게는 이런 게 변명이 안 되니까, 그런 부담 때문인지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네요.”

 

이중섭 화백이 평안남도 평원 출신이잖아요. 사투리는 따로 배우셨나요?


“사투리를 제대로 해볼까 하다 <명동로망스>와는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중섭 대사의 무게감이나 이런 것에 더 신경을 쓰고, 북한 사투리를 더 리얼하게 하는 데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튀지 않고, 대사가 음악처럼 녹아들어야겠더라고요.”

 

명동로망스_김준원2.jpg

 

극중에서는 이중섭 화백이 39살인데, 실제 나이가 그 언저리죠? 배우도 예술가이니, 더 와 닿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이중섭 선생님 사진을 보니까 저보다 한참 어른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나이가 마흔이면 이런 얼굴인가? 뭔가 깊어 보이고. 저와 닮은 구석이 있다면 사는 데는 젬병이었던 것 같아요. 어디에 무슨 혜택이 있고, 어떻게 하면 잘 이용할 수 있고... 이런 건 전혀 모르고, 할 줄 아는 게 연기하고 사람들 구경하는 건데, 이중섭 선생님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정말 그림만 그릴 줄 아는데, 그 그림 안에 자기 세계관과 철학, 성격,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까지 다 있는 것 같은. 저는 이중섭 선생님의 약간 지저분한 듯한 선이 좋거든요. 깔끔하지 않고 막 그린 것 같은데, 강렬하고 계속 생각나는. 어떻게 그런 세계관을 그 나이에 구축해서 우리가 그림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는지. 저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는 그들도 모두 20~30대잖아요. 60년 전, 전쟁 직후의 가난하던 시절이지만 지금의 청년 예술가들과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똑같죠. 어렸을 때는 선배님들이 돈 얘기하면 속물적으로 보이고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 같았는데, 그게 오히려 초월한 거더라고요. 돈 없는 게 안 부끄러운 거예요. 돈이 없다는 건 무능의 상징인데,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돈이 없다는 걸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게 부끄럽다고 할까. 언젠가부터 저도 선배님들처럼 좀 자유로워졌어요. 저는 돈 없는 게 제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저는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어차피 배우는 이른바 뜨지 않는 이상 먹고 살만큼만 벌어도 성공한 거니까요. 돈 얘기하면 밤새죠. 하지만 다들 이렇게 말하고도 돈 안 되는 연극하러 연습실에 가요.”

 

작품에서 말하는 ‘꿈꾸는 세상’은 어떤 걸까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제대로 살아라!’ 같은 메시지가 나오던데,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런 말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보면 될 것 같아요. 모두들 성공하고 싶고 돈 벌고 싶은데, 그 과정이 중요한 거겠죠. 그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철학을 배워가고. 어쩌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한. 지금 저는 결혼도 못하고 월세로 살고 있지만 행복해요. 그러면 돈을 많이 벌지만 행복하지 못한 누구보다는 철학적 우위에 선 거겠죠. 어떻게 보면 자기 합리화고요(웃음). 제가 연극 <필로우맨> 했을 때 대사인데, ‘저는 썼을 뿐이고 느끼는 건 알아서들 하세요!’ 아마 이 작품도 생각할 내용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20년 전 연기 배우던 시절에 생각했던 20년 후의 모습은 지금과 비슷한가요?


“전혀 아니죠. 스무 살 때는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찍어서 좋은 차 끌고 예쁜 여자들 만나고 그럴 줄 알았어요, 그게 꿈이었고(웃음). 그런데 31살에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준원아, 20대에 했던 생각과 달라지고 있어. 그래도 할 거야? 앞으로도 만약에 유명해지지 않고, 돈도 잘 못 벌더라도 할 거야?’였어요. 그런데 제 답이 ‘해야 해!’였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른 건 하고 싶지도 않고. 회사도 한 달 다녀봤는데, 제가 학교 때는 12년 개근상 받았거든요. 그런데 회사는 한 달 밖에 못 가겠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돈도 생각 안 하고 누가 시켜만 주면 고마워! 물론 솔직히 한 10년 정도 지나니까 지치는 건 있어요. 그래도 저를 다독이죠.”

 

그 유명한 이중섭, 박인환, 전혜린도 지치고 다독이는 걸 반복하잖아요.


“이제 좀 작품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데, 더 잘 해야죠. 저는 나이가 들수록 작품 욕심이 막 생기는 거예요. 좋은 작품 있으면 마구 하고 싶어요.”

 

만약 2025년 미래에서 누군가 온다면, 그래서 한 가지 질문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걸 물어보실 건가요?


“로또 번호? 너무 술직하게 말해서 싸구려 되는 거 같네요(웃음). 생각해보니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군요. 음, ‘김준원이라는 배우를 아느냐’고 물어보겠어요. 모른다면 셋 중에 하나겠죠. 성공 못했거나 죽었거나 변방에서 계속 연기하고 있거나.”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과거로 미래로 가서 잘못된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정한다면 뮤지컬 <명동로망스>의 이중섭, 박인환, 전혜린은 그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않습니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자기 의지대로 살았기 때문일까요? 대부분 과거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모습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과거를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10년 뒤는 지금의 내가 조금씩 바꿀 수 있이 않을까, 너무나 교과서 같지만 항상 실행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생각을 슬며시 꺼내보며 공연장을 나서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을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김준원 씨는 자신만의 세상을 실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의 10년 뒤를 함께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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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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