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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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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여러 해 동안 발표되는 통계자료들을 보면, 조사를 실시한 22개 나라 가운데 15개 나라에서 다수의 응답자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대신하거나,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국가 자리를 차지했다고 답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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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여러 해 동안 발표되는 통계자료들을 보면, 조사를 실시한 22개 나라 가운데 15개 나라에서 다수의 응답자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대신하거나,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국가 자리를 차지했다고 답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2014년에 실시한 퓨(Pew) 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가운데서 미국이 ‘다른 모든 나라들보다’ 우월적인 위치에 서 있다고 답한 사람은 불과 28퍼센트에 불과했다.  2011년에는 그 수치가 38퍼센트였다.  어쩌면 "내가 죽었다고 한 보도는 대단히 과장된 것이다." 라고 한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재담처럼 미국의 세기가 끝났다는 사망설도 크게 과장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18세기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다음 영국의 정치가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은 “영국의 처지가 지중해의 섬 사르디니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미국이 독립해서 떨어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에 힘입어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며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MIT의 어떤 교수는 대영제국이 2세기 동안 존속했다면 "미국이 시대가 50년 만에 막을 내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졌다.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 무렵에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자리에 올라서 있었다. 그런데 당시 많은 베스트셀러 서적들이 미국의 상황을 펠리페2세 시절에 스페인이 몰락한 것에 비유하며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미국이 일극체제(一極體制)의 세계질서 속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고 난 다음에도 유명한 정치학자는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지위는 아주 빠른 시일 안에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조심스레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매우 겸허한 자세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것이다.

 


미국의 세기는 언제 시작되었나?
When did the century start?

 

우선 ‘미국의 세기’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세기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먼저 미국이 세계 최대 산업국가로 도약한 19세기 말을 미국의 세기가 시작된 시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며 미국은 전 세계 경제력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위상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전쟁은 세계의 모든 주요 경제대국들을 파괴시켜놓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미국의 경제력은 더 커졌다.  2차세계대전 직후에는 전 세계 경제력의 거의 절반을 미국이 차지했다. 이후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차츰 회복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이 빠르게 경제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전후 부흥정책에 힘입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비정상적으로 크게 차지하던 비중은 전쟁 이전의 수준인 4분의 1 안팎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그 수준이 유지됐다.  

 

하지만 1945년부터 1970년까지 지속된 이와 같은 '정상 수준으로의  회복'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경제의 비중이 감소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곧 미국의 쇠퇴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경제력 규모 면에서 본다면, 미국의 세기가 지속된 기간은 대략 20세기와 겹쳐지며, 그 기간 중에서도 특히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힘은 절정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10년 남짓한 기간 안에 미국의 세기는 끝이 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 시기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GDP(국내총생산)의 구매력평가(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는 중국이 이미 미국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4 환율을 근거로 한 경제력 평가에서는 앞으로 10년 안에 중국경제가 세계 제1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세기는 실제로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말인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국력은 다른 나라들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방법인 당근과 채찍, 그리고 유인과 설득이라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당근과 채찍을 하드파워적인 수단이라고 한다면 유인과 설득은 소프트파워적인 수단이다. 

 

국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모두 다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력만 가지고 미국의 세기를 규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세기 말에 세계 최대 경제국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미국이 전 세계적인 세력균형 무대에서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했다. 미국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그렇게 막강해진 경제력의 일부를 군사적인 자원을 확보하는 데 투자하고 나서부터였다. 

 

더구나 어떤 특정 국가가 국력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요소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힘을 효과적인 힘으로 전환하는 능력(power conversion capability)이 떨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1930년대 미국이 그랬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갖고 있었지만 고립주의 정책을 추구했다. 

 

따라서 경제력과 군사력, 소프트파워라는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면, 중국이 총 경제규모 면에서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미국의 세기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GDP 총규모는 경제력 중에서도 어느 한 측면만 보여주는 수치일 뿐이다. 


미국의 세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따지는 데 있어서  유용한 방법은 국력의 구성요소들을 모두 따지는 것과 함께 미국이 그러한 국력의 구성요소들을 글로벌 세력균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19세기에 미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을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거래에 사용했으며, 전 지구적인 힘의 균형 면에서는 미미한 역할만 행사했을 뿐이었다. 동맹국들의 문제에 얽혀들지 말라는 조지 워싱턴의 충고를 따르고, 서방에만 관심을 집중하자는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에 따라 미국은 세계균형 문제에서 지극히 미미한 역할만 수행했다.  


그래서 당시 미국은 대규모 상비군을 보유하지 않았고, 1880년대에 미국 해군의 규모는 칠레 해군보다도 작았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이 군사력을 아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멕시코와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상대로 미국이 어떻게 군사력을 사용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유럽의 강대국들을 상대로는 고립주의 정책을 고수했다. 


1898년 단기간 치러진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미국은 쇠퇴하는 스페인으로부터 식민지 쿠바를 독립시키고,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을 빼앗았다. 하지만 그러한 공개적인 글로벌 제국주의 시절은 단명으로 그쳤다. 시오도어 루스벨트가 미국 해군력을 증강하고 세계 외교무대에 존재감을 알렸지만, 미국의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서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와 같은 외교 기조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 1차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부터이다.  마이클 린드(Michael Lind)는 최근 미국의 세기는 1914년에 시작되어 2014년에 끝났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2014년을 기준으로 볼 때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은 붕괴상태에 놓였고, 미국경제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민주주의는 붕괴됐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사려 깊은 외교정책과 민주적인 자본주의,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의 성공한 모델로 바라보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난 것 같다고 린드는 말했다.


이는 다소 과장된 주장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1917년에 우드로 윌슨은 오랜 고립주의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미군을 유럽 전선에 파병했다. 더 나아가 그는 전 지구적 차원의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국제연명 창설을 제안했다. 하지만 상원이 미국의 국제연맹 참가를 승인하는 조약 비준안을 부결시키고, 유럽에 파병된 군인들이 귀국하면서 미국은 다시 ‘정상적인 시절’로 되돌아갔다. 

 

지금은 범지구적인 세력균형을 다루는 데 있어서 미국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1930년대에 미국은 심각한 고립주의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세기의 출발점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2차세계대전에 참전키로 결정한 시점으로 잡는 게 보다 정확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교사를 부모로 둔 헨리 루스(Henry  Luce)는 1941년 2월 라이프(LIFE)지에 쓴 유명한 사설 ‘미국의 세기’(the American Century)를 통해 미국은 고립주의를 버리고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건은 해리 트루먼이 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미군의 해외 상시 주둔을 결정한 것이다. 1947년에 세력이 크게 약해진 영국이 그리스와 터키를 더 이상 지원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이 대신 나섰다. 미국은 이어서 1948년에 마셜플랜에 거액을 투자해 유럽의 전후 재건을 도왔고, 1950년에는 유엔군을 이끌고 한국전쟁에 참전해 싸웠다. 


이러한 결정들은 ‘봉쇄전략’(containment)의 일환이었다. 다른 학자들도 있었지만, 특히 미국의 외교관인 조지 케넌(George Kennan)은 2차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산업생산성과 국력을 기준으로 미국, 소련, 영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 5대 세력으로 나누어 파악했다. 그리고 소련의 세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5대 세력 가운데 3개 세력과 연합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금까지 미군 병력은 유럽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1945년부터 1991까지 세계는 힘의 균형 면에서 양극체제(兩極體制)로 불렸다. 초강대국 두 나라가 나머지 나라들을 크게 압도하는 양상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여러 세력 구성요인들을 압도적인 비중으로 독점하다시피 하고, 세력 동맹을 통해 비동맹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그리고 두 강대국은 핵무기 경쟁을 통해 상대 세력을 견제했다. 하지만 1989년 가을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이어서 1991년에 소련 연방이 붕괴되면서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당시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에는 외부보다 내부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 된 세계를 ‘일극체제’(unipolar)라고 불렀다. 바람직한 이름은 아니었다. 어떤 전문가들은 미국이 세계를 무대로 군사력을 행사할 능력을 가진 유일 초강대국이 된 1991년을 미국의 세기가 시작된 시기로 꼽는다.  


당시 미국의 해군력은 규모 면에서 세계 2위부터 차례로 17개국 해군력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을 정도로 압도적인 세계 1위였다. 공군력에서도 미군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고, 우주와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군사비 예산은 전 세계 군사비의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연합한다고 해도 미국의 군사력에 필적할 만한 세력균형을 이루기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여러 오해들
Myths of American hegemony

 

현대사를 통틀어 미국만큼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보인 나라는 없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헤게모니’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이 있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19세기 영국의 헤게모니와 비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지구상의 마지막 헤게모니 국가였던 대영제국의 족적을 따라가는 것 같다."8는 말을 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비교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소위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시절에 영국은 지금의 미국만큼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당시 영국의 군사전략은 2위와 3위 국가의 해군력을 합한 정도의 해군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 군사력을 가지고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유지했고, 인류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과 지금의 미국 사이에는 국력의 구성 요소에서 큰 차이가 있다. 1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강대국 가운데서 병력수 4위, GDP 4위, 군사비 예산 3위였다.9 군사비는 GDP의 평균 2.5~3.4퍼센트를 차지했고, 제국의 통치는 대부분 식민지 현지 병력으로 운용했다. 1차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싸운 영국군은 860만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거의 3분의 1이 해외식민지의 현지 병력이었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기는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이 일어날 즈음에는 제국을 유지하는 게 득보다는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미국제국’에 대해 여러 정확하지 않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사실 지금의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당시 영국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를 갖고 있다.  당시 영국은 주위에 독일과 러시아 같은 강력한 이웃이 있었지만, 미국은 좌우로 두 개의 대양이 면해 있고, 당시 영국이 상대한 나라들보다 훨씬 더 약한 나라들을 이웃에 두고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헤게모니’라는 단어가 너무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다른 세력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존재하고, 어떤 종류의 국력 구성요소를 확보하고 있을 때 헤게모니라고 부를 것인지에 대해 아직 보편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바가 없다. 

 

 ‘헤게모니’라는 용어를 ‘제국주의’와 같은 의미로 쓰는 전문가들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제국주의가 헤게모니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헤게모니를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향력’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역사상 그런 국가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

 

 헤게모니를 최고(primacy)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고, 국력의 구성요소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장악한 상태로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19세기 영국을 헤게모니 국가로 부르지만, 당시 영국은 GDP 면에서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3위였고, 국력이 절정기를 구가했던 1870년에도 군사비 지출은 러시아와 프랑스에 이어 3위에 그쳤다. 당시 영국은 해군력에서만 압도적인 우위에 놓여 있었지, 국력의 다른 구성 분야에서는 다른 대국들과 세력균형을 이루었던 것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군사력이 그 뒤 40년 넘게 소련의 견제를 받아 균형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미국의 정치적인 행동과 군사적인 행동은 소련의 힘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1945년 이후의 시기를 미국이 주도하는 서열관계(hierarchical order)에 입각한 세계질서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 기간 중에 힘이 약한 국가들은 미국의 힘에 편승할 수 있는 권한을 제도적으로 허용 받았다. 미국은 이들 나라들에게 공공재(public goods)를 보장해 주는 식으로 다면적인 규율과 제도 속에서 느슨한 서열관계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 교수는 이러한 서열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이 안보를 보장하고 공개경쟁시장, 다시 말해 오픈마켓(open market)을 지지하는 식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면,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우월한 지위에 공개적으로 맞서는 대신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쪽을 택하는 식이다." 

 

이런 나라들은 이후 미국의 힘을 뒷받침하는 구성요소들이 쇠퇴하게 되더라도, 이렇게 보장받은 제도적인 틀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일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미국의 국력이 압도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되더라도 미국의 세기는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식의 공개적이고 느슨한 서열 위주의 세계질서는 현재 다양한 세력들이 새롭게 부상함에 따라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한다. 미국의 헤게모니라는 신화에는 항상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비평가들도 있다.14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이 세계질서를 좌지우지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뜻이 맞는 국가들이 주로 아메리카 대륙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모여 집단을 형성했고, 이들 집단이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서 제외된 나라들의 눈에 항상 우호적으로 비친 것도 아니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말했듯이, 진정한 글로벌 세계질서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국가들인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소련 블록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 그룹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사실 대상을 놓고 보면 세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군사력 균형 면에서도 당시 미국은 헤게모니를 휘두르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경제력 면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자유로운 제도와 규율, 관행을 만들었지만, 그것도 세계의 절반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절반의 헤게모니’였다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노르웨이의 게이르 룬데슈타드(Geir Lundestad) 박사는 1945년 이후 미국이 부분적으로 주도하는 이 세계질서를 ‘초대에 의한 제국’(empire by invitation)이라고 불렀다. 소련을 ‘강압에 의한 제국’(empire by coercion)이라고 부른 것과 구분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다자체제를 만들어 다른 나라들에게 자발적인 접근을 허용해 줌으로써 자유로운 세계질서를 정당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러한 자발적인 세계질서는 이후 미국이 점진적인 쇠퇴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계속 존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신흥세력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이 새로운 질서에 편입될 것인가? 아미타브 아차리야(Amitav Acharya) 박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이러한 서열에 바탕을 둔 느슨한 질서가 아니라, 지역주의와 여러 다양한 사연에 기반을 둔 세계질서가 출현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는 영화 한 편만 상영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한 건물 안에서 여러 편의 다양한 영화를 골라볼 수 있도록 돼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비유로 든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느슨한 헤게모니 질서에 눈을 고정시키는 대신, 지금까지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아차리야 박사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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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헤게모니
Half-hegemony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헤게모니’라는 용어는 ‘미국의 세기’를 정의하는 개념으로 쓰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힘의 구성요소를 특정 국가가 압도적인 수준으로 보유하는 것을 뜻하는가 하면, 특정 국가가 다른 나라들이 따라야 할 규율을 정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나라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개념상의 모호함 때문에 미국의 세기가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고, 언제 끝날지 그 시기를 명시하기는 힘들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심지어 중국을 잃은 시점을 미국의 쇠퇴가 시작된 주요한 시점으로 보는가 하면, 중국을 잃은 시점을 미국의 국력이 상승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잡는 전문가들도 많이 있다.

 

만약에 미국의 헤게모니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2차세계대전의 결과로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1945년부터 시작해 세계 전체 생산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2차세계대전 이전 수준인 4분의 1로 떨어진 1970년까지의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헤게모니 기간 동안에도 미국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소련이 핵무기를 손에 넣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중국 영토 전부와 베트남의 절반이 공산화되는 것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도 승리를 결정짓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고, 소련이 헝가리와 체코의 봉기를 무력 진압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쿠바는 카스트로의 손에 넘어갔다.

 

그밖에도 많은 일들이 이 기간 동안에 미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졌다. 따라서 나는 이 시기를 미국의 ‘헤게모니’ 시대라고 부르는 대신 미국이 ‘최고’(primacy)나 ‘탁월한’(pre-eminence) 지위를 누린 시기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특정 국가가 국력을 가늠하는 세 가지 구성요소를 다른 나라들보다 특별히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인 용어들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은 경제력 구성요소에서 탁월한 지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력의 구성요소 가운데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세계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소련이 미국의 힘에 맞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양극체제였다.  이후 일극체제(Unipolarity)가 도래한 것은 1991년에 소련 연방이 붕괴되고 나서였다. 


이후 미국은 여러 나라들에게 공공재를 공급하는 친절한 패권국(hegemon)으로서 세계질서를 주도하며 안보와 번영 같은 구호품을 다른 나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그 구호품은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누릴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클럽에 가입한 나라들에게만 제공되는 회원제 물품이었다.  

 

하지만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콩고, 이란, 과테말라, 칠레 같은 비회원국들의 눈에는 클럽 회원국들에게 안보와 번영을 제공하기 위해 채택되는 수단들이 그렇게 우호적인  공공재로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헤게모니 개념이 갖고 있는 양면성 때문에 ‘미국의 세기’가 시작된 시기는 2차세계대전이 일어난 시점으로 잡는 게 좋다.  

 

이 시기는 미국이 세계질서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장악하지는 않았지만, 경제력 구성요소에서 최고 우위를 차지했고, 글로벌 세력균형에서 중심 역할을 하던 때였다.  따라서 '미국의 세기'가 탄생한 출생연도는 1941년이고, 사망연도는 아직 미정이다.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라는 짤막한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우리가 아직 미국 이후의 세계질서(post-American world) 속으로 들어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이 책이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 워낙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에 의해 많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해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예측불가능한 여러 사건들이 더 많은 변수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시간범위(time horizon)를 정해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만약에 ‘미국의 세기’가 1941년에 시작됐다면, 2041년에도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글로벌 세력균형 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행사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국력의 구성요소들을 가장 우월적으로  유지하고 있을까? 와 같은 식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그럴 것이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국경을 뛰어넘는 다국적 세력과 비정부세력들로 인해 미국의 세기는 여러 중요한 방향에서 그 성격이 크게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 성격이 어떻게 바뀌어나갈지는 앞으로 설명하게 될 것이다. 우선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먼저 따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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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조지프 S. 나이 저/이기동 역 | 프리뷰
이 책은 국제정치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조지프 나이 교수가 미국의 세기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소위 미국 쇠퇴론를 향해 던지는 강력한 반박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앞으로 몇 십 년 후에도 군사력, 경제력, 소프트파워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현재 약진하고 있는 여러 강대국 중에서 미국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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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조지프 S. 나이> 저/<이기동> 역12,600원(10% + 5%)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 미국 쇠퇴론을 향해 던지는 석학의 강력한 반박문 한 세기 넘게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이제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최강대국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제력 면에서는 중국이 이미 미국을 따라잡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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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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