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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박송권, 연극 <만추>로 대학로 입성

연극 <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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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내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절제하고 눌러야 해서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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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이만희 감독에 의해 개봉된 이후 여러 차례 영화로 리메이크됐던 <만추>가 드디어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영화 가운데는 시애틀을 배경으로 현빈과 탕웨이를 내세운 김태용 감독의 2011년 버전이 가장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을 텐데요. 남편을 살해하고 복역하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사흘 동안 외출한 중국인 애나가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 훈과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죠. 그런데 기자에게는 <만추>가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것보다 더 호기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송권 씨가 이 작품의 주인공, 훈을 맡았다는 겁니다. 올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성황후>를 봤던 관객이라면 노예의 장으로, 또 홍계훈으로 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그를 기억할 텐데요. 대극장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그가 작은 연극 무대에서는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물론 공연이 끝난 뒤 박송권 씨를 직업 만나봤죠.

 

“저도 처음에는 대학로가 좀 어색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좋아요. 8~9년 전에 연극 <갈매기>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연극은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어요. 다른 작품도 아니고 <만추>라고 해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그러게요, 박송권 씨와는 그동안 대극장 뮤지컬 작품으로만 만나왔기에 대학로 소극장, 그것도 연극 무대에 선 그가 조금은 낯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가장 큰 무기인 노래를 못하는데, 연극 무대에서 무엇으로 풀어낼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아직 못 풀어낸 것 같아요(웃음). 저는 대사보다는 노래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익숙하잖아요. 게다가 이른바 상남자로 칼싸움하고, 죽고, 벗어젖히고 ‘으아’ 울부짖는 역할을 많이 했던 터라 어렵더라고요. <만추>에서는 싫다 좋다, 감정이 정확하지 않아서 무대 위에서 생각들이 많아져요. 특히 이 대사들이 무언가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절제하고 누르는 것들이라. 물론 큰 감정의 줄기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뀔 수밖에 없어서 상대방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죄송하지만 무대에서 조금 더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대사가 많거나 감정이 빼곡하지 않아서 더 힘든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영상이라는 장치가 있는 영화와 달리 무대는 제약도 많은데요. 연극 <만추> 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여백의 미라고 할까요? 일단 감정에 대한 자유로움, 대사를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어떤 느낌들이 있는데, 그게 채워질 때 무척 좋아요. 그리고 음악과 조명도 무척 예뻐서 따뜻한 느낌도 있고요. 연습할 때는 잘 몰랐는데, 극장에 들어와서 무대에 설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채워지는 게 있더라고요.”

 

훈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요?


“이명행 형님은 더 밝은 캐릭터로 하세요. 애나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엉뚱한 면도 가지고 있는 훈이죠. 저는 조금 더 쓸쓸하고 아픔이 있는 훈을 그리고 싶었어요. 훈이 호스트지만 애나에게는 그냥 서툰 남자로 다가갔을 것 같거든요. 방식은 능숙하지만 진짜 마음을 전하는 것에서 서툴러서, 그 안에서 서로가 치유되고 그러다 사랑이라는 걸 느끼지 않았을까. 주위에서 현빈 보다 낫다고, 농담이에요(웃음). 나쁘지 않다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워낙 강한 인물들을 맡아 오셨는데, 실제 모습은 어떤가요?


“사실 예전에는 성격이 불 같았어요. 뮤지컬 시작했을 때는 싸움닭이었어요. 소매치기를 잡아본 적도 있고, 뭔가 해결이 안 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먼저 나서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소심한 면도 있어요. 그래서 배우를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무대 위에서 이런 모든 것들을 표출하니까 욱하는 성격도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캐릭터 중에 가장 편하게 접근했던 인물이 있다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노예의 장이요. 제가 배우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였어요. 힘들고 답답하고, 풀리지 않은 여러 마음들이 쌓여 있었는지, ‘검다는 것’을 부를 때 정말 하늘에 신세 한탄하듯, 하소연하듯 그냥 뿜어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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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반응이 엄청났거든요. 사실 <바람사..>는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뒤로 ‘나에게 배우로서 변화가 생겼구나!’ 느끼셨나요?


“바람과 함께 다 사라지고 저만 남았다는 얘기가 있었죠(웃음). 공연 이틀하고 났더니 주위에서 난리가 났더라고요. 인터뷰도 6~7개씩 들어오고. 그 전에는 개인 인터뷰를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귀를 닫았어요. 흔들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예전에 <그리스>에서 두디를 했을 때 팬들도 많아지고 좀 잘 되는 것 같았는데, 일장춘몽처럼 다 없어지더라고요. 그 뒤로는 반응이 뜨거울 때 오히려 비우려고 노력해요. 사람은 자만할 수밖에 없어서 그게 가장 무섭더라고요. 무대에서 다 보이니까요.”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기까지는 엄청난 기다림과 좌절의 시간이 있었겠죠?


“많이 울었죠, 많이 힘들었고.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친구한테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느냐’고 운 적도 많고. 지난해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작년 2월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내가 만삭일 때 예정돼 있던 영화와 드라마가 무산되면서 7개월 동안 스케줄이 빈 거예요. 생활비가 없어서 지방으로 6만 원짜리 축가를 부르러 다닌 적도 있어요. 후배들을 만날 때도 있고, 자존심도 상하고. ‘내 능력으로는 안 되나 보다, 할 만큼 했다!’ 배우의 길을 접으려고 했죠. <보이첵>을 하게 됐는데, 그 작품을 끝으로 정말이지 배우는 그만 두기로 했어요. 그렇게 내려놓고 짐 싸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바람사..>를 하게 된 거예요. 그 노랫말이 저를 자꾸 건드려서 무대에서 매일 울면서 다 쏟아내고 나왔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조금 더 해보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었어요.”

 

<만추>에서도 마지막에 훈이 기다림에 대해 대사를 읊조리는데, 누구보다 기다렸던 배우잖아요. 개인적으로 기다리는 무대가 있을까요?


“배우로서 크게 성공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주어진 상황에, 배역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도 뭔가 갖고 싶을 때 한 번에 가진 적이 없어요.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배우로서 해보고 싶은 건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나이가 더 들고, 배우로서 좀 더 깊어지면 돈키호테는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동성애 연기도 도전하고 싶어요. 무척 남자다운 외모에서 여성스러움이 나오면 괜찮겠죠, 재밌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힘들었던 스스로에게 한 말씀 한다면요?


“지금 스케줄이 많고, 조금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하는 것들은 제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위치라서 욕심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앞으로도 ‘용기 잃지 말자! 힘내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박송권 씨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라고 합니다. 배우로서의 길을 끝내려고 했을 때 새로운 무대가 열렸으니 스스로 그 말을 입증한 셈이죠. 하지만 그는 지금도 오아시스면서 신기루인 무대를 향해 언제나 겸손하려고 노력합니다. 오랜 기다림이 그에게 건넨 달고도 쓴 교훈이겠죠. <만추>로 연극무대에 선 박송권 씨는 그의 말대로 조금은 더 무대에서 찾아야 할 것들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쉽게 해답을 주지 않는 삶에 지치고 넘어진 두 남녀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길에서 조심스레 손을 맞잡는 모습은 어쩐지 배우 박송권 씨의 모습과 닮아 있어 친근하네요. 관객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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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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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만추]
    • 부제:
    • 장르: 연극
    •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 등급: 만 13세 이상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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