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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생님, 공감이…공감이 하고 싶어요!

공감과 연애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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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울어져 있고 감성의 주파수가 맞는 사이에서 활활 타오른다. 연인이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말 연애하고 싶어요. 하늘이 푸르다든지, 별이 참 예쁘다라든지…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도 공감할 수 있는 애인이 생기게 해주세요.”
-영화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설탕 과자처럼 파삭 부스러져도 그뿐, 세상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을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고개 끄덕여주는 사람. 생각만 해도 설렌다.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은 감정을 공유하면서 그 거리를 좁히기 마련이다. 나와 완전히 다른 누군가는 그러나 나와 같은 것을 느끼면서 내게로 온다. 무용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간이 시시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한 번에 최애의 포토카드를 뽑는 것처럼 어렵고 귀한 일인 것을. 나에게 공감하고 내가 공감하는 사람과 있을 때 나는 존중 받는다고 느끼고 상대를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며 그 대상을 ‘애인’으로, 관계를 연애로 한정하는 까닭은, 단순히 영화의 장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애인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좀 더 따뜻하고 또 관능적인 단어이다. 공감은 타인의 어떤 주장이나 생각에 대해 자신도 그러하다고 느끼는 감정으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면 자연스럽게 공감할 확률이 높아진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저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은 마음에 유남생? 하는 말에 덮어놓고 예아! 푸쳐핸접! 외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애인’이 나의 쓸데없는 이야기에도 공감해주는 존재라면, 어째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따위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남자와 여자의 공감 능력의 차이가 불러오는 짝꿍의 다툼이 텔레비전 연애 상담 프로그램의 8할을 차지하는 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왜 있잖은가, 나의 취미 생활을 반대한다, 내 말을 무시한다, 공통 화제가 없다…그런 식의 붕어빵 틀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사연들 말이다.


평론가 신형철은 그의 책 『느낌의 공동체』에서 인간의 세 가지 권능은 사유(THINKING), 의지(WANTING), 느낌(FEELING)인데, 이 중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고 했다. 비슷한 시간과 삶의 결을 더듬어온 사람들이면 그나마 공감할 확률이 높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날 갑자기 파바박 스파크처럼 통하기도 한다. 그것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울어져 있고 감성의 주파수가 맞을 때 활활 타오르기 때문이다. 연애 관계는 상대방에게 ‘나’를 한껏 기울여 놓는 경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공감은 애인과 연애 관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외롭거나 쓸쓸한 사람들에게는 (굳이 저 영화가 아니더라도) 너나 할것 없이 연애를 처방하고 찾는다. 이쯤 되면 연애 오남용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의 주인공이 자신과 공감할 대상이 필요하다면, 연애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공감 공동체를 찾길 바랐다. 물론 그러면 영화의 장르가 달라질 테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로맨스를 빼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쓸데없는 기대는 버린 채 영화를 봤지만. 꽤 오래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쓸쓸한 친구를 소개하는 특집을 기획했다. 참가할 사람을 모집할 때 여러 연예인들이 물망에 올랐는데, 그 중 송은이나 김숙 등은 오르는 즉시 탈락이었다. 왜냐하면 쓸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끼리 뭉쳐서 너무나 재미있고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송은이를 비롯한 여성 개그맨들의 친교는 때때로 연예계의 다른 취향 공동체나 남성들의 또래 집단과 달리 폄하되곤 한다. 그들은 ‘연애의 결핍을 우정으로 채우는 노처녀’이기 때문이다. 친구나 취미가 많아 자신만의 탄탄한 공동체 속에 있는 비연애인구를 보는 시선은 “없는 애 옆에는 없는 애가 있다니까.”, “없는 애들끼리 노니까 그래!”하는 오지랖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그 말은 결국, “그러니까 둘이 떨어져야 된다”로 귀결된다. 어째서?


쉬지 않고 연애하는 이들은 능력자가 되고, 쉬지 않고 공감 공동체와의 관계 맺음에 몰두하는 이들은 무능하고 눈치 없는 이로 몰아가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이때 자연스럽게 우정은 연애보다 열등한 개념이 되기 때문이다. 연애는 현재 거의 모든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깔아뭉갠다. 친구와, 가족과, 혹은 혼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연인과 보내는 것보다 열등한 것이 되고, 비연애 중이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 그 사람을 둘러싼 많은 관계들이 그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 당한다. 이러한 서열화는 연애 이외의 관계를 황폐화시키고 다른 관계에 대한 상상을 빈곤하게 한다. 연락을 주고받는 이성의 관계는 썸 아니면 애인으로 요약되고, 친구들 사이에서 얻는 충족은 희화화되며, 영화의 주인공이 공감의 대상을 애인으로 한정한 것처럼.


한때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을 열심히 본 이유는 그들의 공감 공동체가 너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레너드와 셸든과 하워드 그리고 라제쉬는 얼마나 환상적인 조합인가. 크. 보이그룹으로 데뷔했다면 ‘더 너드’ 뭐 이런 이름으로 히트 쳤을 지도 모르는데(심지어 하워드의 영혼은 컬러 스키니로 되어있다) 약속되어 있는 코스튬 파티에 갈 때 어떤 합의도 없었지만 텔레파시라도 통한 양 똑같은 옷을 차려입는 바람에 잔상처럼 보이게 빨리 걷자고 말하는 친구들, 누군가 도대체 그걸 왜 하냐고 물을 때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할 수 있으니까, 하고 말하며 자기들끼리 웃어버리는 친구들. 셸든의 까탈스러운 취향도 하워드의 엄마 의존증도 넷이 모여 벌이는 파티를 방해하지는 못한다. ‘빅뱅 이론’ 자체가 사회성은 떨어지는 천재들이 열렬하게 연애를 갈구하는 것이 컨셉트라 그들이 부딪히게 되는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연애의 형식”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말이 과거형인 이유는 그들이 모두 연애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뀨. 볼 때마다 가슴 설레는 또 다른 공감 공동체는 영화 ET이다. 소년과 외계인이 검지 손가락을 마주치며 교신하는 순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아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심지어 다른 생물체여도, 저 두 사람은 지금 열렬하게 공감하고 있구나.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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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이론’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만족할 만한 공감 공동체를 가져본 이들은 안다. 무용한 이야기를 할 때 마음 놓고 진지해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흡족스러운지, 두세 번 에두른 농담에도 어떤 설명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질 때 그 농담은 몇 배로 웃긴지, 몹시 시시한 일에 열을 올리며 몰두할 때 오로지 공감 공동체에게만 거리낌 없이 그 짓을 공개하면 얼마나 속 시원한지. 사실 공감은 나의 괜찮은 부분, 사랑 받아 마땅한 부분을 인정받을 때보다 하찮음을 전시하고도 수치스럽지 않을 때 발생한다. 괜히 떠먹는 요구르트의 뚜껑을 핥아먹는 데서 사람들이 영혼의 반쪽을 찾은 양 전율하겠냐며! (아니다)


공감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감정이다. 누군가는 그 느낌을 위해 연애할 것이다. 신형철은 그 느낌을 위해, 공감의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방법으로 시를 읽는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그 느낌을 위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곳으로 자신을 데려갈 것이다. 공감하기 위해서 연애하고 싶다는 욕망이 나에게는 유효하지 않다. 내가 그것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 논리로부터 벗어난다. 탈주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존재는 애인이 유일한 것처럼 포장하는 연애지상주의의 그물도 성기어질 것이다. 연애하지 않기 때문에 공감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애인을 사귀면 공감해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판타지만큼이나 불안정한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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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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