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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머리가 짧을 수도 있지, 왜 기를 죽이고 그래요?

아름다움‘들’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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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충고 중 자매품으로는 “살만 빼면 진짜 예쁠 거야”, “화장 좀 하면 인기 많겠다” 등이 있다. 선의에서 비롯되었고 심지어 칭찬인데 왜 부들부들하냐고? 예쁜 리본을 묶은 칼로 호의를 담아 찌르면 참 안 아프겠다 그쵸? 이는 결국 최고 혹은 최선으로 아름답지는 않다며 현재의 상태를 부정하는 선언이며,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이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머리를 댕강 자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뒷덜미에 손을 갖다 대자 짧아서 까슬까슬한 머리카락이 있었다. 나는 미용실을 뛰쳐나와 담벼락에 숨어 울었다. 아주 구슬프게. “남자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중학교 때 일명 ‘귀 판 머리’였던 친한 친구는 여학생에게 교복 바지가 허용되자마자 바지를 사서 입고 다녔다. “쟤는 남자야 여자야?” 어딜 가든, 친구에게 그런 말이 따라다녔다. 당시 인근에서 유일하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던 여고에서 짧은 머리는 ‘그거’의 상징이었다(굳이 ‘그거’라고 표기한 이유는 뒤에서 이야기하기로).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인기를 얻으면서 잠시 단발 열풍이 불었지만, 어디까지나 턱선 위로 올라가지 않는 길이를 고수해야 했다. 그 이상 올라가는 숏컷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여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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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MBC


2009년 아이돌 빙하기였던 나는 스쳐지나가듯 본 f(x)가 오랜만에 나온 혼성그룹인 줄 알았다. 엠버가 여자임을 알았을 때도, 어디까지나 그 톰보이 스타일은 기획사의 콘셉트라고 생각했다. f(x)가 데뷔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곧 머리를 기르고, 여성스럽게 치장하고 나와서, “나도 여자예요”를 노래하겠거니 하는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그동안 엠버는 짧은 머리를 포함한 보이쉬한 외모가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고래 심줄보다 질긴 인내심으로 차근차근 설명했고, 때때로 오지랖이나 비난에 상처 입으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5년에도 엠버에게 쏟아지는 질문이나 오지랖은 빵틀에 넣고 찍은 듯 똑같다. “머리를 좀 길러보는 게 어떤가”, “남자 좋아해요?”, “그런 거...는 아니죠?” 이때 ‘그런 거’란, 김구라가 라디오 스타에서 엠버에게 쓴 표현으로, 앞서 쓴 ‘그거’처럼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일 리가. “너는 레즈비언이냐”는 뜻이다. 여기에는 한 모금만으로 다섯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오미자차처럼 다섯 가지의 문제가 농축되어 있다.

 

1) 오로지 호기심을 이유로 상대에게 성적 취향을 말할 것을 종용한다.

2) 머리가 짧은 여자는 여자를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을 드러낸다.

3) 방송 매체의 특성상 엠버의 대답은 결국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사실 여부를 떠나 질문 자체가 답정너다.

4) “이래봬도 엠버는 남자를 좋아하는 ‘정상’이다”는 강박을 반복한다.

5) 엠버는 머리가 짧은데 질문한 인간은 생각이 짧다. 바리깡으로 갓 민 머리보다 짧다.


차만 보고도 김여사 운운하며 운전자의 성별을 알 수 있다고 믿는 투시술처럼, 겉모습에서 성 정체성을 ‘감별’하려는 시도는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남자 연예인 중 최초로 ‘공주병’ 캐릭터를 민 슈퍼주니어의 김희철(“난 예쁘니까!”) 역시 툭하면 성 정체성을 의심받았고, 위너의 남태현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중성적인 면모 때문에 연습생들 사이에서 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밝혔다.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스타일을 곧장 남다른 정체성의 상징으로 번역하는 행위는 이성을 좋아하는 ‘정상적인’ 취향이라면 이성이 싫어하는 외모, 즉 ‘여자가 여자답지 않은 것’, ‘남자가 남자답지 않은 것’을 선택할 리 없다는 순진한 착각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외모 꾸미기는 오직 이성을 유혹할 때만 의미 있다. 웹 매거진 아이즈는 TV 프로그램 <겟잇뷰티>1)의 기획이 언제나 ‘남자들이 좋아하는~’에 한정되며, 남자들의 취향 역시 획일화한다고 비판했다.


엠버가 이성애자라는 확신을 얻은 오지랖은 “예쁜 얼굴인데 머리를 길러보라.”로 넘어간다. 이런 류의 충고 중 자매품으로 “살만 빼면 진짜 예쁠 거야.”, “화장 좀 하면 인기 많겠다.”등이 있다. 선의에서 비롯되었고 심지어 칭찬인데 왜 부들부들하냐고? 예쁜 리본을 묶은 칼로 호의를 담아 찌르면 참 안 아프겠다 그쵸? 이는 결국 최고 혹은 최선으로 아름답지는 않다며 현재의 상태를 부정하는 선언이며,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이다. “나는 이것이 좋고, 아름답다”는 개인의 취향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너를 아름답다고 인정하지 않으니 ‘너’는 아름답지 않다는 이 배짱은 어디서 나오며, 여성스럽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여성성이 아름다움의 유일한 형식처럼 통용되고, 그 형식에 맞추어야만 궁극적인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쪼아대는가?


김주현의 『외모 꾸미기와 페미니즘』에 따르면, 근대에 이르러 다양한 미적 가치들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신체미에 대한 논의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근대의 미적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숭고’인데, 이는 거침, 광활함, 강력함 등과 관련된 남성적 가치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환경 등이 속한다. 미(美)는 이와 대별되는 미적 가치로 재규정 되는데,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범위의 작은 것들과 규칙을 따르는 형식미가 중심이 된다. 작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 곡선을 가진 것, 연약한 것 등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미가 된다. 에드먼드 버크가 미(美)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라고 정의할 때, 아름다움은 대상에 내재한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경험한 주체 속에 존재한다. 특정 상황의 특정 대상에게 어떤 미적 개념을 적용하고 미적 판단을 내릴 지는 지각자에게 달려있다.


보는 것은 곧 권력을 뜻한다. 오로지 권력을 가진 자만이 보고, 미적 판단을 내린다. 버크는 미는 여성적이며, ‘보통 남자들’이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경험이라고 명시했다. 비교적 최근까지 아름답다, 예쁘다는 말이 남성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던 까닭은 이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여성상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기녀 등의 ‘아름다움’이 목적인 여성은 백옥 같은 피부와 조그만 손발, 날씬한 허리 등이 강조되었다. 반면 혼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은 출산과 양육과 같은 기능적 목적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튼튼한 골격과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선호되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여성들은 ‘아름답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름답다고 인정받지 못했다.


짧은 머리와 바지, 활기찬 행동은 남성적인 속성으로, 긴 머리와 치마, 조심스러운 행동은 여성적인 속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특수하고 역사적인 것이다. 국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종교에 따라, 속한 커뮤니티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의 기준은 변화하며 그것을 어떤 성별이 어떻게 차용하는지 달라진다.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주체가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남성성, 여성성이라고 여겨지는 규범이 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그 규범을 모방하고 수행하며 훈육 받음으로써 특정성별이 된다. 뒤집어 말하면 특정 성별은 그 성별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규범을 통해 만들어진다. 엠버가 톰보이 스타일을 고수함으로써 ‘여자답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여자다움’이 의상이나 머리, 태도처럼 얼마든지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으며 탈부착이 가능한 무엇에 불과하다는 증거이다. 남성성도 마찬가지, 최근에는 걸그룹 마마무가 익살스러운 남장으로 이러한 성별 패러디를 적극적으로 “갖고 놀”았다. 물론 엠버의 스타일은 이렇게 성별 역할을 비틀려는 의도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이러한 효과가 발생한다. 엠버는 얼마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장문의 글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남자나 여자, 하나의 외모로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인생 대부분을 톰보이로 살아왔는데, 가끔 정말 짜증 날 때(Sucks sometimes)가 있다는 표현은 엠버를 여성성의 도식에 가두려는 시도에 대한 일침이다. “아름다움의 형태와 종류는 다양하며 우리들 모두는 모두 다 다르다”며, “단순히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마세요. 우리가 서로의 다름(차이)을 존중할 수 있게 되기를 란다는 엠버의 글은 그녀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이야기해온 하나의 온전하고 견고한 메시지 그 자체이다.


엠버는 아름답다. 그것이 우리에게 단지 낯설 뿐이다. 여자의 외모 꾸미기는 오로지 여성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그리하여 시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들로부터 ‘아름답다’는 승인을 받는 데 바쳐진 상황에서 엠버가 구축한 영역은 걸그룹 멤버로서만 아니라 여자 연예인으로서도 매우 독보적이다. 앞서 인용한 『외모 꾸미기와 페미니즘』을 좀 더 인용하면, ‘미적 액티비즘’은 개개인의 미적인 행위(창조와 감상)를 개인이 거주하는 실제 세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자기 정체성을 재구성하며 대안적 세계를 창출하는 정치적 행위로 간주한다. 외모 꾸미기는 신체가 체현하는 가치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외모 꾸미기의 미적 액티비즘은 개인의 외모 꾸미기를 통해 그의 정치적 지향을 현실화하는 실질적인 운동이다.” (302쪽) 엠버가 선택한 톰보이 스타일에서 남다른 성적 취향을 읽으려는 빈곤한 상상력을 버리면, 특유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획일화된 가치나 특정 성별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정치적 성향과 꿋꿋한 신념, 그리고 세상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다져진 멘탈과 주변의 멋진 환경까지 두루 보인다. <인사이드 아웃> 식으로 말하면, 엠버 안에 있는 ‘톰보이’ 섬은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의 연대와 사랑으로 만들어졌다. 엠버가 혼자의 힘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자신의 소중한 것에는 가수로서의 커리어는 물론, 이러한 유연한 태도와 가치관도 포함될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 ‘전형적인 여성적 속성’인데 어떻게 하느냐고 울상 지을 필요는 없다. 셀린 사아마 감독의 영화 <톰보이Tomboy>의 일부 장면이 이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로레는 10살짜리 여자 아이지만 영화 제목 그대로 톰보이다. 새로 이사 간 동네의 친구들이 자신의 성별을 오해하자, 로레는 미카엘이라는 이름의 남자 아이로 행세한다. 로레의 여동생 쟌느는 구불거리는 긴 머리와 드레스 차림의, 전형적인 여자 아이이며 모든 것이 로레와 반대이다. 그러나 이 사이 좋은 자매에게 서로의 드레스나 짧은 머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쟌느와 로레는 연대한다. 쟌느는 집에 찾아온 로레의 친구들에게 로레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미카엘로 구축한 로레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다. 존중과 공존은 그런 것이다. 타인이 선택한 외모 꾸미기의 전략이 자신과 같지 않다고 해서 “일해라 절해라”하지 말고, 그 영역에는 그 영역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인정하기. 부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그 아름다움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또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아름다움‘들’이 있다. 만약 당신의 외모 꾸미기 전략에 대해서 누군가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고나리’한다면, 그런 오지라퍼에게는 파이를 먹이자. 무슨 파이?


스투페파이!     

 

1)  임수연, 「<겟잇뷰티>, 여자의 ‘뷰티’는 남자를 ‘겟’하기 위한 건가요?」,

『웹 메거진 ize』, 2015. 7. 9 //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5070607517249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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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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