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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전문가에게 듣는 동사 이야기

『동사의 맛』 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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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잡지와 단행본의 문장을 가다듬어 온 김정선 저자가 『동사의 맛』을 냈다. 이 책은 헷갈리기 쉬운 동사와 점점 사라져가는 고유어를 소개했다.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가 있는 예문을 함께 실어 읽는 맛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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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겨루기>는 올바른 우리말이 무엇인지를 맞히는 KBS의 퀴즈 프로그램이다. 방송에 나오는 질문은 보통 사람이 못 풀 만한 어려운 문제도 많다. 프로그램에 나오기 위해 몇 년씩 우리말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지만 달인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만큼, 우리말은 어렵다.

 

우리말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용언’이다. 동사와 형용사인 용언은 기본형과 활용이 있는데, 한국어에는 불규칙 활용이 많다. 그리고 한자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사라져가는 동사도 있다. 그래서 올바른 동사 사용법을 익히는 게 우리말 고수가 되기 위해 필수다.

 

『동사의 맛』은 20년 넘게 교정ㆍ교열을 해 온 김정선 저자가 쓴 책이다. 누구보다 먼저 원고를 보고, 누구보다 많이 글을 봤을 저자답게 책에는 우리가 자주 헷갈리는 동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한편으로는 점점 사용하지 않아 사어가 될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동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순히 뜻풀이만 했다면, 다소 딱딱한 책이 되었겠지만 『동사의 맛』에는 이야기가 있는 예문을 함께 수록해서 읽는 맛을 더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책을 낸 이유

 

『동사의 맛』은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출판사 사람과 식사하고 술 마시면서 나온 이야기에서 시작한 책이에요. 동사만으로 책을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셨는데, 저도 처음에는 의외였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동사가 문제더라고요. 명사처럼 체언은 몸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데, 동사나 형용사 같은 용언은 기본형과 활용형이 있고 불규칙 활용이 워낙 많으니까요. 체언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활용 심한 동사는 검색해도 잘 안 나와요. 그래서 누군가가 정리해 놓으면, 독자가 이용하기에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 형식이 특이합니다. 동사 활용도 소개해주셨지만, 예문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요.

 

뜻 풀이와 활용만 소개하면 일반 독자가 읽을 것 같지 않았어요. 이야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말이 쉽지, 이야기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교정 보시면서 실수를 발견하실 텐데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고,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실수해요. 대개 체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용언은 그렇게까지 신경을 안 쓰거든요. 이렇게 되면서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져요. 첫째는, 동사 표현이 단조로워집니다. 제가 교정 일 처음 했을 때만 해도 ‘가시다’와 ‘부시다’는 소설 말고도 일반적인 산문에서도 썼어요. 입을 가시고 그릇을 부시다고 썼는데, 지금은 ‘씻다’ 하나만 써요.

 

둘째는, 한자어에 ‘하다’, ‘되다’를 붙여요. 월드컵 해설 들을 때였는데, 해설 위원이 한국 경기라 더 긴장해서 그렇겠지만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이기기 위해서는 작전을 성공시켜야 하는데요. 아, 저러면 실패돼요, 실패돼요.” 사어가 될 이유가 없는데도 한 단어로 쓰거나, 한자어에 ‘하다’나 ‘되다’를 붙여버리니까 사어가 되어버리죠. 아쉽죠.

 

 

컴퓨터가 없던 시절 책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오랫동안 교정ㆍ교열을 하며 이쪽 일을 생각하는 선생님만의 철학이 있을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번역가가 번역에 관한 책을 낼 수는 있지만, 저희가 교정에 관한 책을 내면 바로 항의가 들어올 거예요. 교정 교열은 어쨌든 원문의 실수를 지적하고 수정해야 하니까요. 저자나 역자는 자신의 글을 확신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의심해야 하는 사람이죠. 편집자는 양쪽을 설득해서 조화를 이루는 역할이고요. 의심을 하더라도, 제 입장에서 의심하면 안 되고 독자 입장에서 봐야 해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는 책으로 만든다면, 그 수준에서 의심해야죠.

 

교정ㆍ교열 보는 데 특별히 선호하는 분야 책이 있나요?

 

주로 인문학 관련 책을 교정 보지만, 제 기호를 투영하면 실수가 많이 나와요. 설령 제 기준에서는 아는 이야기더라도 넘어가면 안 되는데, 지나칠 수 있거든요.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원고만 받아서 작업하는 게 더 잘 되죠. 경제경영이나 자기계발서는 잘 안 하는 분야인데, 가끔 하게 되면 힘들어요. 신조어도 많고, 모르는 용어도 많이 나와서 흐름이 끊기거든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이 주된 내용인데, 저는 혼자 일한 시간이 많아서 그쪽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모르잖아요. 그러면 단순한 교정밖에 볼 수 없으니 재미 없어지죠. 교정ㆍ교열이 단순히 맞춤법, 띄어쓰기만을 고치는 작업은 아니거든요. 교정ㆍ교열은 첫 독자로서 깊이 있게 읽고, 글의 전반적인 순서에 관한 의견도 저자나 편집자와 주고 받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에요.

 

소설이나 시와 같은 책은 교정ㆍ교열 과정이 없을 것 같은데요.

 

한국 시, 소설은 드물지만 번역 소설은 봐야 하고요. 국내 작가의 소설 중에는 김훈 선생님의 <칼의 노래>를 의뢰 받아 작업한 일이 기억나네요. 순전히 제가 옛날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을 배웠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원고지와 교정지의 내용을 일일이 대조해야 했거든요. 그분이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시는 분이잖아요. 제가 교정 본 책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거의 유일한 책일 겁니다. 문학상을 받기도 했으니 문단에서 인정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네요. 책이 나오고 나서 버스에서 여대생 둘이 그 책을 들고 마치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낭송하듯이 문장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책 만들던 방식은 어땠나요.

 

제가 옛날 방식으로 일한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우선 원고를 받아서 원고지 상태에서 한 번 봐요. 원고지 위에다가 체크를 하고, 교정본을 오퍼레이터에게 뽑아 달라고 하죠. 교정지 상태로 나오면, 출력실로 가서 인화지 상태로 봐요. 이 과정에서 최소 3교를 보게 되죠. 그리고 인화지를 재단해서 대지에 일일이 붙여가면서 편집을 하는 겁니다. 사진 들어갈 자리를 파내거나 각주는 따로 제 위치에 붙여가면서 말이죠. 물론 인화지를 오리고 따 붙이고 하는 이른바 ‘쪽자 작업’도 하게 되죠. 필름을 가지고도 쪽자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컴퓨터가 하는 일을 손으로 직접 한 셈이랄까요.

 

그래서 당시 제 책상에는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대신 식자용 칼에 풀, 자, 커터칼, 제도판 따위가 있었죠. 작업을 끝내고 나면 손은 풀로 엉망이 되고 코엔 필름을 긁어내느라 생긴 가루들이 들어차곤 했어요. 어떨 땐 작업하다 손을 베서 인화지가 벌겋게 물들기도 했고요. 말 그대로 기술자였죠 뭐. 이렇게 말하면 무척이나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불과 15년밖에 안 된 이야기입니다. 요즘 출판 편집자는 책 만드는 일 외에 강연 기획이나 언론 홍보, 표지 디자이너와 협의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편집자가 책 한 권 만들려면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었어요. 당시는 에디터라는 개념보다는 편집기술자, 편집공학자였죠. 지금은 표지 디자인 따로, 교정 교열 따로, 홍보 따로 이렇게 세분화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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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 시작한 일, 배우는 맛으로 계속해

 

초기 편집자에서 에디터가 되지 않고 교정 교열 전문으로 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편집기술자 시절의 편집자라 요즘 편집들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불안해요. 에디터 개념의 편집자가 아니었기 때문에요. 그저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서 일하면 좋겠다 싶어 들어갔을 뿐이지 내가 정말 편집 일을 좋아하는지 또는 이 일은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한지 확신은 없었죠. 결국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볼까 하다 그것도 쉽지 않아 아르바이트 삼아 다시 교정 교정 일을 하게 되었어요. 잡지사 출판사에서 정말 지겨워했던 일이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부탁한 곳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 이제 이 일은 안 하겠구나 싶었는데 또 연락이 왔어요. 저를 소개해준 후배가 너무 포장을 한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건데요. 외주 교열을 하며 더 많이 배웠어요. 한 군데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와 대화를 하면서 책에 대해서도 배우고, 배우는 맛에 계속 했죠.
 
책을 좋아했던 계기가 있었나요?

 

아버지가 양복점 재단사였는데, 아버지가 양복 값 대신해서 전집을 받아오셨어요. 방 한 칸에 네 식구가 살던 때라 어머니는 굉장히 싫어하셨죠. 좁은 데 무슨 책이냐고요. 그때 『돌리틀 선생의 항해기』, 『닐스의 모험』, 『하늘을 나는 교실』 등을 읽으면서 책이 재밌다는 걸 알았어요. 중학교 가서도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을 빌려보곤 했죠. 혼자 구석에서 책 읽는 시간이 늘면서 성격이 지나치게 소극적이 되는 것 같아 일부러 잘 노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친구가 바로 내 앞에서 깨진 유리를 들고 장난을 치다가 한 친구가 실수로 다른 친구를 찌르고 만 거예요. 병원에 실려 갔던 친구가 일주일 만에 교실로 돌아왔는데 심장을 몇 센티미턴가 비껴갔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아서 그때 이후로는 더 소심한 성격이 되고 말았어요. 이를테면 책 속으로 도피하는 게 습관이 되었달까요.

 

문학소년, 이런 말이 자랑거리일 수 있지만 살아보니까 무엇이든 과한 건 안 좋더라고요. 책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책을 보더라도 활동적인 생활도 어느 정도 해야 해요. 사람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죠. 지인들과 모여 술 마시며 즐겨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마음이 가라앉는 사람도 있죠. 사람에 따라 다를 텐데, 이미 나이가 든 어른은 어쩔 수 없지만 어린 학생의 경우라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좋지 않을 듯싶네요. 저도 책을 좋아해서 책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했지만, 돌이켜보면 한쪽 세계에만 치우쳐 지낸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출판 쪽 일을 하시면서 책 안 읽는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지 않나요.

 

그럴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예전에는 책과 독자 사이에 아무 것도 없었죠. 보통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친구 기다리다 서점 들어가서 책을 사기도 하고 그 책을 빌려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야금야금 책의 세계를 알아갔는데요. 그야말로 대면이죠. 요즘은 책 한 권을 사려고 해도 수많은 게 개입해요. 검색해서, 리뷰 보고, 저자 정보와 출판사 서평 읽은 뒤에 카트에 넣어놨다가 주변 사람 이야기를 듣고 안 사게 되고, 이런 시대가 됐어요. 예전에는 소설이든 수필이든, 철학 서적이든 그 책에 감동해서 밤새 못 잤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은 중간에서 휘발되죠. 갖가지 정보가 중간에 끼어드니까요. 그리고 스마트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주로 스마트폰을 봤는데, 요즘은 나이 든 사람도 전철에서 다 스마트폰 보는 시대니까요.
 
책 읽는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할까요?

 

제가 답할 질문은 아닌 것 같긴 한데요. 굳이 답하자면, 책 읽는 재미를 붙여야겠죠. 책 읽는 재미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면대면으로 쭉 읽는 습관 속에서 나와요. 저는 직업이니까, 남의 원고를 기본 3번 보는데요. 재교를 볼 때, 3교를 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게 계속 나와요.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냐 하면, 책을 알기 위해서는 한 번의 독서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죠. 책과 나 사이의 모든 벽을 제거하고 쭉 읽어야 글 읽는 맛도 생깁니다.

 

다음 책은?

 

먹방이 유행이죠? 예전 요리 프로그램은 요리 만드는 것으로 끝났는데, 이제는 드라마나 토크쇼,오디션과 결합해서 다양하게 보여주잖아요. 요리의 기본형이 활용형으로 간 셈인데, 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시중에는 맞춤법 관련 책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런 책이 기본형이라면, 『동사의 맛』은 이야기와 결합을 시도했는데, 우리말 관련해서 색다른 책을 내려고 해요. 상황이 허락된다면 형용사와 부사로도 비슷한 책을 써보고 싶어요. 한국어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품사가 형용사와 부사가 아닌가 싶어서요. 다만 이번에도 사전이나 참고서가 아니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게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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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김정선 저 | 유유
이 책은 한국어 동사를 다루되, 일반 독자는 재미있게 읽으면서 동사 활용법을 익힐 수 있고,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글을 다루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쓰였다. 20여 년간 외주 교정자로 숱한 교정지와 씨름한 이력과 실전 경험을 가진 저자는 헷갈리는 동사를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고, 그 결과 헷갈리는 동사를 짝짓고 이를 스토리텔링과 접목하는 방식을 택했다. ‘남자’와 ‘여자’의 에피소드를 동사를 사용하는 사례로 활용해서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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