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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제 “하고 싶은 걸 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해직된 MBC 기자, 그리고 그가 만든 스피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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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1에서 책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의 출간 기념 청음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엔 이 책의 저자인 박성제와, 전 MBC 앵커였던 최일구가 자리해 함께 대화를 나눴다.

가을 분위기가 완연히 느껴지는 10월의 어느 저녁. 쿠르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김민기의 노래 ‘가을편지’와 함께 ‘쿠르베와 함께하는 어느 해직 기자의 밤’이란 부제의 출간 기념 청음회가 시작됐다. 이날 행사에 저자 강연회가 아니라 청음회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을 쓴 박성제는 전직 MBC 기자였다. 지난 2012년 파업의 배후로 지목되어 19년 동안 일하던 MBC에서 해직된 후, 그는 평소 하고 싶었던 스피커를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쿠르베’라는 괜찮은 스피커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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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MBC 기자, 졸지에 해직되기까지


최일구: 가 79학번인데요. 오늘 20년 만에 음악다방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드네요. 지금 앞에 보이는 쿠르베 스피커. 이거 정말 박성제 기자가 만든 겁니까? 어떻게 이런 걸 만들게 됐어요?

 

박성제: 처음엔 네모난 스피커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평생 가져갈만한 스피커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네모나게 만들기는 싫어서 이런저런 연구를 하다가 만들게 되었어요. 만약 제가 처음부터 스피커를 팔기 위해서 만들었으면 이런 게 안 나왔을 거예요. 팔려면 일단 만들기가 쉬워야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거실에 멋있는 스피커를 놓고 죽을 때까지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모양의 스피커가 나오게 된 거죠.

 

최일구: 박기자는 지난 2012년 MBC에서 해직됐죠?

 

박성제: 네, 그때 당시에는 제가 왜 해고가 된 건지 몰랐어요. 당시 사장님이 김재철씨였는데 그분이 저를 좀 미워했나 봐요. 제 해고사유는 회사질서문란이었어요. 인사위원회가 열렸을 때 제가 회사질서를 어떻게 문란하게 한 건지 이야기해보라고 말했더니 CCTV 사진을 하나 보여주더라고요. 후배들이 집회를 하고 있고 제가 그 뒤쪽에 서있는 사진이었어요. 당신이 뒤에서 조종한 거 아니냐고 묻길래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항의를 했는데 먹히질 않았어요. 아마도 김재철 사장이 저를 해고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 지시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일구: 저는 박성제 기자가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모습 같은 건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

 

박성제: 차라리 제가 정말로 그런 짓을 했으면 이해라도 할 텐데 말이에요. 제가 노조위원장을 했었거든요. 그 당시 저랑 같이 해고된 분이 지금 뉴스타파하시는 최승호 선배인데 그분도 노조위원장이었어요. 아마도 배후세력을 쳐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른 게 아닌가 생각해요.

 

최일구: 제가 MBC 22기고 박기자가 26기인데요. MBC에서는 서로 노조위원장을 하지 않으려고 난리잖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갑자기 노조위원장을 하게 됐습니까.

 

박성제: 어쩌다 보니 하게 됐어요. 제가 2005년에 미국 연수를 다녀온 후였는데, 그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선배가 어느 날 갑자기 저를 불러서 저보고 차기 노조위원장을 하래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그때가 2006년에서 2007년 넘어가던 때였어요. 2007년은 대선이 있는 해였는데 당시 노무현 정부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바닥이었을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다음에 한나라당으로 정권 교체가 될 확률이 높은 상황인데, 당시 한나라당이 MBC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최일구: 그때 한나라당의 대선공약집을 보면 MBC를 민영화시키겠다는 구절이 있었어요.

 

박성제: 네. 그러니까 노조가 싸워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시기에 노조위원장이 되면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다들 아무도 안하려고 했고, 저도 그냥 모른척하면 됐을 텐데 그걸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저는 싸움을 못했거든요. 근데 반장, 부반장 같은 일은 했어요. 그래서 노는 애들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면 싸움을 못하는데도 앞에 나가서 싸우고 그랬어요. 제가 쓸데없는 정의감 같은 게 있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노조위원장을 하기로 한 이유도, 아무도 안하려고 하면 MBC 노조가 힘들어질 테니까 그냥 내가 하자라고 마음먹었던 거예요. 딱 2년만 고생하자. 너무 과격하게 하지 않고 그냥 조용하게 가자. 시작할 땐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최일구: 노조위원장으로 있던 시절, 무사히 끝났나요?

 

박성제: 처음 일 년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임기 2년째인 2008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5월에 PD수첩에서 광우병 관련 보도를 했어요. 그리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소고기 수입에 서명을 하고 왔잖아요. 나라 전체에서 난리가 났죠. 6월 10일 광화문에 백만 명이 모였고, 그때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8%인가 그랬어요. 그래서 정부는 MBC의 PD수첩이 이 문제의 주범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대반격을 시작한 거죠. PD수첩을 제작한 PD들을 검찰이 명예훼손죄로 기소하고 체포하려고 한 거죠. 그래서 제가 후배들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PD들을 피신시켰어요. 그러니까 검찰에서 저한테 연락을 해서 경고를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주 사찰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그 당시 KBS 정연주 사장이 8월에 잘렸어요. 그래서 저는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는 걸 막으려고 촛불문화제를 하다가 잡혀갔어요. 그렇게 제가 경찰서에 잡혀도 가보고, 사찰대상도 되고, 그러다가 그해 마지막에 미디어법 파동이 있었어요. 그걸 막기 위해서 MBC가 2009년 초에 또 파업을 했는데 그때는 제가 주동자였죠. 그때 또 찍히고.

 

최일구: 그렇게 2년간 노조위원장으로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박성제: 다시 보도국으로 돌아왔죠. 위태롭기는 했지만 잘 끝냈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다시 평범한 기자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기영 사장이 날아가고, 김재철 사장이 온 거예요. 예전에 김재철 사장이 MBC 사장으로 엄기영 사장과 같이 붙었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김재철 사장을 막았어요. 김재철 사장 오면 안 된다고 성명서도 내고 시위도 하고요. 당시 김재철 사장이 울산 MBC 사장이었을 시절에 이명박 대통령 유세에 따라다니면서 눈도장을 찍고, 아부한다는 얘기가 들렸는데 저는 그런 분이 공영방송 사장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막았던 거죠. 아마 그때 김재철 사장이 저한테 첫 번째 원한을 가졌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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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스피커, 쿠르베를 들고 돌아오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바쳐 일했던 직장에서 어느 날 해고를 당한 후, 그는 아픔과 분노를 달래기 위해 목공을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 즐겼던 클래식과 오디오에 더욱 빠지게 되었다. 그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평소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던 스피커를 직접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최일구: 해직됐을 때 박기자에게 요즘 뭐하고 사느냐고 물어봤더니 공방에 다닌대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스피커 만든다는 얘기가 들리고, 제작발표회를 한다고 해서 가봤더니 이런 게 만들어져 있더라고요. 스피커는 어떻게 만들게 된 겁니까?

 

박성제: 해고당한 다음에 시간을 때우려고 공방에 다녔어요. 저는 대선만 끝나면 복직될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곧 복직될 거라고 했었던 약속이 어긋났죠. 저는 이제 돌아갈 기약이 없고, 뭐든 하긴 해야겠고 그래서 공방에서 이런저런 가구를 만들다가 어느 날 스피커를 한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처음에는 네모나고 평범한 걸 만들어봤어요. 그런데 도저히 저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동호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도움을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한 회원 분한테 연락이 왔어요.

 

최일구: 아, 그분이 책에 쓰셨던 K박사인가요?

 

박성제: 네, 오디오 전문가이시고 지금은 큰 기업의 오디오 연구팀 책임자로 계신 분인데 디자인은 제가 했지만 기술적으로는 그분이 도와주셨죠. 쿠르베는 소리를 낼 때 가장 좋은 컨셉으로 만든 디자인이고,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많이들 디자인만 그럴 듯 하고 음향은 별로일 거라고 오해를 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소리에 있어서는 이것보다 가격이 몇 배 더 비싼 다른 스피커들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다들 나무로 안 만들어요. 무늬목을 붙이고 마치 나무인 것처럼 하는데, 저는 악기를 만드는 나무로 제작하고 싶었어요. 여기에 쓰인 나무는 핀란드에서 온 자작나무로 만든 겁니다.
 
최일구: 그런데 굳이 그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박성제: 단가를 낮추라는 제안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스피커는 세상에 많잖아요. 쿠르베를 만드는데 한 3주 걸리거든요. 저는 이 스피커의 가치를 알아주시는 분이 주문을 하면 열심히 장인정신을 담아 만들고 싶어요. 이걸로 돈을 벌려는 생각은 없으니까요.

 

최일구: 박기자는 지금 복직 심리중이잖습니까. 1심에서 승소했고요. 저는 복직이 될 거라고 보는데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릴 거란 말이에요. 최종적으로 복직 판결이 나면 다시 기자로 돌아갈 겁니까?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박성제: 저는 물론 돌아갈 것이지만 스피커를 그만둘 수는 없죠. 처음에는 이 일을 해직기간동안 버티는 힘으로 생각했는데, 1년, 2년 넘게 하다 보니 애착이 생겼어요. 제 스피커를 인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도 생기고요. 제가 나중에 만약 MBC로 돌아가면 저 없이도 이 사업이 돌아갈 수 있게끔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해직기자가 만든 스피커가 아니라 그냥 쿠르베 그 자체로요.

 

마지막으로 박성제는 관객들에게 경기민요인 ‘태평가’를 틀어주며 청음회를 마무리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살다보면 내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나에게 들이닥치는 날도 있고,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생길까하는 고민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짜증을 내면 무슨 소용인가, 즐겁게 행복하게 살자. 이것이 그가 태평가를 통해,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해고를 당하고, 스피커를 만들고. 이런 과정이 지난 4, 5년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 정말로 제 의지, 의도와는 상관없이 벌어졌어요. 살다 보면 내 인생이 어느 순간 어딘가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서 완전히 바뀔 때가 있어요. 그건 내 선택과는 관계없이 벌어져요.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나에게 선택의 순간이 와요. 기로에 놓이는 거죠. 그 순간이 왔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내가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했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한 결과가 이 스피커입니다. 앞으로 좀 더 인정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직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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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박성제 저 | 푸른숲
해직 후 3개월을 허송세월로 보낸 어느 날, 남아도는 시간에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목공예에 발을 들인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몸을 움직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목공의 재미에 이내 깊게 빠져든다. 일은 점점 커져서 급기야 입문 두 달 만에 ‘내 손으로 만든 세상에 없던 스피커, 평생 쓸 진짜 멋있는 스피커’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해고당한 지 약 1년 뒤, 갖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수제 스피커 장인이 되어 〈GQ〉에서 극찬한 명품 스피커, 드라마 〈밀회〉의 스피커와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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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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