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던 터라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에는 모임에 나가면 결혼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곧잘 상담으로 이어지곤 했다. 나를 붙잡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또래나 후배들이었지만 언니, 오빠, 선배 들의 경우도 꽤 많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나이나 사회적 위치(대부분 나보다 직급이 높았다) 때문에 고민거리를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고 빙빙 돌려 말했다. 그러다 내가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순간에 대해, 둘의 차이점과 장단점에 대해 얘기하면 슬금슬금 연애 문제와 결혼 고민을 끄집어냈다. 실컷 얘기하고 난 그들은 내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한 게 아닌데도 “역시 경험자는 다르구나” 하며 후련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보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연애 경험도 적은 내가 얘기 상대가 될 수 있는 건 딱 하나, 결혼을 경험해봤다는 것이었다.
출산 방법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는 천하의 팔랑귀가 되었다. 하루는 수술을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가 의사인 친구가 자연분만이 산모나 아기 모두에게 좋다고 한 다음에는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예정일까지 기다렸다가 힘을 줘보자고 결심했고, 그다음 날에는 SNS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산모에 관한 뉴스를 보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나보다 몇 달 먼저 임신한 후배는 임신 초기부터 이런 저런 조언을 많이 해줬다. 임신 전에도 종종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셨지만 아이를 가진 뒤로 우리는 동료애를 뛰어넘는 동지애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출산 방법 때문에 고민할 때 후배는 이미 출산, 조리원의 과정을 마치고 집에서 실전 육아 중이었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 운동도 열심히 했던 후배는 그냥 의사에 말에 따르라고 했다.
언니. 전문가 말대로 해요. 괜히 고집부릴 필요 없다니까요.
후배가 들려준 출산 스토리는 내가 가상으로 그려보며 염려하던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애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오, 아, 하며 깨달음과 수긍의 감탄사를 남발했다. 아이를 만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 후배가 한마디 덧붙였다. 언니. 낳아봐요. 왜 어른들이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했는지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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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