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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진 “하루키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

『하루키 레시피』 차유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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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확실히 본인이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요리를 배경으로, 매개로, 은유로 사용하는 글들과 소설은 많지만 이 사람이 정말 요리에 대해 아는 사람인지, 그냥 어디서 픽업한 지식으로 글을 쓰는지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20여 년 전부터 꼭꼭 씹으며 읽고 함께 성장한 작가 차유진. 그녀가 쓴 대한 에세이 『하루키 레시피』는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져보기도 하고, 떠나보기도 하며, 무엇보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손녀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는 차유진은 ‘분홍 옷을 즐겨 입고 샌드위치를 잘 만드는, 뚱뚱하지만 얼굴이 예쁜, 노박사의 손녀딸’이 책에서 걸어 나온 듯 했다. 단 분홍색 옷만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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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하루키 소설 속의 사람들처럼 외로웠고, 급작스러운 이별과 어긋나는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방황했다. 쿨함도, 청승도 아닌 소설 안에 흐르는 그 외로움과 언제고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쓸쓸함을 같이 이야기하고픈 사람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다. -『하루키 레시피』 中


하루키와 요리와 글쓰기가 만난 독특한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일단 책이 나와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루키는 워낙 마니아들이 많은 작가라 제가 나름대로 생각하고 해석한 것들을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시고, 그걸 넘어 좋아해주실 수 있을지 쓰면서 내내 걱정했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제가 하루키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고, 그냥 좋아하는 작가로, 책을 사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젠가 하루키에 관한 팬심으로 책을 한 권쯤 쓰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소원이 하나 이루어진 셈이네요. 행복합니다.


『하루키 레시피』는 언제부터 계획했어요?

하루키의 책들을 정말 열심히 사서 읽던 시기에 저는 요리를 하고 있지 않았고, 요리에 대한 지식도 많지 않았어요. 오히려 음악, 재즈 관련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키에 관한 책을 쓴다면 그의 책 속에 나오는 음악에 대해 몇 꼭지 정도 쓰고 싶었죠. 하루키가 직접 쓴 『재즈의 초상』이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었잖아요? 제가 재즈 관련 일을 할 때 마침 하루키의 음악책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었고 그 주제로 음악감상회도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역시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요리에 관한 거였어요.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남아 끝없이 궁금해하게 하는 다양한 요리들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고, 나중에 요리를 전공하고 그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스토리 속의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저 나름대로 의견을 붙이고, 또 제가 궁금해했던 것처럼 하루키 소설 속의 음식에 대해 작은 정보를 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획하고 다시 전작을 읽기 시작한 것은 3년쯤 되었어요.


그의 소설에서 요리는 일상을 묘사하는 도구이자 개인의 성격 내지는 취향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상실과 공허, 이별 등으로 어딘가 비어버린 주인공이 그 헛헛함과 불안을 달래기 위한 도구로 음식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 레시피』 中


『하루키 레시피』에 언급하신 요리들 중 요새 마음 헛헛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꼭 만들어보길 권할 만한 요리가 있을까요?

마음이 헛헛하고 힘들 때는 역시 잘 넘어가는 음식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 기름져서 입술부터 목으로 넘길 때 지방이 주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요리가 좋죠. 레시피에 나와 있는 요리로는 마카로니&치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책에는 없지만 수프와 스튜 종류도 좋죠. 저는 잘 삶은 파스타를 꼭꼭 씹어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양념 과하게 하지 않고요.


책을 보면 하루키의 요리들이 아닌 새로운 레시피로 책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도리어 차유진 작가님이 요리를 해주고 싶다며 제안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 속의 ‘손녀딸’이 아닌 현실의 ‘손녀딸’인 자기 자신에게 단 하나의 요리를 해준다면, 어떤 요리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우울할 때마다 매번 먹고 싶은 음식이 달라지긴 한데 저는 너무 짜지 않게 소금간을 한 두꺼운 생선구이가 좋을 것 같네요. 삼치, 고등어, 임연수어, 조기 다 좋아요. 거기에 소주 한잔!


요리를 하시면서 글을 쓰는 삶은 어떤가요? 부엌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사이사이 글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을 듯한데, 푸드라이터, 요리하는 글쟁이로 살아가는 것의 장단점이 궁금합니다.
 
요리가 머릿속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후각과 미각의 기억을 되살려내 음식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글쓰는 것은 머리도 필요하지만 뭔가 마음속 깊은 곳, 정신적인 우물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와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불과 칼을 가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시간을 맞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과 앉아서 차분하게, 활동하면서 들뜬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으로 들어갔다가, 그걸 다시 문장으로 꾸며 내보내는 일은 정말 너무 다른 일이라 사실 무척 힘이 듭니다. 제가 아직 서투른 글쟁이라 그럴 수도 있겠어요. 사실 우연히 번역을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매력을 느끼고 계속하고 싶었는데, 번역은 글쓰기에 엄청난 양의 공부가 더해져요. 시간이 몇 배로 필요한 일이라 최근에는 못하고 있고요. 늘 50세가 되면 부엌을 떠나 글만 쓰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는데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며칠 쉬면 둔해집니다. 저는 마켓에서 일이 없는 날은 오믈렛이라도 만들려고 하거든요.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요. 글도 그래야 하는데 앉아서 쓸 시간이 출분치 않아 그 글쓰기 근육을 되돌리는 데 매번 어려움을 겪어요. 그래서 쓰고 싶은 주제, 번역하고 싶은 책을 한 페이지씩이라도 매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리도 그렇지만 글쓰기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에요. 미술을 하고 음악 일을 하다가 요리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커리어를 바꾸어오는 동안에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 놓지 않았던 것은 글쓰기였어요.


하루키와 요리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라, 일, 사랑, 인간관계 등 작가님의 개인사도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실패와 분투의 과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언급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책을 쓰면서 지난 삶을 돌아본 소회는 어땠나요?

편집자가 하루키 이야기도 좋지만 제 이야기를 많이 쓰라고 했을 때가 사실 2~3년 전인데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거든요. 건강도 좋지 않았고요. 그래서 제 이야기는 차마 못 쓰고 하루키의 글과 요리에 관한 이야기들만 썼어요. 그런데 그런 글만 쓰다 보니, 제 이야기가 안 들어가면 글 자체가 뭔가 구멍이 나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렇게 쓰면서, 아 이건 하루키 소설 속의 음식 분석 글이 아니라, 하루키를 좋아한 차유진이라는 애가 요리를 전공하고 그의 책 속에 있는 요리 이야기를 나름 풀어주는 것이니, 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이야기들을 쓰는 것은 치료도 되었지만 고통스럽기도 했어요. 자기 자신의 비루한 점이라든가, 고통받았던 기억을 다 꺼내어놓고 글로 쓰는 것은 참 힘들더군요. 내가 힘들었다고 알아달라고 징징거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팠던 것을 미화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그렇게 문장으로 차갑게 객관화시키다보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 별일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고, 어떤 건 참 잘도 버텼네, 라는 생각도 들어 기특하기도 하고 그랬죠. 그와는 별개로 나의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어떤 독자들이 돈 주고 사서 읽겠어? 란 공포도 함께했어요. 하하 책을 여러 권 써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정말 힘드네요.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일상을 무덤덤하게 살아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렇게 혹독한 고독을 겪는다. 사실 이 고독을 겪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 성장하는 일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토록 지독하게 외롭고 가늠할 수 없는 무게의 상실을 경험하고 나서야 겨우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하루키 레시피』 中


이 책의 테마 중 하나는 ‘성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고비에서 위기가 오거나 떠나야 할 때, 작가님은 마치 소설 속 인물처럼 자신에게 어떤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새로운 여행이나 직업, 도전을 거리낌 없이 선택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 사실 두려운 일이기도 하셨을 텐데요. 그럴 수 있었던 계기나 동력 같은 건 무엇이었나요? 


하루키는 이사를 하면 좋은 것이 제로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 같아서라고 에세이에서 말한 적이 있어요.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저는 어떤 상황에서 최대한 겪을 만큼 겪어보고 안 된다 싶으면 얼른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나랑 맞는 환경, 상황, 일이 아니니 좀 떨어져서 바라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문제가 다 해결되어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도망가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비겁한 면도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선 살아야 하니까, 떠나는 것을 선택하게 되잖아요? 일단 살아야 하니까. 남미를 간 것도, 일단 떠나고 싶고, 가서 다른 것도 배우고 싶지만 돌아와서 작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어 떠난 것이기도 했거든요. 힘들긴 했지만 다녀와서 얻은 경험으로 또다른 일들을 할 수 있었고, 글도 쓸 수 있었어요. 하여간 제가 떠나게 되는 동력은 여기가 아니다 싶으면 떠나서 내가 할 수 있는,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안 하고 있는 일을 찾아 가보자,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책에서 이른바 ‘하루키 로드’라고 할 만한 일본에서의 하루키 여행에 대한 부분도 재밌었습니다. 진구마에 우체국부터 하루키가 된 듯한 하루..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언제 다녀오신 건가요? 

『하루키 레시피』를 기획하고 얼마 안 되어 여주로 이사를 갔어요. 이사하고 나서 보증금 차액이 조금 남아 그럼 가보고 싶었던 거니까 얼른 다녀오자, 란 생각을 했어요. 2011년 10월이었는데, 그때 계약하고 바로 후다닥 다 써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완전히 에너지 충만해서 표 알아보고, 하루키가 잘 가는 장소, 소설에 나왔던 곳, 정보를 모아서 떠났죠. 소설에 나왔던 장소도 좋았지만 저는 그가 재즈카페를 운영했던 장소 두 군데를 그렇게 가보고 싶었어요. 고쿠분지와 세타가야에 있는 두 군데를 가보니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소설이 아닌, 그가 생활인으로서 지내던 곳이라 그런지 참 묘하더군요. 기간은 일주일 정도 걸렸고요. 4박 5일을 도쿄에 있었고 이틀을 오사카에 머물면서 고베에 다녀왔습니다.


하루키 여행의 여정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을 꼽는다면?

책에도 적었지만 진구마에 우체국이 참 인상에 남았어요. 우체국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고 안자이 미즈마루와 함께하던 커리집과 진구구장에서의 경기관람도 즐거웠고요. 그리고 영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찍은 장소인 고베 산노미야의 바 <하프 타임>도 아주 좋았습니다. 정말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바의 인테리어, 핀볼기계 등이 하루키의 초기작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아주 멋진 곳이었어요. 카페 단골들이 직접 만들어 붙였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포스터도 보실 수 있답니다.


차유진 작가님이 작가로서 보는 하루키, 와 요리사로서 보는 하루키는 어떤 사람인가요? 작가님의 단평이 듣고 싶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하루키가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는 생각과 동시에 아, 저분은 이미 얼마 정도의 책을 써야 하는지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이 마무리될 때까지 어느 정도의 양을 써야 한다고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아직도 그 양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양을 채우기 위해, 몸 관리 잘 하고 건강하게 식사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해요.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아는 만큼, 자신이 무얼 먹고,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거고요. 그리고 하루키는 확실히 본인이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요리를 배경으로, 매개로, 은유로 사용하는 글들과 소설은 많지만 이 사람이 정말 요리에 대해 아는 사람인지, 그냥 어디서 픽업한 지식으로 글을 쓰는지 보면 알 수 있거든요. 말이 길어졌는데 단평으로 하자면 “하루키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 아닐까 해요. 우리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고요.


지난 20여 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글을 읽으며 너무나도 행복했고 누구보다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책이, 당신의 책 속에 있는 세계가 저를 지탱해주었습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바닥으로 꺼지는 그 순간마저 사실은 위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 계단을 오르고 문지방을 건너는 여행중이라는 것도 자각하게 되었답니다. 지독할 정도로 고독하고 무심한, 하지만 운명이 바뀌는 시점에 두려움 없이 여행을 떠나는 당신 글 속의 주인공들이 곧 나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어떤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내 주변의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풀어갈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하루키 레시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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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레시피차유진 저 | 문학동네
차유진이 하루키 작품 속의 요리들, 그리고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즐겨 먹는다고 언급했던 요리들을 책 밖으로 끌어내 한바탕 만찬을 열었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은 어느 공허한 날의 저녁, 헛헛한 고독과 아픔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낸다는 증명이 절실히 필요할 때, 간단히 요리하고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는 하루키의 요리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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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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