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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글을 쓸 때는 바보가 되어버려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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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야기는 책에 머물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제가 대답을 들려 드릴 생각이었다면 결말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책을 읽으시면서 독자 분들마다 추측하고 판단하시는 게 다르잖아요. 저는 각자의 느낌과 판단을 지켜드리고 싶고 존중하고 싶어요. 제가 답을 드리거나 일일이 설명해드리는 건 독자 분들의 감상에 방해가 되고 작품에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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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는 바보가 되어버려요

 

『보통의 존재』로 평범한 우리와 교감했던 작가 이석원이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과 함께 돌아왔다. 묘한 우연으로 한 여자와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람과 삶, 사랑에 대한 단상들로 가지를 뻗어간다. 보통의 만남들이 그러하듯, 이석원과 그녀는 타인이란 이름을 버리고 관계의 이름을 얻는다. 상대를 알아갈수록 자신에 대해서도 발견하게 된다.
 
이석원 작가와 독자들의 만남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14일 저녁, 처음으로 마주 앉은 그들 사이에는 ‘이석원의 이야기’라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이어졌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시간도 다가왔다. 사이사이 『보통의 존재』『언제 들어도 좋은 말』, 그리고 이석원과 우리에 대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김정희라는 여인과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인 만큼, 독자들은 작가에게 연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소개팅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그건 제가 알고 싶어요(웃음). 저는 소개팅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어요. 이번 책에 ‘금치산자’라는 글이 있잖아요. 글을 쓸 때 저는 바보가 되어서, 온종일 뭐 하나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아요. 일을 할 때는 빠르게 결정해야 되는 것들이 많으니까 그렇지 않은데, 그 외의 부분들은 잘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는 머리가 휴식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해요. 연애를 할 때 남자가 결정해주는 걸 좋아하는 여자 분들도 있으신데, 저는 결정을 잘 못해요.”

 
나는 뭔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글을 쓸 때, 난 단순히 마음이 얇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의 모든 판단력이 거의 ‘금치산자’ 수준으로 떨어지고 자신감은 제로가 되며 외모 또한 그나마 볼 것 없는 본판에서 정확히 반의 반 토막이 나버린다. 한마디로 어떤 여자도 좋아할 수 없는 무 매력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19쪽)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인 작가에게 독자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의 존재』『언제 들어도 좋은 말』, 두 권의 에세이에 담긴 ‘이석원’의 모습은 실제의 작가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다 저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아닌 모습을 쓸 수는 없는 거니까, 제 일부를 담았기 때문에 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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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야기는 책에 머물러야죠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일반적인 수필집과 달리 짧은 에피소드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작가에게 찾아온 새로운 관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삶을 이루는 다양한 부분들로 옮겨간다. 그래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다 보면, 마치 소설을 읽을 때처럼, 뒤이어 펼쳐질 사건들이 궁금해진다. 이석원이 맺었던 많은 관계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을지, 강한 호기심이 이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김정희가 맞는지,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질문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책의 이야기는 책에 머물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제가 대답을 들려드릴 생각이었다면 결말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책을 읽으시면서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또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 독자 분들마다 추측하고 판단하시는 게 다르잖아요. 저는 그런 게 너무 좋아요. 각자의 느낌과 판단을 지켜드리고 싶고 존중하고 싶어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답을 드리거나 일일이 설명해드리는 건 독자 분들의 감상에 방해가 되고 작품에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이석원 작가의 독자들 중에는 그가 『보통의 존재』를 출간하기 전부터 애정을 보내온 이들이 있다.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팬으로서 보컬이 아닌 작가로서의 이석원도, 음악이 아닌 책으로써 그의 작품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나는 팬이 없다’고 말한다.
 
“팬이 왜 없겠어요. 20년을 활동해왔는데 몇 명이라도 있겠죠. 다만, 제가 말하는 팬이 없다는 뜻은, 맹목에 가까운 성원을 보내는 그런 종류의 팬들이 없다는 뜻이에요. 혹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표시이기도 해요. 저는 제가 만든 창작물들이 기념품이 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아요. ‘이석원이 만든 건 믿을 수 있으니까 산다’와 ‘이석원을 좋아하니까 그가 만든 건 무조건 사준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잖아요? 적어도 저를 좋아해 주는 분들은 맹목적 성원보다는 비판적 지지를 해주시는 분들이었으면 좋겠고, 그래야 제가 신뢰받는 창작물을 계속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것은 창작자로서 제게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지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죠. 보통 '팬'이라고 했을 때 그 단어가 주는 그 맹목적 지지의 뉘앙스를 워낙 경계하니까. 그런 뜻에서 나는 팬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지 제가 하는 일, 제가 만든 결과물을 사주고 지지해 주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은 누구보다 크게 가지고 있어요.”
 
『보통의 존재』 『실내인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애써 특별함이나 독특함을 거머쥐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석원의 이야기에는 우리 생각을 채워 넣을 공간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공감을 독자들은 반겼고, 이날 작가와 나눈 대화도 다르지 않았다. 관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일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고,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 그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서 발견했던 감성과 꼭 닮아 있는 것이었다. “저는 제가 활자로 만든 공간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라고 적었던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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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석원 저 | 그책
『보통의 존재』로 큰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석원이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현실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답게 이번 산문집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은 이석원의 언어로 가득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산문집인 『보통의 존재』는 출간하자마자 연애와 결혼, 일과 미래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한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보통의 존재』를 읽고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독자라면 그가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산문집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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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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