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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도빈, 양의 탈을 쓴 표범 같은 남자

저는 양파 같은 남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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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사실 무대 위에서 작은 삶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인간이 돼야 그런 배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때때로 일상의 모습이 궁금한 배우가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저렇게 나쁜 남자인데, 조금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박한데, 지나치게 정의로운데, 평소에는 어떤 모습일지 확인하고 싶다고 할까요? 올해 서울예술단 공연을 꼬박꼬박 챙겨봤던 기자는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에서 2대 8 가르마에 구부정한 어깨로 지극히 평범한 김자홍을 연기했던 그가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는 목표 지향적이고 박력 있는 김옥균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습니다. 앞서 <쓰릴 미>를 봤다면 남성미 물씬 풍기는 리처드도 빼놓을 수 없겠죠. 게다가 한글날을 맞아 10월 9일부터 공연될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세종대왕의 명으로 살인사건의 수사를 맡은 겸사복 강채윤을 연기한다기에 호기심이 증폭됐습니다. 그래서 서울예술단 측에 이 남자, 김도빈 씨를 인터뷰하게 해달라 졸랐습니다.

 

2015080780060-copy.jpg

 

“저는 양파 같은 남자예요(웃음). 성향은 멋있는 남자, 외형은 순해서 이쪽저쪽 연기하기 좋은 것 같아요. 배우하기 좋죠. 분장도 잘 받아요. 분장에 따라 확확 바뀌거든요.”

 

예술의 전당 내 카페에서 만난 김도빈 씨는 김자홍 같은 표정으로 구부정하게 앉아 김옥균처럼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양파 같은 남자’라고! 좀 더 쉽게 리처드, 김자홍, 김옥균 중에 실제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김자홍처럼 좀 순하기도 하고, 김옥균처럼 목표하는 것에 있어서는 황소처럼 밀어붙이기도 하고, 리처드처럼 나쁜 남자 같은 성향도 있고. 사실 캐릭터를 만들 때는 저한테서 출발하잖아요. 그래서 모두 저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리처드?”

 

그래요? 지금 모습으로 봐서는 김자홍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웃음).


“그렇죠? 순해 보인다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좀 더 남자답고 정의롭게 행동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생김새도 여자 같았거든요. 그래서 군대도 일부러 무술 유단자들만 가는 헌병대 특별경호대에 가서 고생하고. 손이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군대에서는 일부러 땅에 비벼대고 그랬어요.”

 

손이 정말 예쁘긴 하네요. 요즘 서울예술단 공연이 인기입니다. 김도빈 씨는 예술단 소속 단원인데, 다른 배우들과는 하루 일과가 다른가요?


“저희는 주5일 출근해요(웃음). 작품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많이 다른데, 제가 2010년에 입단했을 때는 상황이 많이 안 좋아서 공연이 1년에 한 편 정도 밖에 없었어요. 보통 석 달 동안 연습하니까 지방 공연을 몇 번 간다고 해도 나머지 9달 동안은 할 일이 없었죠. 그런데 요즘은 서울예술단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관객들도 많아지고 공연도 많아져서 연습하기 바빠요.”

 

공연은 많은데 한 편을 열흘 정도만 무대에 올리잖아요. 작품을 하다 보면 사실상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을 텐데, 아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짧죠. 그런데 짧게 치고 빠지는 게 편하기도 해요. 그리고 무대 위에서 찾는 게 분명히 있지만, 사실 연습 때 다 찾아놓고 무대 위에서는 똑같이 가면 되는 거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다들 겹쳐서 출연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니까 무대 위에서 더 찾게 돼버린 것 같아요.”

 

박영수 씨와는 예술단 안에서 라이벌 구도일까요? 항상 다른 배역을 맡으시던데.


“박영수, 조풍래, 제가 동갑인데 역할이 겹치지는 않아요. 라이벌도 아니고. 물론 한 배역을 두고 오디션을 보기도 하지만, 안 됐다는 속상함은 있어도 서로 응원해주기 바빠요. 응원도 ‘그것밖에 못하냐?’ 이런 식으로(웃음). 그리고 같이 무대에 서면 채워지는 게 있어요. 외부 작품을 할 때와 가장 다른 점이기도 한데, 예술단 공연을 할 때는 뭔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더 있어요. 특히 이번에 <신과 함께> 할 때는 셋이 처음으로 메인 역할을 맡았는데, 커튼콜 때 함께 무대에 서니까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서울예술단은 인기 객원 배우들과 많이 작업하는데, <신과 함께>에 이어서 <뿌리 깊은 나무>에도 송용진 씨가 참여하시네요. 특히 함께 채윤 역을 맡았는데, 부담은 아니죠?


“아니에요, 지금도 용진이 형이랑 대사 맞추다 왔어요. 채윤이 칼을 써야 해서 용진이 형이 고생하고 있죠(웃음). 채윤이 작년에는 넉살 좋고 장난기 있고, 귀엽기도 하고 재밌었잖아요. 그런데 올해는 좀 더 진중하고 멋있는 캐릭터로 바뀌고 있어요. 저도 작년에는 잘 못했는데, 제가 재연을 참 잘해요(웃음).”

 

[뿌리-깊은-나무]-2014-공연-사진(20).jpg

 

작품마다 객원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게 쉽지 만은 않을 텐데요.


“얄미운 객원 배우들도 있어요. 그리고 예술단은 단체라서 처음에 낯설어하기도 하죠. 저희는 항상 같이 밥 먹고, 같이 잠도 자고, 어떻게 보면 군대 같아요. 그래서 비슷해지거든요. 그런데 베테랑 배우들은 이유가 있더라고요. 금방 적응하시고, 연기를 잘 하는 분들은 사람도 좋아요. 사실 공연이라는 게 사람들이 모여서 지지고 볶는 건데, 어우러져야 작품을 하니까요.”

 

이른바 티켓파워가 있는 객원배우들이 참여하면 아무래도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무척 자극되죠. 그게 정말 좋아요. 유명한 배우들이 오면 그들한테 빼올 건 빼오고, 배울 것도 많고. 선배고 어린 친구고 다들 이유가 있구나 생각하게 돼요.”

 

배우라면 스테디셀러에 대한 갈증도 있을 텐데, 예술단 작품은 소재가 제한적이잖아요.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좋은 극장에서 2~3페이지 되는 독백이 있는 연극은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어떤 작품의 어떤 역할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요즘은 예술단 단원도 정규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외부 작품을 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지금은 창작이 재밌어요.  누가 만들어놓은 작품보다는 아무도 못하게 제가 처음으로 하고 싶어요(웃음).”

 

지금까지 만들어낸 캐릭터 중에서 가장 희열을 느낀 인물은 누구인가요?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김옥균을 많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초연 때와 비슷하게 했는데 예술단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이 달라진 것 같아요. 사실 김옥균은 힘든 역할은 아닌데 결과의 희열이 컸죠. 가장 재밌었던 건 <쓰릴 미>였어요. 만들어낼 게 전혀 없었지만, 2인극을 처음 해봐서 둘이서 얇은 실 같은 감정을 이어나가는 게 재밌더라고요. 잘 못하긴 했지만.”

 

흔히 남자배우들은 30대에 훨씬 다양한 멋을 드러낸다고 하잖아요. <뿌리 깊은 나무> 공연을 앞두고 있으니까 배우로서 어떤 나무로 뿌리 내리길 바라는지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대쪽 같은 대나무, 곧게 뻗어야죠. 흐트러짐 없이 진실 되고, 부끄럽지 않고, 거짓 없는 배우. 배우는 사실 무대 위에서 작은 삶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인간이 돼야 그런 배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것에 대한 욕심이 커요(웃음).”

 

김도빈이라는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많이 궁금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될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에 대한 질문을 거의 못했네요. 이정명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을 비롯해 한석규 씨 주연의 드라마까지 큰 인기를 얻었던 <뿌리 깊은 나무>는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하려 했던 세종대왕과 이를 저지하려는 사대부들의 첨예한 대립을 연쇄 살인사건을 통해 긴장감 있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특히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으로 무대에 서는 <뿌리 깊은 나무>는 웅장한 무대와 음악, 한국적인 안무가 더해져 색다른 감동을 주죠. 이 살인사건을 풀어갈 채윤, 김도빈 씨가 이번에는 또 어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속살을 보여줄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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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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